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 3.1.3 자궁에 버림받은 자들을 위한 포옹

어미의 자궁에 버림받은 자들을 위한 포옹

by 에스겔

누가 우리를 위로할 수 있을까? 사실 아무도 없다. 세상에 태어나는 자체가 버림받음이다. 그렇게 버림받은 인생에 그 상처로 병들어 가장 힘들 때 우리를 위로할 자는 없다. 마음이 병들면 같이 있는 가족들도 멀리한다. 대부분 마음의 병으로 인해 가족들로부터 분리당한다. 마음의 병은 비정상적인 삶의 행태나 언어적 폭력과 육체적 폭력을 동반한다. 사실 가족들도 그것을 감당할만한 힘이 없다. 병든 세상에 버려진 사람들이기에 자기 자신들을 감당하기도 어려운 우리의 가족이 우리를 감당한 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말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 그들에게 상처받지 말라는 것이다. 원래 그렇다. 원래 세상에 우리는 혼자 버려진다. 그게 원래 그렇다. 그러니 기대를 하지 말자. 기대하면 상처받는다.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자들은 성인이라는 인류의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사람들밖에 없다. 사실 그들도 인간이기에 감당할 수 없다. 잠시 노력할 수 있지만 불가능하다. 그들이 지쳐서 내는 신음에 상처받지 말자. 사실 우리의 마음의 병이 우리가 견딜 수 없어 내는 소리이듯 그들의 신음도 동일하다. 같은 처지에 놓인 우리 중 그 누구도 서로를 위로할 수 없다. 단지 마음에 새기자. 단지 그들도 멀쩡해 보일 뿐 나와 같은 환자의 처지라는 것을.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끊임없는 상처를 입어야 한다. “아니 그 상황에서 나를 버리다니”가 아니라 “아! 당신도 나와 같은 병든 병자일 뿐이구나”라고 이해하자.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상대들의 반응에 분통이 터지고 오열하며 더 많은 상처를 입게 된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자. “당신도 나와 같이 아프군요” “우리 아픈 사람들끼리 그냥 있는 대로 서로를 안아줍시다”
우리 모두는 자연유산이나 낙태의 위협에 놓인다. 누구나 어미의 자궁에 잉태됨으로 버림받는다.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누가 조금 더 참을 수 있는 기질을 타고났느냐의 차이뿐이다. 그러니 우리 서로를 안아주자. 그리고 상처를 주었다면 어쩔 수 없었다며 용서를 구하자. 상처를 준 자에게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안다며 용서하자. 서로 사랑하자. 서로 안아주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서로 포옹하는 것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안아주자. 우리 자신을 이해해 주자. 그때 얼마나 무서웠는지 안다며 나의 절규를 들어주자. 그리고 우리 자신들에게 조금 관대하자. 우리의 병에 대해서도 부끄러워하지 말자. 병원이나 타인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구하자. 누군가 우리를 정신병자로 본다면 그들에게 대항하자. 당신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병자라고. 누구나 가진 병에 증세가 조금 심할 뿐이다.


당신은 태어남 자체로 선택받은 자요 축복받은 자다. 당신이 어떤 아픔을 겪었건 당신은 태어났다. 살았다. 당신은 선택된 자다. 당신은 세상을 위해 세상에 내보내진 소중한 자다.


우리의 조상 아담이 스스로 배신하고 떠난 그 창조자는 우리 모두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내가 치유받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이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수많은 교회가 있지만 이것을 아는 자들은 극소수다. 그 조물자를 만난 자는 소수다. 그리고 그의 사랑을 경험한 자는 더 소수다. 그래서 이 고통 많은 세상에서 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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