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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쌍이 May 22. 2024

삼겹살 2인분 주세요

나의 창작 동화

 끼이익, 쾅!

 눈앞에 불빛이 번쩍거리더니 큰 소리가 났다. 자꾸 잠이 오려고 한다.


  ‘어흠, 너무 졸리다.’

 엄마가 입만 열면 하는 소리. 곧 피곤한 모습으로 돌아오겠지.

 밥을 퍼 식탁에 앉았다. 혼자 먹는 아침밥이 이젠 익숙하다. 휑한 식탁에 밥그릇만 덜렁 올려져 있는 게, 나처럼 외로워 보였다. 얼른 일어나 다른 그릇에 국을 담아 왔다. 그러고는 밥그릇 옆에 바짝 붙였다. 밥을 막 입에 넣으려는데 엄마가 들어왔다.

  “어흠, 졸리다. 찬아, 밥 먹고 있어? 삼겹살 구워줄까?”

  “아침부터 뭔 삼겹살이야.”

  “삼겹살 먹는 시간이 뭐 따로 있나?”

엄마가 스티로폼 상자에서 테이프를 찍찍 떼내며 말했다. 그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그거 반품된 거지? 또야?”

짜증이 확 올라왔다.

  “아니이, 배송이 늦지도 않았는데. 출근했다고 물건 안 받는다잖아…….”

  “그래서, 돈 물어주고 들고 온 거야?”

  “어차피 반은 부담해야 하는데, 우리가 먹으면 되지.”

  “와, 어이없네. 뭐 그런 사람이 다 있어!”

나는 분해 씩씩거렸지만, 엄마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흥얼거리며 말했다.

  “그런 사람, 이런 사람 다아아 있지! 맛있겠지? 한 점 구워줄까?”

 엄마가 웃으며 길쭉한 삼겹살을 내 눈앞에 살랑살랑 흔들었다. 익살스럽게 엉덩이를 좌우로 움직이면서.

 "됐어."

 엄마의 그런 행동이 못마땅했다. 어떤 상황이든 좋게 생각하고 웃어넘기는 게, 늘 불만이었다. 그래서일까? 요즘 들어 말이 삐딱하게 나갔다.

 아빠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난 뒤, 엄마는 혼자 택배 일을 한다. 원래는 아빠와 함께하던 거였다. 엄청나게 컸던 택배차는 작은 트럭으로 바뀌었고 엄마가 운전대를 잡았다. 주변 사람들은 여자 혼자 힘들겠다며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시선 따위가 밥 먹여주지 않는다고 했다. 도리어 밤을 새워가며 더 열심히 일했다. 새벽 배송을 하는 게 차도 안 막히고, 돈도 더 잘 번다면서 말이다. 내년이면 내가 중학생이 된다고, 돈이 더 필요한 것 같았다.

  “진짜 안 먹을 거야? 안 먹을 거면 말고, 나는 아아주 마앗있게 먹어야지. 오호호.”

 엄마의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들고 있던 숟가락을 탁 내려놓았다.

  “그깟 삼겹살. 뭐가 맛있다고. 엄마나 실컷 먹어!”

 집을 나서는데 후회가 밀려왔다. 마지막 말은 하지 말 걸. 삼겹살은 엄마가 최고로 좋아하는 음식이니까.

 어버이날도 엄마의 생일에도 우리는 삼겹살을 먹으러 갔다. <태구네>. 낡은 간판의 허름한 동네 식당. 아빠와 엄마가 처음 만났다는 곳이다. 세 식구가 가던 곳에 이젠 우리 둘이 간다. 나는 그곳에 가면 아빠 생각이 문뜩문뜩 나서 슬펐다. 하지만 엄마는 추억을 함께 먹는다며 즐거워했다. 그곳에서 삼겹살을 먹을 때면 엄마는 그저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학교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집중이 안 됐다. 아침에 엄마에게 쏘아붙인 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화가 많이 났겠지? 미안하다고 어떻게 말하지…. 엄마에게 사과할 방법을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집 앞이었다.

  ‘띠띠딕’

  “우리 아들, 잘 다녀왔어? 하아암.”

자고 있을 줄 알았는데, 엄마가 소파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하품을 연신 해대면서.

  “아흠. 식탁 위에 간식 챙겨놨어. 엄마 조금만 잘게. 하암.”

  “아, 짜증 나 진짜. 그냥 좀 자아!”

아까의 고민은 다 어디로 간 건지. 말이 또 헛나갔다.

  “너 간식 챙겨주려고 기다렸지. 아흠.”

  “내가 알아서 먹어. 이제 다 컸다고.”

  “그래도 내 눈에는 아기 같은걸. 덩치만 컸지, 젖살이 아직 이렇게 통통한데.”

 엄마는 양손으로 내 볼살을 감싸 흔들었다. 거칠거칠한 감촉이 느껴지면서 장미 향이 났다. 어버이날 내가 선물해 준 핸드크림 냄새. 나는 일부러 고개를 획 돌렸다.

  “제발 그냥 자! 쫌!”

밤새 일하려면 자야 할 텐데, 그깟 간식이 뭐라고. 안방 문을 열고 엄마를 밀어 넣었다.

  “아유, 알았어. 알았어.”

  “.... 다녀올게.”

  “그래, 학원 잘 다녀와. 사랑해!

  “.....”

 엄마의 곱살스러운 애정표현을 뒤로하고 집을 나섰다. 마음은 그게 아닌데 자꾸 엇나간다.

 오늘은 영어학원만 가면 돼서 여유가 있었다. 끝나고 정호에게 농구하러 가자고 할까? 학원에 도착하니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인기 유튜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또래 남학생인데, 밤에 엄마 몰래 라면을 끓여 먹었다나? 그 영상의 조회 수가 엄청나단다.

  ‘쳇, 그깟 라면 하나 끓이는 게 뭐 어렵다고.’

 나는 밥 하는 건 기본이고 삼겹살도 혼자 척척 구워 먹을 줄 안다. 밥 차리기 내공이 점점 쌓여가고, 혼자 밥 먹기엔 달인이다. 달인.... 혼자 피식거리고 있는데 정호가 왔다.

  “의찬아, 뭐 재밌는 일 있냐?”

  “아니, 별거 아니야.”

  “너 농구 클럽은 언제 들어올 거야?”

  “아, 아직 말 못 했어. 진짜 하고 싶은데….”

  “내일은 뭐 해? 학교 안 가는데.”

  “글쎄, 할 거 없지.”

내 심드렁한 대답에 정호는 긴 숨을 내쉬었다.

  “하아아, 넌 엄마 일 가시면 혼자 있어서 좋겠다.”

  “그냥, 뭐. 심심해.”

  “우리 엄빠는 내일 어딜 또 가자는데, 나 좀 빼고 가지. 귀찮아 죽겠어. 너랑 농구나 실컷 했으면 좋겠다.”

  “.... 흐흐”

  “나는 언제 내 맘대로 살 수 있을까? 제발 혼자 있고 싶다아.”

  “.....”

 정호의 투덜거리는 소리에 괜히 영어 책만 들췄다. 가족과 함께 하는 일상, 여행, 당연했던 시간들. 그 순간들이 영원할 줄 알았다. 아빠가 건강했을 땐, 우리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주말이면 큰 택배차를 몰고, 몇 시간이든 달려 산으로 바다로 갔으니까.

 어릴 땐 우리 차가 제일 크다며, 차 중에 대장이라고 좋아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 차를 타고 어딜 가는 게 부끄러웠다. 정호처럼 ‘나 좀 빼고 갔으면’ 하고 생각했다. 물론 정호와 다른 이유였지만. 택배차를 보내던 날, 부끄러워했던 나를 후회하며 엉엉 울었다. 하지만 셋이 함께였던 시간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

 불현듯 엄마에게 사과할 방법이 생각났다. 해야 할 일도 생겼다. 아까만 해도 정호랑 농구나 할까 했는데……. 실컷 게임하려던 계획도 바꿨다. 기뻐할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학원이 끝나고 서둘러 일어서는데 정호가 옆에 착 붙었다.

   “의찬아, 편의점 가서 라면 먹자.”

   “미안, 나 빨리 가봐야 해서. 갈게.”

 나는 손을 흔들며 발걸음을 옮겼다. 정호가 뒤따라오며 물었다.

   “너 오늘 수학 학원 안 가는 날이잖아. 어디 가?”

   “아니. 뭐 할 일이 생겨서.”

   “뭔데?”

   “엄마 놀라게 해 주려고. 흐흐. 너도 놀러 가기 싫다 하지 말고 따라 가. 다 너한테 좋은 거야.”

정호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너는 모르겠지. 나도 아직은 잘 모르지만,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거든.

 엄마가 일어나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정호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안방 문에 귀를 살짝 댔다. 다행히 엄마는 아직 자는 듯했다. 얼른 손을 닦고 조심스레 냉장고 문을 열었다. 문제의 삼겹살을 꺼내 소금, 후추를 살살 뿌렸다. 반찬도 꺼내 식탁에 올렸다. 조금 있으면 엄마가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겠지. 그동안 삼겹살을 맛있게 구워내면 엄마가 깜짝 놀랄 것이다.

 분명 좋아할 거야. 기대감에 슬며시 웃음이 났다. 프라이팬을 꺼내는데,

  “이게 다 뭐야?”

  “엄마, 일어났어?”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냉장고 다 털었어?”

  “짠! 엄마 이거 먹고, 출근하라고.”

나는 보란 듯 식탁으로 손을 펼쳤다.

  “하……. 의찬아, 학원 다녀왔으면 좀 쉬다가 공부하지.”

  “나는 그냥…….”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야. 너는 공부나 열심히 해.”

엄마가 어두운 표정으로 낮은 목소리를 냈다. 눈치껏 삼겹살은 나중에 구워야겠다.

황급히 엄마를 자리에 앉히며 말했다.

  “엄마, 공부는 내가 알아서 해. 얼른 먹고 같이 나가자.”

  “같이 나가? 어디를 같이 나가? 도의찬 너어, 진짜!”

  “내일 한글날이라 학교 안 가.”

  “그럼 집에서 숙제도 하고, 공부도 하고! 책도 보고 하면 되지.

요즘 들어 부쩍 공부, 공부, 잔소리가 늘었다. 귀를 막는 대신 얼른 말을 끊었다.

  “같이 나가면 엄마 일도 빨리 끝나고 좋잖아. 나도 집에 혼자 있기 싫어서 그래. 친구들은 연휴라 다 놀러 간다 말이야. 같이 놀 사람도 없고, 혼자 있는 거 정말 싫어!”

 엄마는 어떤 말을 더 하려다 입을  닫았다. 밥상을 두고 정적만 흘렀다. 언제는 공부 못 해도 괜찮다더니. 학교 수업도 잘 듣고, 학원도 잘 다니는데. 더 이상 뭘 어떻게 잘하라는 건지. 정호랑 농구 클럽에 다니고 싶은 것도 꾹 참았는데.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 왜인지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침묵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엄마와 나는 지하 주차장으로 갔다. 엄마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낡고 작은 트럭이 오늘따라 기운 없어 보였다.

  ‘부르릉, 탈탈 탈.’

  “너 진짜 괜찮겠어? 밤새워야 끝나.”

  “알아, 알아. 졸리면 차에서 잘게. 나 진짜 혼자 있기 싫단 말이야. 응? 응?”

 나는 일부러 눈을 더 크게 뜨고, 새끼 고양이 같은 표정을 했다. 두 손도 가지런히 모아 가슴팍에 두었다. 엄마 얼굴에 얼핏 미소가 비쳤다.

   “하아, 그럼 오늘 만이다. 알겠지?”

   “오케이, 레츠 고!”

 

 이렇게 엄마 일을 돕겠다고 나온 건 처음이었다. 지난 어버이날에 한번 나섰다가, 엄마의 손맛을 등으로 느꼈다. 아주 매웠다. 그때도 엄마는 공부나 열심히 하라며 한사코 말렸다.

 물류센터로 가서 짐부터 옮겨 실었다. 땀이 송골송골 맺힐 때쯤 주변이 어둑해졌다. 내가 자고 있던 컴컴한 시간에도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 어둠 속에서 엄마는 작은 몸으로 트럭을 운전하고, 택배 상자를 옮겼구나. 가슴 한쪽을 바늘로 코옥 찌르는 것 같았다.

엄마와 함께 아파트 복도를 돌고, 빌라 계단을 올랐다. 수레를 밀고 끌고, 왔다 갔다 하기를 여러 번. 몇 집이나 남았을까? 나는 벌써 지쳤는데, 엄마는 거뜬해 보였다. 한 손으로 운전하며 다른 손으로 배송지 목록을 살펴봤다. 핸드폰을 터치하는 손이 새카맣다. 갈라지고 거칠어진 손을 보니 왈칵 눈물이 났다. 엄마가 볼까 봐 얼른 고개를 창쪽으로 돌렸다.

   “찬아, 졸리면 한숨 자. 이제 두 군데만 가면 돼. 끝내고 맛있는 거 먹자!”

   “어…….”

   “우리 아들이 도와주니까 정말 빨리 끝나네. 고마워.”

   “거봐. 같이 나오길 잘했지?”

   “그런데 다음부턴 나오지 마.”

   “왜?”

   “그냥……. 엄마는 의찬이가 빨리 철드는 게 싫어. 밥도 혼자 척척 차리고, 알아서 뭐든 잘하는 게 다 내 탓 같아서……. 아까처럼 혼자 있기 싫다고 어리광도 피우고 그랬으면 좋겠어."

   “그럼 내가 학원 적게 다니고, 엄마도 낮에 일하면 되잖아. 진짜 밤에 혼자 있는 거 싫단 말이야. 그리고 나 농구 클럽도 다니고 싶어. 정호랑 같이.”

   “그래…. 생각해 볼게.”

 엄마의 옆얼굴이 슬퍼 보였다. 내가 또 철없는 소릴 했나 보다. 농구 클럽 얘기는 하지 말 걸 그랬다. 엄마는 내가 철드는 게 싫다고 했지만, 나는 아직 아닌 것 같다. 이렇게 자꾸 엄마를 속상하게 하니까.

 빨리 커서 어른이 되면 엄마를 웃게 할 수 있을까? 공부를 더 잘하게 되면 그렇게 될까? 항상 웃는 엄마의 얼굴이 보고 싶다.


  ‘끼이익 쾅!’

 눈앞에 불빛이 번쩍거리더니 큰 소리가 났다. 자꾸 잠이 오려고 한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 엄마랑 얘기를 나눴는데, 이젠 엄마 목소리가 안 들린다. 세상이 멈춘 듯 고요하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 왠지 긴 잠이 될 것 같다. 이 잠에서 깨면 엄마와 태구네로 가야겠다. 엄마와 못 먹은 삼겹살 맛있게 먹어야지.

 '여기 삼겹살 2인분 주세요!'




  <재량 휴업일에 엄마 택배 일 돕다가 교통사고 숨진 중학생 아들>

 작년에  기사를 접하고 썼던 동화입니다. 착한 아이의 일기를 보는 것 같다, 밋밋하고 동화 같지 않다, 주제의식이 없다는 합평에도 불구하고 어설픈 글을 올리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기록.

 착한 아이의 착한 행동을 제 상상과 더불어 그저 기록하고자 함입니다.

 고장 난 신호기 하나 때문에 발생한 안타까운 인재사고. 사고 다발 지역은 수시로 점검하여, 다시는  같은 일로 소중한 생명이 사라지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이 군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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