아마 6학년 때였던 것 같다. 어느 저녁 무렵 어머니의 심부름을 나갔다. 부지런히 걷고 있는데, 저쪽 앞에 내 또래의 한 남자아이가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울상 짓고 있었다. 소년의 얼굴은 꾀죄죄하고, 손에는 때가 가득 낀 빈 깡통이 들려 있었으며, 옷은 많이 해졌다. 그 무렵 한국에는 그런 아이들이 많았다. 그 소년을 울상짓게 만드는 그 하늘을 나도 눈을 들어 쳐다보았다. 먹구름이 잔뜩 끼어 금방이라도 비가 퍼부을 양이었다. 먹구름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며 울먹이던 그 아이. 그 눈에서도 하늘처럼 소나기가 쏟아져 내릴 듯했다. 그는 얼마나 속상했을까. 이제 곧 비가 올 것인데, 그러면 어디서 자야 하나, 어디에 가면 비를 피할 곳이 있을까. 오늘은 밤새 비를 맞으며 추위에 떨어야 하는 건가. 얼마나 속상했으면 하늘을 쳐다보며 울먹였을까.
어린 마음에 그 아이가 너무 불쌍하고 가슴이 아팠다. 저 아이는 저녁은 먹었을까? 배가 고프지는 않을까? 가족들과는 왜 헤어져서 저렇게 혼자일까? 정말 이제 곧 비가 올 텐데 그럼 어디서 비를 피할 수 있을까. 지금과는 다른 그때는 그런 아이들이나 어른들을 도와줄 사람도 많지 않았다. 나 역시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그 상황에서 그냥 마음만 아팠다. 그 아픈 가슴은 감정적인(emotionally) 아픔이 아닌 진짜 가슴이(physically) 아픈 것이었다. 그날 집에 와서도 계속되는 가슴 통증에, 어머니께 가슴이 아프다고 하니, 어머니는 혹시 먹은 것이 잘못됐나, 뭔가 체했나 염려하셨다.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 아이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도 나처럼 가슴이 아프면 어떡하나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가끔 그 가여운 아이가 생각이 난다. 어디에 살고 있을까?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모든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결국에는 성공한 삶을 살았을까? 아니면 여전히 예전의 그 모습으로 지금 내 나이대의 노후를 맞이하였을까. 제발, 잘 이겨냈기를 바랄 뿐이다. 누구라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려웠던 그 시절, 유난히 더 힘든 생을 맞이한 그 어린 소년이 자꾸만 내 가슴에 통증을 준다.
그 이후로도 나는 뭔가 슬프거나 ‘가슴 아픈’일이 있으면 진짜 가슴에 통증을 느낀다. 내가 TV를, 특히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큰 이유 중 하나가 그런 부분이다. 혹시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힘든 일을 당하면 그냥 마음이 슬픈 것이 아니라, 내 가슴은 통증을 느끼고 한참을 그 통증에 시달려야 한다. 그게 나는 참 싫다. 사실인 것도 아닌, 그냥 꾸민 이야기로 인해 내가 이렇게 통증을 느껴야 하나, 그건 바보 같은 짓이 아닌가. 그런 연유로 드라마를 보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이 들면서 또 다른 가슴 통증의 이유가 생겼다. 많이 피곤하면 가슴이 먼저 아파온다. 보통은 피곤하면 그냥 몸이 나른하다거나 그야말로 피곤하여 쉬고 싶거나, 심하면 차라리 몸살을 앓는 게 정상인데 나는 가슴이 아프다. 가슴에 통증을 느끼면 아, 내가 피곤한가보다, 생각하고 쉰다. 피곤과 가슴 통증이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최근에 배우는 것도 많고, 운동도 너무 많이 하나 보다. 며칠 전부터 가슴 통증이 자주 나타난다. 좀 쉬어가며 해야 하는데, 잠시도 쉬는 시간이 아까워, 나에게 확실한 각성제인 커피를 마시며 버티고 있다.
뭐, 별일은 없겠지? 얼마 전 받은 종합건강검진에서 “모든 것은 정상입니다”라고 나왔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