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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겔 Jun 22. 2024

3.7. 이사야 시대의 거짓신앙 2

3.7.    이사야 시대의 거짓신앙    
  3.7.1.    이스라엘의 거짓신앙    
  3.7.2.    이사야와 우리 시대의 거짓신앙         

     3.7.2.1.    하나님을 버림    
     3.7.2.2.    하나님의 법을 버림    
     3.7.2.3.    율법•기복•인본•신비주의    
     3.7.2.4.    성공한 거짓신앙    
     3.7.2.5.    선지자를 죽이는 거짓신앙    



3.7.2.5. 선지자를 죽이는 거짓신앙


우리가 구약에서 신약에 인용된 구절이나 단어 중 가장 익숙한 단어일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임마누엘’이다. 바로 “하나님께서 함께”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이 본문은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몸에서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실 것을 약속하는 예언의 말씀에 포함된 핵심적 단어다. 마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의 계보를 제외하고 구약을 인용한 최초의 구절이 바로 이 말씀이다.


Matthew 1:22-23 바른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성취하시려는 것이니, 말씀하시기를 "보아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를 것이다."(사 7:17) 하셨으니, 이 이름은 번역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뜻이다.


이 말씀의 배경이 되는 성경 속 역사를 살펴봄으로 해석의 깊이를 더해보자. 

매일 조금씩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지속하여 연구하면 그 뜻을 누구나 능히 깊이 알 수 있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읽고 넘어가는 것보다, 한 본문을 1 년 넘게 보더라도 계속 알려고 노력하면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영국 옥스퍼드 신학생 수준의 성경 석의 능력을 얻을 수 있다. 처음에는 어려울 수 있어도 배우고 지속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이는 저자가 학생들을 가르치며 직접 확인했던 일들이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성경을 통해 매일 확인하고 연구하면 누구나 가능하다.[1] 글을 모르는 할머니도 한글을 천천히 배우고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 누구나 가능하다. 아마 1년이 지나면 그 동네에서 가장 유식한 사람이란 평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정말 말씀을 사랑하여 전념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 물론 엉터리로 가르치고 엉터리로 배우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일본에도 하시모토 다케시라는 사립학교 선생이 국어(일본어)시간에 이런 비슷한 수업을 하여 일본을 이끌어가는 오피니언 리더 천 명을 배출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본문의 배경이 되는 성경의 역사를 살펴보겠다. 


아하스의 아버지는 요담 왕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웃시야 왕이었다. 웃시야 왕과 그의 아들 요담은 비교적 하나님을 잘 섬기던 왕들이었다. 웃시야는 강성해져서 30만의 대군을 보유했고 블레셋과 암몬을 정벌해 조공을 받았다. 그 명성이 이집트 변방에 이를 정도로 강성해졌다. 웃시야가 강성해지므로 교만해져서 성전에서 제사장들만 하는 분향을 스스로 하려다가 한센병에 걸렸다. 그 이후로는 그는 숨어 지냈다. 그 아들 요담이 대신 나라를 다스렸다. 그리고 그 아들 요담도 강성하였다. 암몬을 정벌하여 조공을 받았다. 이들이 하나님 앞에 바른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왕하 15:1~6, 32~38, 대하 26~27장) 물론 그들이 우상을 섬기는 산당들을 없애지 않았고 다른 실수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북왕국 이스라엘 왕들과 유다의 악한 왕들에 비해 하나님을 섬기려는 모습을 보였다. 

요담의 아들 아하스는 스무 살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16년을 다스렸다(대하 28:1) 요담에 이어 아하스가 왕이 되려는 시점에 아람 왕 르신과 르말랴의 아들 이스라엘 왕 베가가 유다를 치러 올라왔다(왕하 15:37) 아하스는 왕이 되자마자 주변 두 나라 연합군과 전쟁을 하게 되었다. 두 연합군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은 아하스 왕과 백성들의 마음은 바람 앞에 숲이 흔들리듯 흔들렸다(사 7:2) 


그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세탁자의 밭'으로 가는 큰길에 있는 '윗 연못'의 수로 끝에서 아하스를 만나 그에게 말하기를 '너는 조심하고 잠잠하며, 두려워하지 말고 낙심하지 마라.' 하여라. 아람의 르신과 르말랴의 아들이 심히 분노하더라도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다.


아람과 에브라임과 르말랴의 아들이 너를 대적하여 악한 음모를 꾸며 말하기를 

'우리가 유다를 향하여 올라가서 위협하며 정복하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들 가운데 세워 왕으로 삼자.' 하였다.


그러나 주 여호와가 이와 같이 말한다. 


'그런 일은 이루어지지 못하며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아람의 머리는 다마스쿠스이며 다마스쿠스의 머리는 르신이기 때문이다. 육십오 년 안에 에브라임이 산산이 부서져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할 것이니,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이며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랴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만일 너희가 믿지 못하면 결코 굳게 서지 못할 것이다.' " 


여호와께서 다시 아하스에게 말씀하셨다.


"여호와 네 하나님에게 징조를 구하여라. 스올같이 깊은 곳이든지 아니면 저 하늘 높은 곳이든지 구하여라." 


아하스가 대답하였다. 


"나는 징조를 구하지 않으며 여호와를 시험하지 않겠습니다."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의 집이여, 잘 들어라, 너희가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이제는 내 하나님까지 괴로우시게 하겠느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너희에게 징조를 주실 것이다. 보아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를 것이다. 그 아이가 악을 거절하고 선을 선택할 줄 알 때에 그는 버터와 꿀을 먹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가 악을 거절하고 선을 택하는 것을 알기 전에, 네가 싫어하는 두 왕의 땅은 버림받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이 유다로부터 떨어져 나간 때로부터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했던 날들을 너와 네 백성들 그리고 네 조상들의 집에 임하게 하실 것이니, 곧 아시리아 왕이 오는 날이다. 그날에 여호와께서 이집트의 먼 시내들에서 파리 떼와 아시리아 땅에서 벌떼들에게 신호하실 것이니, 그것들이 몰려와 가파른 골짜기와 바위틈과 모든 가시나무 덤불과 모든 초장에 내려앉을 것이다. 그날에 여호와께서 강 저 너머에서 빌린 면도칼, 곧 아시리아 왕으로 네 백성의 머리와 다리털을 밀고 수염까지 깎아 버릴 것이다.”

“그날에는 한 사람이 비록 어린 암소 한 마리와 양 두 마리를 기를지라도 그것들이 젖을 많이 내어 그가 버터를 먹을 것이니 그 땅에 남아 있는 모든 사람이 버터와 꿀을 먹을 것이다. 그날에, 천 그루의 포도나무가 있어 은 천 개의 가치가 있던 곳마다 찔레와 가시덤불이 있게 될 것이다. 그 온 땅이 찔레와 가시덤불로 덮일 것이니, 사람들이 활과 화살을 가지고 그리로 갈 것이다. 괭이로 경작하던 모든 산에도 너는 찔레와 가시덤불이 무서워 그리로 가지 않을 것이며, 그곳은 소를 풀어놓는 곳과 양이 밟는 곳이 될 것이다."

(Isaiah 7:3-25 바른)


아하스는 징조를 구하라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징조를 구하기를 거절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본문과 관련된 다른 성경들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2]


2 Kings 16:2-4 바른

아하스가 이십 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 동안 다스렸다. 그는 자기 조상 다윗과는 달리 여호와 그의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르게 행하지 않고, 이스라엘 왕들의 길을 따르며,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들의 혐오스러운 행위를 본받아 자기 아들을 불 속으로 지나가게 하였다. 그가 산당과 언덕과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고 분향하였다.


2 Chronicles 28:1-4 바른

1아하스가 스무 살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 동안 다스렸다. 그는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않고, 여호와 보시기에 올바르게 행하지 않았다. 그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였으며, 바알들을 위해 우상들을 부어 만들었고,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였으며, 심지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들의 혐오스러운 일을 본받아 자기 아들을 불태웠고, 또 산당과 언덕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다.


이렇게 다른 신들을 섬기던 아하스에게 하나님께서 아람과 이스라엘의 군대를 보내 회개하도록 벌하셨다. 그런데 여전히 불신앙을 가지고 있던 아하스는 하나님을 믿지 못했다. 그래서 두 왕에게서 구원해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다. 그래서 구원의 징조를 구하지 않았다. 다른 거짓 신들에게는 자식을 바치고 그 자식이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희생을 드렸는데도 말이다. 말의 겉은 여호와 하나님을 괴롭게 하지 않는다고 하였지만 말의 속은 불신앙이었다. 모두가 하나님을 믿는 나라고 이사야 선지자와 그 아들이 보고 있으니 대놓고 못 믿겠다고 말을 못 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하는 척하며 교묘히 거절한 것이다. 


그러자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친히 징조를 주실 것이라 했다. 바로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를 것이다.’였다. 이사야는 다음 장인 이사야 8장에 여선지자를 찾아갔다. 아마 자신의 아내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의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였다(사 8:1). 그 이름은 '노략품을 재빨리, 전리품을 잽싸게'라는 뜻이다. 아이가 자라 아빠 엄마라 부를 줄 알기도 전에 아람과 이스라엘이 앗시리아 왕에게 멸망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람의 수도 다마스쿠스의 '노략품을 재빨리',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의 '전리품을 잽싸게' 앗시리아 왕에게 가져다 바칠 것이기 때문이다(사 8:3~4).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아이가 악을 거절하고 선을 선택할 줄 알 때가 되기 전에 네가 싫어하는 두 왕의 땅은 버림받을 것이다(사 7:15~16).’였다. 그리고 그때에 아이는 버터와 꿀을 먹을 것이다. ‘버터와 꿀을 먹는다’는 좋은 표현이 아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라는 표현과 같은 것인데 이것은 좋은 땅이 아니라는 것이다. 농사를 짓는 땅에서는 소와 가축을 기를 수 없다. 황폐한 곳, 광야와 같은 곳에서나 가축을 기를 수 있는 것이다. 밭들이 망가지고 포도원들이 파괴된 황무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곳에서는 가축들이 먹을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나며 들풀들이 자란다. 아람과 이스라엘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유다도 황폐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이렇게 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먼저 아하스 왕이 믿지 못함으로 징조를 구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과 아람 연합국이 유다를 약탈하고 수많은 포로들을 잡아갔다. 이사야서의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대하 28장 6절 이하에는 이스라엘 왕 베가가 유다에서 하루 동안에 십이만 명의 용사(군사)를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왕자와 궁내대신과 총리를 죽이고 포로 이십만 명을 사로잡고 전리품들을 약탈하여 사마리아로 끌고 갔다고 되어있다. 이때 아하스도 포로로 끌려간다. 믿음이 없음으로 이렇게 망해간다. 


하나님의 긍휼로 극적으로 포로에서 돌아온 아하스는 이번에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 그래서 에돔과 블레셋이 쳐들어 왔다. 그런데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한 것이 아니라 앗시리아 왕에게 사신을 보내어 도움을 요청했다. 왕궁의 보물과 심지어 성전의 보물을 모두 바치고 귀족들에게 보물을 걷어 앗시리아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바쳤다. 그러나 디글랏 빌레셀은 주변의 아람과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후 이번에는 유다를 약탈 했다. 결코 도와준 것이 아니라 약탈의 대상으로만 생각했다. 이렇게 아하스의 아래에서 유다는 망해갔다. 왕이 믿음이 없으니 그 백성들도 함께 망하는 것이다. (대하 28:16~20)


그래도 그는 돌이키지 않았다. 다마스커스에 있는 아람의 우상과 제단을 가져와 섬겼다. 그곳에는 앗시리아 왕 디글랏 빌레셀에게 조공을 바치고 스스로 항복하기 위해 나갔는데 거기서 본 거짓 신들을 섬기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성전은 파괴했다.  

그래서 이사야는 이사야 7장에서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미리 보여 주심으로 이렇게 예언한다.


Isaiah 8:6-10 바른

"이 백성이 잔잔히 흐르는 실로아의 물을 버리고는 르신과 르말랴의 아들을 기뻐하므로 주님께서 세차고 많은 강물, 곧 아시리아 왕과 그의 모든 영광이 그들을 대항하도록 데려올 것이니, 그것이 모든 수로를 덮고 그 모든 강둑 위로 넘칠 것이며 또 그것이 유다에 들어와 흘러넘치고 목까지 차오를 것이다. 임마누엘아, 그것이 그 펼친 날개로 네 온 땅을 뒤덮을 것이다."


백성들아, 큰소리로 외쳐라. 너희가 패망할 것이다. 먼 땅에 있는 모든 자들아, 귀를 기울이고 허리띠를 동여매라, 너희가 패망할 것이다. 허리띠를 동여매라, 너희가 패망할 것이다. 함께 모의해 보아라, 실패할 것이다. 말을 해 보아라,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임마누엘) 계시기 때문이다.


여기서 임마누엘이 나오는데 임마누엘은 유다의 편에 서있지 않다. 그 편 날개로 유다 온 땅을 덮는다. 임마누엘은 심판자로 유다를 덮는다. 그 심판을 예언하는 이사야와 그 아들들과 함께 하신다. (사 8:10) 바로 임마누엘이다.


유다는 스스로 자신들을 지키려 노력을 한다. 그리고 다윗에게 준 언약인 다윗의 왕좌가 영원할 것이라는 말을 언약으로 믿으려 한다. 그리고 그들의 거짓신앙과는 다른 폐망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인 이사야나 예레미야를 핍박하고 죽인다. 그러면서 예레미야나 이사야를 적국과 내통하여 백성들의 사기를 떨어트리는  거짓 선지자(반역자, 스파이)로 몰아간다. 결국 유대 전승에 따르면 썩은 나무속에 숨어든 이사야를 나무와 함께 통째로 톱으로 베어 죽여버린다. 예레미야도 유다의 패망을 예언하고 결국 자신의 당대에 유다의 패망을 보았다. 그리고 그 패망의 와중에 자기 백성 유다에 의해 얼음 구덩이에 던져져 죽임을 당한다. 예언이 맞았음에도 그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예언자를 죽여버린다.


거짓신앙의 무서움은 결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참 신앙으로 자신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선지자들을 죽인다. 그리고 그 거짓신앙은 예수님조차 죽였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오셨는데도(임마누엘) 그분도 거짓선지자로 몰아 십자가에서 죽여 버렸다. 


임마누엘은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이 된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이 된다. 결국 예수님을 죽이고 끝까지 회개하지 않은 유대인들에게 임마누엘은 심판으로 임했다. 로마 장군 타이투스와 그의 군대와 함께 한 하나님(임마누엘)은 예루살렘을 심판하신다. 임마누엘을 믿는 자는 구원받지만 믿지 않는 자는 심판으로 다다른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도 앞으로 다가올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보고 우신다. 그리고 자신을 죽인 예루살렘에 성령님으로 임하시어 다시 회개할 기회를 수십 년 동안 주신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고 사도들과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인 거짓신앙의 도성 예루살렘은 결국 임마누엘 앞에 심판을 받게 된다. 


거짓신앙으로 눈이 가려지면 선지자들을 죽이고 사람으로 임하신 하나님까지 죽인다. 그리고 결국 자신들도 그 결과로 멸망당한다. 거짓신앙은 참으로 무섭다. 그런 거짓신앙으로 유대인들은 마사다에서 결사항전을 한다. 그들이 이방의 개들에게 죽임을 당할 수 없다 하여 스스로 자결한 교만한 선민사상은 결국 그들 자신을 죽음 이후 지옥에서 눈뜨게 한다. 거짓신앙은 그렇게 스스로 속이고 철저히 자신은 하나님의 선민이라 믿게 만든다. 그리고 결국 죽음 이후 눈을 뜨면 지옥이다. 유대인들은 아직도 마사다를 기리지만 그 마사다는 지옥의 행렬일 뿐이었다.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거짓신앙은 이처럼 2000년이 지나도 회개치 않고 여전히 눈이 가려져 하나님을 대적하고 사람들을 속여 지옥으로 보내는 도구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의 스승 가말리엘과 같이 겸손을 지닐 필요가 있다. 그는 인생의 말년에 자신의 제자 바울을 만나기를 원했고 자신이 이스라엘의 선생이지만 자신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예수님에 대해 듣기를 원했다고 한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 눈이 가려지면 그 시대에 하나님께서 함께(임마누엘) 하시는 일을 알아보지 못할 수 있다. 그리고 복음을 대적하게 된다. 이유는 분명하고 그들은 분명 잘못되었다고 공격하고 이단으로 몰아 죽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눈이 가려진 거짓신앙의 모습이다. 그러니 언제나 겸손으로 하나님 앞에 묻지 않으면 언제나 소경인 우리는 거짓신앙 속에서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 중세의 유럽 전체가 거짓신앙 속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런 흑암 속에서도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을 구한 자들은 결국 참된 신앙을 얻었다. 그들이 잔느 귀용과 같이 박해 속에 죽어 갔고 후스와 같이 화형을 당했으며 위클리프와 같이 그가 번역한 성경과 함께 죽임을 당했지만 그 시대의 모든 세상이 틀리고 그들만이 참이었다. 온 세상이 어둠의 거짓신앙에 싸여도 오직 여호와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그렇게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들을 기다리신다.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선조들의 글을 읽고서라도 깨닫기를 바란다. 잔느 귀용의 글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브라더 로렌스의 글을 읽기 바란다. 저 아름다운 광야의 핀 들꽃,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일기를 읽어보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에서 간절히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주시기를 간청하라. 그렇지 않으면 소경 된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우리의 거짓신앙 속에 죽어 지옥의 아침을 맞게 될 것이다.





[1]  Acts 17:10-15 바른

10형제들이 밤에 바울과 실라를 곧바로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그곳에 도착하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갔다. 11이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자들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과연 이것들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 12그들 중 많은 이들이 믿었는데, 헬라인 귀부인들과 남자들도 적지 않았다. 13그러나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베뢰아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사실을 알고 거기에도 가서 무리들을 선동하여 소란을 일으켰다. 14그때에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였으나, 실라와 디모데는 거기에 남아 있었다. 15바울을 안내하는 자들이 그를 아테네까지 데리고 갔고, 실라와 디모데를 속히 자기에게 오게 하라는 바울의 지시를 받고 떠나갔다.


[2] 관주 성경의 관주나 주석의 관련 본문들을 참조하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성경 어플들 중 유용한 기능을 제공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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