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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겔 Jun 29. 2024

3.8. 미가 시대의 거짓신앙-1



미가는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다(미 1:1) 이사야와 활동한 시기가 비슷하다. 선지자 호세아와도 같은 시기에 살았던 사람이다. 요나와 아모스는 미가 바로 직전의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들이다. 이들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 직전의 선지자들이었다. 그리고 미가의 시대 바로 뒤에는 예레미야와 스바냐, 나훔, 하박국이 등장했다. 그 이후로 에스겔과 다니엘, 오바댜가 등장한다. 에스겔과 다니엘과 오바댜는 유다의 멸망을 본 사람들이었다. 이사야, 호세아, 미가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을 본 사람들이다. 


미가의 시대는 앗시리아의 침입이 여러 차례 있었으며 앗시리아로 인해 북왕국 이스라엘은 결국 멸망을 당했으며 남 왕국 유다는 멸망을 면했으나 황폐하게 되었다. 히스기야 왕 제 사 년에 아시리아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를 포위했고 3년 만이던 히스기야 제6년에 멸망시켰다. 그리고 히스기야 14년에 아시리아 왕 산헤립이 유다의 모든 성읍들을 점령했다. 이제 예루살렘만 남았으므로 히스기야는 라기스에 있던 산헤립에게 사신을 보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게 부과하는 것을 다 감당하겠으니, 저희에게서 철수해 주십시오."

앗수르 왕 산헤립은 히스기야에게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부과했다. 히스기야는 성전과 왕궁의 보물 창고에 있는 은을 모두 내주었고 그리고 자신이 성전 문에 입혔던 금도 모두 벗겨서 산헤립에게 주었다. 그러나 산헤립은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군사를 보내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 예루살렘은 멸망만이 남은 선택지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묻고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올린 후 여호와님의 천사가 나가서 아시리아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죽였다. 결국 산헤립은 퇴각했다. 미가는 이런 모든 일을 겪었으며 이런 일들이 있기 전에 예언했던 선지자다. 그리고 당장은 산헤립이 물러가 멸망을 면했지만 결국 유다도 멸망당할 것을 예언했던 선지자였다. 그런데 미가 시대의 사람들의 죄악은 무엇 있었을까? 무엇 때문에 그 시대는 멸망을 목전에 둔 것이었을까? 미가는 그 시대의 신앙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상한 기록을 남겼다. 


3.8.1. 상상초월의 헌금과 예배


 그 시대 사람들이 하나님께 이렇게 물었다는 것이다. 


"높이 계시는 하느님[1] 야훼께 예배를 드리려면, 무엇을 가지고 나가면 됩니까? 번제를 가지고 나가야 합니까? 송아지를 가지고 나가야 합니까? 숫양 몇 천 마리 바치면 야훼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거역하기만 하던 죄를 벗으려면, 맏아들이라도 바쳐야 합니까? 이 죽을 죄를 벗으려면, 이 몸에서 난 자식이라도 바쳐야 합니까

?"(Micah 6:6-7 공동개정)


이들의 열심이 보이는가? 미가는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 둘 모두에게 예언을 한 선지자였다. 두 왕국 모두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가지고 번제로 숫양을 몇 천 마리를 바치려고 한다. 자신의 죄를 위해 맏아들을 바치려고 한다. 이들이 신앙의 열심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예배를 위해서 엄청난 양의 제물들을 드리고 있다. 진심이 없다면 그렇게 돈을 쓸 수가 없다. 실제로 솔로몬은 일천 번제를 드렸는데 소로 계산하면 700억이라는 돈이다. 염소로 드려도 150~220억이라는 돈이 들어간다. 양도 비슷한 가격이다.[2] 그런데 천천은 수천을 뜻하는 단어로 수천 마리를 드린다면 그 가격이 천문학적이다. 지금도 이런 금액을 드리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실제로 이런 일들을 행했다. 또 개인적으로 절기를 지키고 제물을 드렸다. 그리고 이런 헌신을 하기 위해서는 시온 산에 있는 성전으로 와야 하는데 이스라엘 각지에 흩어져 살던 자들이 예배와 헌신을 위해 성전으로 와야 했다. 지금과 같이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으므로 그 길이 험난했다. 그래도 오직 예배드리려는 일념으로 성전으로 나왔다. 이 열심을 생각해 보라.


3.8.2. 예배를 거절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답을 하신다.


8이 사람아, 야훼께서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시는지 들어서 알지 않느냐? 정의를 실천하는 일, 기꺼이 은덕에 보답하는 일① 조심스레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일, 그 일밖에 무엇이 더 있겠느냐? 그의 이름을 어려워하는 자에게 앞길이 열린다. / ①"한결같은 사랑을 즐겨 행하는 일"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Micah 6:8 공동개정)

8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Micah 6:8 개정)


왜 이런 답을 하시는 것일까? 번제나 헌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나쁜 것일까? 심지어 미가와 동일한 시대를 살았던 이사야를 통해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Isaiah 1:11-17 공동개정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무엇하러 이 많은 제물들을 나에게 바치느냐? 나 이제 숫양의 번제물에는 물렸고 살진 짐승의 기름기에는 지쳤다. 황소와 어린양과 숫염소의 피는 보기도 싫다. 너희가 나를 보러 오는데 도대체 누가 너희에게 내 집 뜰을 짓밟으라고 하더냐? 더 이상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마라. 이제 제물 타는 냄새에는 구역질이 난다. 초하루와 안식일과 축제의 마감날에 모여서 하는 헛된 짓을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너희가 지키는 초하루 행사와 축제들이 나는 정말로 싫다. 귀찮다, 이제는 참지 못하겠구나. 두 손 모아 아무리 빌어보아라. 내가 보지 아니하리라. 빌고 또 빌어보아라.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너희의 손은 피투성이, 몸을 씻어 정결케 하여라. 내 앞에서 악한 행실을 버려라. 깨끗이 악에서 손을 떼어라. 착한 길을 익히고 바른 삶을 찾아라. 억눌린 자를 풀어주고, 고아의 인권을 찾아주며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3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 같고, 양으로 제사하는 것은 개의 목을 꺾는 것 같으며, 곡식 제물을 바치는 것은 돼지 피를 바치는 것 같고, 기념 향을 피우는 것은 우상을 찬양함과 같다. 그들은 자기 마음대로 길을 선택하며, 그들의 영혼은 혐오스러운 것을 기뻐한다.( Isaiah 66:3 바른)


또 미가보다 조금 앞서 사역했던 아모스를 통해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다.


21"너희의 순례절이 싫어 나는 얼굴을 돌린다. 축제 때마다 바치는 분향제 냄새가 역겹구나. 너희가 바치는 번제물과 곡식제물이 나는 조금도 달갑지 않다. 친교제물로 바치는 살진 제물은 보기도 싫다. 거들떠보기도 싫다. 그 시끄러운 노랫소리를 집어치워라. 거문고 가락도 귀찮다. 다만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 서로 위하는 마음 개울같이 넘쳐흐르게 하여라.( Amos 5:21-24 공동개정)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제물 타는 냄새가 역겨워 견딜 수가 없다고 하신다. 분명 제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율법에 명령하신 것이다. 그 예배의 의식을 치르는 것을 지금 상황에서는 왜 역겹다고 하시는가? 레위기의 하나님과 아모스, 이사야, 미가 시대의 하나님은 다른 하나님이신가? 


아무리 그래도 토할 것 같다고 하시고 역겹다고 하시는가? 그래도 예배인데 어떻게 그런 표현을 하시는가? 만약 우리의 예배에 하나님께서 오시어 “너희 예배가 역겹고 너희 찬양 소리가 시끄러워 견딜 수 없다. 너희 얼굴을 보는 것도 역겨우니 너희는 교회당에서 모두 꺼져라”라고 말씀하신다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겠는가? 


3.8.3. 거절의 이유


아마 우리 중 대부분은 하나님의 책망으로 인한 공포에 앞서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마음에 싹틀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라 부족할 수 있는데 우리를 이렇게 책망하시는가? 하고 도리어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가 흔히들 사용하는 식품첨가제를 통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현대의 거의 대부분의 음식을 파는 것이나 부동산 세금을 절약하기 위해 이미 관행화되어있는 불법을 말씀하신다면 어떻겠는가? 부동산 투기를 하거나 1 가구 1 주택 이상의 투기적 부동산을 소유한 것에 대해 책망하신다면 마음이 어떻겠는가? 과연 하나님께서 하시는 책망이 정당하다는 생각이 드는가? 그런데 이사야와 미가, 그리고 호세아의 시대에 하나님은 이런 것을 책망하신다. 심지어 저울을 속이는 것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 물론 지금은 원산지를  속이는 것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면 어떻겠는가? 상품을 과대 포장하거나 과자 봉지에 질소를 채워 그 양을 부풀리는 것에 대해서도 책망하신다면 어떻겠는가? 심지어 원가를 속이거나 정말 사람들의 건강에 해로운 첨가물을 표기해야 하는 함량에 미달하도록 여러 물질을 썩어서 동일한 효과를 내도록 사용함으로 표시를 회피하는 방법 등을 책망하신다면 어떻겠는가? 기업을 사냥하고 기술특허를 사냥하는 것에 대해 책망하신다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투자의 가장 기본적인 자산의 증식만을 위해 사고파는 행위를 하고 그로 인해 유동, 부동 자산의 가격을 투기적으로 올리는 것에 대해 책망하신다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그리고 개인적인 친분을 이용하거나 로비를 이용하여 사업이나 개인적인 일에 도움을 얻는 것 자체를 죄악으로 보신다면? 하나님은 혈연, 지연, 학연 등 사회적 관계 자체를 악으로 보시는가? 하나님은 현대 사회생활 자체를 부정하시고 악으로 규정하시는가? 하나님은 자본주의 자체를 악으로 보시는가? 아니면 하나님은 세상의 것은 무조건 악하게 보시는가?

남편의 사업이나 자녀의 건강을 그리고 입시를 위해 기도하는 것에 대해 책망하신다면 어떤 마음이 들겠는가?

무엇보다 부동산으로 재테크를 하는 것이 무엇이 죄가 된다는 말인가? 집을 여러 채 사는 것이 무슨 죄가 되겠는가? 이제는 집 외에 전과 답과 산을 사고 파는데 무슨 문제가 되는가?


3.8.4. 샤일록[3]의 반박


이 문제에 대해 이스라엘의 땅 분배에 관한 배경을 가지고 반박을 하는 자들도 있을 수 있다. 이스라엘은 12 지파에게 각각 땅을 주고 각 가문 별로 그 땅을 대대로 상속하게 했다. 그리고 그 상속한 땅은 다른 가문의 사람이 살 수도 없게 했다. 혹시 너무 많은 빚을 져서 땅을 빼앗기더라고 70년마다 오는 희년이라는 기간이 되면 그 땅을 모두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땅뿐만 아니라 사람도 돈에 팔려 종이 되더라도 희년이면 전부 자유를 주었다. 그래서 각자의 땅에서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하여 생계를 대대로 이어나가도록 만들어 주셨다. 그리고 그 땅은 나중에 자신이 왕이 되거나 귀족이 되더라도 동일하게 소유해야 했다. 귀족이나 왕이 되었다고 해서 더 큰 땅을 소유할 수 없다. 그리고 땅을 분배받지 못하고 자신의 일이 성전에서 예배드리고 섬기는 자들인 레위인들을 위해 10분의 1을 준비하셨다. 원래는 12분의 일만을 걷어도 충분한데 가난한 자들과 고아와 과부들을 위한 것을 더하여 십일조를 걷었다. 이는 일종의 구제성금이었다. 이런 제도 안에서 땅을 빼앗고 사람을 노예로 삼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사실 율법에는 형제에게 돈을 빌려주더라도 이자조차 받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땅을 빼앗고 돈 대신 사람을 노예로 삼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그런데 그 시대 문화 상 돈이 급한 자가 자신이 스스로 자청하면 이런 것이 가능했다. 심지어 70년의 희년이 가까워지는 시기에는 돈을 빌리기 더욱 힘들어지니, 희년이 와도 빛을 탕감받을 수 없도록 스스로 각서를 쓰고 돈을 빌려서 영원히 땅을 빼앗기거나 노예가 되는 자들도 생겨났다. 성경은 이러한 이스라엘의 특수한 상황하에서 벌어지는 일을 책망하고 있는 것이므로 현재 그들과 경제적인 체제가 다른 우리에게 이 말씀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3.8.5. 하나님의 최종판결: 샤일록의 변명은 궤변


그런데 이런 반박은 이 구약 이스라엘 경제제도의 근본적인 동기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 욕심에 이끌려 구차한 변명을 하는 궤변에 불과하다. 타락한 이후 인류가 이루어 놓은 세상은 모두 사탄적 욕심에 의해 도적질 하고 착취하는 시스템이 적용된 지옥의 미리 보기 버전이 되었다. 그 안에서는 기본적인 사랑과 긍휼도 보장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구약의 이스라엘 경제제도가 그나마 세상에서 이룰 수 있는 공의로운 제도다. 누구나 다 공평하게 먹고 살 수 있는 길을 보장하신 것이다. 


3.8.5.1. 도적놈의 세상

3,8.5.1.1. 현대의 도적


물론 현대는 경제의 다원화로 인해 농업과 목축 외에도 상공업이 더 큰 경제의 파이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만들어진 것도 사실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기형적인 형태의 경제다. 환경과 사람 모두를 파괴하는 재앙을 생산하는 경제체제다. 현재 인간은 지난 모든 세기에 쌓아온 지식의 총량을 단 몇 개월에 뛰어넘어 버린다. 그리고 그런 지식을 습득하고 업무에 대응해야 하는 노동의 강도는 구약시대에 비해 그 상상을 초월한다. 인간은 그 속에서 한 없이 나약한 존재로 끊임없이 더 높은 강도로 노동을 강요당하고 그 착취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생명을 끊는 일들도 비일비재하다. 또 수많은 사람들이 시대가 요구하는 노동의 스킬들을 습득하지 못하고 사회에서 도태된다. 그런데 이렇게 강도를 높여도 인간이 가지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이제 인간의 노동력을 포기하고 인간을 폐기시키려 하고 있다. 그리고 극소수의 지배자들을 위한 AI로봇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AI로봇들을 통한 생산과 이를 통한 완전 지배체제를 만들려고 계획하고 있다. 이미 그 실행을 코앞에 둔 상황이다. 거의 모든 기술들이 이를 위해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그런 시절, 인류는 생존을 위해 더 사악해질 것이다. 지금 그래서 우리 시대 사람들은 무한경쟁을 넘어 생사를 건 레이스를 펼치며 죽음을 향해 달리고 있다. 이미 브레이크는 고장이 났다. 멈출 수도 없다. 이런 미래를 위해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로봇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리고 AI분야에도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또한 인간과 이런 장비들을 연결하는 뇌에 이식하는 칩에 관련한 분야들도 동시에 연구하고 있다. 또한 의료기술과 인간 장기 복제와 심지어 뇌의 기억을 이식하는 것까지 연구하여 영생을 꿈꾸고 있다. 이를 위해 무한한 자원이 있는 우주로까지 그 손을 뻗어가고 있다. 영생의 삶과 전능한 삶을 꿈꾸는 이들은 단지 아담적 탐욕에 눈이 먼 독사의 새끼들일뿐이다. 


3.8.5.1.2.     도적놈 아담 이후의 세상


아담의 타락 후 만들어진 세상은 이런 세상이다. 그런 세상과 구약의 제도나 태초의 에덴의 제도를 비교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 이미 도적놈의 세상인데 그 속에서 정의나 공평을 찾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이런 세상의 제도가 감히 옳다고 구약의 한시적 제도와 비교하지 말하는 논리가 맞는 말인가? 인류의 역사는 군주제(Monarchy)나 아나키즘(Anarchy)이나 민주주의나 공산주의 등과 같은 제도를 불문하고 도둑놈의 착취의 시스템이라는 그 본질이 변한 적이 없다. 이런 세상에서 이상적인 제도는 그나마 구약의 경제제도라 할 수 있다. 오히려 그 본질이 무엇인가 파악하고 그것의 이상을 추구해야 한다. 구약의 경제제도는 기본적인 사랑과 긍휼을 기반으로 한 제도다. 한 가족의 삶을 완전히 보장하는 제도다. 혹시 연약함과 실수로 또는 잘못된 선택으로 실패하더라도 그 기본적인 삶을 보장해 주는 제도다. 심지어 형제의 밭과 집과 자식과 아내를 성경의 법과는 상관없이 불법적으로 소유하게 되더라도 70년의 희년이 되면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 다시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제도다. 요즘 파산이나 개인회생에 대해 문제를 삼는 어리석은 자들이 있는데 물론 고의로 그런 일을 벌이는 자들은 그 기준을 엄격히 하여 걸러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삶이 파탄이 났는데 최소한 0에서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야 한다. 다시 집을 주고 살 수 있는 일을 주고 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빚은 탕감 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도둑놈의 심보를 가진 악마의 새끼들은 타인의 재산을 삼키고 타인을 노예 부리듯 하면서 그런 과정에서 모든 것을 빼앗기고 빚의 노예로 전락한 사람들을 해방하는 것을 욕한다. 전혀 긍휼이 없는 수전노 같은 일수쟁이들이나 할 수 있는 말을 그 입에 담는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자신도 그런 처지에 처해질 수 있는데 그것을 부채나 의무에 대한 도덕적 해이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감정이라고는 말라버린 쓰레기들의 사고다. 바로 도적놈들의 세상에서 모두를 착취하고 긍휼이라고는 없는 악덕 수전노 샤일록과 같은 자들의 입에서나 나올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말하는지도 모르는 자들이다. 그러한 탐욕의 노예들은 언제나 성경을 볼 때 그것으로 자신을 비추어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단지 그 거울에 비추어진 자신의 추악함에 대해 변명하려는 죄성이 고개를 쳐든다. 


3.8.5.1.3.     도적놈의 논리


세상의 논리는 모두 돈의 논리다. 노력하여 돈을 번 자는 성실한 자요. 돈을 벌지 못한 자는 게으른 자요, 실패자다. 구약 이스라엘의 경제체제는 모든 경우, 심지어 게을러서 가난해지더라도 스스로도 자식들도 재산도 산업의 터전도 빼앗기지 않는 구조다. 인간은 누구나 병든 존재요, 약한 존재다. 정신과 육체 모두 타락 이후에는 나약해져서 언제든지 병들 수 있다. 그 모든 경우에도 기본적인 생존의 기반을 빼앗기지 않는 제도가 구약의 하나님의 복지제도다. 그리고 그 연약해졌던 기간을 지나 스스로 일할 수 있는 힘이 생기면 다시 자신의 터전에서 새로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이 공의며 공평이다. 이것이 인애요, 사랑이다. 인간이란 연약한 존재가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돌봄이다.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에게 양을 잡아 그 가죽으로 옷을 입히셨다. 인간은 연약하다. 모든 다른 짐승은 몸에 기본적으로 털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인간의 체모는 다른 짐승들의 것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 스스로 자신의 체온을 유지하고 거친 가시에게서 자신을 지키기가 어렵다. 그래서 보호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언제나 그런 인간을 긍휼히 여겨 돌보신다. 결코 적자생존의 논리에 의해 도태시키시지 않는다. 적자생존은 사탄의 논리다. 결코 자연은 적자생존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남의 집을 빼앗고 밭을 빼앗고 또 그들의 가족을 노예로 삼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에 반대되는 사탄적 경제의 행태다. 이들은 이런 일을 하는 과정에서 서로 뇌물을 주며 뇌물을 받고 재판관은 불공정한 판결을 내린다. 또한 저울을 속이며 물건의 부피와 양을 속인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의 권력자들을 책망하신다. 자신의 권력을 사용하여 이런 짓을 하는 자들을 책망하신다(미 2:1~2, 3:1~4, 3:9~10, 6:10~12, 7:1~4)


이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자신의 욕심을 채울 수가 없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농사지어서는 타인의 재산을 삼킬 수가 없다. 그래서 저울을 속인다. 또 물건의 부피와 양을 속인다. 이것으로도 안되면 폭력을 사용하고 악한 속임수를 사용한다. 사기를 치기도 하고 법을 이용해 상대방을 무너트리기도 한다. 악한 법조계인들에게 뇌물을 주기도 하고 권력으로 서로 야합하기도 한다. 


3.8.5.1.4.     도적놈 록펠러


미국에서 가장 많은 십일조를 낸 것으로 설교에 자주 등장하는 록펠러는 자신의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폭력배들을 동원하여 상대 회사를 무너뜨리기도 했다. 그리고 악한 수단들을 사용하여 돈을 모았다. 심지어 허현희 작가가 쓴 『권력』이라는 책에 기록된 대로 1870년 스탠더드 오일을 설립한 록펠러는 1872년 단 3개월 만에 미국 클리블랜드의 정유사들을 헐값에 매입했다. 26개 정유사 중 22개를 인수했다. 이를 ‘클리블랜드 대학살’이라 부른다. 대학살이라 부를 만큼 끔찍한 수단과 방법에 의해 끔찍한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클리블랜드 지역의 석유 사업을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이 독점하게 된 것이다. 그 배경에는 철도 회사 밴더빌트와의 불법적 리베이트 계약이 있었다. 석유 운송을 담당했던 밴더빌트 철도 회사가 다른 석유 회사들에게 과도한 운송료를 부과하게 한 것이었다. 결국 과도한 운송료 부담으로 스탠더드 오일과의 유가 경쟁에서 밀려난 회사들은 부도위기에 처했고 이런 회사들을 록펠러는 싸게 매입을 했다. 이런 과정에 폭력적 수단을 사용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협박과 회유의 과정에 폭력의 사용은 필수적이다.

또한 돈을 더 벌기 위해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비상식적 수준으로 삭감했다. 이렇게 불법과 폭력과 착취를 수단으로 스탠더드 오일은 미국 전역 석유회사들을 무너트렸고 결국 루즈벨트 대통령이 이를 저격하는 단계까지 악행을 계속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이 회사를 무너트리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불법적 로비와 사기적 수단을 사용해 위기를 모면했다.


그리고 유명한 복지재단인 록펠러 재단은 자선사업으로 유명해졌지만 사실 이는 탈세를 위한 유용한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 복지 재단에 기부된 돈들이 세탁되어 다시 록펠러의 자산이 되었다. 복지재단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기에 그곳에서 행해지는 투자와 사업들은 합법적 탈세의 수단이 되었다. 세계 최대의 비과세 지주회사인 록펠러 재단은 현재 석유, 무기, 화학, 식량, 의료, 항공, 컴퓨터, 언론 등 전 세계 거의 모든 산업을 장악하고 있다. 이는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세계 최대의 황금알을 낳는 기업을 운영하는 수단이 되었다.

"록펠러 재단이 주로 기부하는 분야는 의학·과학이다. 특히 종자 연구 쪽에 많이 지원한다. 지원 학교나 업체에서 개발한 기술은 다시 그들의 돈벌이 수단이 된다. 20세기 중반부터 록펠러 재단 산하의 농업 기업들이 개발한 개량 품종과 화학비료를 통해 식량을 생산했다. 식품을 먹은 사람들이 면역력 저하로 병에 걸리자, 록펠러 재단은 석유에서 추출한 화학물질로 의약품을 개발해 비싼 값에 팔고 있다. 록펠러 재단이 지원하는 분야의 기술은 우리 몸과 삶을 망가뜨리고 지구와 생태계를 파괴한다." (<그들은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내용 요약)[4] 


십일조는 불법적으로 번 돈에 가장 아름다운 기독교적 포장지를 입히는 면죄부가 되었다. 교회 건축은 이에 장식을 더하는 리본이 되었다. 

우리는 과연 이런 사실들을 눈치챌 수나 있을까?

그런데 그런 돈으로 낸 십일조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을까?

하나님께서는 미가 시대에 그런 악행과 함께 바치는 번제를 기뻐하셨을까? 송아지와 양과 염소로 드리는 제물들을 기뻐하셨을까? 

하나님은 그러한 제물이 싫고 구역질이 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 제물들로 인해 괴롭다고 말씀하신다. 성전의 마당을 밟지 말고 나가라고 그들을 내치신다.


3.8.5.1.5. 큰 도적과 작은 도적


미가의 시대나 우리의 시대, 모두 큰 도둑들은 큰 도둑질을 하고 작은 도둑들은 작은 도둑질을 한다. 그런데 둘 모두 양심에 가책이 없다. 부동산 투기를 하고 그 과정에서 작은 탈세를 저지르는 작은 도둑들은 일반인들이다. 모두 그런 짓을 한다. 그것이 일반화 되어있다. 그러니 양심에 가책이라고는 없다. 교회 안의 성도들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다. 모두 선물에 투자를 하고 펀드에 가입을 한다. 금에 투자를 한다. 주식투자를 통해 일확천금을 노린다. 코인에 투자를 한다. 이것이 무슨 죄라는 말인가?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셨을 때 큰 도둑이나 작은 도둑이나 모두 도둑이다. 내가 돈을 번다는 것은 타인은 돈을 잃는다는 것이다. 투기적 자본에 의해 돈을 버는 위와 같은 투자들은 합법적 도박에 불과하다. 좀 더 세련되고 정교해진 합법적 도박이다. 돈을 걸고 배당을 받는 도박과 그 근본적인 구조가 같다. 그런데 도박보다 더 위험하다. 왜냐하면 얼마든지 도박보다 더 쉽게 조작이 가능하다. 거대 권력과 자본에 의해 그 승률이 거의 완벽하게 통제되는 도박인 것이다. 그래서 항상 약자들은 돈을 잃게 되어있다. 정보와 권력과 돈이 없으면 항상 남들의 뒤만 쫓아가다, 가진 돈을 모두 빼앗기게 된다. 모든 투자적 도박은 모두 이렇게 되게 되어있다. 그런데 누군가 그런 일을 당하면 능력이 없고 운이 없었다고 하고 만다. 사실 그렇지 않다. 완벽하게 설계된 함정에 빠져 돈을 잃은 것이다. 그것이 사회적 시스템과 법에 의해 만들어진 그물망이다 보니 그것이 불법이라고 눈치채지 못할 뿐이다. 사실 도박 자체가 불법적이지만 승률이 조작된 도박은 불법 중에서도 최악의 불법이다. 그것은 사기로 사람을 망하게 하는 범죄다. 우리는 현대의 작은 도둑들이 되어 이런 불법을 저지르기도 하고 불법에 의해 범죄를 당하는 삶을 살고 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현대의 샤일록들이 되어가고 있다. IMF 사태 이후 법률의 폐지와 개정에 의해 사실상 해외 거대 자본이 국내에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악행을 막을 수 있는 수단들이 사라졌다. 이는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약탈이며 도적질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이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못한다. 합법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있기 때문이다. 주식의 가격이 크게 한번씩 등락을 반복하는 곡선을 그릴 때 마다 국내의 자본이 해외로 약탈당한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법도 없다. 아무리 생산과 수출을 통해 돈을 벌어도 계속되는 약탈에 의한 손실을 보충할 수는 없다. 그 약탈을 당하는 대부분의 대상은 일반적인 개미투자자들이다. 그리고 대응이 안일한 공공기관의 눈 먼 돈들이다. 그래서 대기업들이나 증권사들은 돈을 벌지만 실제 국가의 자본은 약탈 당하듯 해외로 유출되게 되어있는 구조다. 국내의 거대 자본들은 이를 막는 것이 아니라 그 약탈에 함께 하여 자신의 부를 늘리는 데에만 치중한다. 나라가 망하는 꼴을 보고도 일본에 서로 나라를 팔아 자신의 이익을 구했던 저 노론의 집권자들과 그 밑에 있던 기생충과 같은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저들의 뿌리가 조선 후기의 독재적 권력을 누렸던 노론이며 그들이 구한말에 나라를 팔았으며 일제시대에 귀족과 내선일체적 신민이며 천황의 충성스러운 개들이었다. 그리고 해방 이후에는 이제 미국에 붙고 이승만에 붙었으며 군사정권을 이끌었으며 이제는 새로운 권력에 붙어 기생하며 여전히 국민의 피를 빨고 있는 기생충들이 되었다. 이들은 나라가 망해가고 약탈을 당해도 언제나 조용하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약탈하는 자들의 무리에 동참하여 언제든지 자기 일신의 영달만을 추구한다. 이들은 그 뿌리가 너무 오래되어 국가의 상층부 자체가 되었다. 혹시 이를 막으려는 일부 또는 탁월한 개인이 있어도 이를 눈치채기도 힘들고 막으려 해도 막을 길도 없다. 국가 상층부 자체가 이런 카르텔에 의해 움직이는데 어떻게 한 개인이나 선각자적 몇몇이 그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오히려 그런 자들은 스스로 영문도 모르게 제거될 수밖에 없다. 그런 것 같다고 짐작하지만 너무 여러 단계를 거쳐 린치를 당하기에 증거를 찾을 수도 없다. 사실 국가의 상층부를 장악하고 있는 외계 기생충들에 의해, 그 마음대로 형태를 변형시키고 자신을 숨기는 그들의 탁월함에 의해 제거 된다. 마치 영화 기생수에서처럼 머리 자체가 기생수에게 점령 당한 것과 같다. 늘 자신을 숨기고 필요할 때는 가장 효율적인 형태로 자신을 변형시키니 이길 수 있는 길이 없다. 우리는 이런 시스템의 하수인으로 성실하게 교육되고 그곳에 충성을 다하여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욕심을 학습하여 작은 도둑놈들이 되었다. 착하게 살면 바보 되는 악인의 세상에서 소시민적 악인으로 성실하게 살고 있다. 돈이면 다되고 권력이면 다 되는 추잡한 세상에서 작은 도적으로 우직하게 살고 있다.

                    




[1] 원래 하늘님이라는 한국 고유명사. 최고신을 나타내는 말로 백성들이 일반적으로 쓰고 있던 말이었다. 천주교는 하늘님보다 천주라는 단어를 더 선호하여 천주라는 호칭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용했다. 하늘님이라는 단어를 먼저 수용한 것은 개신교였다. 서북인 함경도 지역에 기독교인들이 많았던 탓에 하늘님보다는 그 사투리인 하ᄂᆞ님이 익숙했으므로 하늘님에서 중간의 받침 ㄹ 이 탈락한 하느님을 쓰지 않고 하ᄂᆞ님을 사용했다. 그렇게 하면서 언더우드, 로스, 게일 등의 선교사들은 하ᄂᆞ가 하늘이라는 뜻이지만 숫자 하나와 관련 있는 의미도 같이 부여해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칭호도 된다고 하나ᆞ님의 이름 채택 이유를 밝혔다. 


이후에 천주교가 뒤늦게 1977년도에 공동번역 성서에 천주를 대신하여 하느님을 썼다. 하늘님이나 하ᄂᆞ님이나 하느님이나 모두 조선의 최고신을 뜻하는 단어다. 영어로는 God이며 중국어로는 상제(上帝, 샹띠, 옥황상제, 또는 하늘을 지칭하는 최고의 신)이며 독일어로는 Gott다. 원어인 히브리어로는 엘로힘, 엘(단수)로서 이는 신을 나타내는 단수와 복수의 형태다. 엘로힘은 신들이라는 뜻인데 하나님께나 다른 신들에게도 신이라는 형태로 쓰인다. 이를 강조형의 복수라고 하지만 히브리어가 거의 사어가 되어버렸고 히브리인들이 예루살렘 멸망 이후로 자신들의 유산들을 잃어버려 사실 정확한 그 의미를 학자들도 찾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뜻하는 단어다. 그런데 엘로힘이나 엘은 하나님께만 쓰인 단어가 아니다. 일반적인 이방의 신들에 대해서도 쓰이던 단어다. 영어권의 God이나 이슬람권의 알라가 그러하듯 꼭 하나님 한 분만을 대상으로 쓰이는 단어가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는 하늘님이라는 조선의 최고신을 지칭하는 용어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택된 것은 적절하다 할 수 있다. 천주교의 하느님과 개신교의 하나님이 서로 다른 용어인 줄 아는 분들도 많은 데 사실 둘 다 같은 하늘님이라는 용어의 현대적 형태다. 하느님이 표준어라 할 수 있고 하나님은 함경도식 사투리 하나ᆞ님의 현대 맞춤법을 따른 단어인 하나님이다. 그러니 이 용어 자체에 무리한 의미를 두어 카톨릭과 개신교인들이 의미 없는 논쟁을 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여기서 카톨릭과 개신교회가 함께 번역한 공동번역 개정판을 사용한 것은 그 번역이 조금 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그 의미를 쉽게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번역들도 있지만 번역본의 사용에 대한 쓸데없는 논쟁은 원하지 않는다. 번역본의 사용에 관해 문의할 것이 있으면 이 번역본을 번역하는데 참여하신 개신교회의 권위 있는 목사님들께 질문을 드리길 바란다. 이런 열심이나 천천의 수양을 바치는 것이나 결코 다르지 않은 모습인데 사람들은 전혀 모른다. 과연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겠는가? 하나님께 여쭈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2] 현대 소의 거래 가는 550~1000만 원, 염소나 양은 150~220만 원 정도 한다. 이를 근거로 한 계산들이다.


[3]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악독한 유태인 고리대금업자.


[4]  [출처: 뉴스앤조이] 십일조 영웅 록펠러의 또 다른 실체,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2544 

retrieved in 16 Jun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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