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는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다. 열 살 무렵이었다. 신부님은 죄를 지어 천국도 지옥도 가지 못한 사람들은 연옥으로 보내진다고 했다. 그곳에서 죄인들이 하느님의 판결을 기다릴 때, 자애로운 성모님이 기도를 올리면 하느님이 그들을 천국으로 보내준다고. 그러니 평소에 기도를 열심히 하고, 죄를 짓더라도 기도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신부님은 연옥에 대해 어떠한 묘사도 하지 않았지만 어린 내게 연옥은 아무런 빛도 들지 않는 무한한 어둠이었다. 그리고 상상 속 그곳에는 언제나 죄인이 무릎 꿇고 있었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는, 그러니까 간접적으로도 죽음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면서도 나는 늘 죽음을 생각했다. 정확히는 죽음 이후가 궁금했다. 종교계는 사후세계를 말하지만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 중 상당수는 사후세계를 부정한다. 죽음 후에 사람은 그저 사라지는 것일 뿐이라고. 이제 나는 더 이상 어떤 종교도 믿지 않지만 여전히 죽음 이후를 생각한다. 사후세계가 없다면 죽은 이의 의식은 그대로 종료된다. 종료된 의식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스스로 죽었는지도 알 수 없겠지. 죽음을 자각할 의식이 없으니까. 의식은 산 사람의 것이다. 어릴 적 이불 안에 누워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야지 할 때면 ‘어떻게 아무 생각을 안 하지?’하고서 온갖 잡념에 사로잡혀 오히려 더 잠들지 못했던 것처럼 의식의 끝은 산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이다. 사람이 떠나면 어디로 가는 것인지 정말 그대로 끝나는 것인지 궁금하지만,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는 없다.
삶의 끝에는 죽음이 있다. 멀고도 가까운 것이 죽음이다. 필연적으로 우리는 죽음을 경험할 운명이지만 죽음을 두려워한다. 숨이 멎는 건 고통을 수반할 것이라는 공포와 죽음에 대한 절대적 두려움 때문에.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에도 죽은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타의로 인해서.
그간 무고한 사람이 많이 죽었다. 전쟁이 아니다. 아니 어쩌면 전쟁이다. “빨갱이”를 색출한다는 공권력의 탄압으로,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절규에도, 이유도 모르고 바다로 사라진 배에서, 번화하기로 손꼽히는 길거리 한복판에서. 여러 형태의 전쟁에 셀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었다. 죄가 없으면 만들어졌고, 만들 죄가 없으면 망자를 비난하도록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러한 상황은 무한한 감수분열로 죽음의 행렬을 만들었고, 죽음의 역사는 언제나 진행 중이다. 그렇게 두 번, 세 번. 죽은 이는 죽고 나서도 계속 죽었다. 그대로 의식이 종료되어 그저 사라지고 만다면 망자의 억울함과 원통함은 누가 메워줄까. 망자가 사후에서라도 여한을 풀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는 사후세계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고서는 온전히 살 수가 없다.
세상에 나쁜 놈이 너무 많다. ‘귀신은 뭐 하나, 저런 거 안 잡아가고’라는 말을 매일 하게 될 정도다. 극악무도한 악행을 저지르고도 너무나 평안히 살거나 편안히 생을 마감한다. 간혹 그들은 사는 이유가 마치 남을 괴롭히는 데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미 많은 걸 가졌으면서도, 살짝만 건드려도 무너질 것 같은 사람을 끝내 절벽으로 밀어버린다. 떨어진 사람은 짐승들의 먹이가 되고, 풍화되어 점점 작아진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 될 때쯤 우리의 기억에서도 사라진다. 육체가 사라지고, 기억에서도 지워지는 사람은 금세 실재하지 않는 무언가가 돼버린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 세상에 없던 것처럼, 아니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불공평한 삶은 죽음까지 이어진다.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는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사라지는 기억이 사무치게 아프다. 순식간에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헬륨 풍선처럼 점차 흐려지는 기억을 영원히 붙들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가능한 한 자주 그 질서에 반하며 오래된 순서대로 꾸역꾸역 기억을 더듬는다.
망망대해에 홀로 표류하고 있는 듯한 하루가 반복되면 마치 시간이 나를 흘려보내는 것 같은 기분이 되고 만다. 그러면 가끔 사는 이유를 찾기 힘들어진다. 그때마다 의식적으로 책을 펼친다. 이미 사라진 존재들을 책으로 읽어내면서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생각한다.
망자의 명복을 비는 방법 중 하나는 끊임없이 의식하는 것이다. 의식은 산 사람의 것이다. 의식하는 것이야말로 산 사람의 책무다. 나는 언제고 산 자로 남고 싶다. 나와 같은 산 자를 만날 때, 저들의 사후세계는 영원한 안식의 세계이리라는 확신이 든다. 그곳에서는 부디 모두가 안녕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