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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니 Sep 22. 2022

글쓰기의 기쁨

올해 상반기 한 달 평균 9권의 책을 읽었다. 엄청난 다독가는 아니지만 꾸준히 읽는다. 나를 글이라면 읽고 보는 활자 중독자로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다른 것에 허비하는 시간이 적지 않고 내가 읽은 도서 목록은 편협하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긴 했어도 본격적으로 읽기에 빠져든 것이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늘 책에서 답을 찾았다. 관계에서 상처를 받거나 복잡한 마음으로 힘겨울 때 책을 펼치면 잡념이 사라지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무엇보다 독서로 모르는 단어나 내용을 알게 되는 순간의 묘한 쾌감은 꽤 중독적이었다. 독서는 앎에 대한 내 욕망을 가장 빠르고 쉽게 충족시켜주는 매체이기에, 매일 읽지 않으면 괜히 바보가 되는 느낌이다. 읽고 생각하는 기쁨은 내 삶을 지탱하는 것이기도 해서 평생 생계 걱정 없이 책만 읽어야만 한다면 기꺼이 그러고 싶은 마음이다.     


독서만큼 흥미로운 일이 어디 있을까. 이미 10여 년 전부터 비생산적인 만남을 기피 해 온 나에게는 책에 버금가는 친구가 손에 꼽을 만큼 적다. 소모적인 만남을 끝낸 후에는 언제나 “이럴 시간에 책이나 읽을걸”하는 후회가 밀려온다. 거듭된 후회는 나로 하여금 책을 더욱 사랑하도록 만들었다.     


몇 년 전 책 읽는 이유를 묻던 누군가에게 나는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읽는다.”라고 답했다. 책은 세상을 다층적으로 볼 수 있도록 돕기 때문에 나는 일찍이 가치관과 신념을 정립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책으로 배운 내용들과 그로 인해 확장된 사고는 내게 끊임없는 성찰을 요구했다. 일상의 나와 이상의 나 사이 괴리를 느낄 때면 책을 펼쳐 그 안의 유연함을 마음과 머리에 장착한다. 그러고 나면 상당 기간 말랑말랑한 상태로 지낼 수 있다. 그러니 꼰대가 되지 않으려 독서 한다는 내 말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맞는 셈이다.     


코로나19로 기존에 설정해둔 장기 계획이 무산되면서 모든 상황은 책과 관련된 사업을 하게끔 굴러갔다. 사라지는 전국 각지의 책방 소식을 들으며 불안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오랜 꿈이었던 책방 운영을 영영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마음에 사업계획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책과 사람을 잇기에는 적극적이고 친화력 좋은 성향의 내가 최적이라 여기며, 묵혀두었던 취미와 특기를 톡톡히 살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설렘과 희망, 책방 주인이라는 왠지 모를 낭만이 더해져 내 가슴은 한껏 부풀었다.          


B급 취향을 열면서 원 없이 책을 읽고 있는 요즘 애정하는 것이 일이 될 때의 슬픔을 느낀다. 조금씩 개수를 늘린 독서 모임은 동시에 4개를 운영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독서 모임을 여러 개 운영하는 것이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독서 모임 진행과 참여를 위해서 모임 책을 읽어야만 하기에 정작 내가 개인적으로 읽고 싶은 책은 읽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평생 책만 읽을 수 있다고 자부하던 내가 책 사이에 파묻혀 지내면서도 더 많은 책을 읽지 못한다는 이유로 괴로워하는 것이다. 여러 권의 책을 읽는 병렬독서도 내 독서욕을 완벽히 해소하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간사함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아이러니가 못마땅하기도 했다.     


어느 날 오래전부터 책을 읽은 뒤 써온 리뷰를 보면서, 차곡차곡 정리된 과거의 내 생각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건 내 생활의 일부였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계속해서 리뷰를 쓸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가만히 생각했다.

형식이나 분량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대로 쓴 것은 물론, 반드시 써야 한다는 부담 없이 내킬 때마다 썼기 때문에 리뷰를 쓰는 것은 독서 후 따라오는 행위로 굳어진 것이었다. 무의식 중 많은 양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힘들게 한 것은 아닐까 자문하자 곧 그렇다는 답이 튀어나왔다. 또 무엇이든 꾸준하게 하는 것은 쉽지 않은데 나는 그걸 이미 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다른 무언가도 꾸준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다.     


그 후 책 리뷰를 쓰듯 그간 내 안에 어지럽게 자리했던 감정이나 생각을 쓰기 시작했다. 쓰기는 읽기보다 품이 많이 들었다. 그만큼 생각을 많이 해야 해서 독서 할 때보다 더 많은 통찰과 성찰이 필요했다. 읽기에서만 느낄 수 있다고 여겼던 배움이, 쓰기에서도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자 원하는 책을 많이 읽지 못한다는 불만이 조금씩 해소됐다. 그리고 많은 것을 읽기보다 읽는 행위가 주는 즐거움을 느끼며 전보다 부담 없이 독서를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짧게라도 글을 완성하는 것과 미완의 글이더라도 내 생각을 남기는 것의 뿌듯함으로 나는 점차 글쓰기에 매료됐다.


그간 읽어온 수많은 책 덕분에 이제는 글을 쓴다. 공책에 빼곡히 써둔 잊지 못할 멋진 표현이나 문장들이 내가 글을 쓰도록 이끌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나와 같은 사람들을 격주로 만나 서로의 글을 나눈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 우리는 세상의 중심이 되고 서사를 완성하는 작가가 된다. 개나 소나 글을 쓰고 책을 낸다고 한다. 우리라고 못 할 게 있을까? 책이 주는 행복을 만끽하며 세상에 없던 글을 만들어내는 일을 페미니즘 글쓰기 모임 <써, 글>과 함께 하고 싶다. 서로를 보고 배운 용기와 꾸준함이 주는 힘을 믿으며 이 글을 쓴다. 그리고 내가 쓴 글을 읽으며 내일을 약속한다. 읽기를 넘어 쓰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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