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사역 언어가 히브리어였음에 대한 신약성경의 증거
앞에서 언급한 대로 예수님 시대 유대에는 히브리어와 코이네 헬라어를 썼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하셨을 때 대중들은 그 뜻을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서 엘리를 자기들의 언어인 엘리야로 추측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어를 들었을 때 우리말의 비슷한 소리로 잘못 알아듣는 것과 같은 현상을 보인 것이다. 대중들이 아람어를 알았다면 감히 하나님의 존호를 엘리야와 혼동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뜻도 해석하지 못해서 저가 엘리야를 부르는가?라고 질문을 했다. 그 말을 알아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아닌 것이다. 외국어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다. 여기서 고려할 것은 그 군중들 중에는 사마리아나 갈릴리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해석하지 못한 군중들을 보면 갈릴리와 사마리아 사람들도 아람어를 몰랐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아람어를 사용하신 몇몇 본문들을 보면 아람어가 사용되었거나 최소한 아람어 단어들이 우리나라에 일본어가 영향을 미친 것처럼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성경 자체의 증거가 가장 확실하다. 그런데 성경의 무오성을 공격하는 자들은 반복해서 성경을 신뢰하지 않고 그 신뢰성이 많이 떨어지는 외부 자료들에서만 근거를 찾으려고 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아람어를 쓰셨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성경에 이렇게 확실한 장면들을 기록하고 있는데도 그것을 두고 엉뚱한 주장을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히브리어로 된 이사야서를 회당에서 읽어 낭독하셨다. 그 글은 분명 이사야의 글이었고 성경이었다. 이 말은 회당에서 히브리어 성경(미크라[1])을 읽으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이나 제자들은 학식이 없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학식이 있던 그 당시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제사장 그룹들에게 판단의 대상이 되었다. 이것을 다르게 말하면 학식이 없던 예수님께서 히브리어 두루마리 성경을 읽어 낭독하셨다면 그 당시 학식이 없던 많은 다른 유대인들도 히브리어를 읽고 말할 수 있었다는 것이 된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은 일반대중들이 말할 수 없는 히브리어를 읽으실 수 있는 서기관과 바리새인 같은 학식 있는 랍비가 된다.[2]
히브리인들은 회당에서 히브리어로 된 성경을 낭독했다. 눅 4장에 보이듯 그들은 정해진 형식대로 히브리어 성경을 낭독했다. 그리고 그 성경을 가져다주고 다시 보관하는 임무를 담당한 직무가 있었다. 히브리어 성경을 읽는 것은 누가복음 4장에 기록된 외에도 회당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던 것이다. 물론 랍비들이나 자격이 있는 자들이 읽었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예수님은 인정된 교육받은 랍비가 아니셨다. 성경을 읽는 것이 랍비들에게만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남아있는 역사적 자료들을 살펴보면 회당에서 아이들에게 히브리어 문자교육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문자를 가르쳤다는 것은 그들이 히브리어를 사용한 것이다.
또 다른 성경의 증거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걸렸던 명패다.
요 19:19-20 바른
19빌라도가 명패도 써서 십자가에 붙였는데, 거기에는 "유대인의 왕 나사렛 사람 예수."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20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 도성에서 가까웠으므로, 유대인들 중 많은 이들이 그 명패를 읽었는데 그것은 히브리어와 라틴어와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었다.
대중들의 언어가 아람어였다면 히브리어 대신 아람어로 된 명패를 사용했을 것이다. 라틴어는 로마의 언어였다. 코이네 헬라어는 로마제국의 동부지역의 언어였다.[3]
그리고 유대의 현지어는 히브리어였다. 히브리어가 사어였고 아람어가 유대의 현지어였다면 명패에 히브리어 대신 아람어가 사용되었어야 했다. 이렇게 명백한 성경 속의 증거들이 있다. 정확 무오한 성경의 증거가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이것으로 볼 때 예수님 시대의 유대의 대중들은 아람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사역 언어도 히브리어다. 그리고 히브리어로 말했던 것을 후에 성경을 기록할 때에는 헬라어로 기록을 했다. 이미 이방지역에 복음이 편만해진 후에 기록했기 때문에 청중들이 함께 알아들을 수 있는 헬라어로 기록했다. 유대인들은 살아계신 예수님을 보고 듣고 알았기에 그들에게는 굳이 글까지 써서 설명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또 필요에 의해 유대인들에게 썼던 글들도 후에는 이방인들을 위해 헬라어로 번역되었을 것이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보지 못했던 이방인들에게 복음이신 예수님을 증거 하기 위해 글을 쓴 것이 오늘날의 성경이 된 것이다.
코이네 헬라어는 예수님 당시에 유대의 엘리트들이 구사할 수 있는 외국어였다. 로마의 식민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코이네 헬라어를 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학자들의 주장도 대중들의 20~30%가 코이네 헬라어를 쓰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식민지 통치에 협조하는 자들이거나 정치 경제적으로 로마의 다른 지역들과 접촉할 수밖에 없는 상위 그룹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복음이 전해진 초기의 사역에서는 헬라어가 공식 사역어가 되기는 어려웠다. 대중의 공용언어는 당연히 히브리어였다. 그러나 복음의 전파가 로마에 편만해진 이후 그 당시 로마세계의 동쪽 지역의 공용어였던 헬라어가 사역의 공용어가 되었음은 당연할 것이다. 복음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해진 후 성경도 그 당시에 유대에서만 통용되는 언어인 히브리어가 아닌 이방지역의 모든 사람들이 쓰는 세계 공용어인 코이네 헬라어로 기록된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증인들에 의해 구전으로 전파되다가 복음이 로마에 까지 편만하게 전해졌을 때 증인들(성경 저자들)이 기록의 필요성을 느꼈다. 당연히 그 기록은 그 청중들 모두가 공통으로 상용하는 코이네 헬라어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바울 서신서는 이방인들에게 기록했기에 당연히 헬라어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바울 자신도 길리기아 다소 출신으로 헬라어를 쓰는 헬라파 유대인이었다. 이로 보건대 신약성경은 처음부터 아람어나 히브리어로 기록되지 않고 헬라어로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4] 또는 히브리어에서 헬라어로 번역된 것 같기도 하다. 신약성경 안에는 이러한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히브리서의 경우 이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심각한 문제들이 많이 발견된다. 그러나 남아있는 사료나 성경자체의 증거들로는 이 부분을 확정 지을만한 단서가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을 포함한 성경의 저자들은 히브리어가 모국어였다. 그들의 머릿속에 있었던 언어는 히브리어였다. 초기 사역에는 히브리어로 복음을 전파했다. 그리고 성경을 기록하게 되는 사역의 후기에도 그들 두뇌 속 언어는 히브리어였다. 그렇다면 성령님의 감동은 히브리어로 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나 타인의 도움으로 헬라어로 번역했다. 이 번역과정에서 70인역의 역할은 지대했다. 성경의 저자들은 히브리어단어의 번역이나 구약의 인용에서 70인역을 거의 전적으로 의지했다.이제 70인역에서 인자의 사용과 그것이 신약성경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살펴보자.
[1] 미크라
구약 히브리어 성경인 타나크와 같은 뜻이지만 회당에서 낭독하는 히브리어 성경을 지칭할 때 사용된 단어.
[2]
눅 4:16 바른 예수께서 자신이 자라난 나사렛에 가셔서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읽으려고 일어나시자,
눅 4:17 바른 선지자 이사야의 책을 드리니, 그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곳을 찾으셨다.
눅 4:18 바른 "주님의 영이 내게 임하셨으니, 주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들에게 자유를, 맹인들에게 다시 보게 됨을 선포하고, 억눌린 자들을 자유롭게 하며,
눅 4:19 바른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눅 4:20 바른 예수께서 책을 덮어 시중드는 자에게 돌려주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분께 집중되었다.
눅 4:21 바른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여 "오늘 이 성경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 성취되었다."라고 하시니,
눅 4:22 바른 모든 이들이 그분을 인정하고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혜의 말씀들에 놀라면서 말하기를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라고 하였다.
[3] 발칸반도의 라틴어와 그리스의 경계를 따라 라틴지역과 코이네 헬라어 지역으로 나뉨, 그러나 로마의 지도층들은 교양언어인 헬라어를 사용할 수 있었음.
[4] 사도들 중 헬라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옆에서 헬라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 기록의 도움을 받았을 것 같다. 그러나 이들의 사역이 이방지역으로 전파되고 수 십 년이 흐른 후에 기록을 한 것으로 보아 사도들 중 처음에는 헬라어를 사용할 수 없었던 사람들도 그 선교지의 언어인 헬라어에 능통했을 가능성이 높다.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에서 순교한 것, 그리고 다른 모든 사도들이 이방지역 즉 땅 끝에서 순교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마지막 남은 사도였던 요한의 사역지가 헬라어 사용지인 안디옥 교회였다. 이것도 신약성경의 기록이 처음부터 헬라어였다는 것의 증거가 될 수 있다. 요한계시록은 그 수신자가 아시아 7교회라는 것으로 보아 처음부터 헬라어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추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