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대만으로 떠났다.

1. 작은 이별, 새로운 시작

by 뚜니

"혹시 화어문 장학생 결과 발표 되었나요?"


"학생, 아까 오전에 전화하지 않았어요? 발표 나면 연락드릴게요."


한숨을 푹 쉬며 전화를 끊었다. 시계는 벌써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담당 선생님이 분명히 오늘 나온다 했는데. 혹시 떨어진 건 아닐까. 쿵쾅대는 심장소리가 내 귀에도 들릴 만큼 울려왔다.


간절함이 통한 걸까. 장학처의 연락보다 국제교류처의 연락이 먼저 왔다.


"축하해요. 합격했습니다. 관련 서류는 이메일로 보내줄 테니 확인 후 제출해 주세요."


1년 간의 고생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누군가 대학 생활동안 꼭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 물으면 나는 망설임 없이 교환학생이라고 답하곤 했다.

그렇지만 인생은 한 치 앞도 모른다더니. 전혀 예상치 못한 전염병의 창궐로 수없이 합격하고 미뤄지기를 반복한 끝에 결국 마지막 학기까지 끌고 온 것이다.


장학생 비자로 대만에 갈 수 있는 화어문 장학생이 된 날, 밤을 꼴딱 새우며 눈물을 삼키던 여러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비행기 표와 방역 호텔을 예약하고 당분간은 못 볼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니 어느덧 출국일이 훌쩍 다가왔다.


"다치지 말고 항상 조심하고. 우리 딸, 잘 갔다 와!"


국제 정세가 불안한 이 시기에 타국으로 자식을 보내는 것이 걱정되었는지 엄마는 끝내 눈물 한 방울을 떨궜다.


덩달아 눈시울이 뜨거워져 얼른 출국 심사장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멀리, 이렇게 오래 떨어지는 건 처음이라 뜨거워진 눈가를 괜히 옷소매로 조심스럽게 훔쳤다.

20220820%EF%BC%BF093400.jpg?type=w580 사람이 이렇게 없는 비행기는 또 처음이었다.

먼저 입국했던 다른 사람들의 말처럼, 대만의 방역은 굉장히 엄격했다. 도착하자마자 교육부 직원이 명단을 확인하더니 코로나 검사 키트를 주었다. 그 시절 한국은 여전히 코를 찌르는 방식이었는데, 대만은 침을 일정량 모아서 제출하면 된다는 것이 내심 신기했다. 이후 소독액 샤워를 거쳐 방역 택시 타고 방역 호텔로 이동했다.


도착한 방역 호텔은 신베이 싼총 구에 있는 어느 조그마한 호텔이었다. 어차피 7일 동안 갇혀 있어야 하는 호텔이니 비싸서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 예약했는데, 생각보다 매우 괜찮았.


방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3일이 지나고 4일째 되는 날, 외출 허가를 받고 이민서에 통일 번호를 발급받으러 갔다. 씽씽 달리는 오토바이들과 알록달록한 한자 간판을 보며 비로소 내가 대만에 왔다는 걸 실감했다.

20220825%EF%BC%BF110943.jpg?type=w3840 첫 외출의 온도와 습도를 똑똑히 기억한다. 너무 더웠다.


7일간의 격리 생활을 마치고 학교로 가는 택시를 타기 전에, 친절했던 호텔 데스크 직원에게 어눌한 중국어로 유학 생활의 첫 시작을 친절하게 대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직원은 웃으며 "歡迎來到臺灣。 祝你留學生活一帆風順!(대만에 온 걸 환영합니다. 유학 생활이 순조롭길 바라요!)"라 말해주었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새로운 시작이 설레는 순간이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