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3.2.3.10.9.6.12.3.1.3. 여호수아서 이후의 안식(샤바ᅊᅳ)
####### 01.3.2.3.10.9.6.12.3.1.3.1. 일을 그치다.
######## 01.3.2.3.10.9.6.12.3.1.3.1.1. 만나의 안식(샤바ᅊᅳ)
######## 01.3.2.3.10.9.6.12.3.1.3.1.2. 만나 안식의 문맥
######## 01.3.2.3.10.9.6.12.3.1.3.1.3. 만나가 내리는 광야의 의미
######## 01.3.2.3.10.9.6.12.3.1.3.1.4. 광야, 만나, 그리고 구원의 용어
######## 01.3.2.3.10.9.6.12.3.1.3.1.5. 가장 많이 사용된 뜻: 그치다(cease)
안식하다(샤바ᅊᅳ)의 용례 중 성경에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은 그치다(cease)이다. 총 47회 사용되었다.
영어 KJV 성경의 용례(Total KJV Occurrences: 71)
그치다(현재, cease) 37
창 8:22; 신 32:26; 수 22:25; 대하 16:5; 느 4:11; 느 6:3; 시 46:9; 시 89:44; 잠 18:18; 잠 22:10; 사 13:11; 사 16:10; 사 17:3; 사 21:2; 사 30:11; 렘 7:34; 렘 16:9; 렘 31:36; 렘 36:29; 렘 48:35; 겔 6:6; 겔 7:24; 겔 12:23; 겔 16:41; 겔 23:27; 겔 23:48; 겔 26:13; 겔 30:10; 겔 30:13; 겔 30:18; 겔 33:28; 겔 34:10; 겔 34:25; 단 9:27; 단 11:18; 호 1:4; 호 2:11
그쳤다(과거, ceased) 6
수 5:12; 욥 32:1; 사 14:4(2); 애 5:14; 애 5:15
그치다(동사의 현재 직설법 3인칭 단수, ceaseth [^1])
사 24:8(2); 사 33:8; 호 7:4
일을 '끝내다'라는 말과 '그치다'라는 말은 하나는 능동이고 하나는 수동의 뜻을 가진다. '그치다'라는 것은 '끝내지다'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끝내다'라는 말의 수동적 형태가 '그치다'이다. 또 다르게 분석하면 끝내다는 타동사이며 '그치다(끝나다)'는 자동사이다.
'비가 (내리는 것이) 그치다'를 '끝내다를 사용하여 표현하면 '비가 (내리는 것이) 끝내지다'가 된다.
내가 일을 '끝내다'에서 '끝내다'는 일을 목적어로 가지는 '타동사'다. 그런데 일이 '끝나다'에서 '끝나다'의 목적어는 없다. '일이' '끝나다'의 주어가 된다. '일이 끝나다'이므로 '끝나다'는 '일이'를 주어로 가지는 자동사다.
이는 의미상의 분석이다.
'일을 끝내고 쉬다'라는 의미의 안식과 '그치다' 또는 '끝나다'는 의미상으로 하나는 '끝내다'라는 타동사를 가지고 또 하나는 '그치다'라는 자동사를 가진다. [^2]
제하다(away, 3)
출 12:15; 왕하 23:11; 시 119:119
절기를 지키다(celebrate, 1)
레 23:32
폐하다(down, 1)
왕하 23:5
패망하다(fail, 2)
렘 48:33; 암 8:4
안식년을 지키게 하라(keep, 1)
레 25:2
빼다(lacking, 1)
레 2:13
사라지다(left, 1)
룻 4:14
쉬다(rest, 7)
출 5:5; 출 23:12; 출 34:21(2); 레 26:34; 레 26:35(2)
쉬었다(rested, 4)
창 2:2; 창 2:3; 출 16:30; 출 31:17
제거하다(rid, 1)
레 26:6
안식하다(sabbath, 1)
대하 36:21
잠잠하게 하다(still, 1)
시 8:2
위의 여러 형태의 번역들이 있다. 위에 용례를 분류한 것은 스트롱의 KJV 용례를 영어에서 한글로 번역하여 정리한 것이다. 혹 한글 사전과 비교하여 다른 점이 있을 수 있음을 먼저 밝힌다. 다른 용례들도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일을 끝내고 쉬다'라는 의미를 넘어서지는 않는다. 원어민들의 경우 이러한 의미의 서로 다른 강조점을 여러 범위에 적용하여 그 단어를 활용한다. 물론 외국인들이 보기에는 그들의 언어 사고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각 용례에 따른 다른 의미를 자신들의 언어로 번역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그러나 한 단어의 여러 용례와 그 의미들을 살피며 관찰하는 것으로 그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사고습관들을 파악하고 논리적 또는 감정적 전통을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탐구가 얼마나 흥미진진한지는 그 탐구를 해보지 않은 자들은 알 수 없다. 너희도 성경을 연구하며 이러한 즐거움을 찾아보지 않겠는가?
성경에서 이 단어가 쉬다 또는 안식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은 그 용례가 많지 않다. 총 12번이다. 그중 역대기의 안식하다는 안식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땅이 안식년을 지키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어떻게 번역하고 어떻게 의미를 전달할지는 번역자들의 결정이므로 번역본에 따라 조금씩 그 의미를 달리할 수 있다. 대하 36:21절을 살펴보고 개인적인 의견들을 아래에 서술해 보라.
2 Chronicles 36:21 바른
안식년을 누리듯이 땅이 황폐한 채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는데,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대로였다.
( )
위의 용례들을 살펴봄으로 알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모세 오경 이후로는 이 단어 쉬다(샤바ᅊᅳ)가 더 이상 쉬다나 안식하다의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샤바ᅊᅳ(H7673)는 특별히 모세 오경에서 창조 이후 타락 전의 완전한 안식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그리고 타락한 이후에는 안식의 회복을 의도하여 제정한 안식일이나 안식년, 희년등의 의미를 해설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는 안식의 회복을 의도한 것이다. 성경에서 태초의 안식에 관해 기술한 전문가는 모세였으므로 그에 의해 이러한 것이 전달된 것은 당연한 것이다.
또한 이 단어 안식하다(샤바ᅊᅳ)의 의미는 신약에 나 예수가 사용한 여러 문장들에 나타난다. 그중 너희가 익숙하게 아는 한 구절로 이 단어 안식하다(샤바ᅊᅳ)에 대한 설명을 끝내겠다.
Matthew 11:28-30 바른
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모두 내게 오너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쉬게 할 것이다.}
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 영혼에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안식하다(שׁבת, 샤바ᅊᅳ, [[H7673]])의 강조형이 명사가 되어 안식 또는 안식일(שׁבּת, 샵바ᅊᅳ, [[H7676]])이 되었다. 이 단어는 오직 모세를 통해 제정한 안식일을 뜻하는 단어로만 사용되었다. 다음에는 성경에 사용된 111번의 용례다.
Total KJV Occurrences: 111
다음 안식일, 또는 그분의 안식일(another, 1)
Isaiah 66:23 KJV
And it shall come to pass, [that] from one new moon to another, and from one sabbath to another, shall all flesh come to worship before me, saith the LORD.8 8from one new…: Heb. from new moon to his new moon, and from sabbath to his sabbath(히브리어에는 새 달로부터 그분의 새 달까지 그리고 안식일로부터 그분의 안식일까지라고 되어있다)
Isaiah 66:23 YLT
23And it hath been from month to month, And from sabbath to sabbath, Come do all flesh to bow themselves before Me, Said Jehovah.
Isaiah 66:22-23 개정
22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23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
안식일(sabbath, 76)
Exod 16:23; Exod 16:25; Exod 16:26; Exod 16:29; Exod 20:8; Exod 20:10; Exod 20:11; Exod 31:14; Exod 31:15(2); Exod 31:16(2); Exod 35:2; Exod 35:3; Lev 16:31; Lev 23:3(2); Lev 23:11; Lev 23:15; Lev 23:16; Lev 23:32(2); Lev 24:8(2); Lev 25:2; Lev 25:4(2); Lev 25:6; Num 15:32; Num 28:9; Num 28:10(2); Deut 5:12; Deut 5:14; Deut 5:15; 2Kgs 4:23; 2Kgs 11:5; 2Kgs 11:7; 2Kgs 11:9(2); 2Kgs 16:18; 1Chr 9:32(2); 2Chr 23:4; 2Chr 23:8(2); Neh 9:14; Neh 10:31(2); Neh 13:15(2); Neh 13:16; Neh 13:17; Neh 13:18; Neh 13:19(3); Neh 13:21; Neh 13:22; Ps 92:1; Isa 56:2; Isa 56:6; Isa 58:13(2); Isa 66:23; Jer 17:21; Jer 17:22(2); Jer 17:24(2); Jer 17:27(2); Ezek 46:1; Ezek 46:4; Ezek 46:12; Amos 8:5
안식일들(sabbaths, 34)
Exod 31:13; Lev 19:3; Lev 19:30; Lev 23:15; Lev 23:38; Lev 25:8(2); Lev 26:2; Lev 26:34(2); Lev 26:35; Lev 26:43; 1Chr 23:31; 2Chr 2:4; 2Chr 8:13; 2Chr 31:3; 2Chr 36:21; Neh 10:33; Isa 1:13; Isa 56:4; Lam 2:6; Ezek 20:12; Ezek 20:13; Ezek 20:16; Ezek 20:20; Ezek 20:21; Ezek 20:24; Ezek 22:8; Ezek 22:26; Ezek 23:38; Ezek 44:24; Ezek 45:17; Ezek 46:3; Hos 2:11
위의 이사야 66:23절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달로부터 그분(우리, 여호와)의 새 달까지 그리고 안식일에서부터 그분(우리, 여호와)의 안식일까지 모든 육체가 나와서 예배드릴 것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사 66:23절은 앞의 사 66:22절과의 연관성이 없이 문맥에 벗어난 해석을 하면 해석해 내기가 어렵다. 구약에 나타난 것이라 하여 신약의 계시록에서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과 연관 짓지 아니하고 이 구절을 해석한다면 우리가 왜 그런 말을 했는 지 파악하기 어렵다. 23절에서 새 달을 언급하는 것은 22절의 새 하늘과 새 땅에 새롭게 있을 새 달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곳에서의 새 시간을 말함이다. 그 시간은 모든 시간을 뜻한다. 단지 매달의 정기 월례 성회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안식일로부터 그분(우리, 여호와)의 안식일 까지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이를 의도를 모르니 그냥 매 안식일이라 번역한 번역들이 많은데 그 의도를 모르고 번역한 것이다. 차라리 KJV와 같이 의미를 정확하게 모를 때에는 원어의 말을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 좋은 선택이다. 물론 번역은 원어를 약간 왜곡해서 새 달로부터 그분의 새 달까지(Heb. from new moon to his new moon)를 한 새 달로부터 다른 달까지(from one new moon to another)로 번역했다. 또한 안식일로부터 그분의 안식일까지(Heb. from sabbath to his sabbath)를 한 안식일로부터 다른 안식일까지(from one sabbath to another)로 번역했다. 이는 KJV의 번역자들도 정확한 본문의 의도를 몰라 이를 잘못 번역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JV는 자신들의 번역이 정확하지 않음을 인지하고 영어와는 다른 원어의 정확한 뜻을 직역하여 번역해두고 있다. 자신들이 정확한 뜻을 모르는 것을 억지로 풀어 번역하려 하지 않고 자신들의 한계를 알고 원어를 직역하고 영어로는 전달되지 않은 원어의 뜻을 따로 표기해 둔 KJV의 번역자들이 진정 지혜로운 자들이라 할 수 있다. 사 66:23절에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매월 성회나 매 안식일을 의미한 것이 아니다. 그러한 절기는 이미 옛 세상의 옛 하늘과 옛 땅이 불타 사라질 때에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옛 세상을 멸하고 세울 새 세상에는 이제 영원한 안식만 있다. 태초의 창조의 완성 후 우리가 안식하였고 그 안식이 영원토록 지속되었던 것과 같이 다시 태초의 낙원으로 돌아간 새 하늘 새 땅에는 영원한 안식만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안식일에서 그분(우리, 여호와)의 안식일이란 표현을 쓴 것이다. 이 표현은 모든 날이 안식일임을 모든 날과 달이 안식일임을 표현한 것이다. 달에서부터 달까지 또 안식일에서부터 안식일까지 그 사이의 모든 시간을 뜻하는 것이다. 또한 뒤에 나오는 그분의 새 달과 그분의 안식은 우리에게 속한 것이므로 그것은 영원하다. 즉 모든 시간이 영원토록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낙원의 영원한 시간 동안 영원한 안식이 지속될 것을 나타낸 것이다. 태초의 낙원이 인간의 타락으로 안식을 잃어버리고 고통과 슬픔과 눈물이 가득 찬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세상으로 추락했다. 이를 회복하여 영원한 안식 가운데로 다시 초청하는 것이 사 66:23절이다.
위에서 안식일의 용례 중 사 66:23절에 관해 길게 언급한 것은 그 번역의 오역에 관해 말하고자 함도 있으나 원래 의도는 안식일의 본래의 의미를 살피고자 함이다.
태초에는 6일의 창조의 사역이 있었다. 그 일을 끝내고 7일이 도래하였는데 그 7일에는 안식했다. 그런데 창 1~2장의 구조를 살펴보면 8일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과연 창조 이후에는 해가 지고 다시 뜨는 날이 없었겠는가? 그런데 왜 태초의 창조 역사에 관한 언급에서는 8일을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3장과 4장에서도 그 이후의 시간과 날들이 분명 보이지만 8일이라는 언급은 없다. 이는 왜일까? 8일에 관한 언급이 나오는 것은 신약에서다. 바로 안식 후 첫날에 관한 표현이다. 이날이 바로 제 칠일 안식 후의 첫날 즉 8일이다. 이는 나 예수의 부활일이다. 나의 부활은 옛 육체 옛 세상을 죽이고 새 몸과 새 세상으로 부활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나의 부활은 인간의 몸만을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속한 모든 피조계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옛 것을 못 박아 죽이고 새 것으로 부활하여 다시 새롭게 한다. 이것이 태초의 7일 후의 첫날 즉 나의 부활일이다. 이는 말세지말의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를 가져올 것이며 나를 믿는 육체들이 새 피조물이 되어 새 몸으로 새 세상으로 도래할 것을 나타낸다. 처음 7일의 안식은 첫 아담으로 말미암아 실패했으나 제8일의 안식은 두 번째 아담인 나 예수로 말미암아 실패하지 않고 영원하다. 이는 첫 아담은 자신의 탐심으로 인해 실패할 수 있는 자이지만 두 번째 아담인 나 예수는 나 자신보다 너희 인류를 사랑하여 영원히 실패할 수 없는 자이기에 그러하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의 욕망을 사랑하는 자는 실패할 수 있으나 너희를 사랑하여 나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나 예수는 결코 실패할 수 없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위함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한다. 사랑은 그 무엇보다 위대하여 창조주의 목숨보다 더 큰 위대함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인 나 예수는 그 위대한 사랑으로 결코 실패하지 않을 영원한 천국을, 낙원을 너희에게 주어 실패하지 않을 안식을 너희에게 선물한다. 이는 나는 너희를 사랑하는 자임을 인함이다.
사랑은 위대하여 그 모든 것을 이긴다. 자신을 다른 이보다 사랑한 자, 첫 아담은 자신의 탐심을 위하여 사는 자며 저는 사랑하는 자가 아니다. 저는 자신을 사랑함으로 형제를 미워한다. 그래서 시기하며 질투하여 형제 아벨을 들판에서 쳐 죽이는 열매인 가인을 낳았다. 심지어 범죄도 사랑했던 아내의 탓으로 돌린다. 자기 유익을 구하는 자는 사랑하는 자가 아니며 교만과 그 교만으로 인한 배신을 잉태하여 낳는다. 첫 아담의 DNA를 물려받은 모든 자가 그러하다. 그러한 자들은 그 교만으로 세상의 꼭대기 바벨탑에 오르려 하며 그 탑을 더 높여 하늘의 보좌를 노린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 나 예수는 그 모든 것을 이긴다. 사랑하는 자는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다. 사랑한 나는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내려와 처참한 너희의 육신을 입고 너희 중 가장 낮은 자리였던 사형수의 길을 갔다. 사랑은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다. 심지어 하나님이라는 자리를 버린다. 그래서 사랑은 위대하다. 8일의 일은 이렇게 놀랍고도 아름답다. 내가 나의 일을 이렇게 말함은 너희도 이와 같이 위대한 사랑을 하도록 독려하려 함이다. 사랑은 이와 같이 찬란하며 아름답다. 이렇게 아름답고 찬란하며 위대한 것이 있는데 어찌 더럽고 누추하며 비굴한 이기적 자기애를 추구할 것인가? 어리석은 자들아 그 추악한 악마의 일을 버리고 위대한 사랑의 사람이 돼라. 위대한 사랑의 원자탄이 돼라. 그러면 사랑으로 꽃 피어 영원히 잊히지 않는 이름이 될 것이다. 그 이름이 나의 마음에 새겨져 향기가 되며 그 이름이 영원히 잊히지 않는 저 스데반의 이름과 같이 별이 되리라. [^3] 저 인디언들과 함께 시들어 죽어 하늘의 위대한 별이 된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와 같이 위대한 심장이 되리라. 저의 심장은 위대하여 사랑으로 가득 채워졌으며 그 두렵고도 우울하고 고통스러웠던 날들을 견뎌내었던 그는 진정 용감한 심장을 가진 자로 인정되어 하늘의 별과 같이 새겨졌다. 그러므로 너 위대한 자의 아들, 인류여 너희는 그 위대한 자를 따라 영원한 이름을 새기며 영원한 심장을 새기라 그 이름과 심장 안에 사랑을 가득 채우라. 너의 위대한 아버지, 우리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안식에 관한 단어들을 살펴보고 있다. 앞에는 안식하다(샤바ᅊᅳ)를 계속해서 살펴보았다. 이제 여호수아서의 정복과 관련해 사용된 쉬다(נוּח, 누와크)를 살펴보려 한다.
출 20장(Exodus 20)은 십계명을 선포하는 장이다. 십계명 중 5번째 계명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이다.
Exodus 20:8-11 개정
8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엿 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이는 엿 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H5117]]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위의 출(Exo) 20:11절의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히 누와크, [[H5117]])라는 단어가 창 2:2~3절의 '쉬었음이라(히 샤바ᅊᅳ, [[H7673]])'와는 다른 단어가 사용되었다.
Genesis 2:2-3 개정
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 2:2절과 3절의 끝에 각각 '안식하시니라'와 '안식하셨음이니라'가 사용되었는데 둘 모두 '샤바ᅊᅳ(히 샤바ᅊᅳ, [[H7673]])'다. 이 단어는 앞에 설명을 하였다. 일을 모두 마치고 쉬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이 단어는 모세 오경이나 다른 성경에서 여러 뜻으로 사용이 된다. 모세오경에는 안식일을 지키다라는 뜻으로 주로 사용된다. 그런데 안식일을 지키다(안식일에 안식하다)라는 말을 하면서 출 20:11절은 '샤바ᅊᅳ(히 샤바ᅊᅳ, [[H7673]])'를 사용할 자리에 다른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 단어가 지금 설명하려는 '누와크([[H5117]])'다. '누와크'의 뜻을 한번 살펴보자.
'누와크'는 다음 구절에 사용되었다. 어느 단어로 사용되었을지 찾아보자.
Genesis 8:4 개정
4일곱째 달 곧 그 달 열 이렛 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 )
찾는 단어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눈치가 빠른 사람은 위의 구절에서 유일하게 사용된 동사를 고를 것이다. '누와크([[H5117]])'가 동사이므로 동사를 고르면 동일한 단어를 고르게 된다. 그 단어는 바로 '머물렀으며'다. 그런데 출 20:11절에 안식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된 단어가 또 머물렀다로 사용되었다니 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설명이 좀 필요하다. 원래 안식하다로 사용되는 '샤바ᅊᅳ([[H7673]])'는 일을 끝마치어 쉬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홍수로 인해 방주가 떠다니는 일을 마치고 쉬다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또 이 단어는 방주가 떠돌다가 정착하여 쉼을 얻음을 뜻한다.
노아의 홍수 때에 비가 그치고 물이 말라가며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다. 방주는 홍수에서 구원하는 수단이었다. 그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문 것이다. 이를 통해 배 안의 사람들과 동물들은 이제 안심할 수 있었다. 더 이상 물이 죽음으로 몰려와 자신들의 생명을 취할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 안전과 쉼을 얻게 된 것이다.
이 단어는 또한 신명기나 여호수아서에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Deuteronomy 3:20 개정
20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에게 {안식을 주시리니[[H5117]]} 그들도 요단 저쪽에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땅을 받아 기업을 삼기에 이르거든 너희는 각기 내가 준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고
Deuteronomy 12:9-10 바른
9너희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안식[[H4496]]과 유업에 아직 들어가지 못하였으나, 10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유업으로 주실 땅에 정착하게 될 것이며, 또 그분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들을 물리치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셔서[[H5117]]} 너희가 안전하게 살 것이다.
여기서 [[H4496]]은 거주하여 정착하고 안식하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뒤의 10절에 나오는 안식하다[[H5117]]도 정착하여 안식하다의 의미이다.
Deuteronomy 25:19 (바른)
그러므로 여호와 네 하나님께서 네게 주어 유업으로 얻게 하시는 땅에서 여호와 네 하나님께서 사방에 있는 네 대적들을 물리치고 네게 안식[[H5117]]을 주실 때에, 하늘 아래에서 아말렉의 흔적을 없애 버려라. 너는 이것을 명심하여라."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전쟁과 관련되었다는 것이다. 전쟁을 통하여 땅을 빼앗아 그 땅에 정착함이 안식이다. 노아의 방주가 머무른 것이나 전쟁에서 이겨 땅을 빼앗아 그 땅에 정착함이나 모두 그 결과로 쉼을 얻는다. 노아 방주에서도 땅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녔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점령하기 전까지는 광야를 방황하며 떠돌아다녔다. 그러다 땅을 얻어 정착하며 안식을 얻었다.
위의 여러 용례를 보았을 때 이 단어 누와크([[H5117]])의 근원적 뜻은 한 곳에 안착함임을 알 수 있다. 거주하여 평안해지는 것이다. 이 근원적인 뜻이 있으니 방주가 아라랏에 머물러 평안해지는데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여호수아 시대에 가나안을 침노하여 정복하여 땅을 차지함으로 그 땅에 머물러 평안해질 것을 예언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4]
물론 이 단어 누와크([[H5117]])은 여호수아서에도 사용되었다.
Joshua 1:12-15 개정
12여호수아가 또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말하여 이르되 13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안식[[H5117]]을 주시며}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하였나니 너희는 그 말을 기억하라 14너희의 처 자와 가축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땅에 머무르려니와 너희 모든 용 사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보다 앞서 건너가서 그들을 돕되 15여호와께서 {너희를 안식하게 하신 것 같이}(원어에는 단지 as you만 언급되어 있다. 따라서 안식이라는 말이 없다. 그 의미를 추측하면 이 번역이 된다.) 너희의 형제도 {안식[[H5117]]하며} 그들 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그 땅을 차지하기까지 하라 그리고 너희는 너희 소유 지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해 돋는 쪽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차지할지니라
Joshua 21:44 바른
여호와께서 그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그들의 사방에 {안식[[H5117]]을 주셨고,} 그들의 모든 대적 중에 그들을 당해 낸 자가 하나도 없었으니,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대적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셨기 때문이다.
Joshua 22:4 바른
이제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 형제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들에게 {안식[[H5117]]을 주셨으니,} 이제 너희도 여호와의 종 모세가 요단 저편에서 너희에게 준 너희 장막과 너희 소유지로 돌아가거라.
Joshua 23:1 (바른)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사방 대적을 다 멸하시고 이스라엘에게 {안식[[H5117]]을 주신} 지 오랜 세월이 지났으며, 여호수아는 나이가 들어 늙었다.
여호수아서에서는 주로 정복전에서 승리하여 그 땅을 차지하고 그곳에 정착함을 뜻한다. 그 정착함으로 전쟁을 쉬게 됨을 뜻한다.
[^1]: 영어 KJV 성경은 1611년에 간행되었으며 캠브리지의 1769년 개정판도 현대어가 아닌 중세어에 가까운 그 시대의 언어로 간행되어 현대 영어와는 다른 부분들이 있다. 동사의 현재 능동태 직설법 3인칭 단수를 나타낼 때 현대 영어는 -s를 사용하지만 중세 영어에서는 -th를 사용했다. 참고로 Total KJV Occurrences: 71는 KJV 성경에 이 단어가 71번 사용되었다는 말이다. 스트롱이 붙인 스트롱 코드에 의해 단어의 성, 수, 격, 시제 등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같은 단어의 사용 총회수를 나타낸다. 사용 용례의 구체적인 표시에서는 의미와 단어의 변화에 따른 용례를 구체적을 기록하고 있다. 영어 KJV의 용례라 참고하는데 주의가 필요하지만 성경을 연구하는데 아주 요긴한 도구가 된다.
[^2]:원어에서는 단순형(칼동사, 니팔)과 강조형(피엘, 푸알)과 사역형(히필, 호팔, 히트파엘)에서 각각 그치다, 쉬다와 확실히 끝내다, 푹 쉬다와 끝내도록 시키다, 쉬도록 시키다 등으로 해석된다. 또한 이에 각각의 수동태와 재귀적 형태의 스스로 쉬게 하다의 뜻이 추가된다.
[^3]: 스데반은 헬라어로 별이라는 뜻의 이름이다.
[^4]: 이와 같이 어형의 변화만이 아니라 어의의 변화를 살펴야 그 단어의 온전한 뜻을 이해할 수 있다. 대부분 사전에 한 단어의 여러 뜻이 나와도 이 어의의 변화를 유추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되면 진정한 어의의 변화에 따른 사용상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대부분 한 단어에 대한 여러 뜻을 그냥 외우게 된다. 이러한 어의 변화에 대한 연구가 언어학의 묘미인데 대부분 이를 알지 못하여 언어학 연구의 낙을 놓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