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의 인자와 구약의 인자에 대한 유대 언어사적 고찰
구약의 인자는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신약의 인자는 헬라어로 기록되었다. 그런데 또 많은 학자들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언어는 아람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본 저자는 예수님이 사역어로 쓰신 언어는 히브리어라고 주장하려 한다. 이는 상당히 긴 역사에 걸친 복잡한 상황들이 연관되어있다. 그래서 이를 관찰하려면 너무 많은 민족과 역사가 연관됨으로 인한 난해함과 사료의 부족으로 인한 추론의 불가로 문제가 고착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언어들 사이의 역학관계를 알지 못한다면 역사적, 성경 문맥적 관점에서 인자라는 단어의 참뜻을 밝히기 어렵다. 현재 이분야의 전문가들조차 신약의 인자와 구약의 인자가 동일한 단어인지 서로 다른 단어인지에 대해서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함에도 인자의 참뜻을 알기 위해서는 난해한 문제이며 쉽게 밝혀내기 어려운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이부분을 꼭 살펴봐아겠다.
아람어는 히브리어와 같은 뿌리에서 파생된 언어다. 또한 아람어는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유다가 포로 생활할 때 썼던 언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포로기의 지배국가였던 앗수르와 바벨론과 메데와 바사가 서로 같은 언어를 썼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히브리어가 아람어의 방언취급을 받는 것처럼[1] 유사한 아람어 계통의 방언들이 사용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히브리어와 아람어가 같은 원뿌리에서 파생되었지만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처럼 앗수르와 바벨론의 언어도 소통이 안되었을 수 있다. 문자들은 서로 비슷한 형태를 지녔지만 그 말은 전혀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이다. 또 아람어와 바사 즉 페르시아어는 그 언어가 완전히 다르다. 물론 고레스의 외할아버지의 나라였던 메데 즉 메디아의 언어도 완전히 다를 수 있다. 그런데 그 시기의 지배적 언어가 어떻게 아람어가 될 수 있는가? 물론 이 모든 제국들을 아울러 통용될 수 있는 언어는 아람어였다. 그러나 각 나라마다 그들의 주된 지배 종족의 언어가 있었다. 그리고 백성 모두가 아람어를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제국이 바뀔 때마다 그 지배 종족의 언어가 지배 언어가 되었을 것이고 아람어는 보조적인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 왕국들의 지배가 길었다면 아마 지배 종족의 언어가 아람어와 기타 언어들을 누르고 제국의 언어가 되었을 수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로마시대의 라틴어와 코이네 헬라어와 같은 로마의 공식 언어들이 민중들의 삶에 점점 깊이 뿌리내려가고 있음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물론 아람어가 로마시대의 코이네 헬라어와 같은 지위를 유지하고 일부지역에 지속적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로마의 유일한 공용어는 라틴어였다. 라틴어가 로마의 역사 후반부에 가면 헬라어의 지배지역이었던 동로마제국에 까지 그 지배력을 확대한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포로기 이후의 왕국들 중 가장 긴 기간의 역사를 가진 아케메네스 페르시아는 사실 공용어가 아람어였다는 기록 자체가 발견된 적이 없다.
이와 같은 내용으로 유추했을 때 아람어가 포로기의 지배적 언어였다는 가설은 좀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사실 출토되는 고고학적 근거들이 너무 빈약하다. 그래서 아람어 공용어설에 의문을 가지는 학자들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학계의 지배적인 가설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아람어가 공용어였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가설이었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라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사실과 가설은 다르다. 가설을 사실과 같이 받들고 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언제나 결론을 대충이라도 속히 내리기를 원한다. 그러나 성경과 관련된 일에서 그런 태도를 가지는 것은 신앙인의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또 구약 성경의 기록 중 일부가 아람어로 기록되었다고 보는 학설이 있다. 다니엘서와 성경의 일부가 아람어만 남아있는 것이다. 그런데 매일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예배를 드렸던 다니엘이 성경을 아람어로 기록했겠는가? 아람어로 기록하려면 전체를 아람어로 기록할 것이지 대부분은 히브리어로 기록하고 또 일부는 아람어로 기록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 아람어는 다니엘이 쓴 것이 아니라 아람어 탈굼과 같이 번역되어진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아람어 탈굼들은 포로귀환시기에 돌아오지 않은 유대인 공동체들이 오랜 세월 동안 타국에 살다 보니 아람어만 쓰고 히브리어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아람어 성경번역본과 그 해설이 필요해진 것이다. 우리도 지금 성경을 읽으려면 한글 성경번역본과 성경에 대해 역사와 해설이 함께 되어있는 주석이 필요하다. 그것은 성경이 기록된 시대와 민족적, 문화적, 시간적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일부 아람어로 기록된 성경들은 이런 배경에서 번역된 아람어 역본이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전승과정에서 원본인 히브리어 성경은 소실되었다고 봐야 한다. 그것이 고대이던 후대이던 지금은 히브리어 원본이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지금 히브리어 원본이 없다고 그 글이 반드시 아람어로 기록되었다는 추측은 억지다. 그것은 마치 전 세계의 모든 책이 사라지고 한국어 성경만 남았다고 해서 천년 후의 세대들이 원어 성경은 한국어라고 하는 것과 같다. 물론 처음부터 아람어 문서를 기반으로 하여 작성된 아람어로 된 성경의 부분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히브리어가 사멸한 증거가 될 수는 없다. 또한 유명한 탈굼들이 있다 하여 그것이 반드시 유대인들이 모두 아람어를 사용한 증거는 아니라는 것이다. 탈굼이 전승된 지역이 페르시아나 바벨론 앗수르 지역에 남아 있던 유대인들이 있던 곳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번역된 성경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를 근거로 유대 본토나 모든 지역의 유대인들이 아람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억측이다. 그렇다면 70인역의 헬라어 역본은 히브리인들이 헬라의 식민지로 있었던 시절 이후 히브리어를 잊고 헬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한 증거라 할 수 있는가? 모두 억측일 수 있는 가설일 뿐이다.
지금 남아있는 대부분의 아람어로 된 랍비들의 기록은 사실 유대지역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이방지역의 회당에서 나온 것들이다. 후대에 아람어를 쓴 랍비들도 사실 북왕국 이스라엘 지역에 있었던 사마리아 지역에서 나온 기록들이다. 그리고 북왕국 이스라엘 지역에서 나온 것들 대부분은 이방지역에서 후대에 돌아온 랍비들의 기록들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람어 기록은 이방지역에서 나온 것들이다. 심지어 이런 아람어도 기원후 예루살렘 함락 이후에는 모두 잊혀졌다. 세계의 유대인 세력 자체가 지리멸렬했기 때문이다. 단지 아람어 방언이 널리 사용되던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아람어를 사용한 기록을 남겼을 뿐이다. 사실 예루살렘 멸망 이후 지리멸렬한 유대교에서 예수님 당시에 사용된 언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을 찾는다는 자체가 힘든 일이다. 그렇게 정처없이 떠도는 유대인들이 역사기록을 보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 유대의 아람어 문서들이 거의 없다. 만약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의 히브리어나 아람어 또는 헬라어 문서가 많이 남아있다면 이 논의 자체가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그 기록들에는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언어가 기록되어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멸망과 함께 그들의 역사와 문화도 함께 사라져버렸다. 그들이 그 결과 자신들 민족과 우리의 언약의 장소인 시내산조차 그 위치를 잊어버렸다. 단지 그들이 소중히 여겼던 성경과 관련한 문서들만이 남아있다. 아람어 탈굼들이 남은 이유도 그것이 아람어를 쓰는 유대인들의 구약성경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탈굼조차 남지 못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금 아람어나, 히브리어, 심지어, 헬라어를 예수님께서 사용하셨다는 것은 모두 추측일 뿐이다.
다니엘과 에스라, 느헤미야, 학개서는 포로기나 포로에서 귀환한 사람들의 기록들이다. 그들은 유대로 돌아오기를 소원했고 어떤 이들은 돌아와 유대왕국을 회복하기 위해 힘썼다. 그런 그들이 포로기에 썼던 언어를 계속 썼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에스라서나 느헤미야 학개서는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 원수의 언어가 아닌 자신들의 모국어를 회복한 것이다.
심지어 자기 자식도 이방여인의 피가 섞이면 이방인 아내와 함께 버렸는데 그들이 원수들의 언어를 그대로 썼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에스라서의 기록에서 우리는 포로에서 풀려나 귀환한 백성들의 모습에서 추론 가능한 증거를 발견할 수 있다.
학자들 중에는 인자에 대해 아람어를 근거로 해석을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이 당시에 아람어로 의사소통을 하셨고 히브리어는 말할 줄 모르셨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 히브리어와 아람어는 그 계통이 같다. 그러나 서로 의사소통이 되는 언어가 아니다. 즉 서로의 관계가 외국어다. 포로기 이후의 히브리인들이 히브리어를 잊어버리고 아람어를 썼다는 것도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 아닌 가설이다. 즉 증명된 바 없다. 포로기가 70년이었는데 히브리인들이 히브리어를 잊어버렸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2000년 동안 나라 없이 흩어져 방랑하던 백성이 그들 고유의 히브리어 성경과 민족성을 유지한 것을 보면 70년(실질적으로는 50년) 만에 언어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지만 우리말을 잃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식민지 시대 이후의 사람들은 일본어를 할 줄 모른다. 이러한 우리의 식민지 시대 경험을 볼 때 위의 히브리어를 잊어버렸다는 학설은 말도 안 되는 비합리적인 판단인 것이다. 심지어 우리는 우리말을 사용할 수 없는 환경(민족말살정책)에까지 노출되었지만 굳건히 누구나 우리말을 지켰다. 그런데 히브리어를 금지 당하지도 않은 히브리인들이 히브리어를 잃어버렸다고 주장하는 학설은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합리적인 판단은 포로 세대의 사람들은 히브리어도 쓰고 아람어도 쓸 수 있었다가 맞을 것이다. 그리고 아람어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에 일본어가 영향을 미친 것처럼, 그리고 포로기 이후에는 대중들 전부가 히브리어를 사용했다는 것이 합리적이다. 또한 몇 백 년이 지난 예수님 시대에는 아람어는 잊혀졌고 히브리어만 남았다가 타당할 것이다. 우리도 식민시대 이후에 일본어를 쓸 수 있는 사람들조차도 일본어를 잘 쓰지 않았다. 원수의 나라에 대해 이가 갈리는데 그 언어를 계속 쓴다는 자체가 심적으로 거부감이 심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민족보다 선민사상이 강한 유대인들이 포로기 이후에 아람어를 그대로 썼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포로기 이후에도 돌아오지 않고 페르시아나 세계 원근 각지를 떠돌며 육신적인 부를 쫓아갔던 세속적인 유대인 일부 집단들은 그곳에 살면서 그곳의 언어를 썼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에게만 국한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외국어인 아람어에서 히브리어의 뜻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하나 있다. 예수님이 성장하신 갈릴리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영역으로 혼혈정책에 의해 말과 글을 잃었을 수도 있다. 그 포로기간이 200년 가까이 된다. 그러나 포로 귀환 이후에 그 상황은 많이 달라졌고 예수님 당시에는 모두가 히브리어를 공용어로 사용했다. 갈릴리와 사마리아는 공용어로는 히브리어를 그리고 일부 아람어 그리고 코이네 헬라어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역할 때 쓰신 언어는 갈릴리, 사마리아, 유대가 모두 알아들을 수 있는 히브리어를 사용하셨을 것이다. 아람어를 사용하셨다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아람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유대지역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전하지 못하셨을 것이다. 또 갈릴리나 사마리아에도 청중들 중에는 분명 유대지역 사람들이 섞여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이 모든 지역을 통괄하는 국가의 이름이 유대로 된 것을 보면 그 문화의 지배성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남왕국 유다의 포로귀환으로 귀환한 자들과 그 이후 유대의 독립운동과 마카비 왕조의 역사를 보면 왜 히브리어가 공용어가 될 수밖에 없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목수로 활동하셨다. 당시 목수들은 로마의 공사에 동원되는 일이 많았다. 따라서 라틴어나 헬라어를 사용하셨을 가능성도 있다. 그 시대에 예수님이 속한 지역에서 사용될 수 있는 거의 모든 언어를 사용하실 수 있으셨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사역의 언어는 이스라엘 지역 전체가 알아들을 수 있는 히브리어라는 것이 합당한 추론일 것이다.
현재도 중국은 소수민족들이 자신들 부족의 언어와 중국어 지역 방언과 중국의 공용어인 보통화(동북지역 특히 북경의 언어)를 함께 사용한다. 그리고 외국어인 영어나 기타 언어를 학교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그 언어들까지 함께 사용한다. 그러나 이들의 의사소통 수단은 당연히 공용어인 보통화다.[2]
중국은 그 영토가 너무 넓어서 같은 중국어를 사용하는데도 그 방언이 거의 외국어 수준이다. 그래서 서로의 방언으로는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중국의 공산정권에서는 보통화를 통해 언어를 통일시켰다.
모두 함께 말하고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단일민족 국가에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세계의 대부분은 다민족 국가다. 다민족 국가에서는 위와 같은 일이 흔하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사역언어는 히브리어였다. 그리고 히브리어로 된 벤 아담의 합리적인 번역은 아담의 후손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증을 앞으로 더 깊게 살펴볼 것이다.
[1] 아람어의 방언이 히브리어라고 하지만 사실 이 둘은 그 언어의 계통이 같은 것이지 사실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다른 외국어다.
[2] 중국어 간체자: 普通话, 정체자: 普通話, 병음: Pǔtōnghuà, 한국 한자음: 보통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