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2.3.15. 춤추는 자-다윗의 연대기 10

by 에스겔

# 01.3.2.3.15.6. 순혈과 순수
## 01.3.2.3.15.6.1. 구약의 교회
## 01.3.2.3.15.6.2. 참 교회
## 01.3.2.3.15.6.3. 율법의 종
## 01.3.2.3.15.6.4. 순혈 제국
## 01.3.2.3.15.6.5. 순수의 제국
## 01.3.2.3.15.6.6. 다윗의 무너진 장막
## 01.3.2.3.15.6.7. 거짓(개) 이스라엘: 인종 청소주의자
## 01.3.2.3.15.6.8. 참 이스라엘: 거듭난 새 피조물
## 01.3.2.3.15.6.9. 나 예수의 나라
## 01.3.2.3.15.6.10. 구약 이스라엘의 결국

# 01.3.2.3.15.7. 믿음과 혈통





01.3.2.3.15.7. 믿음과 혈통




01.3.2.3.15.7.1. 올리브나무 비유


이방인들은 야생 올리브나무(개정 돌감람나무)에서 났지만 재배종 올리브나무(개정 참감람나무)에 접붙여졌다.


01.3.2.3.15.7.1.1. 재배종 올리브 나무


사도 바울이 로마서 11장에서 재배종 올리브나무에 비유한 것은 나 예수 그리스도다. 나는 다른 비유들에서는 다른 형태의 역할이 있다. 나는 때로는 맏아들이요 나는 때로는 첫 열매다. 나는 로마서 11장의 비유에서는 두 번째 아담으로서 재배종 올리브나무다. 나에게 접붙여진 자들은 참 올리브나무인 나에게 붙여진 것이다. 모든 사람은 죄인이 되었다. 첫 아담의 타락으로 모든 자들이 첫 아담의 뿌리에서 죄의 진액을 받아 죄인이 되었다. 세상 모든 곳에 죄가 관영함으로 죄인이 아닌 의인은 없다. 그래서 죄의 뿌리인 첫 아담을 상징하는 야생 올리브나무의 가지가 되어 모두 죄인이 되었다. 그런데 나 예수는 첫 아담과는 다른 완전히 다른 나무다. 나 예수는 재배종 올리브나무다. 성경의 표현을 빌리면 참 올리브나무다. [^1] 나 예수는 참 올리브나무가 되어 타락한 죄인들인 돌 올리브나무의 가지들을 접붙여 그들이 나 예수의 수액을 먹고 나 예수의 힘으로 의인으로 살게 한다.



01.3.2.3.15.7.1.2. 재배종 올리브나무의 가지


사도 바울이 롬 11장에서 말한 참(재배종) 올리브나무의 가지는 그때까지 존재했던 구약 교회를 말한 것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 자체가 상징적으로 교회였다. 그러나 그 구성원으로 보았을 때 그들이 다 하늘나라의 백성은 아니었다. 세례 요한을 언급하면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고 했다. 또한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보다 크다라고 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는 천국이며 천국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참 교회다. 그렇다면 올리브나무 가지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다. 교회다. 교회의 구성원이 아닌 유대인들은 참감람나무에서 잘려 버림을 받았다. 신약의 시초인 나 예수의 시대에 있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버림을 당하였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민족인 유대인들이 지금은 버림을 당하였지만 오히려 그들도 구원받을 기회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유대인 자체가 올리브나무이며 교회가 아님은 사도 바울이 기록한 본문에서도 명확하다. 그럼에도 사도 바울은 자신의 민족이 돌이켜 우리에게 돌아오기를 원했다. 이 글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로마서(특히 8-11장)를 읽고 이해해야 한다. 로마서의 내용은 다윗의 연대기의 따라오는 글들에서 잠시 더 다룰 것이다. 그러나 자세한 내용은 로마서를 다루면서 언급할 수밖에 없다.



01.3.2.3.15.7.1.3. 농부와 우리의 접붙임


일반적으로 농부들은 야생 올리브나무(개정 돌감람나무)의 뿌리에 재배종 올리브나무(개정 참감람나무)를 접붙인다. 강한 야생의 생명을 지닌 야생 올리브나무(개정 돌감람나무)에 재배종 올리브나무(개정 참감람나무)의 가지를 접붙이면 야생 올리브의 생명을 가져 가뭄과 병충해에 강한 특징을 가지면서도 그 열매는 재배종 올리브나무(개정 참감람나무)의 크고 탐스러운 결실이 맺힌다.

사도 바울의 글에서 원 줄기에서 버림받은 가지들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이는 재배종 올리브나무에서 믿지 아니한 가지들이 잘린 것을 말한다. 이들은 이스라엘인들이었다. 그리고 야생 올리브나무가 참올리브나무에 접붙여졌다. 재배종 원 뿌리에 야생종 올리브 줄기가 접붙여졌다.

일반적으로 농부들이 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일이 행해진 것이다. 이렇게 하면 나무는 재배종 올리브의 약한 뿌리로 인해 병충해를 잘 견디지 못한다. 또 야생종 올리브 가지로 인해 볼품없고 수확량도 줄어든 결실을 걷게 된다. 사도 바울의 비유대로면 농부는 농사를 망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럼에도 사도 바울은 재배종 올리브 나무에 야생종 올리브나무의 가지를 접붙이는 비유를 한다.



01.3.2.3.15.7.1.4. 참 올리브나무 비유의 의도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와 같은 비유를 하였겠는가? 여기서 참나리와 개나리, 참깨와 들깨, 참꽃과 개꽃[^2], 참외와 외(오이), 참올리브나무와 돌오리브나무, 배와 돌배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에게 적합하게 개량되고 열매가 더 탐스러운 것이 '참-'이라는 접두사가 붙는다. 반면 개량되지 못한 야생 종은 '개-'나 '돌-'이라는 접두사가 붙는다. 이 둘을 구분한 목적은 순종과 잡종을 구분하는 것과 같다. 잡종은 야생의 특성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특정 형질을 가지고 목적에 맞게 더 좋은 품종을 순종이라 한다. 개의 경우에도 품종이 개량되어 계속 그 유익한 특징이 유지되는 혈통을 순종이라 한다. 사도 바울이 참 올리브나무를 언급한 목적은 농부이신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길들여진 유익한 종자임을 나타낸 것이다.


일반적인 농부들과는 반대로 우리(하나님)는 재배종 올리브나무에 야생 올리브나무를 접붙인다.

우리의 목적은 재배종 올리브나무인 나 예수에 구원받지 못한 야생 올리브나무를 접붙여 구원함이다. 이는 참 포도나무인 나 예수에게 접붙여져 참 생명의 수액을 받게 하기 위함과 같은 이치이다. 또한 접붙여지는 정도가 아니라, 나 예수와 같게 변화되게 하려 함이다(요 14, 고전 13:12).

사실 재배종 올리브나무로 비유된 나 예수는 재배종 올리브나무와 같이 약하지 않다. 또한 참 올리브나무의 가지인 참 교회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자들이다. 육신을 죽여도 그 영이 살아 믿음을 지킨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의 비유는 농사에 적용되는 특성에서 그 비유의 근원을 찾은 것이 아니다. 단지 참과 거짓이라는 진리의 차원에서 비유한 것이다. 참은 우리(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다.


01.3.2.3.15.7.1.5. 바울의 선민적 오류


사도 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부터 자기 민족 이스라엘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낸다. 심지어 이방 교회들이 유대인 대부분이 구원받지 못했는데 자신들은 구원받았다 하여 자긍심을 가지고 교만하지 말 것을 말하는데 이는 유대인인 바울의 민족 사랑과 또 율법을 받은 자기 민족 이스라엘이 나 예수 죽이고 나 예수를 거부하는 현 상황에 대한 자격지심도 포함된다. 바울 자신도 나 예수를 죽이는데 투표하였고 또 나 예수의 교회도 박해하여 멸하려 했다. 그러므로 이방 교회들이 비웃었든, 그렇지 않든 바울은 자기 민족에 대한 사랑으로 인해 이러한 말을 한다. 실제로 로마서를 받는 로마 교회는 나중에 타락하여 예루살렘 교회를 누르고 자신들을 세계의 중심 교회로 자처하며 교만을 드러내었다. 바로 로마 카톨릭이다. 또한 카톨릭 교회는 나 예수를 박해한 유대인들을 비웃는 정도로 끝나지 않고 그들을 박해하고 죽였으며 그들의 재산을 약탈했다. 유대인들의 아내와 딸과 아들을 강간했다. 바울은 자신의 민족이 마지막에는 돌아올 것이라 했다. 구약의 예언들을 언급하면서 로마서 11자의 마지막에 자신의 민족 모두가 마지막에는 구원받을 것이라 했다. 그러나 이는 선지자들의 예언에 대해 자가당착적인 해석을 한 것이다. 성경 저자들의 글이 영감을 받았지만 그 글들 속에 저자 자신이나 그 시대의 오류가 포함된다. 이는 성경에 오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앞에 모세의 글들 속에서도 이러한 부분을 언급하였는데 기록자가 자신의 부족한 소견으로 그러한 일을 행하는 경우들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심각한 오류는 성령이 깨닫게 하여 바로 잡는다. 그런데 성령이 의도하여 저자들의 오류를 남기는 경우가 있다. 이는 명확히 밝혀질 오류로 저자의 오류를 통해 읽는 자들이 교훈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다. 만약 이러한 성령이 의도한 저자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성경의 저자들의 저작물인 성경이 아닌 성경의 저자 자체에 무오성을 부여하는 것이 된다. 이것이 카톨릭이 교황의 무오설을 주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또한 그 시대적 표현이나 사고방식이 오류가 있을 경우도 그들의 과학적 한계 안에서 대부분 설명을 한다. 그 이유는 앞의 글들에서 설명했듯 그 글을 읽는 독자들이 그 시대의 사람임으로 그 시대의 방식으로 표현하여 이해를 도운 것이다. 그렇다 하여 성경에 심각한 과학적 오류가 있지는 않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성경을 근거로 하지 않는다. 심지어 천동설도 성경이 근거가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나 프톨레 마이우스 같은 그리스 철학에서 그 근거를 두었다. 성경은 무오하다. 오류가 없다. 그런데 역사서에서 등장인물들의 죄나 어리석음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그들을 통해 교훈을 얻기 위함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서신서들에서도 오류가 발견되기도 한다. 특히 히브리어로 영감을 받고 헬라어로 번역된 신약은 그 번역과정에서 오류가 포함되기도 한다. 이는 번역본의 오류로 원본 성경의 오류가 아니다. 대부분 헬라어가 신약의 원전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신약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은 대부분 히브리인들이었다. 그들의 짧은 지식을 고려하면 그들이 헬라어를 사용했을 가능성은 낮다. 그러므로 저들이 처음 영감 받은 언어는 히브리어였다. 이를 번역자들의 도움으로 헬라어로 기록했다. 이 과정에서 70인역 헬라어 번역본의 오류가 번역에 스며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이 아닌 의도적인 오류가 첨가되기도 한다. 그 경우 중 하나가 바울의 민족 사랑에 의해 왜곡된 구약 예언의 자가당착적 해석이다. 바울은 로마어(라틴어)와 그리스어(헬라어), 이스라엘어(히브리어)에 모두 능통했다. 그러므로 바울 서신에 있는 오류 중 역사적으로 실수임이 밝혀진 것은 번역의 오류는 아닐 것이다. 혹 바울 자신은 히브리어로 기록하였고 뒤에 다른 번역자들이 번역을 하면서 실수를 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바울 서신들이 이방인들을 수신자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울 서신이 처음부터 히브리어로 기록되었을 가능성은 낮다. 물론 번역본인 헬라어 성경의 필사 과정에서 오류가 스며들었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 바울의 예언은 구약 예언을 인용하며 한 예언들이라 그것을 실수라 하기 어렵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예언이나 언약은 맹세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하나님)가 약속하였어도 이스라엘이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다윗의 왕좌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은 성취되지 못했다. 또한 바울이 인용하고 있는 이사야의 예언들도 믿는 자들에게는 성취되었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성취되지 못했다. 상식적으로도 성경 자체의 증거에도 이스라엘 모두가 구원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도 바울도 이스라엘 중에서 일부가 믿었고 믿지 않은 자들은 버림 받았음을 시사하고 있다. 참올리브나무의 가지에서 잘려진 자들이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왜 모든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것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는 것일까? 미래에는 그렇다는 말인가? 여러 예언들을 검토하고 현대의 학자들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라는 말의 의미를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해지면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말한 나 예수의 예언과 동일시 하고 있다. 그 끝에 이스라엘이 회복되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근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세워졌을 때 그 약속이 이루어지고 있고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 해석이 과연 옳은 것일까? 구약과 신약의 예언들을 해석할 때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간과한 부분은 없는 것일까? 이를 신중히 살펴보자.

모든 이스라엘이 구원 받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울의 말은 구약을 근거로 하고 있다. 그러나 구약 예언의 정확한 표현은 다음과 같다.

이사야 27:9 (바른)
그러므로 이 일로 인하여 야곱의 죄가 사함을 얻으며, 그의 죄가 제거된 온전한 결실이 될 것이다. 주께서 제단들의 모든 돌을 산산조각 난 석회석 같게 하실 때, 아세라 우상이나 분향 제단들을 다시 세우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죄가 사함을 얻고 죄가 제거될 것이라 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온전한 결실이 될 것이라고 했다. 죄로 부패한 부분이 사라진 온전한 열매가 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온전한 열매를 모든 이스라엘로 대체했다. 그런데 바울의 이러한 예언 해석이 오류일까? 이를 다방면으로 살펴볼 것이다.




01.3.2.3.15.7.1.5.1. 오류의 역사적 증거- 다음 화에







[^1]: 감람나무는 올리브와는 다른 종으로 중국에 있는 올리브와는 다른 나무다. 올리브를 알지 못하던 중국의 번역자들이 자신들 나라에 있는 비슷한 나무로 번역한 것이 감람나무다. 그러므로 올리브나무라고 하는 것이 옳은 표현이다.


[^2]: 진달래와 철쭉을 일컫는 경북 사투리. 참꽃은 진달래. 개꽃은 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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