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법인카드가 사라진 식탁, 만 원의 실존주의

by 빛나라인생아

15년 동안 내 점심의 온도는 법인카드가 결정했다. 메뉴판의 가격표는 그저 숫자의 나열이었을 뿐, 내 삶의 지표는 아니었다. "가장 좋은 걸로 내오세요"라는 말은 부장의 권위였고, 결제 후 영수증을 챙기지 않는 호기는 조직이 내게 부여한 가짜 유능함이었다.



플라스틱 카드 한 장이 주는 마력은 지독해서,
나는 마치 그 식탁의 주인이 나인 양 착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오늘, 광화문의 빌딩 숲 사이 이름 모를 국밥집에서 나는 생경한 감각과 마주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대 앞에 서서 내 개인 체크카드를 꺼내는 순간, 손끝에 전해지는 지독한 현실감. 만 이천 원. 법인카드로 긁을 때는 보이지 않던 그 숫자가, 이제는 내 통장의 잔액과 직결된 생존의 수치로 다가왔다.





법인카드는 일종의 '방음벽'이었다.
세상의 물가와 나의 가계 경제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두꺼운 벽.




그 벽 안에서 나는 고물가 시대의 비명소리를 듣지 못했고, 점심 한 끼에 만 원이 넘는 세상의 비정함을 타인의 일로 치부했다. 조직의 보호막이 걷히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내가 먹는 한 끼의 무게를 오롯이 내 등 뒤로 짊어지게 된 것이다. 내 돈으로 지불하는 점심값은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사회라는 야생으로 던져진 개인이 지불하는 '독립세'였다.





찌질하게도 나는 계산을 마치고 나오며 영수증을 꼼꼼히 살폈다. 예전엔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던 그 종이 조각이, 이제는 내 삶의 궤적을 기록하는 서글픈 증빙 서류가 되었다. 복수하고 싶었다. 점심시간마다 목줄처럼 사원증을 걸고 쏟아져 나오는 후배들의 활기에 대해, 그리고 여전히 법인카드의 온기를 누리고 있을 그들의 안온함에 대해.




하지만 진정한 복수는 그들의 식탁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비용으로 차려진 성찬이 아니라, 내가 정직하게 벌어들인(혹은 아껴둔) 자산으로 내 허기를 스스로 책임지는 것.




법인카드라는 '타인의 자비'에서 벗어나,
비로소 내 삶의 경영권을 온전히 회수하는 일이다.




오늘 나의 복수는 식당 입구에 놓인 무료 믹스커피 한 잔을 집어 들며 완성된다. 예전엔 쳐다보지도 않던 그 달콤하고 텁텁한 맛이, 이제는 내 선택으로 쟁취한 소박한 사치처럼 느껴진다.




사무실로 돌아갈 곳 없는 오후, 나는 길가 벤치에 앉아 종이컵의 온기를 느낀다. 법인카드는 사라졌지만, 대신 나는 내 식탁의 진짜 주인이 되었다. 만 원짜리 국밥 한 그릇이 주는 이 정직한 포만감이야말로, 부장이라는 껍데기를 벗고 마주한 가장 뜨거운 실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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