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보고 싶은 우리 선생님!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젖먹이 어린아이가 있는 새댁이셨다. 가끔 선생님은 당시 학급 임원(급장, 부급장, 총무, 서기)을 맡고 있던 우리들에게, 시어머님이 돌보던 아기를 데려오라고 하셨다. 선생님 댁은 학교에서 5분 거리여서, 우리는 부리나케 달려갔다. 할머니(선생님의 시어머님)는 우리에게 뽀빠이 과자를 나눠주셨고, 그 심부름길은 언제나 행복하기만 했다.
우리가 아기를 안고 가면, 선생님은 교탁 뒤로 돌아앉아 아기에게 젖을 물리셨다.
아기는 가끔 울며 보채기도 하고, 까르르 웃기도 했다.
아기도 천사처럼 예뻤지만, 젖을 먹이는 선생님의 뒷모습은 성당에서 본 성모 마리아 조각처럼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러던 3월 말의 어느 날이었다.
선생님은 오전 수업을 마치면서 무성리에 사는 친구들을 모두 불렀다.
"오늘은 너희 마을로 가정방문을 할 테니까, 나중에 같이 가자!"
우리 무성리는 아랫마을인 무성마을, 중간의 토담마을, 산언저리의 산곡마을, 이렇게 세 개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우리 반에는 대여섯 명의 동리 친구들이 있었고, 우리는 선생님을 졸졸 따라 들길을 걸어갔다.
선생님이 아랫마을 친구들의 집을 둘러보는 동안, 우리 마을과 윗마을 친구들은 부리나케 집으로 뛰어갔다.
나는 들에서 일하시는 어머니를 찾았다.
"어무이! 우리 선생님이 오늘 가정방문 오십니더!"
"알았다. 내 밭 조금만 더 매고 갈게."
동네 친구와 나는 마을 어귀에서 선생님을 기다렸다.
저 멀리 선생님이 아랫마을 아이들과 함께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선생님을 모시고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아직 어머니는 밭에서 돌아오지 않으셨다.
나는 다시 밭으로 달려가 어머니를 부르러 갔다.
별벗 그림: 이아고, 선상님! 빈갑습니더..
그런데 급히 오시는 것은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밭에서 김을 매던 손을 툭툭 털고는 덥석 선생님의 손을 잡으셨다.
"아이고, 선상님. 이 먼 곳까지 오시느라고 다리 아프셨지예. 얼라(아이)를 맡겨놓고 찾아뵙지도 못하고……"
할머니는 먼지가 수북이 쌓인 마루를 급히 걸레로 훔치고,
시렁 위에 얹어둔 소쿠리에서 삶은 고구마를 내어놓으셨다.
"선상님, 이리 좀 앉으이소. 살림이 워낙 이렇다 보이 드릴 것도 없네예. 이 고구마라도 하나 드시보이소."
할머니가 권하는 고구마를 선생님은 껍질째 한입 베어 물으셨다. 나는 얼른 부엌으로 달려가 밥그릇에 찬물을 떠다 선생님 앞에 놓았다. 선생님은 남은 고구마를 손으로 분질러 나와 할머니께 건넸다.
"고구마가 참 달고 맛있습니다. 할머니도 드시고, 수야도 같이 먹어요!"
별벗 그림: 이 고구매라도 좀 드셔요.
선생님은 흰 이를 드러내며 배시시 웃으셨다.
선생님과 할머니의 대화는 한참 동안 이어졌다.
이제 친구네 집으로 향하는데, 동네 꼬맹이들까지 따라붙어 행렬이 제법 길어졌다.
친구 어머니는 삶은 달걀과 귀한 강남사이다를 내어놓으셨다.
나는 괜스레 친구가 부럽고, 또 부끄러웠다.
선생님은 달걀 하나를 까서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한 조각은 드시고 나머지는 우리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셨다.
윗마을에 있는 친구네 집으로 가는 도중, 보리밭에서 친구의 부모님을 만났다.
선생님과 부모님은 또 많은 말씀을 나누셨다.
이제 선생님은 다시 15리 길을 걸어 읍내로 내려가셔야 했다.
우리는 동구밖까지 따라 나가 선생님을 배웅하며 손을 흔들었다.
"어서 들어가!
집안일 많이 거들고!"
선생님은 손사래를 치셨다.
그 시절, 선생님이 우리 집을 방문하신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던 때였다.
그러고 나서 어느덧 6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경상남도교육청은 최근에 '교육복지안전망 사업'을 도입하여, 학업중단 위기 학생이나 소외계층 학생을 대상으로, 담임교사와 상담교사가 직접 가정을 방문하거나, 학교 밖 복지 자원을 연계해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선생님의 가정방문은 과거처럼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한 일상적인 방문이 아니라,
학생 한 명, 한 명의 상황에 맞춘 '맞춤형 지원 활동'이란다. 형식은 달라졌지만, 아이들을 향한 따뜻한 손길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학교와 가정이 손을 꼭 맞잡고, 공교육의 희망을 함께 키워나가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란다.
#들풀수필 #들풀의마음쓰기 #들풀의사는이야기
#가정밤문 #들풀브런치 #브런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