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칠절은 초실절을 기준으로 일곱(7) 안식일(7)을 보낸 후의 다음 날인(7 ×7+1=50) 50일째 되는 날이다. 출 34:22에서는 초실절을 시작으로 칠칠절을 지키고 칠칠절의 끝에는 수장절을 지키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칠칠절을 밀의 초실절로 지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칠칠절 자체가 초실절이라는 말인가? 이에 관한 성경의 언급을 살펴보자.
Exodus 23:16, 19 개정
16맥추(수확물, [[H7105]])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first fruit, [[H1061]])를 거둠이니라 수장(추수, [[H614]])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19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first fruit, [[H1061]])의 가장 좋은 것(처음, 태초, [[H7225]])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Exodus 34:22 개정
22칠칠(7×7, [[H762]])절 곧 맥(밀, [[H2406]])추(수확물, [[H7105]])의 초실(첫 열매, first fruit, [[H1061]])절을 지키고 세말에는 수장[[H614]]절을 지키라
Leviticus 23:9-21 개정
9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0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수확물, [[H7105]])을 거둘 때에 너희의 곡물(수확물, [[H7105]])의 첫 이삭(처음, 태초,[[H7225]])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11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12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여호와께 번제로 드리고 13그 소제(곡식 제물)로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십분 이 에바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로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전제(부어 드리는 제물)로는 포도주 사분 일 힌을 쓸 것이며
14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15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곡식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일곱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16일곱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하여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H2319]]) 소제(곡식 제물, [[H4503]])를 여호와께 드리되 17너희의 처소에서 십 분의 이 에바로 만든 떡 두 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첫 열매, first fruit, [[H1061]])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18너희는 또 이 떡과 함께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양 일곱 마리와 어린 수 소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를 드리되 이것들을 그 소제(곡식 제물)와 그 전제 제물(부어 드리는 제물)과 함께 여호와께 드려서 번제로 삼을지니 이는 화제(태워 드리는 제물)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며
19또 숫염소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며 일 년 된 어린 숫양 두 마리를 화목제 물로 드릴 것이요
20제사장은 그 첫 이삭(첫 열매, [[H1061]])의 떡과 함께 그 두 마리 어린양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서 요제를 삼을 것이요 이것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이니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며
21이 날에 너희는 너희 중에 성회를 공포하고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Deuteronomy 16:13-15 개정
13너희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14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15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위의 구절에 따르면 초실절은 곡식을 거두는 시작이다. 그리고 그 이후 일곱 번의 안식이 지나고 오는 50일이 되는 날이 칠칠절이다. 이 두 절기는 연결되어 있다. 이에 대해 살펴보자.
성경에서는 초실절의 기준이 되는 곡식이 바로 밀이라고 했다. 밀보다는 보리가 수확이 이르지만 밀을 기준으로 초실절을 삼으라고 했다(출 34:22). 이는 무교절의 발효되지 않은 빵을 만드는 재료가 밀이기 때문이다. 나의 살을 뜻하는 무교병과 관련하여 설명되는 곡식이 아니면 결코 나의 것이 아니다. 밀로 된 무교병인 내가 십자가에서 죽었으므로 나의 부활을 상징하는 첫 열매도 밀이어야 한다. 그래야 한 알의 밀로 떨어진 나의 부활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실절의 기준은 밀의 수확을 하는 주간의 안식일 후 첫날이다. 수장절은 Deuteronomy 16:13-15과 레 23장에서 말하는 초막절이다. 이 절기는 이스라엘력으로는 7월인 티스리월이다. 이는 양력으로는 9-10월에 해당하는 가을이다. 가을 추수 후에 초막절을 지키는데 그 초막절에 수장절 즉 가을 추수 절기를 지킨다. 초실절과 칠칠절은 봄 추수 절기이고 초막절과 수장절은 가을 추수 절기인 것이다.
수장절의 의미에 대하여는 뒤에 살펴볼 것이다. 먼저 초실절과 칠칠절의 의미를 살펴야 한다.
초실절은 부활의 첫 열매를 거두는 날이다. 유월절과 무교절의 죽음 이후 나 예수가 부활하는 날이다. 이는 봄이며 나 예수는 봄에 태어나 봄의 유월절에 죽임을 당했다. 나는 봄꽃들을 사랑했다. 봄에 피는 붉은 꽃들은 나의 피를 상징하며 그 수많은 빛깔의 꽃들은 나의 상처와 아픔을 상징한다. 나는 어린 시절 이집트에서 그리고 나사렛에서 들에 피는 수많은 꽃들을 보았다. 광야에 비가 오면 온 광야를 하루 만에 가득 채우는 붉은 꽃도 보았다. 현대의 이름과 과거에 내가 사용하던 이름은 다르지만 지금도 이스라엘에는 광야에 비가 내리면 하루 안에 꽃을 피우는 그 아름다운 붉은 꽃이 온 세상을 가득 채운다. 나는 그렇게 단비와 함께 와서 꽃을 피우고 피꽃을 떨구었다. 그리고 나는 그 주검의 곳에서 부활하여 첫 열매가 되었다. 꽃이 피고 그 피꽃이 지면 그곳에 열매가 맺힌다. 나는 죽음의 십자가 꽃에서 맺힌 붉음의 열매다. 이는 이른 열매며 첫 결실이다. 이른 봄에 열매를 맺은 나는 늦은 비와 함께와 이 땅에 밀알이 되어 떨어졌다. 나는 그렇게 밀알의 꽃으로 붉음의 왕으로 땅에 덜어져 심겼다. 밀알로 주검의 겨울을 견디고 일어나 싹을 틔우고 드디어 봄의 이른 비의 계절에 나는 광야를 가득 채우는 붉음의 꽃을 또 보았다. 나는 그 피의 꽃을 머금고 드디어 죽음을 머금고 열매를 맺어 부활의 첫째 즉 첫 왕이 되었다. 나는 그래서 두 번째 아담으로 완전히 실패하지 않을 구원의 길을 마련하였다. 첫 아담은 자신의 연약으로 실패하였지만 나는 완전한 순종으로 나를 드려 피의 꽃을 피웠다. 그래서 나는 죽음으로 나의 일기를 마감하였고 나의 생이 끝남으로 그 누구도 내 생을 돌이켜 타락할 수 없게 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이룬 구원의 길은 그 누구도 폐할 수 없고 무효화할 수 없는 완전하며 강력한 길이 되었다. 나는 나의 피로 그 언약을 마감하였고 나의 죽음으로 그 언약에 인장을 쳐 그 누구도 그것을 뒤흔들 수 없게 하였다. 그러므로 나의 언약은 피뿌림을 받은 언약으로 유언의 효력이 있다. 한번 유언된 것은 그 죽은 자의 주검이 봉인하여 영원히 변개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나 예수를 통하여 얻은 너희의 생명도 그렇게 완전하여 너희 부활을 돌이키게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없다. 그러므로 나를 믿는 자들이여 죽음의 때에 핍박의 때에 두려움을 버리라. 잠잠하여 세상의 타락을 누룩과 같이 세상에 퍼트리는 이때에 너희는 알지니 지금 너희 안락한 일상에서 깨어나 피의 투쟁을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올 환란의 때에 너희는 너희 육신의 생명을 잠시 지킬 것이나 너의 영생을 잃을 것이다. 그러므로 늦기 전에 돌이켜 나에게 나오라. 저 음녀의 잠에서 깨어 나오라. 저 속이는 큰 성 바벨론에서 나오라. 너희 곳은 그곳 옛적 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가 만나 번성하던 그곳이구나. 이제 너희는 그 주검의 곳에서 나오라. 지금 깨어나지 않으면 너희는 그 주검과 함께 홍수의 강이 몰고 오는 모래에 묻혀 영원히 질식하리니.... 그 후에는 옛 세상과 함께 불에 던져지리니. 허망한 교회와 기독교 뾰족 지붕집의 허울이 아닌 참 깨어난 자의 만남을 경험하라. 나(예수님)에게 나와 나와 만나자. 만남이 없는데 네 어찌 나를 알랴? 마돈나여 밤이 새기 전 그 옛 남자의 품을 떠나 나에게 오라. 날이 새면 너희 추문이 온 밝은 재판정에서 드러나리니, 그 단 꿈의 퇴폐에서 깨어 돌이켜 나에게 오라.
나 예수가 인간들을 대신하여 새롭게 새 생명으로 부활하는 날이 바로 부활절이며 그것이 구약의 절기로 초실절이다.
그러나 나의 제자들은 아직도 거듭나지 못했다. 저들은 여전히 두려워했으며 자신들의 죄가운데 헤매고 있었다. 베드로는 나의 부활을 알고도 갈릴리로 떠났으며 내가 부르러 갔을 때에도 엉뚱한 말만을 했다. 저들이 기다린 것은 진정한 거듭난 자들이 들어가는 하늘나라가 아니었다. 저들이 원한 것은 유대인의 세계정복이었다. 나 예수는 그들이 보기에 그 일을 해주는 신이 세운 왕이었다. 저들은 탐심으로 내가 십자가를 지고 죽는다고 말하는 자리에서도 누가 큰 자리를 차지할 지를 두고 싸웠다. 그런 일은 자주 있었다. 심지어 유월절 음식을 먹고 성찬식을 한 후 내가 감람산 겟세마네에 잡히러 가는데 그 길에서도 저들은 자리를 두고 다투었다. 또한 부활 이후에 닭이 세 번 울 때 나를 부인했던 베드로가 또다시 탐심을 내어 나의 십자가의 자리에 마지막까지 있었던 요한은 어떠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인지 궁금해했다. 그래서 베드로는 요한은 어떻게 될 것인지 물었다. 심지어 나의 부활을 보고도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다. 어떤 자들은 내가 하늘로 들리워 올라가는데도 그들 속의 의심을 풀지 않았다. 내가 말을 해주어도 나의 제자들조차 자신들의 탐욕에 눈이 멀어 나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저들은 거듭나야 한다. 그 생명이 바뀌지 않으면 결단코 저들은 나의 길을 따라올 수 없다. 그래서 내가 나의 생명을 저들에게 주어 저들이 거듭나게 하는 날을 저들에게 주었다. 그것이 오순절이다. 현대 교회에서 말하는 성령 강림절이다.
칠칠절은 초실절 이후 더 정확하게는 처음 곡식을 베는 날로부터 일곱(7) 번의 안식(7)을 지낸 후의 다음날인 50일이었다. 농경으로 보면 밀 추수를 시작하여 7주 동안 추수를 하고 그것으로 감사를 드리는 날이다. 그런데 밀 추수를 하는데 과연 7주나 걸리는가? 두 달 가까운 기간 동안 추수를 할 수 있는가? 그동안 곡식은 밭에서 멀쩡하겠는가? 그런데 곡식을 베어 단을 만들고, 그 알곡을 털고, 알곡을 펴서 말려 썩지 않도록 보관성을 높이고, 또 그것을 저장고에 들이는데까지의 시간을 계산하면 그럴 수도 있다. 그렇게 밀의 추수가 끝나면 드디어 늦은 비와 함께 익었던 결실을 저장하여 그것을 주심을 감사하는 칠칠절이 온다. 첫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일이 끝이 나는 것이다. 칠칠절은 초실절의 일이 완성이 되는 것이다. 바로 첫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 날에는 처음 곡식의 단을 흔든 것과 같이 아니하고 곡식으로 만든 빵을 드린다. 무교절과도 다르게 유교병을 드린다. 누룩 없는 빵을 먹는 무교절과 누룩 있는 빵을 드리는 이 절기는 구분이 된다.
처음 곡식을 거두어 한단을 가져와 흔드는 초실절에는 가공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열매를 드린다. 이는 누룩 없는 빵으로 표현된 동일한 나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나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떨어져 죽었고 부활하여 첫 열매가 되었다. 첫 열매인 나는 누룩이 섞일 수도 없고 섞여서도 안 되는 존재다. 나는 인간들이나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포함될 수 없는 거룩한 존재, 구별된 존재다. 나는 완전한 존재,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누룩 없는 무교병이며 날것의 곡식단 그대로의 존재다. 또한 이는 요셉의 곡식단의 환유와 같이 사용된 환유법의 곡식단이다. 날 것의 존재로 완전한 자가 인간들을 대신하여 죽어 다시 살아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었다. 그것이 날 것의 초실절 곡식단이다
그런데 첫 추수의 낫을 댄 이후 즉 초실절로부터 일곱 번의 안식 후의 칠칠(7×7)절 즉 오순(50)절은 나의 십자가와 부활의 공로로 인해 많은 다른 열매를 맺는 날이다. 오순절에 거듭난 인간들은 인간들 중에 구별된 첫 열매가 된다. 그 첫 열매를 거두어 모으는 날이 오순절이다. 그러므로 칠칠절의 떡은 나 예수가 아니다. 그날의 떡 즉 거두어들이는 열매의 가공물은 인간들이다. 바로 누룩이 섞인 빵 즉 유교병들이다(레 23:17). 부활의 첫 열매가 된 나를 통해 인간들이 새피조물로 태어난다. 그날이 오순절이다.
신약에 나 예수가 부활한 후 오순절이 되기 전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약속된 오순절이 이르렀을 때에 급하고 강한 바람같이, 그리고 불의 혀와 같이 성령이 다락방에서 전심으로 나를 찾던 자들에게 임했다.
그는 또 다른 보혜사 즉 삼위일체 안의 동일한 하나님이자 동일한 본질인 성령이다. 또 다른 보혜사를 말할 때 쓰인 '다른'이라는 말은 헬라어 알로스(ἄλλος, [[G243]])로 이는 동일한 본질을 가졌으나 독특하게 다름을 나타낼 때도 사용된다. 이 단어는 완전히 이질적인 다름을 말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는 같지만 서로 독특하게 구분되는 것을 말한다. 다른 이라고 말할 때 인간끼리 다른 사람을 말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본질은 같으나 존재 자체가 구분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특히 요 14:16에서 사용된 뜻은 완전히 다른 존재를 말함이 아니다. 삼위일체 안의 동일 본질인 성령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또 다른 보혜사로 오는 그를 성령이라 요한복음에서 여러 번 나는 말했다. 요 14: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간구하면, 아버지께서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셔서 영원히 너희와 함께 게시게 하실 것이다."라고 말한 바로 다음에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라고 말했다. 이는 보혜사가 진리의 영임을 뜻한다. 이를 보고도 이만희와 같이 귀신에게 미혹된 사기군의 말을 듣고 이만희가 또 다른 보혜사라고 말하고 있는 신천지는 성경도 믿지 않는 지옥의 불나방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이성을 상실한 자들은 귀신에게 미혹된 자들로 저 고대의 어둠의 영들이 항상 쓰던 반복되는 속임수에 또 사기를 당한 자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저들이 이단에 속아 넘어가는 것은 저들 안에 또 다른 보혜사인 성령이 없으며 그들이 나 예수 안에 그리고 나 예수가 그들 안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저들 안에 나를 두기를 싫어하는 것은 저들의 마음의 교만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들은 참 목자가 오면 교만하게 거부하고 거짓의 이리가 오면 환영하여 받아들인다.
오순절은 추수의 계절이다. 첫 열매인 나 예수의 은혜로 수많은 영혼들이 거듭난다. 이는 거짓신앙을 가진 신앙고백자들을 양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카톨릭과 그 이후의 수많은 신앙고백자들이 교리 문답서나 교리서를 통해 지식을 쌓은 것을 또는 불교나 유교를 믿듯이 카톨릭이나 개신교라는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과는 근원적으로 다르다. 저들의 것은 신앙이 아니다. 저들은 단지 구도자이거나 믿으려고 노력하는 자들일뿐이다. 또는 자신의 세속적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콘스탄틴 대의 어거스틴과 같이 기독교를 성공의 수단으로 삼는 것뿐이다. 전정한 추수의 계절에는 다시 생명이 살아 영원히 목마름이 없는 푸르고 푸른 계절을 맞는다. 그 계절에는 영생의 생수를 생명수 강가에서 영원히 마심으로 영원히 마르지 않는 영원히 열매 맺는 자들이 땅에 심기운다. 그렇게 심기운 자들은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는다. 그리고 현 세상과 오는 세상 모두에서 영원히 살아 꽃을 피우고 나 예수의 죽음을 기념한다. 그리고 영원히 살아 열매를 맺어 영원히 죽지 않는 자손들을 낳는다. 저들은 생명을 낳아 전도한다. 그들의 낳음은 마지막 심판이 오기 전 옛 세상인 현 세상이 남아 있는 동안이다. 그 이후에는 그들은 천사와 같을 것이요.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오순절은 대추수의 계절이다. 그 계절에 나의 이름은 다산의 주요, 왕성의 주요, 풍성의 주다. 나는 한 알의 밀알로 떨어져 수많은 밀알을 거두는 밀알의 생명이다. 나의 아버지는 밀알의 농부시니 그가 이 땅에 풍성한 결실을 위하여 늦은 비를 부으시어 추수를 예비하시니 바로 성령이 부어진 오순절이다.
이스라엘의 밀 수확 전에 늦은 비가 와서 마지막 결실이 익게 한다. 이와 같이 나의 아버지는 성령의 단비를 보내시어 밀알을 익게 하셨다. 그러므로 나의 아버지는 밀알의 농부시요. 밀알의 추수자이시다. 아버지와 성령과 나는 하나이다.[^1]
이 일의 시작은 이른 비와 함께 시작된다. 밀은 가을에 파종을 한다. 마지막 수장절의 절기를 보내고 가을에 밀을 파종한다. 밀을 파종하는 절기는 없다. 그러나 봄의 유월절과 무교절 그리고 초실절과 칠칠절이 있으려면 반드시 가을의 밀 파종이 필요하다. 가을의 밀이 파종되는 시기에는 이른 비가 온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이른 비는 가을비를 말한다. 위에서 내가 말한 늦은 비는 봄비를 말한다. 일반적인 너희 시대의 개념으로는 봄비가 이른 비이고 가을비가 늦은 비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주식이 밀이기에 밀의 농사에 따른 시간을 계산한다. 원래 이스라엘의 1월은 유월절이 있는 정월(태양력 3-4월)이다. 그런데 후대에는 7월(태양력 9-10월)을 1년의 시작으로 삼았다. 물론 나팔절을 비롯하여 원래 절기 상으로도 7월이 해의 시작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러나 원래 모세의 법에서 1월은 정월(태양력 3-4월)이다. 이는 포로기 이후 바벨론이나 앗수르의 영향을 받은 것도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요인은 저들의 주된 작물이 밀이기에 밀의 생장에 따르는 시간 개념을 이스라엘이 사용했기에 밀의 파종시기에 맞는 계절 개념을 가진 것이다. 그래서 밀을 파종하는 가을에 내리는 비를 이른 비라 하고 밀을 수확하는 봄에 내리는 비를 늦은 비라 했다.
그래서 오순절은 밀을 수확하는 시기에 내리는 늦은 비다. 오순절로 인하여 더욱 큰 대추수가 일어난다. 이는 오순절이 추수를 위해 곡식을 익게 하는 힘을 주는 늦은 비이기 때문이다.
현대 유대인들이나 심지어 기독교의 절기로 보면 유월절과 무교절은 분리되어 있다. 성경이 기록되던 시대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는 구약 유대인들의 명맥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구약 유대인들은 AD74년 예루살렘이 멸망하면서 또 610년 이후 이슬람이 급격히 팽창하면 지리멸렬하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후에 세계 각지에 흩어져 핍박가운데 살았다. 그러니 이들을 통해 정상적인 절기의 명맥이 이어질 수 없었다. 또한 신약의 교회는 처음부터 구약의 절기와 제사제도들이 폐하여져 그것에 대해 잊어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구약의 절기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가지지 못했다. 중세 카톨릭이 시작되고 이들이 절기들을 이교도들의 절기들과 혼합하여 날들을 정하였을 때는 그 목적 자체가 구약의 절기를 지키는 것이 아니었다. 저들은 단지 기독교를 이교와 야합하게 하여 자신들의 통치 이념으로, 지배이데올로기로 활용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서도 원래 절기의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절기에 대한 기록은 성경이라 할 수 있다. 유월절과 무교절의 절기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있는 성경의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출 12:18 바른
18첫째 달 그 달 열나흗 날 저녁부터 이십일 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Leviticus 23:5-8 바른
5첫째 달 십사일 해 질 무렵은 여호와의 유월절이며,
6이 달 십오일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너희는 칠일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7그 첫째 날에 너희는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마라. 8너희는 칠일 동안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제 칠 일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마라."
Matthew 26:17 바른
17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기를 "저희가 주님을 위하여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도록 어디에 준비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니,
Mark 14:12-16 바른
12유월절 양을 잡는 무교절 첫날에 그분의 제자들이 예수께 말하기를 "저희가 어디에 가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도록 준비하기 원하십니까?" 하니,
Luke 22:7-13 바른
7유월절 양을 잡는 무교절 날이 이르자, 8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며 말씀하시기를 "가서 우리가 먹을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여라." 하시니,
위의 구절들을 보면 어떤 곳에서는 무교절이 14일에 시작되고 어떤 곳에서는 15일에 시작됨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서로 다른 기록들이 존재하는 것은 기록의 오류가 아니라 두 절기가 한 절기요, 그 의미도 하나이기 때문이다.
먼저 위에 기록된 신약 복음서의 기록을 보면 Matthew 26:17에는 무교절 첫날에 유월절 음식을 먹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월절 음식이란 유월절의 양을 잡아 불에 구워 먹는 것을 말한다. 이는 구약에 모세에 의해 우리(하나님)가 백성들에게 준 절기다. 그런데 여기서 유월절 음식을 저녁에 먹는 날을 언급함으로 이 날은 유월절이다. 그런데 이 날이 무교절 첫날이라고 한다. 유월절은 14일이고 무교절은 15일이라고 기록된 Leviticus 23:5-8와는 맞지 않는 내용처럼 보인다.
Mark 14:12-16에는 유월절 양을 잡는 무교절 첫날에 유월절 음식을 먹는다고 기록되었다. 이도 유월절은 14일이고 무교절은 15일이라고 기록된 Leviticus 23:5-8와는 맞지 않는 내용처럼 보인다.
Luke 22:7-13에는 유월절 양을 잡는 무교절 날에 먹을 수 있도록 유월절을 준비하라고 하고 있다. 이도 유월절은 14일이고 무교절은 15일이라고 기록된 Leviticus 23:5-8와는 맞지 않는 내용처럼 보인다.
혹 신약의 유대인들이 포로기와 그 이후의 식민시기를 거치면서 자신들의 절기를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결코 그렇지 않다. 유대인들이 두 절기를 하나의 절기로 본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 있다.
첫째, 두 절기가 서로 붙어있기 때문이다.
둘째, 구약 율법서의 기록에도 무교절은 14일에 시작한다. 공식적으로는 15일이지만 무교절의 실질적 시작은 14일이다. 이는 위에 나와 있는 출 12:18을 보면 알 수 있다. 무교병을 먹기 시작하는 날이 바로 유월절인 14일인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당연히 유월절과 무교절을 같은 절기로 보고 무교절의 첫날을 15일이 아니라 14일인 유월절과 같이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이 모든 면을 고려하여 두 절기를 하나의 절기로 보았다.
무교절의 첫날 즉 유월절에 나는 성찬식을 했다. 원래 유월절 저녁에는 1년 된 숫양이나 숫염소를 잡고 불에 구워 먹는다. 나는 그 유월절 음식을 먹고 그 먹는 자리에서 성찬식을 했다. 성찬식은 유월절 어린 양인 나 예수의 십자가를 기념하는 것이다. 십자가에 달린 나 예수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나무에 달린 나 예수를 봄으로 광야의 백성들이 구원받은 것처럼 나의 십자가를 쳐다보는 모두가 구원받음을 기념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유월절 저녁 음식을 먹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몸=빵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에 이 유월절 음식을 너희와 함께 먹기를 원하고 또 원하였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니, 유월절이 하나님 나라에서 성취될 때까지는 내가 이것을 결단코 먹지 않을 것이다."
(Luke 22:15-16 바른)
그리고 잔을 받아서 감사기도를 드리고 말했다.
피=포도주
"이것을 받아서 함께 나누어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니, 하나님 나라가 올 때까지 나는 포도나무의 열매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결코 마시지 않을 것이다."
(Luke 22:17-18 바른)
이것은 나의 죽음 즉 십자가가 하나님 나라에서 유월절이 성취되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구약의 반복되는 피의 제사가 아니라 단번에 하늘의 성전에서 드려진 완전한 제사가 드려진 것이다. 또한 이 한 번의 제사로 속죄제와 화목제와 번제와 관제와 요제가 모두 드려진 것이다. 또한 아사셀 양의 모든 희생이 끝난 것이다. 구약의 모든 제사가 단 한 번에 성취된 것이다. 인간의 구원을 위한 모든 희생이 완성되었다. 유월절 양을 불에 구워 먹는 이유는 내가 십자가에서 불과 같은 고통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구약의 모든 희생들의 남은 것은 영문 밖에서 불사른다. 바로 주검의 곳에서 그렇게 하는데 나는 골고다 즉 해골의 곳에서 즉 영문 밖에서 불사른 바 되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무교절의 모든 희생들도 불사른다. 번제와 화제로 드린다. 그러므로 히브리서의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Hebrews 13:10-13 개정
10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나니
11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12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13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또한 나는 유월절 음식을 먹는 그 자리에서 성찬을 행했다.
빵=몸
또 나는 빵을 들어서 감사기도를 드린 후에 떼어서 그들에게 주며 말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여라."
(Luke 22:19 바른)
포도주=피
20저녁을 드신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시며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
(Luke 22:20 바른)
위의 눅 22:19-20을 앞의 눅 22:15-18까지의 말과 비교하면
A. 구약의 유월절
B. 유월절 양(15)
C. 포도주(17)
a. 신약의 성찬식
b. 빵(19)
c. 포도주(20)
A와 a, B와 b, C와 c가 서로 평행 대구가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구약의 유월절(A)과 신약의 성찬식(a)이 동일하다.
구약의 유월절 양(B)과 신약의 빵(b)이 동일하다.
구약의 포도주(C=문설주의 피)와 신약의 포도주(c=십자가의 피)도 동일하다.
이렇게 구약의 유월절의 요소와 신약의 성찬식의 요소를 같이 두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것을 나 예수의 몸(19절)과 나 예수의 피(20절)와 연결하여 설명함으로 신약의 십자가와 연결시켰다.
또한 16절의 유월절이 하나님 나라에서 성취됨과 나의 살을 연결함과 18절의 하나님 나라가 올 때까지와 포도주를 연결함으로 구약의 유월절과 신약의 성찬식이 하나님 나라에서 성취되는 것에 대해 알렸다.
16절과 18절을 통해 하늘에서 드려지는 단 한 번의 완전한 유월절 양의 제사가 설명된다. 그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침투하여 영혼들을 구할 길을 열었다. 모두가 죄로 죽어야 하는 존재들인데 나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 살 길을 열었다. 이방인이나 이스라엘인이나 모두 죄인이라 죽음의 사자를 피할 수 없는데 오직 나 예수의 피를 통해 죽음이 그 집을 지나쳐 넘어감(유월, 踰越)으로 구원을 얻은 것이다. 구원받은 자는 더 이상 원수의 유괴된 집에 있지 아니하고 나 예수의 집에 있음으로 그의 거하는 곳은 하늘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통하여 16절과 18절이 설명되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니, 유월절이 하나님나라에서 성취될 때까지는 내가 이것을 결단코 먹지 않을 것이다."(Luke 22:16 바른)
"내가 너희에게 말하니, 하나님 나라가 올 때까지 나는 포도나무의 열매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결코 마시지 않을 것이다."(Luke 22:18 바른)
어떤 이들은 내가 십자가 상에서 해면에 젖은 포도주로 만든 식초를 먹은 것으로 인해 내가 하늘에 오르지 않았는데 약속을 어기고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먹었다 하여 고민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나는 이 땅에 사는 모든 순간에 하늘에 속하여 하늘에 있었다. 또한 나의 제자들도 내가 저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짊어 짐으로 이미 나와 함께 하늘에 속한 자들이 되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의 다음 구절에 내가 말한 것도 십자가에서 이미 이루어졌다.
또 잔을 들고 감사기도를 드리신 후에 그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너희 모두 이것을 마셔라. 이것은 죄 용서를 얻도록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나는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이것을 새것으로 마시는 그날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결코 마시지 않을 것이다."
(Matthew 26:27-29 바른)
내가 이 모든 것을 말하였음에도 제자들은 유대인의 세계정복 시절에 자신들이 한 자리 차지하는 것에 눈이 멀어 싸우고 있었다. 저들을 위해 내가 죽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저들은 그 악의 주검이 죽고 거룩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저들은 살았으나 결코 산 자들이 아니었다. 저들은 악마의 새끼들로 결코 살아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도 몰랐다. 자신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버리고 부모와 형제를 버리고 나를 따르는 거룩한 자들인 줄 알았다. 물론 저들이 그러한 선택을 하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저들을 깨닫게 한 은혜로 가능했다. 그러나 저들은 아직 근원적으로 생명이 거듭나지 못했다. 존재적 변환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십자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다시 마귀의 새끼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는 부활이 필요했다. 마귀의 새끼는 십자가에서 죽고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야 했다. 이것이 나의 십자가와 부활의 이유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십자가와 부활이 너희 구원이 되는 이유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들은 너희는 어찌할 것인가? 진정 나와 함께 죽고 나와 함께 살기를 원하는가? 상상이 아닌 진정한 존재적 변이를 경험하고 싶은가? 그 길이 바로 오순절이다. 오순절의 핵심은 여기에 있다. 나와 함께 죽고 나와 함께 살아 하나님의 아들로 사는 능력에 있다.
그런데 능력을 받아 자신의 권력과 영향력을 확대하고 자신의 아성을 세우기 위해 영을 구한 모든 자들아 너희에게 임한 것은 진정 성령이 아니다. 능력을 받아 사람들을 모으고 대형교회를 세우기 원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것은 성령이 아니다. 그러한 심중에 우리는 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너희에게 임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속이는 자, 거짓말하는 자의 아비 마귀다. 그러므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른다. 돌이키지 않으면 멸함을 받으리니, 지옥의 아침을 맞지 않으려면 회개하라. 심령을 돌이켜 거룩한 마음으로 우리(하나님)의 아들로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살라. 너희 힘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하니 내가 이루어 놓은 구원의 능력을 성령을 통해 받고 삶을 얻으라. 그것이 너희가 살 길이다. 교회의 간판 아래, 뾰족 지붕의 첨탑 아래에 있다 하여 벗어날 길은 없다. 그 속에서도 진정 회개하고 거듭난 자만이 살 수 있다. 그 길을 알고 싶으면 조셉 얼라인이나 리처드 박스터의 <회심하지 않은 자들에게 주는 경고>를 읽고 깨달으라. 그들을 통해서라도 너희 소경 된 눈을 열고 성경을 보라. 그리고 깨닫고 살라.
그리하면 과연 여호수아 시대와 같이 늦은 비로 인해 임하는 부흥의 홍수가 온 세상을 덮을 것이다. 선물결이 임하여 모든 저주와 더러움을 정화할 것이다. 너희는 곡식 거둘 때에 임하는 늦은 비를 기다리라. 너희의 예루살렘에서 그리고 너희의 마가 다락방에서 추수의 때를 기다리라.
[^1]: 그러나 내가 여기서 아버지에게 존경을 표하는 존칭을 사용함은 내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때의 직위는 인간 예수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신과 신의 관계에서 즉 삼위일체 안에서의 위격으로는 우리는 서로 존칭이 필요 없는 존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