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
“사람들이 선행을 통해 사랑을 받을 수는 있을지라도,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결코 존경을 받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최대의 선행도 그럴만한 품격에 따라 행해졌을 때만 사람들을 영광되게 하는 것이다”(칸트, “실천이성비판”, 아카넷, p.289.)
칸트의 일화 중 여전히 가슴을 울리는 것이 있다. 그는 평생 특별한 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살았다. 당시 남성의 평균수명이 40세 중후반이었는데 칸트는 80세에 영면에 들어갔다. 보통사람의 두 배 정도 긴 시간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보냈다. 그런데 ‘세월에 장사 없다’고 말년에 이르러 쇠약해진 몸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주치의가 왕진을 왔는데 기력이 거의 없던 그는 침대에서 천천히 겨우 일어나 예를 갖추려고 한다. 주치의가 몸 둘 바를 몰라 어서 눕기를 청하지만 그는 여전히 버티며 서있다. 아직 인사의 예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지켜보던 하인이 주치의에게 말한다. “주인님은 선생님께 예를 갖춰 인사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러면 누우실 것입니다.” 주치의는 그의 품격 있는 태도에 감격하고 눈물 흘리며 고개 숙인다.
보통은 누군가에게 친절하거나 호의를 베풀면 좋은 관계가 유지되고 세상 일이 협력해서 잘 되어갈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은 게 인생이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사람은 사람을 목적 그 자체, 마땅히 존경하고 존중받아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사람을 대할 때 한낱 수단으로 바라보는 인간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아주 쉽고 빈번하게 발견할 수 있다. “세 번 참으면 호구된다”는 말이 있다. 상황에 따라서, 직위나 입장에 따라서 참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 경우가 없을 수 없다. 호구되는지 알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의 수단이 아니다. 목적 그 자체, 신성한 인격을 갖고 자유의지에 의해서 판단하고 선택하며 유일하게 존재하는 주체인 것이다.
칸트에게서 배우는 삶의 태도는 어지러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그의 존재방식은 지금, 여기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의 존재목적에 집중하게 한다. 칸트는 “인간을 한낱 수단으로만 대하지 말라”라고 한다. 대상(사람)에 대해 내 의지대로 하려 하지 말고 간섭하지 말라고 한다. 동시에 간섭받지도 말라고 한다. 단지 내가 대상에 대해 할 수 있는 행위는 “우리는 모두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향상성을 갖고 살아야 하는데, 그때 내가 뭔가 도울 수 있는 것이 있으면 도와야 한다”는 것이 칸트가 말하는 타인과 나와의 관계성이다. 스스로를 소중한 인격체로, 스스로가 정한 도덕법칙을 지키고 자유의지와 자율에 기초하여 행복함과 최고선을 향해 품격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남 신경 쓰지 말고 너나 똑바로, 최선을 다해서 살라는 것이다.
칸트는 그저 누가 시키는 대로, 누군가가 정해주는 일을 열심히 하려 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하고 싶은 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 장소에서, 내가 하고 싶은 방법으로, 내 주관을 갖고 주체자로서 하라고 말한다. 주변인으로 여러 사람 중 하나가 아니라 (오로지) 나를 중심으로 상황과 대상을 바라보고 지금 내가 여기에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 의미를 정의하라는 것이다.
내가 정한 행복, 내가 정한 성공, 내가 정한 윤리, 내가 정한 최고선에 따라 품위 있게, 위대하게 살라는 것이 칸트가 일생을 통해 주장한 삶의 태도다. 그렇게 완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다가, 최선을 다해서 할 만큼 하다가 ‘저 하늘의 빛나는 별’이 되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