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2.3.15. 춤추는 자-다윗의 연대기 19

by 에스겔

# 01.3.2.3.15.6. 순혈과 순수

## 01.3.2.3.15.6.1. 구약의 교회

## 01.3.2.3.15.6.2. 참 교회

## 01.3.2.3.15.6.3. 율법의 종

## 01.3.2.3.15.6.4. 순혈 제국

## 01.3.2.3.15.6.5. 순수의 제국

## 01.3.2.3.15.6.6. 다윗의 무너진 장막

## 01.3.2.3.15.6.7. 거짓(개) 이스라엘: 인종 청소주의자

## 01.3.2.3.15.6.8. 참 이스라엘: 거듭난 새 피조물

## 01.3.2.3.15.6.9. 나 예수의 나라

## 01.3.2.3.15.6.10. 구약 이스라엘의 결국


# 01.3.2.3.15.7. 믿음과 혈통

## 01.3.2.3.15.7.1. 올리브나무 비유

### 01.3.2.3.15.7.1.1. 재배종 올리브 나무

### 01.3.2.3.15.7.1.2. 재배종 올리브나무의 가지

### 01.3.2.3.15.7.1.3. 농부와 우리의 접붙임

### 01.3.2.3.15.7.1.4. 참 올리브나무 비유의 의도

### 01.3.2.3.15.7.1.5. 바울의 선민적 오류

#### 01.3.2.3.15.7.1.5.1. 오류의 역사적 증거

##### 01.3.2.3.15.7.1.5.1.1. 역사적 멸망

###### 01.3.2.3.15.7.1.5.1.1.1. 제1차 로마-유대 전쟁

###### 01.3.2.3.15.7.1.5.1.1.2. 제2차 로마-유대 전쟁

###### 01.3.2.3.15.7.1.5.1.1.3. 제3차 로마-유대 전쟁

###### 01.3.2.3.15.7.1.5.1.1.4. 제1-3차 유대-로마 전쟁의 결과

##### 01.3.2.3.15.7.1.5.1.1.5. 이후의 역사적 멸망

##### 01.3.2.3.15.7.1.5.1.2. 혈통적 멸망

##### 01.3.2.3.15.7.1.5.1.3. 종교적 멸망

###### 01.3.2.3.15.7.1.5.1.3.1. 율법의 완성

###### 01.3.2.3.15.7.1.5.1.3.2. 성전의 완성

###### 01.3.2.3.15.7.1.5.1.3.3. 이스라엘 나라의 완성

###### 01.3.2.3.15.7.1.5.1.3.4. 구약 예언의 성취

###### 01.3.2.3.15.7.1.5.1.3.5. 나 예수의 답

###### #01.3.2.3.15.7.1.5.1.3.5.1. 사도행전 1장

###### #01.3.2.3.15.7.1.5.1.3.5.2. 누가복음 21장

###### ##01.3.2.3.15.7.1.5.1.3.5.2.1. 누가복음 21장의 문맥

###### ###01.3.2.3.15.7.1.5.1.3.5.2.1.1. 누가복음 19장

###### ###01.3.2.3.15.7.1.5.1.3.5.2.1.2. 누가복음 20장

###### ###01.3.2.3.15.7.1.5.1.3.5.2.1.3. 누가복음 22장




01.3.2.3.15.7.1.5.1.3.5.2.1.3. 누가복음 22장


이제 해석의 목적 누가복음 21장의 다음 장인 누가복음 22장을 살펴보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저들은 나(예수님)를 죽이려 한다. 자신들의 자리를 내가 빼앗을 수도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저들이 생각하는 유대교 세계제국을 건설할 자가 아닌데 저들은 최소한 나(예수님)를 그렇게 여겼다. 그들이 최대한 나를 좋게 보아도 사기꾼 메시아였다. 저들의 탐욕이 눈을 멀게 했다. 저들의 판단에 내가 진정한 메시아라면 최악의 경우였다. 그렇다면 정말 자신들의 권력을 빼앗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경우 반드시 나(예수님)를 제거해야 했다. 진정한 메시아라면 그 제거도 어려울 것이므로 최악이었다. 만약 내가 사기꾼이라면 죄책감 없이 죽일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좋은 경우였다. 저들은 나를 죽이기 원했으나 대중들을 무서워했다. 그래서 은밀한 곳에 내가 있을 때에 그것을 알려줄 자를 찾았다. (눅 22:1-2)



가룟 유다


저들은 그래서 유다를 포섭했다. 유다는 은전을 받고 대중들이 없는 은밀한 곳에서 나(예수님)를 팔기로 했다. (눅 22:3-6)



유월절 준비


나(예수님)는 구약 유월절을 지켰다. 유월절에는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고기는 구워서 가족이 함께 먹고 빵은 무교병을 먹는다. 유월이란 '넘어가다(pass over)'라는 뜻이다. 우리(하나님)의 사자가 이집트의 모든 장남을 죽이는 밤에 이스라엘 집은 그 문설주에 바른 양의 피로 인해 예외가 되었다. 그 피를 보고 천사가 그 집을 지나쳐 넘어갔다. 모든 애굽의 첫째가 죽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집은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고 그로 인해 모든 장자가 살았다. 그래서 이것을 기념하는 것이 유월절이다. 양을 잡는 그날에는 발효되지 않은 빵(무교병)을 먹는데 그래서 이를 무교절이라 한다. 무교절은 7일 동안 계속된다. 나는 나의 백성을 구하는 유월절 양이 되어 십자가에서 피 흘리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왔다. 그래서 제자들을 통하여 유월절을 보낼 다락방을 준비했다. (눅 22:7-13)



유월절과 나(예수님)


나는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었다. 구약 해마다 수백 년을 지켜왔던 그 유월절을 이제 내가 이 땅에 와서 지켰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이 유월절 양이 되어 하늘의 유월절을 성취할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식탁에 앉아 다음과 같이 제자들에게 말했다.



유월절 음식(양과 무교병)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에 이 유월절 음식을 너희와 함께 먹기를 원하고 또 원하였다. 16 내가 너희에게 말하니, 유월절이 하나님 나라에서 성취될 때까지는 내가 이것을 결단코 먹지 않을 것이다."



포도주(양의 피)


그리고 포도주 잔을 받아서 감사기도를 드리고 말했다.



"이것을 받아서 함께 나누어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니, 하나님 나라가 올 때까지 나는 포도나무의 열매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결코 마시지 않을 것이다."



빵(양의 살)


또 빵을 들어서 감사기도를 드린 후에 떼어서 그들에게 주며 말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여라."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다." (눅 22:14-20)



유다


"그러나 보아라, 나를 넘겨줄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식탁 위에 있다. 인자는 예정된 대로 가지만, 인자를 넘겨주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제자들에게 나의 십자가에 대해 유월절 양의 피와 살을 통해 말했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룰 가룟 유다에 대해서도 말했다. (눅 22:20-23)



자리 싸움


나는 십자가에서 죽기 위해 유월절을 지키고 있는데 제자들은 그 모든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저들은 내가 말하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는 관심이 없었다. 제자들은 유대교 세계제국이 곧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툼을 했다. 그 밤에 나는 올리브산에서 체포되어 심문을 당하고 다음 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이었다. 진정 나(예수님)의 나라에 속한 자는 나와 같이 목숨을 다하여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싸우는 제자들에게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방인들의 왕들은 그들을 지배하고 그들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자들은 은인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지 않으니, 너희 가운데서 큰 자는 어린 자처럼 되도록 하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처럼 되도록 하여라. 식탁에 앉아 있는 자와 섬기는 자 중에서 누가 더 크냐? 식탁에 앉아 있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너희 가운데 섬기는 자로 있다. 너희는 나의 시련들 가운데서 나와 항상 함께한 자들이다. 내 아버지께서 나에게 나라를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가 내 나라에서 내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시게 하며 또 너희는 보좌에 앉아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이다."



자리 싸움을 하는 자들은 내(예수님)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만약 자신들이 나와 함께 보좌에 앉아 심판할 자임을 안다면, 그 영광을 안다면, 결코 세상의 하찮은 자리들을 두고 다투지는 않을 것이다. 하늘의 영광과 땅의 그 어느 것이 비교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나(예수님)의 임재 앞에서 자신의 마음이 빛에 드러나 있다면 그러한 부끄러운 마음을 품을 수조차 없다. 만약 그 더러운 마음을 없애지 못한다면 결코 나의 임재 앞에서 살 수 있는 소망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차라리 자신을 죽여 이 죄악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소리치며 발작할 것이다. (눅 22:24-30)



제자들(베드로)의 배신


내가 잡혀가면 베드로는 새벽 닭이 울면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베드로를 책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기에 나와 함께 하는 죽음의 공포를 이길 수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가 돌이키고 나면 나의 양을 돌볼 것을 부탁했다. 베드로의 성정을 알기에 그가 나를 배신한 후에는 내 앞에 나오지 못할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사명을 주어 나에 대한 죄책감을 책임감으로 대체할 수 있게 했다. 나(예수님)는 다른 제자들도 목자를 잃은 양과 같이 우왕좌왕하며 두려워할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을 다독이며 그들에게 박해를 피해 도망할 준비를 하라고 했다. 돈과 검을 준비하라고 했다. 목자를 잃은 양들의 두려움을 알고 그들에 대한 염려 때문에 한 말이었다. 그러나 이는 제자들 모두가 나를 떠나 흩어질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베드로도 육신에 속한 자였다. 제자들도 아직 베드로와 같이 육신에 속한 자였다. 그렇기에 저들로 인해 염려한 것이다. 모두 나를 버릴 것을 알았으나 그들도 그러할 수밖에 없음을 알았다.



이제 나는 철저히 혼자일 것이다. (눅 22:31-38)



올리브산 기도


올리브산으로 오르는 길에서도 제자들은 자리 다툼만 했다. 저들은 내가 죽는다는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나는 이제 철저히 홀로다. 성령이 나와 함께 하지만 십자가의 저주의 순간엔 나는 철저히 혼자다. 제자들도 모두 나를 버릴 것이다. 도망갔던 나의 어미와 여인들 그리고 나의 어미 마리아를 부탁한 요한은 돌아와 십자가의 그 자리를 지키겠지만 그들도 내가 왜 죽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외로운 죽음을 맞을 것이다. 그 시간에는 성부도 나에게 저주를 퍼부어야 한다. 아무리 인간들의 죄에 대한 심판의 저주라지만 나는 그 시간에 성부에게도 저주받는 존재다. 그러니 나는 철저히 홀로 된 외로운 존재다. 슬픔의 존재이며 가련하고 비련하고 비참한 존재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기도를 위해 제자들을 피해 조용한 곳에서 눈물과 피 땀을 흘리며 고통의 기도를 올렸다.



기도하고 돌아왔을 때 제자들은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고 잠들어 있었다. 아무도 나의 죽음에 함께 하는 자가 없었다. 나를 위해 기도하는 자도 나의 죽음을 이해하는 자도 없었다. 나는 오히려 저들의 상태를 보며 저들을 위한 염려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찌하여 자고 있느냐? 시험에 들지 않도록 일어나서 기도하여라." (눅 22:39-49)



유다(배신의 키스)


제자들을 위한 염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를 잡으려는 한 무리가 왔다. 그들 뒤에서 유다가 나와서 나에게 입을 맞추었다. 나의 제자가 나를 팔았다. 그가 입을 맞추었을 때에도 다른 이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이제 끌려가 모욕과 채찍을 맞고 죽임을 당할 것이다.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넘겨주느냐?"



상황을 보던 제자들은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 마커스(말코스)의 귀를 잘랐다. 나는 잘린 귀를 붙여주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했다.



"이것까지도 참아라."



그리고 나를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의 경비대장들과 장로들에게 말했다.



"너희가 마치 강도를 대하듯이 검과 몽둥이를 들고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서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는 너희가 내게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너희의 때요, 어두움의 권세이다." (눅 22:47-48)



베드로의 배신


그렇게 나는 잡혀서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갔다. 그 뜰에서 나는 조롱과 심문을 당했다. 다른 제자들은 다 도망갔다. 후에 십자가의 자리에 있었던 요한도 그 자리에는 따라오지 못했다. 그런데 마커스의 귀를 베었던 베드로는 멀찍이 나를 따라와서 대제사장 집의 뜰 모닥불 가에 자리를 잡았다. 그래도 나를 따라온 제자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불빛을 향해 앉아 있는 그를 보고 여종이 그에게 주목하며 말하였다.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어요."



베드로가 부인하며 말하였다.



"여자여, 나는 그를 알지 못하오."



조금 후에 다른 이가 그를 보고 말하였다.



"당신도 그들에게 속한 자요."



베드로가 말하였다.



"여보시오, 나는 아니오."



한 시간쯤 지났을 때에 또 다른 이가 확신하며 말하였다.



"확실히 이 사람도 그와 함께 있었으니, 그가 갈릴리 사람이기 때문이오."



베드로는 갈릴리 사투리를 썼기 때문에 확신한 것이다.



베드로가 말했다.



"여보시오,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그가 아직 말하고 있을 때에 곧 닭이 울었다.



내(예수님)가 돌아서서 베드로를 바라보니, 베드로는 내가 자기에게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라고 한 말이 생각나, 밖으로 나가 심히 통곡하였다. (눅 22:54-62)



성전 경비병들


마지막까지 따라왔던 베드로와의 눈 맞춤으로 나는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혼자가 된 나를 지키던 성전 경비병들은 눈이 가려진 나를 때리며 조롱했다.



"너를 때린 자가 누구인지 맞혀 보아라."



수많은 말로 나를 조롱하며 때리고 모욕했다. 나는 혼자였다. 그래도 성령이 내게 주는 말만을 하며 조용히 있었다. 나는 도살자들 가운데 놓인 어린 양이었다. 내가 잡히던 유월절 밤은 참으로 길었다. 혼자 그 밤을 견뎌내며 보낸 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나는 그 시간 내가 왜 그곳에서 그 슬픔을 견뎌야 하는지 질문했다. 알고 있었지만 나의 마음에서는 그러한 질문이 쏟아져 올라왔다. 만약 성령이 함께 하여 위로하고 기름 부어 주지 않았다면 철저한 인간으로 혼자 서 있던 나(예수님)는 그 시간들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눅 22:63-65)



산헤드린


날이 밝자 더 큰 슬픔의 시간이 찾아왔다. 백성의 장로회,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함께 모여 나를 그들의 산헤드린으로 끌고 갔다.



"네가 그리스도이면 우리에게 말하라."



"내가 너희들에게 말하여도 너희들은 결코 믿지 않을 것이다. 또 내가 물어보아도 너희들은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자의 오른쪽에 앉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너희가 말한 대로 내가 그이다."



"이제 우리에게 무슨 증거가 필요하겠느냐? 우리가 이 사람의 입으로부터 직접 들었다."



이제 나는 저들에게 신성모독죄로 정죄당했다. 그리고 나의 사형을 위한 권력을 가진 빌라도에게 끌려 갈 것이었다. 이제 나에게는 십자가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눅 22:66-71)



이렇게 긴 본문들을 지난하게 살펴보는 이유가 있다. 누가복음 21장과 복음서들의 병행 구절들은 해석에 난해함이 있어, 많은 자들이 혼란스러운 해석을 내어 놓는다. 그러므로 전반적인 문맥을 근거로 명확한 해석을 하지 않는다면 혼돈을 끝내고 나(예수님)의 의도를 밝혀내기 어렵다. 이제 드디어 누가복음 21장의 해석을 향해 발을 내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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