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2.3.15. 춤추는 자-다윗의 연대기 9

by 에스겔

01.3.2.3.15.6. 순혈과 순수



구약 이스라엘 왕국이 다윗을 통하여 제자리를 찾아갔다.


01.3.2.3.15.6.1. 구약의 교회



그런데 구약 이스라엘은 참된 교회의 형태는 아니다. 또 구약 이스라엘은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도 아니다. 구약 이스라엘은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니다. 단지 종교적으로 우리를 따르는 무리다. 저들이 신앙의 형태로 성장하게 된다고 해도 세례요한의 물세례를 받은 자들일뿐이다. 구약의 교회는 구약에서는 최선의 형태를 가졌지만 교회의 궁극적 형태는 아니다.



01.3.2.3.15.6.2. 참 교회



진정한 교회는 우리(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히 임하는 곳이다. 또한 우리의 완전한 통치를 피조세계에 풀어놓는 존재다. 에베소서에서 말한 것처럼 교회는 만물 위에 있고 교회의 머리는 나 예수다. 그리고 나 예수의 머리는 성부 하나님이시다.[^1] 여기서 언급되는 나 예수는 하나님이었으나 인간이 된 예수다. 나 예수는 인간으로서 인간들의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 인간의 대표로서의 두 번째 아담이다. 그 두 번째 아담의 머리가 성부다. 교회는 육신의 지배가 주된 힘이 아니다. 영으로서 영이 하나 됨으로 완전히 마음이 합하여 하나로 움직인다. 바로 나 예수의 영이 부어져 나 예수와 한 마음이 되어 하나로서 기능한다.




01.3.2.3.15.6.3. 율법의 종



그러나 구약의 교회는 영으로 하나 된 상태가 아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하나 되어 우리의 뜻을 행하는 상태가 아니다. 저들은 율법을 순종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이다. 결코 우리의 법에 마음이 동화되어 우리와 한 마음으로 기능하는 존재들이 아니다.


그러므로 저들은 죄를 이길 능력도 없으며 세상의 풍조를 이길 능력도 없다. 저들이 신앙을 지키려면 최대한 옆에 우상숭배자나 범죄자들이 없어야 한다. 그래야 이방의 죄를 피할 수 있다. 그래서 구약 이스라엘은 순혈의 혈통이 중요했다. 물리적으로 이방 죄인들과 이방의 우상을 피해야 그나마 덜 타락할 수 있다. 그래서 구약은 순혈을 강조했다. 이방 여인이나 남자와 결혼을 금한 이유가 그것이다. 결코 유대인의 혈통이 더 순수하고 더 우월하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구약 이스라엘은 죄를 이길 수 없는 물세례인들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그나마 이스라엘인들끼리 있어야 율법적인 삶이라도 유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게 순혈의 이스라엘인들이 대대로 율법을 지키면서 살았어도 그 수많은 타락의 물결들이 지나갔다. 그런데 만약 이방 혈통들이 마음대로 섞였으면 아마 나라 자체를 유지하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다.




01.3.2.3.15.6.4. 순혈 제국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꿈꾸었던 유대 세계 제국은 구약이나 신약 시대 모두에서 성립이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유대 세계 제국의 성립에는 순혈이라는 원칙이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옆의 다른 나라를 유대 세계 제국 안으로 흡수하려면 이스라엘을 채우고 있는 인구의 두 배가 필요하다. 두 나라가 비어 있지 않아야 농토가 유지되고 대적들을 방어할 군사도 유지가 된다. 그러므로 땅이 늘어난다는 것은 구약적 개념으로는 인구가 그 땅만큼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땅의 이방 족속은 멸함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되어 유대세계제국이 완성되면 이방의 모든 족속들은 멸함을 받고 온 세상에는 유대인 순혈들만이 남아야 한다.


그런데 다윗 시대에 주변 국들을 정벌할 때만 봐도 유대세계제국은 불가능하다. 이스라엘의 인구 성장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다윗도 주변의 이방 나라들을 점령하면 그곳을 이스라엘 영토로 편입시키지 못했다. 단지 주둔군을 두어 그곳을 식민지로 삼았을 뿐이다. 이는 그곳의 족속들을 모두 죽이고 그곳에 거주할 이스라엘 인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세계를 정복하려면 이민족을 받아들이고 이민족의 군대도 필요하다. 그 이유는 전쟁을 거듭할 때마다 인구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군사가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운송과 전쟁하는 군대 뒤에서 밥을 하고 빨래를 할 여인들이 필요하다. 그러한 자들도 평시와 같은 수명을 보장받을 수는 없다. 그래서 세계제국들을 보면 피정복민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운용하는가에 따라 그 제국은 넓이와 수명이 결정됨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순혈을 요구하는 구약적 개념의 유대세계제국은 성립 불가능하다.

또 순혈 유대인 유대세계제국을 위하여 이방 모든 민족이 인종청소를 당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뜻도 아니다. 가나안 일곱 족속은 그 죄가 쌓이고 쌓여 관영해졌을 때에 심판의 개념으로 멸망을 당한 것이다. 애초에 그러한 지엽적인 심판을 설계한 우리의 뜻은 죄악이 전 지구적으로 관영하여 인류 전체가 심판을 당하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이었다. 바로 공멸 방지툴이다. 그러니 이방인들의 심판이 우리의 최종목표가 아니다. 우리(하나님)의 목표는 모든 족속과 모든 백성이 구원을 얻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선택한 이유는 아브라함의 복을 열방이 함께 받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인간 자체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이는 아브라함의 복이 열방에 전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스라엘 자체만 보아도 인간 자체가 변화되지 않고는 이스라엘에 세워진 하늘나라도 유지가 불가능하다.





01.3.2.3.15.6.5. 순수의 제국



그래서 나 예수는 인간으로 가 인간을 대신하여 사탄과, 죄와 세상과 죄의 육신을 이겼다. 그리고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인간 자체가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살아나는 것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하여 진정한 하늘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나의 나라는 이 세상의 나라들과 다르다. 나의 나라는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 우리의 영이 살아있는 나라다. 우리나라의 영토는 사람의 마음이며 정신이다. 그 속에 우리의 영이 임하여 우리의 뜻과 마음을 품은 자들이 이 땅에서 첫 아담과 같이 자신의 바운더리를 통치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는 공간의 제약도 없고 시간의 제약도 없다. 어느 시대 어느 곳이든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이 우리의 임재 속에서 우리의 통치를 받는 그곳이 하늘나라(천국)이다. 그렇게 우리의 나라가 전파되는 것이 바로 선교요 전도다. 나 예수는 하늘나라의 임금으로 이 땅에 왔다. 그리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선포했다.




01.3.2.3.15.6.6. 다윗의 무너진 장막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보수하고 회복한다는 약속은 구약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윗의 왕좌는 영원하다 하였는데 이미 다윗의 왕조는 무너졌고 그 이후 회복되지 못했다. 헤스몬 왕가도 다윗의 혈통이 아니었다. 또한 신약 시대의 헤롯도 다윗의 혈통이 아니었다. 다윗의 혈통으로 다윗의 왕좌를 이은 유일한 자는 나 예수다. 그런데 나 예수는 구약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자가 아니었다. 구약은 모형일 뿐이었다. 신약에 나 예수가 와서 모형이 아닌 원형의 천국을 건국하였다. 그리고 그곳으로 백성들을 초청하였다. 항복하고 전향(회개)하라는 복음을 듣고 돌이켜 회개한 자들이 천국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천국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침노를 당하였다. 마치 가나안을 정복하였던 여호수아의 세대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저들은 천국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원래 어둠에 속하여 원수의 나라에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믿음으로 우리에게 와서 거듭남으로 저들은 그곳 자신의 영역(바운더리)에 우리의 천국이 들어서게 했다. 그러므로 원래 천국이었던 세상은 사탄의 아래에서 어둠이었다. 그런데 그 어둠을 침노하여 천국으로 만드는 방법은 한 영혼이 돌이켜 우리에게 전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천국 백성이 되면 천국이었다, 어둠이었던 그 땅은 침노를 당한다. 그래서 천국은 침노를 당한다고 표현했다. 구약 여호수아의 침노를 이해하고 있다면 이를 이해할 수 있다. 그 천국이 열방의 끝까지 전파되고 수많은 영혼들이 돌아오면 세상에는 우리의 나라( 天國 =하늘나라)가 편만해진다. 그런데 그렇다 하여 세상의 어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두움은 마지막 발악을 하며 우리의 백성들을 죽여 우리의 나라를 멸하려 한다. 그러나 마지막 나 예수가 재림하여 옛 세상을 멸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열며 새 피조물인 두 번째 아담의 후손들을 통해 그 세상을 다스리게 한다. 그곳의 중심에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이 있다. 새 예루살렘의 왕은 나 예수다. 나 예수의 위에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신다. 그리고 그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은 새 피조물로 거듭나 언제나 성령이 그들과 함께 한다.


그래서 아이부터 노인까지 아무도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인지 물을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온다.




01.3.2.3.15.6.7. 거짓(개) 이스라엘: 인종 청소주의자



다윗 혈통 왕국의 재건은 하늘나라가 아니다. 그것은 구약의 이스라엘 중 나 예수를 죽인 사단의 회가 믿은 어리석은 성경 해석일 뿐이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결코 회복될 수 없다. 그들은 최종적 심판을 당하여 그 나라가 약 2000년 동안 회복되지 못했다. 그 민족은 혈통이 섞여 더 이상 유대인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민족 자체가 없어진 것이다. 그 뜻도 모르고 계속하여 이스라엘인이 아닌 자들이 이스라엘의 거짓 종교에 미혹되어 자칭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건국하였는데 저 나라는 그냥 세상의 왕국일 뿐이요, 우리의 나라와는 상관도 없다. 이미 이스라엘 민족 또는 유대인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저들은 순혈을 주장하지만 자신들도 순혈이 아니다. 자신들의 피도 이미 이방인들의 피로 희석되었으며 자신들도 99.9999999999999% 이방인이다. 그런 자들이 순혈을 주장하며 인종청소를 하고 있다. 심지어 나치가 한 행동들이 옳은 행동이라고 말한다. 단지 그 중심의 목적이 게르만족이 아닌 유대인이어야 했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저들은 팔레스타인을 인종 청소하고 있다.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인종 청소하였다. 그와 같이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을 인종 청소하고 있다. 그리고 그 후는 시리아나 요르단을 인종 청소할 것이다. 종국에는 모든 이방 나라들을 인종 청소할 것이다. 저들은 시온주의자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시온과는 상관도 없는 자들이다. 시온산에 세워진 다윗의 성과도 상관이 없으며 모리아산에 세워진 성전과도 상관이 없는 자들이다.


또한 설혹 1~2 명의 순혈 유대인이 있다 해도 저들은 단지 과거의 유물일 뿐이다. 다윗의 성인 예루살렘도 구약의 성전도 모형이었으므로 나 예수가 와 나의 예표인 다윗도 그의 성 예루살렘도 그리고 성전도 폐하였다.



01.3.2.3.15.6.8. 참 이스라엘: 거듭난 새 피조물



그래서 나 예수가 있는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내려온다. 또한 예루살렘 성의 빛은 우리(하나님)이므로 새 예루살렘과 새 하늘, 새 땅에는 빛이 필요 없다. 온 세상이 우리(하나님)의 빛으로 가득함으로 태양도 필요치 않다. 그러므로 세상 자체가 성전이 된다. 또한 새 피조물이 된 자들의 마음이 영원한 성전이 된다. 그러므로 참 이스라엘은 그 구성원이 새 피조물이다. 참 이스라엘을 신약적인 이름으로 호칭하면 교회다. 그래서 교회는 만물 위에서 만물을 통치한다. 이는 태초의 에덴의 질서로의 회복이다. 원래 창조한 대로 회복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구약의 에덴에 비유하여 계시록의 마지막 장들에 나타내었다. 우리(하나님)는 멸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인종청소는 우리의 계획이 아니다. 우리는 구원하기를 원한다. 구원하여 새 피조물이 되기를 원한다.

우리의 나라는 이방인을 멸하지 않는다. 이방인들을 거듭나게 해 새 피조물로 만들고 이방인들이 우리의 나라에 들어와 살게 한다. 그들이 통치하는 자신의 영역은 천국이며 그는 또 다른 영혼을 살려 천국의 영토를 넓혀간다. 이렇게 하면 이방인을 멸할 이유가 없었다. 이방인을 멸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참 성도들이 아닌 율법에 속한 자들이어서 그들의 순결을 유지하기 위해 순혈을 수단으로 사용했다. 단지 거듭나지 않은 구약에 속한 자들을 위한 한도를 가진 왕국이 구약의 이스라엘이었다. 그러므로 거듭나지 않은 자들이 죄에 물들지 않도록 최선의 환경이 필요했다. 그것이 구약 이스라엘의 순혈 제도였다. 단지 이방의 우상과 죄에 물들지 않도록 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나 예수의 나라는 순혈을 주장하지 않는다. 순혈을 주장하였으나 실패한 이스라엘을 보았다. 그러니 우리는 순혈이 아닌 순수를 주장하며 순수 의로운 영혼들을 통해 나라를 이룬다. 죄악에 물들지 않은 순수를 이루는 완전한 복음이 나 예수가 전한 복음이다. 열방정복의 완전한 길은 선교다. 사람을 완전히 변화시켜야 완전한 우리의 법이 작동하는 우리의 나라가 이루어진다. 이렇게 거듭난 우리나라의 백성은 더 이상 우상에게 물들지 않고 세상의 풍조를 따라 공중 권세 잡은 자들을 따르지 않는다. 저들은 죄악에 물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죄악을 퍼트리는 이방인들을 멸할 이유가 없다. 나의 백성이 순수를 지키며 순결하여 이방 죄악에 물들지 않는데 이방인들을 멸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그들이 순혈은 아니지만 그들을 회개하고 거듭나게 하여 순수 의로운 영혼들로 만든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나라가 확장이 된다.

구약 솔로몬 성전이 모형이었듯이 구약 이스라엘 나라도 모형이었다. 진정한 본체가 오면 모형은 없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구약 이스라엘 나라도 진정한 천국이 왔으므로 폐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기다리는 메시야는 오지 않는다.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는 나 예수다. 나를 거부하고 저들이 다른 메시야를 기다리는데 다른 메시야는 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다른 메시야가 와서 세울 것이라 기대하고 있는 개잡종[^2] 혼혈 유대인들의 세계제국도 건설될 수 없다.




01.3.2.3.15.6.9. 나 예수의 나라



그러므로 나 예수의 나라는 이미 그 증거로서 유효한 결실들을 보여주었다. 나의 나라는 결코 이 땅에 속한 나라가 아니다. 로마나 이스라엘과 같은 이 땅에 속한 나라가 아니다. 나의 나라는 땅에 속하지 않고 하늘에 속하였다. 그러므로 나의 나라는 하늘나라다. 바로 천국이다. 세상의 왕국들은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그래서 사람들을 속이고 미혹시킨다. 나의 나라는 사랑으로 모든 것을 내어주는 나라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속일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속여 지배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도 필요하지 않다. 공산주의니 자본주의니 민주주의니 그런 이데올로기는 필요하지 않다. 단지 진실, 진리만이 필요하다. 진실을 깨닫고 원수의 속임과 미혹에서 돌이키는 자들에게 새 생명을 부어준다. 그들은 죄에서 돌이켜 거룩한 자가 된다. 그러므로 저들은 반드시 자의로 돌이킨다. 결코 어떤 미혹이나 속임이 없다. 미혹된 자들은 그 마음이 거듭날 수 없다. 나의 나라는 속임이 아닌 진실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속임 당한 자들은 결코 나의 나라로 전향한 자들이 아니다. 우리의 길은 진실이며 우리의 길은 진리이다.

그래서 신약의 교회는 진리 위에 세워졌다. 진리를 전파받고 회개하여 진리 안으로 들어온다. 그 심령은 성령을 통하여 진리로 채워진다. 이제 더 이상 어둠의 속임은 없다. 저들은 그러므로 어둠의 나라가 아닌 빛의 나라에 속하게 된다. 밝고 환한 곳에서는 어둠의 속임이 통하지 않는다.

저들은 태초와 같이 공동체가 된다. 가족이 되며 형제가 된다. 그렇게 하여 서로가 서로를 약탈하고 지배하는 구조가 아닌 가족 공동체가 된다. 그래서 코이노니아다. 바로 하나 된 공동체다. 에클레시아다. 부름 받은 무리다. 서로 사귐이 있으며 그 사귐으로 하나 된 공동체다. 새 언약의 하늘나라는 교회다. 교회라는 이름은 성경에서 말하는 에클레시아의 일부인 가르치는 기능을 강조하여 이름 붙여진 것이다. 정확한 명칭은 에클레시아, 즉 세상에서 분리되어 부름 받은 공동체다.

이 공동체는 반드시 거듭난 자들로 채워진다. 그래서 이들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의 소유가 아니다. 이들은 하늘의 소유다. 그러므로 이들은 하늘나라에 속한 자들이다. 하늘나라의 백성이며 하늘나라의 아들과 종들이다. 저들은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살아났으므로 저들의 마음은 나 예수의 법과 나 예수의 마음으로 가득하다. 이는 저들의 옛사람이 죽고 나와 함께 다시 살아나 나 예수의 새 생명을 덧입었기 때문이다.


신약을 통해 주어진 나의 나라는 구약의 나라와 같지 않다. 구약의 나라는 세상적 국가의 형태를 취하였다. 처음에는 그것과 좀 거리가 먼 사사나 선지자들이 나와 백성 사이의 중보자가 되는 형태였으나 왕을 구하는 이스라엘의 타락으로 인해 더 세상의 국가와 그 형태가 유사해졌다. 그런데 신약의 교회는 처음 구약 이스라엘의 사사나 선지자가 나와 백성 사이의 중보자가 되는 형태와 가깝다. 그러나 구약보다 발전한 것은 모든 백성이 우리(하나님)와 만나고 우리와 대화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뜻들이 모이고 그 뜻을 수행할 리더와 구성원들의 마음이 모두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에게 있는 자는 성령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약의 교회는 우리(하나님)의 뜻만이 행해지는 곳이 된다.


또한 신약의 하늘나라는 결코 멸할 수 없다. 사람의 마음에 심겼으므로 결코 세상의 군대가 멸할 수 없다. 세상이 믿는 자를 죽여도 그 육신을 벗은 영은 살아 여전히 나의 나라가 된다. 육신을 멸하는 자들은 결코 그 마음과 정신을 멸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의 성도들은 영원히 나의 나라의 구성원이며 영원히 나의 영토다. 또한 저들의 삶의 영역도 영원히 나의 영토다. 그리고 옛 세상을 멸하여 옛 하늘과 땅이 멸함을 받으면 저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피조물로 영원히 새 세상을 통치한다. 그러므로 종국에는 태초와 같이 모든 피조세계가 나의 통치 안으로 들어온다. 그러므로 교회는 모든 만물 위에서 통치한다. 그리고 인간으로 간 나 예수는 인간들의 머리로서 교회의 머리가 된다. 나 예수는 교회의 머리다. 그리고 인간 예수인 나의 위에는 성부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이렇게 원형의 교회는 작동한다. 그러므로 이제 새 세상에는 영원히 사랑만이 존재하고 영원히 죄를 이기는 승리자들만이 존재한다. 죄에 패배하고 엎드러지는 자들은 나의 나라에 들어올 수 없다. 그러므로 가데스 바네아에서 믿음으로 반응하지 않고 불신앙으로 엎드러져 울던 자들이 나의 나라에 들어오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지금도 믿음으로 나 예수와 합하지 않는 모든 불신앙의 사람들은 나의 나라에 들어오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자들이 우리의 나라에 들어올 수 있기를 소망한다. 모든 자들이 구원을 받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다. 모두가 거절하지 않고 초청을 받아들이고 잔치에 참예하는 자들이 되기를 원한다.




01.3.2.3.15.6.10. 구약 이스라엘의 결국



어떤 자들은 구약의 이스라엘은 신약의 교회로 대체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그 한 뜻은 맞으나 전반적으로 보면 성경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어리석은 소경들이다. 구약의 교회는 일시적으로 하늘나라의 모형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악이 관영함으로 저들은 심판을 받았다. 저들은 선지자들을 죽인 것도 모자라 아들인 나 예수를 죽였다. 그 이후에도 회개하지 않고 참 이스라엘인 교회를 핍박했다. 교회가 참된 하늘나라다. 물론 타락하거나 회개하지 않은 거짓 교회가 하늘나라는 아니다. 참으로 거듭난 자들의 공동체가 교회다. 이런 교회를 핍박하고 마지막까지 나 예수가 메시야임을 부인했다. 그래서 저들이 간 길은 심판이었다. 그래서 나 예수는 십자가의 길에서도 예루살렘을 위하여 울었다. 저들이 갈 심판의 길을 보았기 때문이다. 구약의 예표가 사라졌다. 물론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주어진 언약이 폐해진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언약은 나 예수를 믿고 거듭난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유효한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준 언약은 결코 아브라함 자손들의 인종우월주의를 위해 준 것이 아니다. 단지 저들을 통해 나 예수가 오고 저들을 통해 나 예수의 복음이 열방으로 나아가 저들이 복의 근원이 되게 하려 함이었다. 복의 근원이라는 것은 자신들만 나 예수의 복음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열방으로 전파하는 것이다. 근원은 그 자체로는 근원이 아니다. 그 근원지에서 발원하여 열방으로 흘러야 근원이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물이 그 자체로 고여있으면 그곳은 단지 연못일 뿐이다. 흘러나가 여러 곳으로 퍼져야 그 퍼져나간 물들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멸망을 당한 자들은 자신들의 본분을 잊고 가지에서 버려진 자들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구원을 받는 것은 나 예수에게 돌이켜 항복한 자들이 구원받는 것이다. 또한 그 민족 중 많은 자들이 돌이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하여 보라. 이는 이미 과거의 일이다. 이미 이스라엘 민족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들의 혈통도 사라졌다. 지금 이스라엘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은 혈통으로도 믿음으로도 이스라엘이 아니다. 단지 저들은 열방에 존재하는 많은 이방 나라들 중 하나일 뿐이다. 단지 자신들이 혈통으로로 역사로도 더 이상 이스라엘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우기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브라함의 언약을 운운하면서 아브라함의 혈통에게 언약이 있다고 말한다면 어불성설이다.

구약의 성전이 파괴되었듯이 구약의 이스라엘도 사라졌다. 그것도 이미 2000여 년 이전에 사라졌다. 그 이후 이스라엘은 혼혈 개잡종이 되었는데 2000여 년 동안 혼혈이 되었다. 이제 저들의 유전자에는 더 이상 아브라함의 유전자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또한 저들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저버리고 나 예수를 2000여 년 이상 거부하고 죽이는 무리다. 그런데 저들이 어떻게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이라는 것이냐? 저들은 혈통으로도 믿음으로도 아브라함과는 상관이 없는 자들이다.












[^1]: 이 관계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신과 신의 관계가 아니다. 인류의 대표로서의 두 번째 아담과 하나님과의 관계다. 즉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다. 이를 모르고 헬라인들은 영원발생설을 주장하였는데 이는 성경의 의도도 모르고 성경도 유대 문화도 우리도 모르는 자들의 오류다.


[^2]: 이는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을 부르던 호칭이다. 현재 자칭 이스라엘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비교하여도 그 혼혈이 극심하다. 사마리아인들은 그래도 중동인들의 얼굴은 하고 있었다. 혼혈이 있어도 중동인들끼리의 혼혈이었고 혼혈의 대수도 기껏해야 3-4대였다. 그런데 현재 이스라엘은 그 혼혈의 정도가 도저히 저들을 이스라엘인이라 인정할 수 없는 정도다. 하멜의 동료 벨테브레가 한국에 와서 박 씨의 성을 받았다. 그런데 몇 백 년이 지나면서 벨테브레의 서양인 얼굴은 그 자손들에게 나타나지 않는다. 저들은 그냥 한국인 일뿐이다. 유대인들은 이보다 더 희석되어 도저히 저들이 유대인이라 말할 수도 없게 되었다. 조상은 서양인이었지만 현재 하멜의 동료 얀 얀스 벨테프레의 후손인 박 씨들은 더 이상 서양인이 아니다. 저들은 거의 순혈의 한국인이다. 서양인의 피는 0.00000001%만 남아있다. 현재 이스라엘은 0.000000000000000000000000001%의 이스라엘인의 피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저들은 이스라엘인(유대인)이 아니다.

keyword
토요일 연재
이전 25화01.3.2.3.15. 춤추는 자-다윗의 연대기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