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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니 Sep 22. 2022

매일이 시작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몸이 무겁다. 모든 직장인의 출근길이 즐겁지 않겠지만, 작년부터 자영업자로 살아온 나는 하루를 멍하니 시간만 때울 수도 없어서 아침마다 출근하기 싫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더욱이 고액의 임대료와 고정지출을 충당하려면 매일 문을 여는 것이 불가피했기에, 내 삶 없이 1년 가까이 살다 보니 이게 사람 사는 건가 싶을 때도 있다. 그렇게 나는 B급 취향을 위해 아니 생존을 위해 단 하루도 포기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어쩌면 끝이 보이는 시작이었다. 코로나19의 확산과 열악한 소상공인의 삶을 미리 가늠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근거 없는 기대감에 연일 줄폐업하는 자영업자의 이야기는 나와 먼 이야기라 치부했다. 철부지의 용기는 전국 곳곳의 책방들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도 굳건하게 내 마음 어딘가에 자리했다.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었다. 하루하루가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긴축재정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내가 누리던 많은 것을 포기했다. 자취방을 나왔고,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 오븐과 커피머신의 열기 때문에 애초에 화장은 포기했고, 새 옷을 샀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어느샌가 내 일상은 B급 취향 유지에 맞춰 돌아갔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개업 1주년을 앞두게 됐는데, “어떻게 그래도 1년은 버텼네?”라는 언니의 말을 곱씹을수록 스스로가 대견하고 안쓰러웠다. 나의 지난 1년은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앞에서 B급취향 안에 갇힌 채로 버티는 삶 그 자체였으니까.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시간 동안 애쓴 나를 위해, 또 이곳을 찾아준 손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1주년 파티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파티 비용 일부를 참석자의 회비로 충당하고 차액은 내가 부담하려면 1주년 파티 전까지 어느 정도 자금을 확보해야 했다. 예산을 설정하고 내가 모을 목표액을 산정했다. 조금 더 허리띠를 졸라매면 어떻게든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계획을 잡았다. 그러나 계획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간과하고 낙관적으로만 생각했던 것이 실수였다. B급 취향을 연 후 최초로 ‘손님 0명’이라는 기록을 달성하고, 며칠 동안 최저 매출을 찍으며 계획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손님 총량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일정한 기간동안 방문하는 손님의 수는 정해져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오늘 손님이 많이 왔으면 내일은 현저히 그 수가 적어진다. 생체리듬처럼 밸런스를 맞추며 ‘손님 총량의 법칙’에 따라 손님의 숫자가 유지되었기 때문에 매번 가까스로 고정지출만큼의 매출이 나왔다. 그런데 손님 0명이라니.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어서 당혹감이 먼저 들었다. 내일은 다를 거라는 희망과 달리 그 후로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한 주를 보내며 매출은 연일 최저 기록을 냈다.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지.”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던 지난날의 기억은 의미가 없었다. 정신 승리할 만큼 여유가 있는 상황도 아니기 때문에 불안과 짜증의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잠식했다. 1주년 파티는 차치하고라도 일단 먹고는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과 함께.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겨울 어느 날 며칠 동안 거의 손님이 오지 않아 종일 울적한 마음이었던 나는 늦은 시각에 쿠키를 잔뜩 사가는 손님을 붙잡고 고맙다며 엉엉 운 적이 있다. 그러나 어엿한 경력직 사장이 된 나는 누굴 붙잡고 울 수도 없었다. 손님의 발길이 끊겨 우울감으로 시간을 보냈던 날들을 떠올리며, 그런 순간을 지나 어떻게 지금에 왔는지 그때마다 나는 무얼 했는지 생각했다.     


나는 여태껏 “안 되면 되게 하라”를 실천했던 걸까. 막무가내 정신을 발휘했던 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나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벽을 뚫어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 스멀스멀 피어났다. 그렇게 탄생시킨 것이 포항 여성 독서 모임 <FEMINA>, 디저트 카페 겸 서점 <B급 취향>, 페미니즘 글쓰기 모임 <써, 글>이었기 때문에 또 다른 시작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솟구쳤다.     


전국에는 수많은 동네 책방이 있고 그 안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대부분 비슷한데 독서 모임, 글쓰기 모임 등이 그러하다. 나는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어서 결이 비슷할지라도 완전히 같지 않고, 독창적인 나만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다른 책방의 프로그램은 무엇이 있는지 찾으면서 내가 잘할 수 있고,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며칠간 정보를 찾아본 결과 책방 주인끼리 주고받는 편지 형식의 메일링 구독 서비스는 어디에도 없었다. B급 취향을 준비하기 전부터 어렴풋이 바라 왔던 메일링 구독 서비스를 하기로 결정한 순간이었다. “이거다!”라는 생각과 동시에 평소 자주 소통하던 포항 오천읍의 지금 책방 대표님께 구독자를 모아 메일링 구독 서비스에 함께할 것을 제안했다. 고심 끝에 제안을 수락한 대표님을 만나 내가 구상한 기획, 구독 서비스의 이름과 의미를 설명했다. 모든 준비가 끝난 후 홍보물을 만들어 SNS에 게시했다. 여태 그래 왔듯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과 구독 신청자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잠들었다. 이튿날 생각보다 많은 신청자 수에 약간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또 벽을 뚫게 되는 건가!” 하는 희망찬 설레발이 뒤따랐다.     


사실 글을 쓰는 일은 품이 많이 들어간다. 시간 대비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에 어려운 데다 돈이 되는 일도 아니다. 또 기존 구독자의 이탈 없이 새로운 구독자가 유입될 가능성도 미지수다. 그러나 책과 관련된 사업을 하는 것만큼이나 구독 서비스는 그동안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라는 것에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덜컥 시작했던 B급취향에 신기하게도 찾아오는 손님이 늘고, 단골손님이 생겨난 것처럼 나의 새로운 시도를 지지하고 응원해줄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또 내게는 지치지 않는 에너지와 안 되면 되게 하는 정신력이 있으니까.     

일단 저지르면 수습은 나중의 내가 할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 성격 탓에, 무엇이든 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시작하고 만다. 결과가 어떨지 매번 장담할 수는 없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참이라면, 행동력이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나는 언제나 반쯤 앞서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남은 반을 채우기 위해서는 첫 시작 때의 마음과 꾸준함이 필요하다. 긴 터널을 지나는 중이라 남은 반이 채워지는 과정이 명확히 보이지 않을 뿐 아직은 잘해 나가고 있다고 스스로 평가한다.     


오늘은 손님이 얼마나 올까 하는 두려움과 기대감이 뒤섞인 마음으로 매일을 시작하고, 때때로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으로 새로운 시작에 도전한다. 메일링 구독 서비스 <주간 쌍연>은 나의 N번째 시작일 뿐이다. 하고 싶은 것이 무척 많은 나는 앞으로 계속될 많은 시작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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