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

月白 雪白 天地白 山深 夜深 客愁深)

by 들풀

묵은 해가 가고, 여지없이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해라고 하네요. 나는 올해부터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데, 말처럼 뛸 생각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가족이 두 분이나 생겼어요. 그분들께 들풀이 들려주는 심심풀이 얘기랍니다.

사무장님, 실장님!

예전에 엄니께 들은 얘기를 각색했는데, 한 번 가볍게 들어보실래요?

서방님, 답시를 가져오세요!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아주 예쁜 처녀가 부모가 정혼한 남자와 혼인을 했어요. 결혼식을 하는 날, 하얀 눈이 엄청 내렸어요. 첫날밤, 신혼집에서 거사를 치르기 전에 색시가 돌아 앉은 채 말했지요.

"서방님, 제가 시를 읊겠습니다. 월백 설백 천지백(月白 雪白 天地白)!"

남자는 댓구가 도저히 생각나지 않습니다. 한참을 묵묵히 앉아 있는데, 색시가 다시 말했어요.

"이 댓구를 알 때까지 저는 서방님을 받아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깊은 산 중의 절에 들어가셔서 정진을 하십시오. 답을 가져 오시면 진정한 소첩의 서방님으로 모시겠습니다. 그때까지 일구월심(日久月深),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날 밤에 남자는 가족들에게 학문을 정진하기 위해 떠난다는 서찰을 남기고 도로(徒勞)산에 있는 십년사(十年)샤로 떠났어요. 정진에 정진을 거듭해서 학문이 경지에 이르렀는데도, 댓구는 떠오르지 않았어요. 집을 떠난지도 10년이 되었어요. 그날도 떠나는 날처럼 산사 밖에 하얀 눈이 엄청 내렸어요. 남자는 창문을 열고 하늘을 보는데, 보름달이 엄청 밝게 빛나고 있었지요.

"월백 설백 천지백(月白 雪白 天地白)"

조용히 색시가 건네준 싯구를 읇조렸어요. 그런데 십년 나그네의 서러움이 복받쳐 올랐어요.

"山深 夜深 客愁深!"

가슴 속에서 올라온 싯구.. 절묘한 댓구 시가 마침내 완성 되었어요. 남자는 포효를 질렀지요.

"月白 雪白 天地白! 山深 夜深 客愁深!"

엿듣는 양상군자, 아니 양상스님

옆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양상(梁上)스님이 그 소리를 들었어요. 10년 동안 동고동락을 해서 그 사연은 이미 알고 있었거든요. 양상스님은 부리나케 봇짐을 쌌어요.

.... ....

다음날 남자는 큰스님께 하직인사를 하고는 짐을 챙겼어요.

부푼 가슴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지요!

"색시, 내가 이제야 왔소!"

큰 소리를 지르며, 대문을 두드렸어요. 드디어 아내가 대문을 열어주네요. 남자가 아내를 안으려고 하는데..


"그대는 뉘신데 아녀자의 몸에 손을 대려 하시오!"

버럭 고함을 지르는 겁니다. 그런데 인기척이 나더니, 까까머리 중이 적삼을 걸치고 방에서 나오는데.. 세상에, 바로 양상스님(도둑놈,梁上君子)입니다.

"10년 공부(十年功夫) 도로아미타불(徒勞阿彌陀佛)! 양상(梁上君子)에게 색시도, 세월도 빼앗겼으니.. 그것도 저 놈의 복이겠지!"

남자는 힘없이 돌아서면서,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싯구로 자신을 시험하고 답시만으로 양상을 받아들인 경솔한 아내도 그리 신실한 사람은 못되는 것 같고..

자신의 시를 도적질해서는 한밤 중에 집으로 와서 자신의 행세를 하는 양상스님의 앞날도 뻔히 보이는 겁니다!

색시, 과유불급이요!

남자는 그 길로 한양으로 떠나서 과거를 봤어요.

각자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절대 상상금지!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지나침은 부족함보다 못한 법입니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진정한 가족을 환영합니다!


(2026. 1. 1. 늦은 밤에 하얀 달을 보며, 들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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