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 3.1.4 엄마의 자궁

by 에스겔

앞에서 어미의 자궁에 버려진 자들에 대한 위로를 전했다. 상처를 중심으로 쓰다 보니 잉태됨 자체를 버림받음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사실 잉태됨은 기쁨이다. 생명의 시작이다. 그 생명의 시작을 엄마의 자궁에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바로 포유류들만이 누릴 수 있는 축복인 것이다. 일부 파충류나 어류가 알 대신 다 자란 생명을 출산하기도 하지만 생명의 형태를 갖추고 출산을 하는 유일한 종류는 포유류다. 그중에서 인간은 매달 잉태가 가능한 중대형 포유류에 속한다. 사실 이렇게 자주 잉태가 가능한 중대형 포유류는 드물다. 이것을 인간이 약하기 때문에 생태계의 하위 먹이사슬에 놓인 생물의 특징으로 파악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먹이사슬의 하위에 있는 종류들이 번식력이 강하다. 많이 잡아 먹히기 때문에 많이 번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생태계 최강의 생물이다. 몸 자체로서가 아니라 두뇌와 주변사물들을 사용하여 문명과 기술을 발달시켜 최강이 되는 생물이다. 모든 지구를 유일하게 관리할 수 있는 지능을 가진 생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인간이 먹이사슬의 하위계층이라 매달 임신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은 8~10개월의 임신기간을 가진다. 이것은 하위 먹이사슬 생물들의 특징과는 거리가 멀다. 하위 먹이사슬 생물들은 빠른 번식을 위해 짧은 임신기간을 가진다. 그래야 최대한 많은 번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쥐는 종류마다 차이가 있지만 15~30일의 임신기간을 가진다. 사람은 10개월 가까이 임신기간을 가지므로 쥐에 비해 10~20배 정도 번식에 불리하다. 인간이 매달 임신이 가능한 것은 모든 온도와 환경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라 그렇다.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환경에 맞춰 생물들은 임신과 출산을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동식물들은 봄에 출산을 하여 여름과 가을 동안 새끼를 키워 강하게 한다. 그래야 혹독한 겨울 추위를 이길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이런 추위와 더위 우기와 건기 모든 것을 극복할 지혜가 있다. 만물의 영장, 지상 최강의 생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두뇌는 스스로 제약되어 있는 지금 상태를 벗어나면 혼자서도 지상을 통치할 수 있는 무한대의 슈퍼컴퓨터다. 나사의 과학자들이 인간의 두뇌를 연구하여 낸 결론이다. 그래서 인간은 12개월 내내 임신이 가능하다. 이런 인간으로 지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리고 원래 인간은 유산이나 낙태, 그리고 잉태되지 못하는 열매는 없는 종족이었다. 우리가 인정하건 안 하건 우리의 설계자체를 살펴보면 이렇게 주장하는 성경은 사실을 말하는 것이 확실하다. 태초의 환경에서 인간은 가장 좋은 유전자에 최상의 환경에서 생육했다. 완전한 평화가 있는 환경에서 인간은 당연히 질병도 없었으며 일종의 질병이라 할 수 있는 임신불능이나 유산은 없었다. 이 고통은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다. 이것은 형벌이다. 인간이 이렇게 세상에 버려진 것은 인간 스스로 선택한 형벌이다. 노아의 홍수 시대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인간의 딸들을 만나 결혼했는데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타락 이전의 아담의 아들들이었다. 그들은 에덴에서 성장했기에 그 발육이 뛰어났다. 그래서 그들은 거인이었다. 자연계에서 덩치가 큰 동물일수록 그 수명이 길어지는 것은 일반적이 법칙이다. 100톤의 무게를 가진 북극고래는 그 수명이 268년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도 척박한 북극에서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이다. 태초의 인간들은 거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천년 가까이 살았다. 거친 환경에서 사는 동물과 인간의 수명은 차이가 있다. 인간은 좋은 환경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며 관리하기 때문이다. 또 지금의 환경과 노아홍수 이전의 환경은 비교할 수 없는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거대한 인간들이 천 년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것이 허무맹랑하게 들릴 수 있지만 대부분의 고대사를 기록한 역사들에서는 인간의 수명이 이렇게 길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과학을 탄생시킨 자연법칙을 가진 세상이 우연에 의해 성립되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비과학적인 미신이다. 나는 그것을 어리석은 것으로 치부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특정종교를 옹호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인간이 이런 고통에 버려진 이유를 설명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은 원래 이런 비참한 운명에 놓이도록 설계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신의 아들들로 설계되었다. 스스로 그것을 버리고 비참한 운명에 놓여, 버려진 존재가 되었지만 우리는 완전한 행복과 사랑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그런 것을 갈망하는 욕망을 가지지도 못할 것이다.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다른 생물들과의 차이와 지능은 이 모든 것을 반증한다. 우리는 신을 닮고 신의 형상을 가졌다. 그중 일부가 남아 지금도 지상을 지혜와 지식으로 지배하는 통치자로 살고 있다. 우리가 믿든지 안 믿든지 우리는 지상최강의 가장 뛰어난 존재다. 바로 신의 아들들이다.

우리는 버려진 존재들이 아니다. 우리는 신의 형상을 가진 신의 자녀들이다. 우리는 지금도 지상최강이며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들이다. 우리가 이렇게 버려진 것은 일시적이며 이것은 만회할 수 있는 상태다. 우리는 그렇게 태어났다.


나는 아이들과 수업을 하다, 한 번씩 장난스럽게 말을 한다. “나는 신이 만든 얼굴을 가지고 태어났다” 아이들은 막 웃지만 내 안에서는 알고 있다. 우리 모두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모든 생물이 그렇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나는 한 번씩 이런 사실들에 충격을 받는다. 하루는 내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소름이 돋은 적이 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이 모든 움직임의 메커니즘을 인간은 설명할 수도 없고 스스로 설계하여 만들어낼 수도 없다. 인간은 이제 겨우 그것을 복제하는 수준에 거의 다다랐다. 식물학자들이 종자를 계량하고 종자를 보존하는 수준 정도다. 단지 복제하고 개량하는 수준이다. 그것을 설계하고 만드는 것은 아직도 너무 먼 미래의 일이다. 아마 인간은 그 근원에는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양자역학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현미경을 만들어도 아마 그 기저에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짐작도 할 수 없는 기적의 테크놀로지로 만들어진 세계에 살고 있다. 이런 기적을 보면서도 우리는 그것이 기적임을 알지 못한다. 우리 모두의 얼굴은 신이 하나하나 만든 최상의 것이다. 우리는 그런 존재들이다. 우리는 불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다. 행복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다.


행복하다. 영에 가난한 자들은
행복하다. 슬퍼하는 자들은
행복하다. 온유한 자들은
행복하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은
행복하다. 긍휼히 여기는 자들은
행복하다. 마음이 깨끗한 자들은
행복하다. 화목하게 하는 자들은
행복하다. 의를 위해 박해는 받는 자들은
행복하다. ……………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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