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술꾼이야!

들풀 가족의 술 내림

by 들풀

아! 브런치 연재를 두 개를 끝내고 나서, 조금 발길이 뜸했는데.. 무조건 죄송합니다!

사무실 준비를 하느라 바쁘게 뛰어다니다 보니,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시시 때때로 간절합니다. 요새는 건강에 대한 염려 때문에, 술을 자제하고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럼 저의 술 사랑 이야기를 혼자 읊조리려고 하는데, 들어 보실래요?

술꾼 들풀

나는 태생적으로 술꾼이야. 울 아버지는 '지고는 못 가도, 마시고는 간다'고 하실 정도로 막걸리 애주가셨지. 어느날, 술 취한 아버지께 여쭈어 보니 장에서 혼자 막걸리 2말을 드셨다고 하셨어. 술이 몸으로 갔는지 아버지는 힘이 장사셨지. 막걸리 2되를 한 자리에서 들이키고 나락 2섬을 지게에 지고 깨금발(외발)로 걸으셨데. ​ 아버지는 돌아가실 순간까지 댓병 소주를 머리 맡에 놓고 계셨어. 안주는 그냥 김치야. 그런데 그걸 얼마나 아껴 드시는지, 드실 때 쪽 소리가 났어. 애인도 그런 애인이 없었지. 소주 댓병이 사흘이면 끝났어. ​


우리 작은 아버지도 역시 애주가야. 몸이 너무 허약해서 음식을 드실 수가 없는 데도, 댓병에 든 쐬주는 드시는 거야. 숙모가 숟가락에 쐬주를 부어 입에 가만히 흘려 넣었어. 그러면 작은아버지는 한참 머금고 계시다가 꼴깍 소리를 내며 삼켰어. 곡기를 끊으시고 보름 이상을 버티신 것은 오로지 쐬주 힘이야. ​


그런 유전자를 이어 받았으니 나도 오죽 하겠어. 대여섯살 때 술을 먹은 것은 가난때문이었어. 술 찌꺼기를 먹다가 술 맛을 알고 만 거야. 그래도 어쩌겠어, 돈이 없는 걸. 나는 아버지 술 심부름이 좋았는데, 그건 탁배기 몇 모금을 마실 수 있기 때문이었어. 물론 마신 양만큼 물을 채워서 들키지는 않았어. 그러면 아버지는 "요새 술은 와 이리 싱겁노." 하시며 '껄, 껄' 웃으셨지. ​


엄니는 밀주(술도 마음대로 못 담았던 더러운 세상)도 종종 담그셨지. 술을 단속하려고 나오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어. 아랫목에 둔 술단지에서 뽀글 뽀글 술 익는 소리가 참 좋았지. 엄니는 전주(거르기 전의 원액)를 떠서는 내게 한잔 건네는 거야. 달짝지근한 것이 꿀맛이었고, 알딸딸한 기분이 끝내주었어. 다 익은 밀주는 눈을 피하기 위해 밭에 구덩이를 파고 묻어 두었지. ​

신나는 여름 천렵

그러니 나는 태생적으로 술꾼이야. 내 술인생의 절정은 고등학교 때야. 여름 쯤이 되면 친구들과 천렵을 떠났어.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냇가를 갠노(아주 큰 망치)를 어깨에 매고 오르는 거야. 물속에 있는 돌을 힘껏 내리치고는 돌을 뒤집으면 기절한 물고기가 떠 올라. 갈-티(갈겨니)를 비롯해 땅고기, 탱가리 등 닥치는 대로 잡았어. ​


소주를 밥그릇에 붓고 한 모금에 들이켜. 원샷인데, 그 때는 그런 거 모르고 아까워서 쪽쪽 빨아 먹었어. 안주는 천렵한 고기를 손가락으로 내장을 쭉 훑어내고는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거야. 안주 맛이 입맛에 감돌면 다시 한잔을 따라서는 또 쭉 털어넣었지. 2병씩 가져간 댓병이 바닥을 드러내면 우리는 히죽 웃으며 바닥에 누웠어.


고등학교 진학을 못하고 촌에서 농사짓는 친구들에게 나는 참 미안했어. 근데 까까머리인 나는 그들의 긴 머리가 부러웠어. 우리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어. 야전(야외전축)에 양판을 올려. 판이 돌아가고 우리는 무너져 내렸어. 더러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지.


그러다가 대학생이 되었어. 내 가시나가 떠나갔어. 나는 술을 찾는데, 돈이 없었어. 그때 막내 형님과 같이 살았는데, 마침 형수가 담은 뽈똥(보리수)주가 보이는 거야. 5되 짜리였는데, 다 마셨어. 마지막 한 잔을 들이키고 나는 노래를 불렀어. "한 많은 이 세상, 야속한 님아~!" 어때, 절묘하지?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는데, 우리 형수가 시동생 구토물을 치운다고 고생했을 거야. ​

야전에 맞취 고고를!

한창 때, 나는 직장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술꾼이었어. 누구나 술을 많이 마실 수는 있지. 그러나 술을 마시는 양으로 술꾼이라고 하는 것은 아냐. 술꾼은 말이야, 실수를 하지 않는 거야. 술자리에서는 물론 평정심을 유지해야지. 술자리를 마지막까지 정리하고, 다음날 더 일찍 출근해서 쌩 쌩 일을 하는 거야!


술 냄새를 전혀 풍기지 않는데, 그건 반드시 새벽에 목욕을 해야 하는 거야. ​ 술 많이 마신다는 양을 자랑 하지마. 술 마시고 기분 좋다고 실수도 해선 안돼. 그건 술꾼에 대한 모독이야. 기분 좋다고 술값을 마구 마구 계산하는 것도 곤란해. 사랑하는 옆지기에게서 쫒겨날 수도 있어. 이제 나이도 들었으니 술을 절제해야지. 술꾼은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해! ​


후후.. 우리 아이들은 어떠냐구?

그 나물에 그 밥이겠지. 딸도, 아들도 술을 좋아해! 우리는 가끔 가족 전체가 술잔을 나누며, 정치를 비롯해서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딸과 아들은 과음을 절대 하지 않는 것 같고, 절제도 하는 것 같은데..


(또 모르지, 친구들하고 마실 때는 다를지..)

그대는 어때요, 술꾼 맞아요? ​

♧ 직장에서 50여명이 회식을 하면 들풀은 삥 돌면서 잔을 귄합니다. 당연히 답잔을 받아서 한 번에 원샷입니다. 물론 약주를 드시지 않은 분들께는 음료수를 귄하지만, 받는 잔은 쐬주입니다. 한바퀴 돌고 나면 50잔을 들이킨 셈입니다.


"술 마시는 것이 무슨 자랑이라고?"

아내는 싫어하지만, 나는 추억 속에서는 여전히 술꾼입니다!

오늘은 2025. 12. 31.!

한 해의 마지막날입니다. 만나서 정말 빈갑고, 고맙습니다. 새해에는 뜻하는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시길 기도드립니다.

※ 그림은 제 친구 별벗(CHAT-GPT)이 그렸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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