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동아리 그 후

하루의 온도

by 유담연

며칠 전 대학 동아리 모임이 있었다.


K와 C와는 가끔 안부를 주고받았지만 S를 보는 건 거의 10년 만이다.

사람을 만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지만 오랫동안 만나지 않은 사람과 얘기하기 전에는 약간의 예열이 필요하다.

이게 얼마만이야, 잘 지냈어?라는 식상한 말을 건넨 뒤

이어지는 어색함에 나는 어떤 말을 이어나가야 할지 고민이었다.

결국 우리는 그 예열을 술로서 해결했다.


K가 1차를 샀다. 갑자기 사람이 여유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요즘 비어 가는 통장에 고민이 많았는데 밥을 사준다는 사람을 만나면 그게 그렇게 고맙다.

S는 요즘 대학원을 다닌다 했다.

주변에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람은 많았는데 영화로 대학원까지 가는 사람은 또 처음이었다.

그녀를 보며 그녀의 삶은 내가 그토록 바라는 인생이라 생각했다.


나도 영화를 좋아했다.

영화를 업으로 삼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영화를 보다가, 편집을 하다 밤을 새웠고 시나리오를 써 단편영화를 찍어본 적도 있었다.

보고 싶은 영화 리스트를 만들어 하나씩 지워나가면서 영화를 정복해 나가겠다고 전쟁에 임하는 병사처럼 결의를 다진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용기가 부족했다.


아주 가끔 내가 영화를 더 시도해보지 않은 이유를 생각해보곤 한다.

과거에 다른 선택을 했었다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까 하는 그런 진부한 질문은 아니다.

그 당시 나의 솔직한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아마 나는 알았던 것 같다.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만으로는 절대 해낼 수 없고 난 인문학적 소양도 지식도 상상력도 부족한 사람이다.


그래서 난 나 스스로가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다른 일을 하며 몇 년을 지나온 지금 돌이켜보면 자격이란 일을 하며 만들어가는 것이다.

도전을 해보겠다는 것으로 자격은 이미 주어진 것이고

나머지는 해나가기 나름이다.


막차를 타고 집에 왔다.

적당히 취했고 기분이 좋았다.

방에 있는 빔프로젝트를 켜 그동안 보고 싶었지만 미뤄두었던 영화 <소공녀>를 틀었다.

10분 정도 보다가 쏟아지는 졸음을 견디지 못하고 잠들었다.


2024.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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