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판/한글판
Augustine was born on November 13, 354, in Thagaste, a province of Numidia in the Roman Empire (present-day Souk Ahras, Algeria). He died on August 28, 430 (aged 75) in Hippo Regius, a province of Numidia in the Western Roman Empire (present-day Annaba, Algeria).
He lived in a time close to the fall of the Western Roman Empire (476 AD), after Rome had recognized Christianity (313 AD) and made it the state religion. He was born after the Council of Nicaea (325 AD) and lived accepting the doctrines established by the emperor's power at the end of those doctrinal disputes. If one opposed the already decided and legalized doctrines by the emperor, they faced threats to their life or at least condemnation as heretics and exile from Rome. Both Arius and Athanasius were exiled several times during their lives. In Augustine's Confessions, it is evident that Ambrose, whom Augustine initially followed, was persecuted by Emperor Valentinian and his mother, Empress Justina. The Empress followed Arianism, a heresy, and persecuted Ambrose, who opposed Arianism. Augustine witnessed these scenes with his own eyes. Even in modern times, if one finds parts of the Bible that deviate from the doctrines established by councils, they are bound to struggle. How much more so in Augustine's time?
He was also deeply immersed in Greek philosophy and religion, which influenced Rome, and lived with the ideas developed from these foundations. Although he seemed to have converted and returned to God, his worldview, until it was fully captured and made obedient to Christ, remained and inevitably influenced him. He could never be free from the worldview of his time. Understanding this background helps us infer why he made interpretative errors based on the eternal generation theory concerning John 5:26.
Examining his background as a theologian reveals a decisive reason why his words cannot be trusted. He was a collaborator with Rome, a traitor to his people. He supported the Roman army in killing his people, confiscating their churches and properties, and provided justification for such persecution. He did not listen to any voices desiring to purify the corruption of the Roman Catholic Church. Even if the voices opposing the Roman Catholic Church were correct, he condemned and attacked them as heretics, considering them challenges to the Catholic Church. His attitude towards the Donatists and Pelagius shows that he did not tolerate any objections to the Roman Catholic Church. He even falsely accused his opponents and distributed false publications attributed to them to label them as heretics. Augustine's actions against the Donatists were revealed through records left by the Donatists, exposing him as a traitor and persecutor of pure martyrs. In his disputes with Pelagius, he falsely accused Pelagius, a reformer of the Roman Catholic Church, labeling him a heretic. Many scholars now believe that the writings attributed to Pelagius were not his own but were maliciously fabricated by the Catholic Church. Augustine likely condemned Pelagius based on these false writings. What kind of person does Augustine appear to be, having falsely condemned his brother as a heretic through false evidence ?
Augustine also defended bishops who worshipped the emperor and served Roman pagan gods, providing ideological grounds for them to maintain their clerical positions. This is akin to the actions of traitors who collaborated with Japan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He did not stop there but mobilized the Roman army to massacre his people's churches, seize their properties, and annihilate them. How foolish would it be to accept and follow the writings of such a person as the victor's record?
Ultimately, Rome and the Roman Catholic Church, which committed such acts, were condemned. Rome was on the brink of collapse due to the invasion of the Goths, and the North African colonies fell to the Vandals. In AD 430, as Augustine awaited death, Hippo, where he was a bishop, was besieged by the Vandals and on the verge of falling. Isn't this a natural consequence? Yet, Augustine did not think to repent for the sins of himself and the Roman Catholic Church to which he belonged before his death. Instead, he spent over 14 years justifying their sins with irrational arguments, claiming them as logic, and writing the thick book "The City of God." Can such a person be considered a theologian? Or is he like Kyung-jik Han, who, behind the facade of being a saint of Joseon, was a proponent and collaborator of Shinto worship, a traitor who stood at the forefront of Japanese collaborators, and after liberation, signed off on suppressing independence fighters and their forces as a collaborator of Syngman Rhee and Japanese collaborators, and was sent as a special envoy to the United States to gain approval for the illegal power seized by military coups on May 16 and December 12? Even now, in Korea, only their records remain as victors, but how can their sins be hidden from heaven? Surely, the revelation of God in heaven has witnessed all this. If the sins of Augustine and all traitors and apostates are not revealed on this earth, on the day of judgment, all the mouths of those rebels will be shut, and only the fact of Jesus Christ, who knows all, and the Father God and the Holy Spirit will fill the world.
어거스틴은 354년 11월 13일 로마 제국 누미디아 속주 타가스테(現 알제리 수크아라스)에서 출생했다. 그는 430년 8월 28일 (향년 75세) 서로마 제국 누미디아 속주 히포 레기우스(現 알제리 안나바)에서 사망했다.
예수님 이후 300여 년이 흐른 후 4세기,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서기 313년)하고 국교로 삼았으며 서로마는 멸망(서기 476년)하는 시절에 가까이 흐른 시대에 살았다. 그는 니케아 공회(서기 325년) 이후에 태어났으며 그 교리적 논쟁의 끝에 황제의 권력으로 정해진 교리들을 받아들이며 살았다. 이미 결정되고 황제에 의해 법제화된 교리들을 거스를 경우 목숨의 위협을 받거나 최소한 이단으로 정죄되고 로마에서 추방을 당해야 했다. 아리우스와 아타나시우스도 그들의 생애 동안 여러 번 유배를 갔었다. 실제로 어거스틴의 참회록을 보면 그가 처음 따르기 시작했던 암브로시우스도 발렌티누스 황제와 황제의 어머니 유스티나 대비에게 핍박을 받았다. 황제의 어머니는 이단인 아리우스 주의를 따랐고 아리우스주의를 반대하던 암브로시우스를 핍박한 것이다. 어거스틴은 자신의 눈으로 이런 장면들을 보았다. 지금 현대에도 죽음이나 추방에 처하지 않더라도 공회들에서 정해진 교리들을 벗어나는 부분을 성경에서 발견한 듯하면 분명히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거스틴의 시대라면 오죽하겠는가?
또한 그는 로마에 영향을 준 그리스의 철학과 종교에 심취했었으며 그것들을 근본으로 발달한 로마의 사상들을 가지고 살았다. 물론 그가 회심하여 하나님께 돌아온 것 같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은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기 전까지는 남아서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결코 그 시대와 그 시대의 세계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러한 배경을 알아야 그가 요한복음 5장 26절에 관해 영원발생설을 기반으로 해석의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신학자로서의 배경을 살펴보면 그의 말에 신뢰를 둘 수 없는 결정적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는 식민지의 백성으로 로마에 협력하는 매국노였다. 자기 백성들을 로마군대를 동원해 죽이고 그들의 교회와 재산을 몰수하는데 찬성했으며 그 핍박의 명분을 마련했던 자다. 그는 로마 카톨릭의 타락을 정화하기 원하는 어떤 목소리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로마 카톨릭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옳더라도 그것을 카톨릭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 정죄하고 공격하여 이단으로 만들었다. 도나투스파나 펠라기우스에 대한 그의 태도를 보면 로마 카톨릭에 대한 어떤 이의도 제기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심지어 상대에게 누명을 씌우고 상대가 썼다고 하는 거짓 출판물을 유통해서라도 상대를 이단으로 만들었다. 도나투스파에 대한 어거스틴의 행적은 도나투스파가 남긴 기록들이 발견됨으로 어거스틴의 매국노 행적과 순수한 순교자들을 핍박한 핍박자로서의 모습이 드러났다. 또한 펠라기우스와의 논쟁에서도 펠라기우스의 로마 카톨릭에 대한 개혁자로서의 모습을 거짓 누명을 씌워 이단으로 만드는 것으로 대처했다. 실제로 지금 펠라기우스의 글이라고 남겨진 글들은 많은 학자들이 펠라기우스 자신의 글이 아님을 확신하고 있다. 그 글들은 악의적으로 카톨릭이 날조한 글들이다. 아마 이 글들을 근거로 펠라기우스를 정죄했을 것이다. 거짓 증거를 통하여 형제를 이단으로 정죄한 어거스틴이 어떤 자로 보이는가?
어거스틴은 또한 황제를 숭배하고 로마의 이방신들을 섬기는 예를 행했던 신사참배자들과도 같은 주교들을 옹호하고 그들이 성직을 지킬 수 있도록 사상적 근거를 마련했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부역한 매국노들의 행위와 같은 것이다. 그는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로마의 군대를 동원해 자신의 민족교회를 학살하고 그들의 제산을 빼앗고 그들을 잔멸 하여 죽이는데 힘을 썼다. 이런 자의 글을 승자의 기록이라 하여 우리가 그 기록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따른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는가?
이러한 짓을 저질렀던 로마와 로마 카톨릭은 결국 정죄를 당했다. 로마는 고트족의 침입으로 멸망직전이었으며 또한 북아프리카의 식민지도 반달족의 침략에 무너졌다. AD 430년 어거스틴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 그가 주교로 있던 히포는 반달족에게 포위되어 함락의 위기에 있었다. 이것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그런데 어거스틴은 죽기 전 자신과 자신이 속한 로마 카톨릭의 죄를 회개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14년여를 자신들의 죄를 합리화하는 비합리적 억지를 논리라 주장하며 신국론이라는 어리석음이 두터운 두께의 책을 저술하는데 바쳤다. 과연 이자가 신학자이겠는가? 아니면 조선의 성자라는 허울 좋은 가면 뒤에 신사참배의 발의자며 앞잡이였고 일제의 앞잡이로 매국노의 선봉에 섰으며 해방 이후에는 이승만과 일제 매국노들의 앞잡이로 독립투사들과 그들의 세력을 토벌하는데 사인을 하는 자가 되었으며 군사쿠데타로 불법적 권력을 찬탈한 자들의 권력을 승인받으러 미국에 특사로 파견되어 516과 1212의 앞잡이가 된 한경직과 같은 자이겠는가? 지금 한국도 그들이 승자로 그들의 기록만이 남아있지만 어찌 하늘에 그들의 죄를 손바닥으로 가릴 수 있겠는가? 과연 하늘의 하나님이 계시니 이 모든 것을 지켜보셨다. 만약 이 땅에서 어거스틴과 모든 매국노와 배교자들의 죄악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심판의 날에는 반드시 그 반역자들의 모든 입들이 닫히고 오직 심판하시는 모든 것을 아시는 예수 그리스도님과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의 사실이 온 세상을 가득 채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