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3.2.3.15.6. 순혈과 순수
## 01.3.2.3.15.6.1. 구약의 교회
## 01.3.2.3.15.6.2. 참 교회
## 01.3.2.3.15.6.3. 율법의 종
## 01.3.2.3.15.6.4. 순혈 제국
## 01.3.2.3.15.6.5. 순수의 제국
## 01.3.2.3.15.6.6. 다윗의 무너진 장막
## 01.3.2.3.15.6.7. 거짓(개) 이스라엘: 인종 청소주의자
## 01.3.2.3.15.6.8. 참 이스라엘: 거듭난 새 피조물
## 01.3.2.3.15.6.9. 나 예수의 나라
## 01.3.2.3.15.6.10. 구약 이스라엘의 결국
# 01.3.2.3.15.7. 믿음과 혈통
## 01.3.2.3.15.7.1. 올리브나무 비유
### 01.3.2.3.15.7.1.1. 재배종 올리브 나무
### 01.3.2.3.15.7.1.2. 재배종 올리브나무의 가지
### 01.3.2.3.15.7.1.3. 농부와 우리의 접붙임
### 01.3.2.3.15.7.1.4. 참 올리브나무 비유의 의도
### 01.3.2.3.15.7.1.5. 바울의 선민적 오류
#### 01.3.2.3.15.7.1.5.1. 오류의 역사적 증거
##### 01.3.2.3.15.7.1.5.1.1. 역사적 멸망
###### 01.3.2.3.15.7.1.5.1.1.1. 제1차 로마-유대 전쟁
###### 01.3.2.3.15.7.1.5.1.1.2. 제2차 로마-유대 전쟁
01.3.2.3.15.7.1.5.1.1.2. 제2차 로마-유대 전쟁
제1차 로마-유대 전쟁으로 유대인들은 노예가 되고 강제로 이주되어 흩어졌다. 이들을 디아스포라 유대인이라 한다. 이들은 그 흩어진 삶에서도 박해를 받았다. 저들은 반란자들이었으며 반역자들이었다. 저들은 마카비 왕조의 요한 히르카노스 1세가 보여 주었듯 언제나 유대교 세계제국을 꿈꾸는 자들이었다. 저들이 반역을 일으킨 이유는 나 예수가 말한 천국에 대해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 예수의 나라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만약 나의 나라가 세상에 속하였다면 나는 12 군단보다 더 많은 천사들을 불러 세상을 정복하였을 것이다. 또한 사람들에게 잡혀 십자가에 달리지도 않았을 것이다(마 26:53).
그런데 유대인들이 바라는 천국은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들을 위해 세계를 정복할 메시야를 2000년이 넘도록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제1차 유대-로마 전쟁 이후 성전도 파괴되고 유대인들은 로마 전역으로 흩어져 고통을 당했다. 다른 민족보다 차별을 받으며 결국 자신들의 언어인 히브리어도 잃어버렸다. 나 예수가 죽은 해인 33년에서 40년이 지났을 때(AD 73)에 심판이 완성되어 제1차 유대-로마 전쟁의 마지막인 마사다 요새가 점령당했다. 심지어 나 예수가 죽은 4월에 마사다 요새가 점령당했다. 마사다는 에돔의 강제 개종자의 후손 헤롯 대왕이 에돔인(이두매인)인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유대인들의 반란을 두려워하여 세운 피난처였다. 그 이후 AD 66년 유대-로마 전쟁이 시작될 때에 반란군들이 점령해 그 무기를 가져와 예루살렘 공방전의 첫 승리를 거두었다. 그 이후 계속 유대인들의 수중에 있다가 AD 70년 예루살렘이 점령될 때 남은 잔당들이 난공불락의 요새인 마사다로 숨어들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저들의 수는 960명이었다. 저들은 3년을 그곳에서 항전하였다. 사실 로마는 이 잔당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저들이 주변 지역에 내려와 약탈을 일삼고 문제를 일으키니 소규모의 군대를 보내어 점령하게 했다. 유대인 포로들로 하여금 마사다로 오르는 새로운 경사로를 쌓게 하였고 그 경사로가 완공되었을 때 마사다는 함락되었다. 함락을 앞둔 마사다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이방인에게 죽거나 모욕당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자살하는 길을 선택했다. 먼저 가장들이 자신들의 아이와 아내를 직접 칼로 찔러 죽였다. 그리고 남은 자들은 다시 한 곳으로 모여 재비를 뽑아 10명을 선출했다. 선출된 10명은 나머지 전체를 찔러 죽였다. 그리고 그 10명에서 또 한 사람을 뽑아 그가 나머지 9명을 죽였다. 그리고 최후에 그 1명은 자살했다. 저들이 이렇게 자기 아내와 자식을 죽이고 동족을 죽이는 살인과 자살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유대인들은 마사다를 자신들의 저항의 성지나 상징처럼 여기지만 사실 마사다는 변태적 인종우월주의의 극단이다.
'우리 유대 인종은 우월하기에 감히 개와 같은 이방인들에게 죽임을 당할 수 없다. 그러니 자신의 목숨을 끊어서라도 이방인에게 죽임 당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자신들은 신이 선택한 자들이므로 다른 이방의 개들과는 다르다. 오직 자신들만이 인간이고 나머지는 모두 타락한 짐승 즉 창세기 6장의 육체들이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은 인도의 불가촉척천민과 같이 조선의 백정과 같이 하등 하며 불결하며 추악하다. 그러므로 저들은 정복의 대상이며 강제 개종의 대상이다. 강제 개종을 거부하고 유대인을 향한 절대적 무한 충성을 거부한다면 저들은 결국에는 청소해야 할 쓰레기들이다. 여호수아의 정복을 본으로 삼아 모든 이방인을 멸절하고 거룩한 자신들의 혈통만이 세상의 주인이 되어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려야 한다. 이것이 유대교의 실체다.
나 예수의 죽음의 날과 맞물리어 유대인들의 최후가 결정되었다. 광야의 이스라엘이 회개하지 않고 광야의 40년을 기다린 우리(하나님)를 저버리고 모두 멸망한 것처럼 유대인들은 40년을 기다리고 오래 참은 우리를 멸시하고 모두 심판의 불을 향해 날아가 불나방과 같이 소멸했다. 그렇게 표징과 같이 자신들의 멸망이 임했음에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지 못했다. 오히려 심판의 표징인 마사다를 민족정신의 성지로 여기고 기념하였다.
제1차 유대-로마 전쟁으로 유대인들은 나라도 잃고 성전도 잃고 자신들의 언어도 잃었다. 그 이후 유대인들은 로마 각처에서 가중된 세금과 종교적 억압에 놓이게 되었다. 사도 바울의 바람과 같이 만약 유대인들이 이때에라도 회개하여 돌아왔더라면 유대인들은 국가와 민족을 보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거짓 메시야는 받아들였지만 나와 내가 앞서 보낸 선지자들은 거부했다. 거부할 뿐 아니라 죽여 없앴다. 그러나 저들이 나와 나의 선지자들의 육신은 죽였을지라도 우리는 부활하여 영원히 살았다. 또한 나 예수의 몸이 부활한 것과 같이 나의 선지자들의 몸도 부활할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안타깝게도 모두 지옥을 선택했다. 거짓 메시야를 선택하고 거짓 하늘나라(천국)를 선택했다.
제1차 유대-로마 전쟁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유대인들은 포로로 끌려간 그곳에서 다시 저들은 자신들의 헛된 망상을 이루어줄 거짓 메시야를 만들어내고 반란을 일으켰다.
AD 114년 로마는 최강 전성기를 맞아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동방 페르시아의 후신을 차처 하는 파르티아를 침공했다. 그 공세는 성공적이어서 아르메니아를 속주로 편입시켰고 메소포타미아와 아디아메네까지 로마령으로 편입시켰다. 공세를 계속 이어 AD 116년에는 파르티아의 수도인 크테시폰을 함락하였다. 그대로 진격했다면 로마는 현재의 파키스탄의 일부인 펀잡을 넘어 인도로 진격했을 것이다. 그러나 로마의 동방에 있던 대부분의 군대가 파르티아 원정에 투입된 사이 로마 곳곳에서는 반란이 일어났다. 파르티아의 영주들은 유목민들 답게 기동력을 무기로 매복과 기습전을 펼쳐 로마군의 후방을 교란했다. 전쟁으로 인한 과중한 세금 때문에 로마의 속주들 곳곳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중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반란이 가장 집요했다. 저들은 로마의 동방 여러 지역에서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을 학살하며 반란의 기치를 높였다. 심지어 원정 지역이었던 메소포타미야 지역에서도 반란을 일으켰다. 파르티아의 잔당들이 들고일어나는 상황에서 유대인들도 가세했다. 결국 황제는 정복을 포기했고 로마로 귀환하던 중 117년 8월 9일에 마음속의 깊은 낙망과 함께 병사했다. 그가 죽은 곳은 소아시아 남부 킬리키아의 작은 섬인 셀레누스였다. [^1]
그런데 유대인들의 욕망이 가시화되어 나타나는 것은 항상 유대교 세계제국을 가져올 메시야였다. 그들은 항상 메시야를 기다렸다.
'하늘의 하나님이 결코 자신들을 버릴 수 없다.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자신들의 왕국인 다윗 왕국은 영원하며 다윗의 왕위는 끊어지지 않는다. 언젠가 다윗의 혈통에서 세계를 정복할 정복 왕이 나오는데 그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메시야다.'
유대인들은 광신자들이었다. 외세의 세력에 밟히면 밟힐수록 자신들의 비틀어진 변태적 욕망을 더욱 돋우어 반란을 일으키고 거짓 메시야를 기다렸다. 저들은 거짓 메시야들이 실패하여도 그들을 기리며 그들의 길을 따르고자 한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힘을 길러 다시 자신들의 야망을 실현하려 한다. 그래서 출세와 돈과 힘에 집착했다. 히틀러 밑에서도 무기들을 개발하고 인류를 멸망시킬 수소폭탄과 원자폭탄을 설계했다. 그 기술을 적국인 미국과 소련에 투항해 실용화시켰고 그 결과물이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투하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저들은 2000년이 지나 자신들의 조상들이 살았던 땅으로 돌아가 그 땅의 민족들을 인종청소하기 시작했다. 그 인종 청소를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과 동일시했으며 이를 반대하는 자들도 그 땅에서 여전히 거짓 메시야를 기다리며 그 메시야의 유대교 세계제국을 꿈꾸고 있다. 지금도 자칭 유대인들은 인종청소를 이어가고 있는데 팔레스타인(블레셋)을 장벽에 가두고 계속해서 소멸을 유도하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은 자신들의 변태적 세계제국을 이루기 위한 과정들이다. 언제나 힘을 길러 변태 세계제국을 건설하려 한다. 그래서 세계 경제를 장악하고 정치와 군대를 통해 이를 실현하려 한다. 유대인들이 금융의 큰 손들이 된 것은 중세의 필요악에서 출발하였으나 저들의 변태 세계제국이 언제나 그 근본 동기였다. 저들이 그 돈으로 정계를 조종하고 무기와 테크놀로지를 개발하는데 투자하는 모든 목적도 동일하다.
나 예수는 다시 말한다. 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하늘나라는 이 땅의 나라가 아니며 이 땅의 영토와 백성들을 침략하여 그들을 멸망시키지 않는다. 나 예수의 나라는 이 땅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나라다. 그래서 땅의 나라가 아닌 하늘나라다. 십자군이 이슬람 땅이었던 옛 이스라엘 땅을 침략한 것이나, 현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불법 점령한 것은 동일한 어리석음이다. 십자군의 시절에도 정치와 종교와 경제적 탐욕을 이유로 침탈이 행해졌는데 현대에도 동일한 이유로 침탈이 이어지고 심지어 인종청소까지 행해지고 있다. 저들은 개들이요 행악자들이다.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다. 저들은 더 이상 유대인이 아니다. 혈통으로도 역사로도 유대인이 아니다. 이제 계속해서 그 실체를 낱낱이 밝히겠다.
유대인들의 변태적 야욕은 심각한 반유대주의를 초래했다. 그래서 제1차 유대-로마 전쟁 이전부터 수많은 선제적 반란 방지를 위한 제제를 가져왔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탄압 속에서 눌린 용수철과 같이 억압된 변태적 욕구를 응축했다. 그리고 트라야누스 황제가 동방원정을 떠나 군대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그 비열한 욕구를 분출했다.
**키레나이카(키레네)**
제2차 유대인 반란은 115년 북아프리카의 키레나이카에서 시작되었다. 현재 리비아의 동부지역으로 그곳 해안에는 키레네라는 도시가 있었다. 키레네는 성경에 구레네라고 나와 있다. 나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졌던 구레네 시몬의 고향이다. 유대인 루쿠아스(또는 안드레아스)는 반란의 지도자가 되어 유대인들을 선동했다. 그는 자신을 왕으로 칭했다. 이는 그가 메시야임을 의미한다. 또는 메시야를 세울 왕임을 뜻한다. 유대인들의 폭동은 언제나 자신들이 기다리던 거짓 메시야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유대의 왕으로 등극한 루쿠아스는 급격한 폭동을 유도하여 로마인들과 그리스인들을 공격하였다. 그가 이러한 행동을 한 것은 자신들은 선민이며 이방 개들을 인종청소해야 한다는 성경 해석의 오류 때문이었다. 폭동으로 도시들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폭도들은 헤카테, 유피테르, 아폴로, 아르테미스, 이시스 신들의 신전을 파괴했다. 로마의 상징인 카이사레움, 바실리카, 공중목욕탕과 같은 공공시설을 파괴했다(카이사레아의 이우세비우스).
유대인들은 아주 야만스러운 방식으로 리비아 전역의 거주민들에게 싸움을 걸고, 그곳의 농민들을 죽였다. 키레나이카는 황폐해졌고 트라야누스의 후계자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멸절된 토착민들을 대신해 다른 이주민들을 모집하지 않았으면 그 지역은 완전한 폐허가 되었을 것이다.[^2]
한편, 키레네 지역의 유대인들은 안드레아스라는 인물을 수장으로 삼고 로마인과 그리스인 모두를 학살하고 있었다. 그들은 희생자들의 살점을 요리해 먹고, 내장으로 허리띠를 만들었으며, 피를 몸에 바르고 피부 가죽을 옷으로 입었다. 많은 이들을 머리부터 아래로 톱질해 두 동강을 냈고, 다른 이들은 맹수에게 던져주거나 검투사로 싸우게 강요했다. 그 결과 총 22만 명이 학살당했다. 이집트에서도 그들은 비슷한 만행을 저질렀으며, 아르테미오의 지휘 아래 키프로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에서도 역시 24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러한 이유로 유대인은 그 땅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게 되었으며, 만약 그들 중 누군가가 풍랑에 의해 강제로 섬에 떠밀려 오더라도 사형에 처해졌다. 트라야누스 황제가 파견한 루시우스를 포함한 여러 인물들이 이 유대인들을 진압하는 데 참여했다.(디오 카시우스). [^3]
유대 대백과 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키레나이카의 학살을 기록하고 있다.
더 심각했던 사건은 트라야누스(Trajan) 치세(서기 117년)에 일어난 키레네 유대인들의 반란이었습니다. 이 반란은 마르키우스 투르보(Marcius Turbo)에 의해 진압되었지만, 그전에 약 200,000명의 로마인과 그리스인이 살해당했습니다(디오 카시우스, lxviii. 32). 이 반란으로 리비아는 심각하게 인구가 줄어들어 몇 년 후 새로운 식민지를 건설해야 할 정도였습니다(에우세비우스, "Chronicle" 아르메니아어 번역본, 하드리아누스 집권 14년). 5세기 초 키레네 출신 주교 시네시우스(Synesius)는 유대인들에 의해 자행된 황폐화에 대해 언급합니다("Do Regno," p. 2). [^4]
유대 대백과사전의 편집자들은 이 기록에 대해 과장된 표현이란 평가를 하지만 사실 이는 유대인들의 죄에 대한 변명에 불과하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자칭 유대인의 왕 루쿠아스는 키레네이카에서의 학살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유대인 패거리들을 이끌고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향했다. 이집트 총독 마르쿠스 루틸리우스 루푸스는 두려워 싸울 생각을 하지 못하고 도망갔다. 이집트 알렉산들리아와 여러 도시들에서 루쿠아스는 방화와 살인을 일삼았다. 이집트의 신전들을 파괴하고 폼페이우스의 무덤도 파괴했다. 그리스인과 로마인 학살은 당연히 행해졌다. 유대인들이 이러한 행위들을 한 것은 자신들의 유대 세계제국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자신들의 종교로 세계를 정복하려면 이러한 과정은 필수적이었다.
**키프로스(구부로)**
키프로스는 터키와 시리아 접경의 앞바다에 있는 섬이다. 반란의 불씨는 키프로스로도 번졌다. 아르테미온이라는 유대인이 폭도들을 선동해서 240000 명의 그리스인들을 죽였다. 이러한 학살을 정당화하는 모든 빌미는 유대인 자신들은 선민이며 유대교 세계제국 건설은 선민의 의무라는 착각에 기인한다. 이는 자신들의 특권이기에 이를 위해 이방인들을 정복하고 그 혈통을 종국에는 멸절해야 할 사명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자신들은 자신들의 신인 우리(여호와)를 빙자하여 학살을 정당화한다. 우리는 저들에게 그런 특권을 결단코 내리지 않았다. 우리는 저들이 우리의 선택한 민족이라 여기지 않는다. 저들은 단지 가지에서 잘려 버려진 지옥의 땔감들이다. 황제가 파견한 반란 진압군 사령관 퀴에투스는 군대를 키프로스로 파견해 결국 키프로스의 유대 반란군을 학살해 버렸다. 퀴에투스는 유대인들이 키프로스에 다시 들어오지 못하도록 거주불가령을 내렸다. 유대인들은 풍랑에 밀려 키프로스에 떠밀려가도 사형을 당했다.
**메소포타미야**
반란은 황제 트라야누스가 정복 전을 벌이던 파르티야에서도 일어났다. 파르티야의 지방 관리와 군관들이 후방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유대인들도 반란을 일으켰는데 가장 극악한 반란자들이었다. 로마인들을 죽이고 자신들의 종교를 반대하는 모든 것을 멸절했다. 결국 로마군은 보급로가 끊어지고 퇴로가 막히는 일도 당하게 되었다. 물론 이는 일시적이었지만 전쟁을 수행하는 군대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분노한 트라야누스는 파르티야의 모든 잔당들을 정리하고 그곳을 속주로 삼으려는 계획을 포기하고 그곳에 로마의 꼭두각시 파르타마스파테스를 샤한샤로 세웠다. 그리고 자신의 군대를 회군하여 반란을 진압했다. 트라야누스 황제는 인도도 정벌하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로마인과 그리인을 학살하는 무리인 유대인들을 응징하는 황제의 마음은 분노와 좌절이 동시에 끌어 올랐다. 그 분노는 용암이 되어 유대인들을 덮쳤다. 황제는 마르키우스 루푸스를 이집트로 파견해 자칭 유대인의 왕 루쿠아스의 무리들을 응징하도록 했다. 루푸스는 반란군의 수가 너무 많아 집압에 시간이 걸렸다. 117년까지 어려움을 겪었으나 로마군은 결국 반란을 진압했다. 자칭 유대인의 왕 루쿠아스는 유대로 탈주했다. 로마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북아프리카의 키레네 탈환 뒤 파괴된 신전의 재건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유대인들의 재산을 몰수했다. 또한 과도한 세금을 유대인들에게 매겼다.
**유대**
황제는 또 루시우스 퀴에투스(키토스)[^5]를 메소포타미아로 파견해 유대인 반란을 진압하여 퇴로를 열게 했다. 퀴에투스는 메소포타미아 유대 반란군을 쉽게 토벌하고 유대로 가 뤼다를 공격했다. 포위당한 뤼다에는 율리아누스와 파푸스 휘하의 반란군이 집결해 있었다. 유대 반란군은 극렬한 저항을 벌였다. 그러나 굶주림에 지친 유대 반란군은 결국 항복했다. 로마의 압밥이 극심하여 최고 랍비 가말리엘 2세조차 마카비 시절 기름 없는 메노라[^6]가 8일 동안 타오르는 것을 기념한 하누카 기간에 금식을 허용했다. 다른 랍비들도 이 조치를 묵인했다. 기쁨과 승리의 명절인 하누카조차 저주와 극렬한 고통의 기간이 되었다. 저들의 우두머리 율리아누스와 파푸스는 결국 처형되었다. 또 그를 따르던 반란군도 집단 처형되었다. 유대인들은 뤼다의 학살을 기념하며 탈무드에서 존경심을 담아 극찬했다. 그런데 이들의 심리에는 자신들의 비관적인 처지를 메시야적 유대교 세계제국으로 정신승리 하려는 어리석음이 있었다. 저들은 계속하여 거짓 메시야과 그의 세계제국의 도래를 꿈꾸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하나님)의 뜻과는 상관도 없는 자신들의 변태적 욕망일 뿐이다. 저들은 자신들의 욕망이 좌절되어도 계속하여 포기하지 않는다. 이는 저들이 악마의 본성을 닮아 지속적으로 회개하지 않고 반역을 도모하는 심령을 가졌기 때문이다. 저들은 자칭 유대인이지만 저들의 혈통은 개의 혈통이며 저들은 결국 독사의 새끼들, 사탄의 회다. 저들의 신은 우리(하나님)가 아닌 마귀다.
**결국**
트라야누스의 신임을 얻고 유대 반란군을 진압하는데 공로가 높았던 퀴에투스도 결국 트라야누스 황제가 죽고 하드리아누스가 즉위하자 자신의 지휘권을 빼앗겼다. 퀴에투스는 118년 여름 비밀의 정황 속에 살해당했다. 이는 정적들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하드리아누스가 내린 명령이었을 것이다.
유대인에 대해 트라야누스보다 유화정책을 일부 펼쳤던 하드리아누스 황제도 유대교를 멸절하기로 작정하였다. 그래서 130년 예루살렘의 이름을 아일리아 카피톨리나로 개명하였다. 그리고 그곳에 로마식 도시를 세우기로 하였다. 성전도 재건하기로 했지만 도시의 중앙에는 로마의 주신인 쥬피터(유피테르, 제우스)의 신전을 세우기로 했다. 이는 로마의 최고 신 쥬피터와 성전의 신인 우리(하나님)가 함께 함을 상징한다. 유대인들이 이러한 조치를 받아들인다면 유일신을 섬기는 자신의 종교를 배반하는 것이고 이는 결국 유대교의 멸절을 의미한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결국 132년 바르 코크바라는 거짓 메시야의 반란으로 이어졌다. 결국 반란의 결과는 전무후무한 유대인 학살과 유대 종교 멸절법의 반포였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장인 01.3.2.3.15.7.1.5.1.1.3. 제3차 로마-유대 전쟁에서 더 깊이 살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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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곳은 바울의 고향 길리기아(킬리키아) 지역이었다. 바울의 고향 다소는 다소(타르수스) 산맥 아래에 있었다. 셀리누스는 현대 가지파샤 지역에 있었다. 가지파샤는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로, 기원전 2,000년 것으로 추정되는 히타이트 취락이 존재하며 이 해안 지역은 그 이전부터 사람들이 정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셀리누스는 고대 그리스 도시로 기원전 628년에 이곳 케스트로스강 하즈무사(Hacımusa)에 세워졌다. 기원전 197년에 이 지역은 고대 로마의 손안에 넘어갔고, AD 117년 경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는 지중해 해안을 따라 로마로 철군하던 중에 병에 걸려 이곳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시신은 후임자인 하드리아누스가 로마에서 장례를 위해 가져갔으며 한동안 셀리누스는 트라야노폴리스 (Traianapolis)라고 불렸다.
[^2]: Orosius, Seven Books of History Against the Pagans, 7.12.6.
[^3]:“Dio's Rome, Volume V., Book 68, paragraph 32” (http://www.gutenberg.org/files/10890/10890-h/10890-h.htm#a68_32)
[^4]: “Cyrene” (http://www.jewishencyclopedia.com/articles/4826-cyrene)
[^5]: 퀴에투스의 다른 표기로 키토스라 불리었는데 키토스의 이름을 붙여 제2차 유대-로마 전쟁을 키토스 전쟁이라 부른다.
[^6]: 일곱 가지에 일곱 개의 등잔이 달린 등잔대. 유대인들의 성막 안에서 불을 밝혔다. 이렇게 등불을 밝히는 절기가 하누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