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이별은 없다.
나는 일요일에 아빠랑 동전노래방을 갔는데
월요일에는 응급실에 누워있는 차가운 아빠를 봤다.
불과 열몇 시간밖에 안 지났는데 생과 사가 지나간 시간이 이렇게나 짧다.
그날은 엄마가 아파트 청소일을 그만두기로 한 마지막 날이었다.
아빠는 엄마와 아빠가 받을 국민연금과 지금까지 모아둔 돈 등이
앞으로 살아가는 것에 부족할 것이기 때문에 본인이 일을 해야 된다고 말하면서
계속 나갈 돈에 대해서 생각했다.
자동차 보험료, 기본 암 보험료, 앞으로 생활비, 자동차 톨비, 주유비, 등등
그럴 때마다 나는 돈걱정 안 하는 사람도 있냐고
부자도 돈걱정한다고
앞으로 씀씀이를 줄이면 된다고
아빠 자동차도 더 나이 들면 못 끌고 다닌다고 그럼 돈 드는 거 줄어드는 거라고.
아빠는 약간 너털웃음 지으며
네가 생활비 좀 줄래 그러면? 했다.
나는 당장은 못주는데 돈 좀 더 벌면 드릴게. 했다.
그때 그냥 카드든 돈이던 더 드릴걸..
엄마는 마지막 일을 마치고 오후에 왔는데
안방에 에어컨을 틀고 아빠가 화장실에서 볼일 본다고 생각했다.
씻고 좀 쉬다가 안방 쪽을 갔는데 화장실 쪽에 문이 열려있는데 변기에 아빠가 없어서
그쪽으로 갔는데 문뒤쪽에 아빠가 주저앉아있어서 놀라서 보니
목에 굵은 줄이 감겨있어서 얼른 풀고 119에 신고했다고 한다.
119에서는 엄마에게 구급대원이 갈 때까지 심폐소생을 하라고 했다.
엄마가 좀 더 빨리 봤으면 살아있었을까?
내가 점심에 전화라도 해봤으면
전날 따뜻한 말 한마디 더 했으면?
꼬리를 무는 생각들은 모두 후회와 자책이었다.
그러면서도 아빠가 잠든 듯이 누워있는 모습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만약 미디어에서 들은 듯 보기 힘든 모습이었으면 더 힘들었을 거 같다.
경찰서에서는 우리가 응급실에 있을 때 집에 들어가 여러 가지 조사를 했는데
혹시 모를 타살혐의점 등을 조사하는 것 같았다.
나는 유서는 없냐고 물었지만 그런 건 없다고 했다.
집에 가서 아빠 지갑, 서랍, 장롱, 다 뒤졌는데
지갑에는 우리 가족사진이 있었고, 화장대 쪽에는 아빠 담배가 놓여 있었다.
담배를 열었는데 딱 한 개비만 피운 새것이었다.
아빠는 하루에 한갑넘게 피는 사람인데 한 개비만 폈다는 게 갑자기 가슴이 미어졌다.
뭐가 그렇게 바빠서 , 평소에 담배 줄이라고 할 때는 그렇게 말도 안 듣더니..
이도 두 개를 최근에 뺐다. 임플란트 한다고,
두 개 금니였는데 두개 팔아서 얼마 받았다고 자랑하면서도
임플란트 비용이 얼마라고 어렴풋 얘기했었다.
임플란트 예약도 그다음 주였는데. 그거라도 하고 가지
경찰관은 응급실에 와서 시신을 보고 자살. 타살혐의점 등을 조사하는데
엄마와 나에게 목에 선명하게 흔적이 있기 때문에 자살로 본다고
하면서도 검사가 작성해 주는 검시필증이 있어야 입관을 하고 장례를 치를 수 있다고 하였다.
검시필증은 그다음 날 나오니까 꼭 받아야 한다고 그래야 장례 치를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남편은 정신없는 엄마와 나를 대신해서
장례식장 예약과 화장터 예약을 하고 여러 가지 결정사항을 알려주었다.
경찰조사를 마치고 집으로 모두 모였을 때 남편이 말했다.
“영정사진을 골라야 되고, 부고문자를 돌려야 돼”
영정사진이라니.. 있을 리가 만무했다.
앨범에 들어가서 아빠가 나온 사진들을 찾아봤다. 작년쯤 아귀찜 먹으러 갔을 때 찍은 웃는 독사진이 있는데
행복해 보여서 그걸로 선택했다. 요새 기술이 좋아서 이런 사진들도 옷도 양복으로 바꿀 수 있고 영정사진스럽게 해 준단다.
사진을 받아보면서도 현실감이 없었다.
부고문자는 아빠 핸드폰에서 일일이 사람들을 클릭해서 보내야 됐는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보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힘들었다.
아빠 핸드폰에 통화녹음 기능을 해두었는데, 듣다 보니 가슴이 미어졌다.
들을수록 준비된 죽음이라기보다 갑자기 순간 밀려온 감정에 간 것 같아서 안타까우면서도 미치겠는 마음이었다.
다음 달에 같이 병원에 약 타러 가기로 했었는데
본인에게 맞는 약을 골라가며 먹기도 했는데 녹음 듣다 보니 동네 약국에 약을 따로 주문하기도 했었다.
그것도 불과 일주일도 안된 녹음이었다. 계획된 건 아니라는 거다.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상조회의 개념을 딱히 체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월급에서 따박따박 나가는 상조회비, 어차피 나는 상관없는 돈이라고 생각했는데 참 사람일 모른다.
남편과 제부 회사는 대기업이다 보니 상조회에서 많은 것들을 해주었다.
장례지도사부터 시작해서 도와주시는 이모들, 일회용품, 등등
대기업의 존재감이 크게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나를 대신해 여러 가지 일을 대신 처리해 준
남편한테는 정말 고맙고 다시 한번 가족 됨을 새삼 느끼게 되는 계기였다.
준비 없는 이별에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여러 가지 결정들이 다가왔지만 덕분에 좀 수월했다.
장례 3일
아빠는 4남 1녀 중에 넷째였다.
할아버지는 아빠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치매가 있으셨고 내가 대학생 때 돌아가셨다.
아빠의 형제들은 모두 경상도에 살고 계신데 장례 첫날부터 올라오셨다.
큰아빠는 아빠에게는 거의 아버지 느낌이었고, 내가 느끼기에는 꽤나 가부장적이셨다.
작은 아빠는 아빠가 젊었을 때 작은 아빠 재수학원비를 주셨는데 지금은 공무원 은퇴하시고 귀농생활을 하신다.
장례식장과 유골안치를 상의 없이 모두 우리 집 근처로 한 것이 좀 못마땅하신 눈치였는데
엄마는 우리가 가려면 가까운 곳으로 가야지 경상도권에 마련하면 어떻게 가겠냐고 하였고 나도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이런 상황을 맞닥뜨린 것도 처음이고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얼떨떨하여 사고가 정지된다는 느낌이 이런 걸까 싶었다.
모두 결혼하고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었는데 반가움보다 아빠와 닮은 얼굴새와 말투에 모두 슬픔이 자리 잡아서
계속 눈물이 났다.
큰아빠는 아빠 영정사진에 대고 아주 속상해하시며
내가 너한테 절해야 되냐고, 역정을 내셨다.
우리한테는 이렇게 입관 전에 장례먼저 하는 게 어딨 냐고 죽기만을 기다렸냐고 하였다.
가뜩이나 슬픈데 정말 상처받았다.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지.
작은 아빠는 나중에 나에게 와서 큰아빠도 슬프고 힘들어서 저런 소리 하시는 거라고
너희가 이해하라고 하셨다.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좀 벗어났지만 그걸 따질 여력도 없었다.
그리고 또 큰아빠는 아빠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 거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막상 나조차 받아들이지 못한 죽음에 대해 조문객들에게 설명할 용기도 없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준비가 안됐다.
또 힘들었던 부분은 장례 하는 3일 내내 임신유지 주사를 맞으러 저녁에는 산부인과에 가는 일이었다.
엄마는 나를 많이 걱정했는데 나도 걱정되면서도 슬퍼하지 않을 수도 없기에..
결국 장례 이후 두 번째 유산을 하게 되었다.
친구들과 직장사람들이 왔을 때마다 갑자기 화장실에 쓰러진 아빠를 엄마가 발견했고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라고 같은 설명을 반복하면서도 매번 눈물이 계속 났다.
한편에는 말하지 못한 사실들을 삼키고 우느라 턱이 얼얼했다.
밥을 먹으면서도 모래알을 씹는 느낌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실감하면서도 이렇게 밥을 먹고 있는 꼴이라니
밥이 넘어가니? 자책도 하게 되었다.
영정사진 쪽 아빠는 너무 밝게 웃고 행복해 보였다. 그 모습에 화가 나면서도
드라마 같고 꿈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내일 꿈에서 깰 것만 같고, 다시 어제로 돌아간다면 아빠얘기를 더 잘 들어줄 텐데 역시 마무리는 후회다.
내가 제일 두려웠던 순간은 입관이다.
이미 응급실에서 마지막을 보았지만 뭔가 믿기지 않는 죽음을 다시금 봐야 된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동생은 입관 때 아빠를 처음 마주하는 거라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입관 전에 수의와 유골함들을 고르라고 장례지도사가 왔다.
수의의 재질과 종류 등을 설명하고 있는데 대뜸 큰아빠가 그래서 얼마라고? 가격만 얘기하소!
역정 내는 소리로 말했다.
장례지도사는 내 또래 정도 돼 보이는 젊은 사람이었는데 당황하며 가격을 얘기해 주었다.
나는 수의가격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삼베가 제일 저렴한 15만 원대였고 비단 쪽으로 갈수록 50만 원? 점점 비싸졌다.
큰아빠는 어차피 화장할 건데 비싼 거 할거 뭐 있냐고 삼베로 하라고 하셨다.
나중에 큰아빠는 장례지도사 요새 다 장사치라고 가격 얘기 안 하고 눈치 삭 보고 있지 않냐고 하시는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장례식도 다 돈이구나 돈 없으면 못하는구나, 아빠는 그렇게 돈돈하더니 장례식 비용은 아까워서 어쩌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입관하는 곳에 도착했다.
할머니 때는 참관실(?) 같은 곳에서 좀 멀리 마주했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가까웠다. 꽃관 같은 곳에 아빠가 누워있는데 응급실에서 봤던 모습보다
좀 더 편안해 보였다.
입도 다물고 있고 눈도 감고 있고 그냥 자는 거 같아서 이상했다.
진짜 그냥 자는 거 같은데.. 했다.
하지만 관뚜껑을 닫기 전에 장례지도사가 아빠몸을 묶는데
굳은 팔을 힘들게 모아 묶을 때 아, 돌아가셨지 , 몸이 저렇게 뻗뻗해 졌지.
실감을 했다가 못하다가 매 순간 그러고 있었다.
그렇게 아빠는 우리 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