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의 뱃속에서도 인간은 발생함으로부터 살기 위한 투쟁에 돌입한다. 어미의 난소에서 만들어진 난자는 나팔관이라는 관을 통해 자궁에 내보내진다. 그러나 그 난자는 일정시간 안에 아비의 정자를 만나지 못하면 쓸모없이 죽어간다. 그리고 튼튼한 수정란이 되려면 배란되고 나서 될수록 짧은 시간 안에 수정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약하고 힘없는 수정란이 되어 생명으로 자라지 못하고 죽게 된다. 이렇듯 죽음은 인간의 발생과 엮여 있는 숙명이다. 인간은 하나의 세포가 되기 전부터 죽음에 버림받은 자들이다.
정자가 난자를 만나는 과정도 엄청난 투쟁이다. 정자는 난자를 만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달린다. 그 수많은 정자들 중 오직 하나, 죽음의 레이스에서 1등을 한 자만 난자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한다. 그 하나가 난자에 도달하는 순간 난자는 막으로 자신을 덮어버린다. 정상적인 유전자를 가지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의 정자만 난자에 들어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의 정자도 자신의 몸은 들어가지 못하고 유전물질만을 전달할 수 있을 뿐이다. 심지어 자신의 유전물질 중 일부인 미토콘드리아 내의 유전물질은 전달할 수 없다. 오직 DNA만을 전달할 수 있다. 그 정자 외 나머지 정자들도 그 난자의 앞에서 그냥 모두 죽는다. 인간은 가장 기초 단위인 한 개의 세포단위가 되기 위해서도 이렇게 죽음의 레이스를 펼친다. 출발부터 1등을 한 하나 외에는 모두 죽임을 당한다. 물론 이를 통해 아비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전자가 전달되지만 그 시작부터 사실 인간의 잉태는 죽음으로 내몰리는 버림받음의 과정이다. 과연 인간의 정자는 이 과정을 기억하게 될까? 그 과정에서 죽음으로 내몰리는 고통을 당한 자신의 버림받음을 기억하고 있을까? 그러나 기억의 유무를 떠나서 그것이 죽음의 레이스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