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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아안 Jan 18. 2023

다시 생각하기

  계속해서 가다 보면 목적지가 나올까? 잠시 머물러 쉬는 곳이 있겠지만 또다시 일어나 앞으로 가야 할 것이다. 끝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욕구 때문이다. 인간의 욕심과 호기심은 끝이 없다. 의욕이라는 것이 우리를 이렇게 풍족하고, 편리하게 했지만 반면 더한 갈증과 허기를 느끼게 한다. 잠시도 쉬지 못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그 두려움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도 모르고 다시 도전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멈춰 서서 다시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평일과 주말은 다르다. 5일 동안 똑같은 패턴의 루틴으로 살았다면 주말은 최대한 평일과 다르게 지내려 노력한다. 토요일 아침에 평일과 똑같은 시간에 눈이 떠졌다면 ‘최소한 30분이라도 더 자는 게 주말’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눕는다. 아침 햇살에 비타민 d가 많다고 하니 짧게라도 아침산책을 하고, 창의적이고 지적인 활동은 오전에 해야 한다고 하니 뭐라도 읽는다. 오후에는 외부로 나가야 한다. 따지고 보면 달력에 빨간색으로 표시가 되어 있고 아침에 출근을 하거나 등교를 안 해도 돼서 그렇지 평일 5일과 주말 2일은 물리적으로, 역사적으로, 생물학적으로 모두 같은 하루다. 우리가 구분해서 사는 것이지 날짜가 우리를 구분해서 살도록 강요한 적은 없다. 옛날에 칸트는 요일 구분 없이 매일 22시에 잠들어 05시에 기상하고 무조건 16시에 산책에 나섰다.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 한국전쟁 등 대부분의 전쟁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만 전쟁하고 토요일, 일요일은 좀 쉬자고 협정 맺지 않았다. 퇴직해서 평일 주말 구분 없이 쉬고 계신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끔 토요일에 전화해서 “퇴근했냐”라고 물으신다. 난 “어제 퇴근했다”라고 대답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너무 금요일만 기다리는 평일을 살 필요는 없다. 일요일 저녁을 고통스러워하며 보내고, 월요일 출근해서 정신없이 오전을 보내면 곧 점심이다. 식당에서 밥 먹고 나오며 동료가 “아직도 월요일이야?”라고 탄식하는 말을 들으면 예전엔 ‘격하게’ 공감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사는 게 뭐 있나, 그날이 그날이지 않을까’라는 느낌이다. 그날이 그날이다. 너무 욕구하지 말자.


  삼성 이병철 회장은 사원을 면접할 때 관상을 잘 보는 무술인을 대동했다고 한다. 평생 사업하며 인재 발굴, 인재 개발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스스로의 안목을 못 믿어 관상쟁이를 모셨다니 오히려 겸손하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 보는 눈’이 그만큼 중요하다. 세상엔 살짝 과장해서 모래알만큼 많은 사람들이 있다. 구글을 검색하면 세계 인구가 77억 명쯤 된다고 하는데 그 양이 상상도 안되고 믿기지도 않는다. 하여튼 그 수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사람 보는 눈’의 수준과 실력에 따라서 생사화복, 희로애락이 달라진다. 살아가면서 힘든 순간은 일보다 ‘사람’에게서 촉발된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만나게 되는 사람이 나에게 귀인인지, 범인인지, 악인인지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일 때문에 위기가 오는 게 아니고 사람 때문에 위기가 온다.


  의지하고 신뢰했던 사람이 등에 칼을 꼽는다. 두 번 꼽혀 봤는데 그중 한 번은 좀 아팠다. 어딜 봐도 믿음직하고 유능한 부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원해 인재로 키우려고 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밤 9시에 “잠깐 집으로 찾아와 긴히 상담을 하고 싶다”라고 해서 허락했다. 문을 여는 순간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죄송합니다”를 반복했다. 그저 “죄송합니다”만 반복했다. “다시는 무릎 꿇지 말라”라고 의연한 척 보냈지만 손이 떨렸다. 그날부터 몇 날 며칠 잠들 수 없었다. 등에 꽂은 칼을 비틀어 더 쏟게 할까 봐 겉으로는 늘 의연하고 침착하게 상황을 관리했다. 내 안목 없음을 탓하며. 그 후로 사람을 볼 때, 오랜 시간을 동고동락하고 아무리 성실한 모습을 보여도 쉽게 믿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사람은 쉽게 단정해서는 안된다. 신중하게 인내하며 바라보고 판단해야 한다. 사람 보는 눈이 없으면 한방에 훅 갈 수도 있는 게 인생이다. 그걸 배웠다.


   다시 생각한다는 것은 신중함, 진지함, 멈춤, 사색, 숙고, 느림, 겸손 등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자만이 아니라 의심을 통한 돌아봄(회의), 성급함이 아니라 경청과 유보를 통한 꼼꼼함, 여유 있는 섬세함으로 보다 완전하고 행복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물어 경청해야 하는 때도 있다. 하지만 진공 상태의 두뇌와 우주 속 공간 같은 마음으로 온전히 침잠하여 멈춰 서서 생각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자꾸 막힐 때가 그 때다. 다시 생각해야 할 때다.

다시 생각해야할 때(출처: 블로거 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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