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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2.3.10. 기업을 취한 아들 여호수아33

by 에스겔 Apr 12. 2025

01.3.2.3.10.9.6.12.3.4.5.7. 나팔절


01.3.2.3.10.9.6.12.3.4.5.7.1. 나팔과 질문


나팔에 관해서는 앞에서 살펴본 바가 있다. 나팔은 바로 희년이라는 말의 어원이 되는 나팔이라는 뜻이다. 물론 나팔절에서의 나팔이라는 말은 원어상으로 나팔을 불다라는 뜻을 가진다. 일반적으로 큰 소리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 것을 뜻할 때에도 사용된다. 그런데 그 큰소리가 마치 뿔나팔을 불 때와 같이 큰 소리다. 실제로 나팔절에는 나팔을 분다. 그 큰소리로 인해 절기의 이름이 나팔절인 것이다. 그래서 다음 성경에서는 이 단어를 사용해 속죄일에 뿔나팔을 크게 불라고 말하고 있다.

Leviticus 25:9  (바른)
너는 일곱째 달 십일에 뿔나팔을 크게 불되, 그 속죄일에 네 온 땅에 뿔나팔을 불어라.

그런데 알고 있는가? 위의 레위기(Leviticus)의 말은 내가 희년에 관해 설명하면서 언급되고 있다. 즉 희년에도 나팔을 분다는 것이다.

레 23장의 절기에 관한 부분을 설명하면서 나는 의도적으로 7이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반복했다. 일주일의 단위가 7일이요, 그 칠일 중 마지막날인 7일이 안식일이 된다. 6일은 일하고 7일째는 쉬는 것이다. 물론 유대력을 보면 안식일을 먼저 배치하였지만 이는 성경의 의도와는 다른 것이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전통을 만들어 내가 성경을 통해 전한 7일의 안식일에 관한 원리들을 가려 볼 수 없게 했다.

7일은 안식일이요 그 7일의 단위가 연월일의 기본 단위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7이 즉 안식일이 계속해서 모든 절기에 반복이 된다. 그런데 절기의 후반부인 7~12월에 해당하는 절기에서도 7이라는 단어가 반복된다.

앞에서 오순절(칠칠절)에서는 7×7의 구조가 나온다. 그리고 이 구조는 뒤에 희년에서 다시 등장한다. 7번의 안식년(7 년째 해)이 지나고 오는 다음 해를 희년이라 한다. 이 희년의 뜻이 나팔인 것처럼 희년에는 전국에서 나팔을 분다. 그런데 매년 나팔절(유대력 7월 1일)에 나팔을 부는 것과는 다르게 희년에는 속죄일에 나팔을 분다. 그리고 그 나팔은 전국에서 한꺼번에 불어진다.

나팔이라는 단어와 7×7의 구조의 조합이 반복하여 등장하는데 그 의미를 알면 매년 나팔절 이후에는 왜 속죄일이 있는지, 또한 나팔의 절기인 희년에는 왜 나팔을 7월 1일이 아닌 속죄일인 그달 14(7+7) 일에도 부는지 알게 된다.

나팔을 부는 것과 속죄는 관련성이 있다. 매년 나팔을 불고 그 달 14일에 속죄일이 오는 것이다. 그런데 일곱 번째 안식년 후의 희년에는 14일(속죄일)에 나팔을 함께 불고 있다.

나(예수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자에게 이 문제에 관한 것을 다른 학자들의 글이 아닌 나의 감동에 의해 성경을 열어 밝히는 것을 1 주일 동안 유예하고 있었다. 매일 성경을 연구하고 글을 쓰고 관련된 성경들을 읽고 정리하지만 이 말씀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들을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관련된 많은 성경들을 찾아 자세히 읽게 하였다. 심지어 출애굽기와 레위기의 개론들과 구조들을 자세히 연구하게 하였다. 원어단어들도 많은 부분을 연구했기에 열려있는 글들의 창이 20개 가까이 된다. 그래도 그 모든 것을 읽고도 그리고 기존의 절기 의미의 해석들을 읽고도 의문이 들게 했다. 절기상의 나팔절은 정확한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그 의미를 해석하지 않고 있다. 특히 카톨릭의 전통에 입각하여 나팔절의 의미를 해석하고 있는 교회들의 해석은 특히나 그 근거가 희박하다. 심지어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개신교회나 다른 교회들에서도 그 근거를 찾아보기 어렵다.

아마 이 글 초반부에 설명하고 있는 구조들에 대한 부분을 읽고 대부분의 독자들은 답답함을 느낄 것이다.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이 구조와 그 의미를 설명하려면 신약의 히브리서를 인용해야 하고 그 히브리서와 관련한 출애굽기의 시내산 사건을 설명해야 한다. 또한 이 사건이 신약의 많은 곳에서 나팔을 붊으로 찾아오는 땅을 진동시켰던 과거의 시내산의 임재와 우리(여호와 하나님)의 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하늘을 진동시키는 마지막 임재에 대한 지식을 설명해야 한다.

그러므로 마음의 문을 열고 고요하게 생각을 시작하기 바란다. 그리고 다음에 이 글을 읽을 7일 후의 토요일 즉 유대인들의 안식일이 이르기까지 위의 내용이 무엇을 말하는지 성경을 통해 찾아보기 바란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마 일 후에 이 글을 읽을 때에도 여전히 여전히 글의 의미를 알 수 없을 것이다.


나 예수는 이 글의 단초를 발견하고 기쁘게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자에게 평소에는 그 수 많은 것들을 부어주었으나 오히려 이러한 난해한 문제를 통해 겸손을 가르친다. 병상에서 쓰고 있는 모든 글들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분명히 깨닫는 시간이다. 마지막 12시를 앞두고 성경의 진의를 깨닫고 이 글을 적게 한 나의 의도를 통해 작가는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것을 깨닫게 된다. 물어도 내가 답하지 않을 때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하나 하나 물으며 마지막까지 따라왔을 때 단 한번에 모든 것이 꿰뚫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나의 계명을 지킨다. 또 나는 나의 계명을 행하는 자에게 나를 나타낸다. 나와 대화하기 원하는 자들은 나의 계명을 지키라. 그리하면 내가 그에게 나(예수님)를 나타내리다.



다음 글을 읽게 된다면 계시록을 7×7의 구조로 편집하여 요한에게 기록하게 한 의도를 알게 될 것이다. 또한 반복적 점층 구조가 무엇인지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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