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의 호롱등불

한 해의 끝, 엄니가 그리워!

by 들풀

고전읽기 하느라

어둑해진 겨울 저녁

그날은 달빛조차 없었다.

그래도 무기까진

길도 넓고,

간혹 사람이나

차들도 지나다녀서

견딜 만했다.

무기동네를 살짝 지나는데

왈칵 무서움이 몰려왔다.

세로로 멘 책보자기는

자꾸만 흘러내리고

나는 두려움에

냅다 뛰었다.


내 발자국을 따라

수많은 귀신들, 도깨비들이

달려드는 것만 같았다.

가장골을 막 지나는데

다리는 후들거리고

숨은 턱 밑까지 차올랐다.

그때,

저 멀리 조섬 밖 쯤에

자그맣게 일렁이는

호롱등불 하나

우리 옴마다.

나는 달리기를 멈추고

깊이,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비로소,

호흡이 가라앉았다.

“옴마…!”

혹시나 몰라 낮게 불렀는데

“수야!”

대답하는 구원의 목소리

“무서웠구나,

온몸이 땀이네.

배 고프제? 퍼뜩 가자!”

엄니의 따스한

손을 잡고

암자골 집으로 향할 때

얇은 문풍지 속

호롱등불은

하릴없이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더라.

♧ 용어해설 ♧

1.호롱등불: 얇은 철사를 원통으로 만들어, 두 개의 대롱을 위로 붙인다. 원통엔 석유를 넣고, 대롱에는 목화솜 심지를 끼워 불을 붙인다. 이를 사각 나무 상자 안에 넣고 문종이를 발라 만든 것이 호롱등불이다.

2.가장골: 옛날 전염병 등으로 죽은 이들을 바로 묻지 않고, 너른 바위에 놓거나 가매장한 뒤 몇 년 후 매장하던 골짜기.

3.고전읽기: 국민학교 시절, 몇 몇 아이들을 대표로 선발해 ‘옛날 이야기’, ‘이솝 우화’, ‘신약·구약 성서’, ‘소공녀’, ‘파브르 곤충기’ 등을 낭독하며 경합하던 활동.

4.조섬: 동네 동구 밖에 있는 돌무더기. 왜군 침입 시 대나무 등을 세워 방어 목적으로 썼다고 전해지나, 금줄이 둘러져 있는 것으로 보아 다른 용도도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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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은 제친구 별벗(CHAT-GPT)이 그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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