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은 큰 소리를 내는 용도의 악기다. 사람이 낼 수 있는 휘파람을 확장한 형태의 악기다. 사람의 발성기관은 관의 형태로 되었다. 관인 기관지에서 나오는 바람을 성대라는 조성기관을 통해 다양한 소리로 가공한다. 소리의 강약은 대부분 바람의 세기에 의해 결정된다. 입을 벌리는 크기에 따라 소리의 크기가 결정된다. 또한 마지막 소리의 울림(진동)은 다양한 방식에 의해 제어되는데 흉부의 진동을 이용하면 흉성이다. 이 소리는 베이스톤의 중후한 소리에 어울린다. 또한 코를 통해 소리의 공명을 만드는 것을 비성이라 한다. 주로 하이톤의 음색에 어울린다. 또한 두성은 풍부한 진동과 안정적인 감성을 주는 전형적인 소리의 미를 만들어낸다. 뛰어난 기량을 지닌 테너들은 비성과 두성을 잘 사용하며 소프라노들은 비성이 주를 이루고 두성보다는 전면부의 이마의 공명을 많이 사용한다. 이는 소리를 내는 기관의 형태에 따라 그 소리의 진폭이나 음색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간의 악기가 바로 관악기에 해당한다.
나팔은 인간의 관악기의 앞에 연결되어 소리의 강도를 높이고 그 크기를 키우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관악기 중에서도 오보에와 같이 끝이 확장되어 넓어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는 경우는 소리의 크기를 키우기보다는 고음의 정제된 소리를 내는 악기다. 관악기의 대부분은 끝이 나팔 꽃과 같이 벌어지는데 이는 소리의 크기를 확장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형태를 통과하면 소리는 두배, 세배, 또는 수십배 더 커진다. 관악기의 끝에 달린 소리를 확장하는 급속히 그 직경을 넓히는 나팔은 인간의 입과 손의 역할을 모방하여 만든 것이다. 인간의 입은 소리를 낼 때 크게 벌려 소리의 크기를 키우는 역할을 한다. 입이 소리의 크기를 키우는데 한계가 있으면 인간들은 손을 사용하여 나팔의 확장을 도모한다. 이는 생활을 통해 습득된 것이 대대로 전달되어 학습된 것이다. 모두들 소리가 통과하는 관의 크기가 급속히 확장하면 소리의 크기와 울림이 세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나팔의 형태를 보면 바로 소리의 크기를 확장하여 먼 곳에서도 그 소리를 듣게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때 사용했던 도구도 나팔이었다. 수 많은 백성들이 이동하는데 그 전체를 한번에 통제하려면 전체에게 들릴 수 있는 신호수단이 필요한데 나팔은 가볍고 이동이 용이하면서도 큰 소리를 가진 악기였다.
민(Numbers) 10:1-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은 나팔 두 개를 만들되, 쳐서 만들고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거나 진영을 출발하게 하여라."
"두 나팔을 불면 온 회중이 네게로 와서 회막 입구에 모이게 하고,"
"하나만 불면 지도자들, 곧 이스라엘의 천부장들이 네게로 모이게 하여라."
"경보 나팔을 불면 동쪽에 진을 친 진영들이 출발하고"
"두 번째 경보 나팔을 불면 남쪽에 진을 친 진영들이 출발하여라. 그들이 출발할 때마다 경보 나팔을 불어야 하나,회중을 모을 때에는 나팔을 길게 불고 경보 나팔을 불지 마라."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그 나팔들을 불 것이며, 그것이 너희와 너희 후손들 대대로 영원한 규례가 될 것이다."
"또 너희 땅에서 너희를 압제하는 대적과 싸우러 나갈 때는 경고의 나팔을 불어라. 그리하면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고 원수들로부터 구원할 것이며"
"또한 너희 기쁨의 날, 곧 정한 절기와 매달 초하룻날에는 번제물과 화목 제물을 드릴 때 나팔을 불면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할 것이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다."
나팔은 모두에게 신호를 알리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또한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우리가 이스라엘을 기억하게 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생각하여보라. 과연 이스라엘이 전쟁에 나갈 때에 우리로 이스라엘을 기억하게 할 필요가 있겠는가? 우리가 이스라엘을 잊어버리겠는가? 과연 긴박한 전쟁의 순간에 우리가 이스라엘을 떠나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이스라엘에게 나팔을 불어 우리가 이스라엘을 기억하게 하라고 했다. 사실 이렇게 한 의도는 나팔을 불면서 이스라엘이 급박한 순간에 우리를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나팔은 모든 절기와 매달 초하룻날에 번제물과 화목 제물을 드릴 때에도 분다. 지금 언급하고 있는 나팔은 이스라엘의 중심에 있는 성막이나 후의 성전의 제사장들이 부는 은나팔이다. 전국에서 부는 희년의 나팔과는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기(명절)과 매달 첫날의 번제물과 화목 제물을 드릴 때에도 나팔을 불어 우리로 이스라엘을 기억하게 하라고 했다. 이 의도도 동일하다. 나팔을 불면서 이스라엘은 우리(하나님)를 기억하고 우리를 의지할 것이다. 우리의 도움을 구하고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이 나팔을 불게 하는 우리의 목적은 이스라엘로 우리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나로 너를 기억하도록 하라는 말을 하는 자의 목적은 사실은 상대로 자신을 기억하게 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사랑받고자 하는 자는 상대의 사랑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런 말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여기 레위기에서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 한다." 또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다."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나는 너희를 사랑하는 자다.
나팔은 왕의 등장이나 귀족의 등장을 알릴 때에 사용된다. 그 위엄 있고 웅장한 소리는 듣는 자들로 하여 놀라움에 압도당하게 만든다. 영화관에서 큰 나팔 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왕의 위엄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소리는 그 현장에서 듣는 것을 축소한 것으로 현장에서 그 소리를 듣는 다면 나팔의 소리에 울리는 진동을 몸이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큰 소리에 고막이 얼얼할 것이다. 그러한 소리를 최근에 들은 적이 있는가? 아마 대부분 귀와 몸을 괴롭게 할 정도의 거대한 소리는 들을 수 없을 것이다. 법으로 그러한 소음을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관에서도 관객들을 고객차원에서 배려하여 관객들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데시벨의 소리를 금하고 있다. 다음 장면을 보라.
Exodus 19:16-25 바른
셋째 날 아침에 천둥소리가 나고 번개가 치며 짙은 구름이 산 위를 덮고 아주 큰 나팔 소리가 들리니, 진에 있는 모든 백성들이 떨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려고 장막으로부터 백성들을 데리고 나왔다.
그들이 산기슭에 서 있는데,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그곳에 내려오시기 때문이었다.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같이 올라가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였으며, 나팔 소리가 점점 크게 울렸는데, 모세가 말씀을 드리자 하나님께서 음성으로 대답하셨다.
여호와께서 시내 산 꼭대기에 내려오셔서 모세를 그 산꼭대기로 부르시므로 모세가 올라갔다.
2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려가서 백성에게 경고하여라. 그들이 나 여호와를 보려고 경계선을 넘어 들어오므로 많은 사람이 죽지 않도록 하고, 또 여호와에게 가까이 오는 제사장들도 자신들을 성결하게 하여 나 여호와가 그들을 치지 않도록 하여라."
모세가 여호와께 말하였다.
"주께서 저희에게 경고하시기를 '산 주위에 경계를 만들고 그것을 거룩하게 구별하도록 하여라.' 하셨으므로, 백성들이 시내 산에 올라올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려가서 아론과 함께 올라오되, 제사장들과 백성들은 경계선을 넘어 여호와에게 올라오지 못하도록 하여, 내가 그들을 공격하지 않게 하여라."
모세가 백성들에게 내려가서 그들에게 말하였다.
신약의 백성들 중에는 이러한 나의 위엄을 경험하지 못한 자들이 많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의 환상 중에서 나를 만나고 마치 에스겔이나 다니엘과 같이 쓰러졌다. 우리의 영광 앞에 압도당한 것이다. 물론 출애굽 당시의 백성들이라 하여 나의 위엄을 모두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만은 모든 자들이 나의 위엄을 목도했다. 시내산은 지리산과 같이 산이라기 보다는 산들의 집합체다. 거대한 봉우리들이 광야에 솟아 있는데 그곳 전체를 압도하며 하늘의 시커먼 구들들이 드러워 있었다. 그 구름 사이로 천둥소리가 들리며 번개가 번쩍였다. 너희는 너희 앞에 천둥이 울리고 벼락이 내리 꽂히는 장면을 목도한 적이 있는가? 온 하늘이 검은 그곳에서 제정신을 차릴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번개의 한 가닥이라도 자신들의 근처를 지나치면 자신들의 몸을 태워버릴 것만 같은 강력한 번개였다. 그런데 그 분위기를 더 고조시키는 소리가 있었으니 바로 나팔 소리였다. 성경을 기록한 모세는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천둥소리가 나고 번개가 치며 짙은 구름이 산 위를 덮고 아주 큰 나팔 소리가 들리니, 진에 있는 모든 백성들이 떨었다."
후에 그는 이 때를 떠올리며 다음과 같이 백성들에게 말했다.
"그때에 너희가 불을 무서워하여 산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므로, 내가 여호와와 너희 사이에 서서 너희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해 주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Deuteronomy 5:5 바른)
신약의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이 장면을 인용하고 있다.
Hebrews 12:18-29 바른
18너희가 이른 곳은 만질 수 있는 불붙은 산과 어두움과 흑암과 폭풍과, 19나팔 소리와 말씀하는 음성이 아니다. 그 소리를 들은 자들은 자신들에게 더 이상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간청하였으니, 20이는 "짐승이라도 그산에 이르거든 돌에 맞아 죽게 하여라." 하신 명령을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1그 보이는 것이 얼마나 두려웠던지 모세도 "너무나 두렵고 떨린다." 라고 말하였다.
22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 곧 하늘의 예루살렘과 무수한 천사와 23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온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들과, 24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님과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려진 피이다.
25너희는 말씀하시는 분을 거역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만일 땅에서 경고한 자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다면,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시는 분을 배척하면 우리가 어찌 피할 수 있겠느냐?
26그때에는 그 음성이 땅을 진동시켰지만, 이제는 그분께서 약속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또 한번 땅뿐만 아니라 하늘까지도 진동시킬 것이다." 라고 하셨다. 27이 '또 한 번' 이라는 말씀은 진동하지 않는 것들을 남아 있게 하시려고 진동하는 것들, 곧 창조된 것들을 옮기실 것을 뜻한다. 28그러므로 우리가 진동하지 않는 나라를 받았으니, 감사를 드리자. 그리하여 경건함과 경외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섬기자. 29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다.
위의 히브리서의 글 바로 앞에는 다음과 같은 경고의 말씀이 있다.
Hebrews 12:1-17 바른
1그러므로 이처럼 많은 증인들이 구름같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모든 무거운 짐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경주를 경주하자.
2믿음의 창시자이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은 자신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수치를 개의치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고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다.
3너희는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도록, 죄인들이 자기에게 거역한 것을 이렇게 참으신 분을 생각하여라.
4너희가 죄와 싸우나, 아직 피를 흘리기까지 대항하지는 않았다.
5또 하나님께서 아들들에게 하듯 너희에게 말씀해 주신 권면을 잊었다. "나의 아들아, 주님의 훈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고, 그분께 책망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마라.
6주께서 사랑하는 자를 훈계하시고, 받아들이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시기 때문이다."
7훈계를 참아라. 하나님께서 너희를 아들같이 대우하신다. 아버지가 훈계하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느냐?
8모든 아들이 받는 훈계를 너희가 받지않는다면, 너희는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다.
9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훈계하여도 우리가 존경하니,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는 더욱 복종하여 살려고 하지 않겠느냐?
10육신의 아버지들은 자신들의 생각대로 잠깐 동안 훈계하였으나, 영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의 거룩함에 참여하도록 훈계하신다.
11모든 훈계가 그 당시에는 즐겁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것으로 단련된 자들에게는 의와 화평의 열매를 맺게 한다.
12그러므로 너희는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어긋나지 않게 하고 고침을 받게 하여라.
14모든 이들과 더불어 화평과 거룩함을 추구하여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보지 못할 것이다.
15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조심하여라. 또 쓴 뿌리가 돋아나서 괴롭게 하고 그 때문에 많은 이들이 더렵혀지지 않도록 하여라.
16또한 음란한 자나 음식 한 그릇에 자신의 장자권을 팔아 버린 에서와 같이 속된 자가 없도록 하여라.
17너희가 아는 대로, 후에 그가 축복을 유업으로 받으려고 하였으나 거절당하였으며, 눈물로 축복을 갈망하였으나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하늘로 돌이켜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회개의 촉구 뒤에 바로 언급되는 장면이 구약의 시내산에 내가 임하는 장면인 것이다.
시내산에 나는 임재했다. 내가 가는 곳에는 번개와 천둥이 있으며 하늘의 구름이 짙어 어둠으로 변한다. 빛나고 두려운 번개와 고막을 찢을 듯한 천둥의 소리와 그것보다 더 큰 참을 수 없는 나팔의 소리가 있었다. 그 나팔의 소리에 구약의 백성들은 애굽의 노예에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되었다.
이제 장차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고 하늘과 땅을 멸하여 불태우고 새하늘과 새땅을 맞이하는 그 임함이 있을 것이다. 바로 세상 마지막에 임하는 나의 심판이다. 심판은 나 예수가 임함으로 시작된다. 즉 우리(여호와 하나님)가 말세지말에 임함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나팔은 왕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이며 위압감을 주어 앞도하는 수단이다. 이스라엘은 모든 절기와 매달의 초에 나팔을 불었다. 그 나팔을 붊으로 왕의 등장을 알린 것이다. 그들에게 내가 그들을 기억하게 하라고 한 것은 다시 한번 말해 그들로 나를 기억하게 한 것이다. 나의 신성이 임하는 그곳은 모든 것이 불타고 모든 거짓들이 소멸된다. 이는 우리는 소멸하는 불이기 때문이다. 모두 소멸하여 불태우고 옛 세상 즉 옛 땅과 옛 하늘을 멸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영원한 변화가 일어난다. 나팔은 우리의 등장을 알리며 우리의 등장은 이러한 멸함과 변화와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를 연다. 구약의 나팔절은 이를 상징하는 절기다. 그런데 기억할 것은 이것이 단지 마지막 말세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성경이 말하는 구원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다음에 이어지는 단락에서 설명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