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들 위치추적 좀 해주세요."

세상만사 지구대 이야기 12.

by 소까니 경찰관

정말 기묘한 일이 있었다.


비가 오는 새벽이었다. 날씨가 정말 우중충했다.


지구대 내에서 소내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젊은 남성 2명과 60대로 보이는 여성 1명이 같이 들어왔다.


남성 중 한 명은 덩치가 꽤 큰 데다 술에 취해 있었다. 그리고 말도 좀 거친 편이어서 본능적으로 나는 얼른 다시 장구들을 챙기고 제대로 고쳐 앉았다.


"무슨 일인가요?"

"아니 이 아줌마 이상해요. 보이스피싱 같아요. 중국인 같기도 해요."


이상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더 자세히 자초지종을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일단 옆에 앉아 보세요. 거 남성분 흥분하지 말고, 진정 좀 해요."


옆에 있던 남성의 친구가 나섰다. 이 사람도 술에 취했긴 했는데 그나마 얌전히 정상적인 사고가 됐다.


"제가 이야기할게요. 일단 들어봐요. 너(친구)는 좀 닥쳐 새끼야."


이야기는 이렇다.


남성 둘이 먹자골목에서 술을 먹고 나왔는데, 어떤 60대 여성 한 명이 인도를 서성이고 있었다고 한다.


되게 애처로워 보여서 뭐 도와드릴 건 없는지 물어봤더니, 여성은 대뜸 핸드폰을 한 번만 빌려달라고 했다고 한다.


'핸드폰을 잃어버렸나 보구나' 생각하고, 덩치 큰 젊은 남자가 핸드폰을 빌려줬다. 그리고 여성은 어디론가 막 전화를 하긴 했는데 상대방에서 전화를 받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핸드폰을 빌려준 젊은 남자가 다시 핸드폰을 돌려달라고 했다.


"아주머니, 상대방이 일부러 전화를 안 받는 거예요. 그냥 핸드폰 주세요."

"그래요. 핸드폰 가져가요. 그리고 우리 아들 전화기록 지워줘요."

"자, 됐죠? 지웠네요."

"제대로 지워줘요."


엥? 이 여성 좀 이상하다. 이런 식으로 말싸움이 시작됐다고 한다. 아니 전화기록을 그냥 지우면 되고, 번호 저장도 안 했는데 무슨 잘못을 했다는 건지 여성은 계속 시비조로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남성들은 최근 외국인들이 내국인 핸드폰을 빌려서 통화를 하고 나서 안 보는 사이 악성앱을 깔고, 보이스피싱을 유발하는 기사를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여성이 수상한 행동을 하고, 눈빛도 맛이 간 것 같아 일단은 지구대로 같이 가자고 하면서 데리고 왔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지금 바로 지구대에 있는 상황이다.


남자들 이야기는 다 들어봤으니 여성의 말을 들어봐야겠다. 그런데 진짜 눈빛이 좀 이상하다. 촉이 온다.


"무슨 일이세요 아주머니, 왜 본인이 핸드폰 빌려가 놓고 이 사람들은 번호 저장도 안 했는데 지우라 마라 하면서 시비를 거셨어요?"


"내가 뭐슬!!! 내 아들, 내 귀한 아들 번호 저장한 거 아니냐고. 그래서 지우라고 한 거임."


"전화기록은 지워져 있는데 이 사람들이 보이스피싱으로 의심하니까 아들이라는 사람 전화번호 좀 줘봐요. 내가 직접 전화해 볼게요."


알려주지 않으려는 여성을 한참 설득해서 아들이라는 사람의 명함을 받았다. 지구대 인근에서 인테리어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전화를 걸어봤다.


"여보세요." 새벽인 시간이라 잠을 자고 있는 듯했다.

"아 예. 지구대 경찰인데요. 방금 모르는 번호로 엄마가 전화하셨나요?"

"네~ 맞아요. 전화 끊습니다."


아들은 바로 전화를 끊어버리고는 핸드폰도 꺼버렸다. 어찌 됐든 확인은 된 듯 보였다. 무슨 사정인지 모르겠지만 아들은 엄마와 엮이고 싶지 않아 보이는 듯했다.


그 명함에 있는 곳을 인터넷 로드뷰로 확인해 보니 실제 운영 중인 곳이기도 했다. 보이스피싱과는 거리가 멀어 보여 남자 두 명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남자들은 본인들이 베푼 호의를 역으로 배신당한 기분을 느껴 매우 화나 있었지만, 뭐 어쩌겠나. 사실은 별거 아니었고, 이 여성이 조금 이상한 사람이었던 것을.


여성에게도 아들이랑 통화했으니까 그냥 가시라고 말을 했다. 그런데 이 여성은 경찰들에게 오히려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당신들이 뭔데 아들하고 통화를 하냐고. 아들 자야 하는데 왜 통화하냐고. 엥? 본인은 이 새벽에 남의 핸드폰으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던 사람이다.


"아주머니 이제 해결됐으니까 집에 가세요. 돈은 있으세요?"


옆에서 남자가 끼어들었다.


"저 아줌마 차 타고 왔어요.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자기 차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정말 이상한 모습이긴 했는데 세 명 모두 그냥 돌려보냈다. 그럼에도 이 뭔가 찝찝한 기분은 가시질 않았다. 남자들은 둘째 치고, 저 아주머니는 대체 뭐 하는 사람이길래 이 새벽에 자기 차를 끌고 다니면서 남의 핸드폰을 빌려서 아들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고. 왜 아들은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으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몇 주가 흘렀다. 그날도 새벽녘이었다.


대기시간에 좀 쉬다가 내려왔는데 그 아주머니가 지구대 내에 또 있었다. 그리고 한 손에는 박카스 한 병을 들고 왔다. 그리고 상황근무자와 말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니, 위치추적을 아무나 해주는 거 아니라고요 아주머니."

"그래서 박카스도 드리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아무나 가 아니고 내 아들이에요. 아들이 살아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요."


또 아들에 관한 민원인 것 같았다. 조용히 상황근무자를 불러서 자초지종을 들어봤다.


이야기인즉슨, 아들이 이상한 사람들과 엮여 있는 것 같은데, 통화가 되고 있질 않다는 것이다. 그 이상한 사람들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정확한 대답은 흐린 채 전혀 연락이 되질 않으니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확실하니 꼭 위치추적을 해야 한다고만 말했다고 한다. 기계처럼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면서.


옳지. 또 아들에게 집착하는 모양이구나. 왜 아들은 전화를 받지 않으려는 걸까. 이 여성의 태도를 보니까 왜 전화를 안 받는지 대충 알 것 같기도 했다.


"아주머니, 저 저번 새벽에 만났던 경찰이에요. 기억하신가요? 아들이 전화를 안 받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 뭐가 납치됐다는 거예요."


"아니 저번에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못된 놈들하고 엮여 있는 것 같아요. 전화를 안 받아요. 납치된 것 같은데, 위치추적 좀 해줘 봐요."


"됐고요, 아들 전화번호 다시 줘봐요. 내가 전화해 볼게요."

"안 가르쳐 줄 거예요. 위치추적만 해줘요."

"위치추적 하려면 전화번호 알아야 한다니까요. 줘봐요."


띠리링. 띠리링. 3번 넘게 전화를 했는데 아들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거 봐요. 지금 납치됐다니까 빨리 위치추적 합시다."

"아주머니, 자꾸 새벽에 와서 아들이 전화를 받네, 안 받네 하시는데, 왜 낮에 안 오고 새벽에만 나와서 그러신가요."

"그건 알 필요 없고 빨리 위치추적 해요."


아들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지역번호로 전화가 가게끔 전화를 걸었다. 어! 전화를 받았다. 또 끊을 거 같으니까 빨리 이것저것 물어봐야 한다.


"여보세요."

"아, ㅇㅇ씨 맞죠? 저번에 전화했던 경찰이에요."

"그런데요?"

"어머니가 또 오셔서 납치된 것 같다고 위치추적 해달라고 그러네요. 전화 좀 받아주세요."

"그럴게요, 엄마 좀 바꿔주세요."


아주머니와 아들이 통화를 하는데, 아주머니가 이런 말을 한다.

"너 왜 내 전화 안 받냐."


그렇다. 아들이 아주머니의 전화를 피하니까 자꾸 집을 나와서 모르는 사람으로 전화를 걸고, 사는 집도 모르니까 위치추적해서 쫓아가려는 것이다. 둘의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아들이 여성을 피하는 것은 확실하다.


"자, 이제 확인 됐으니까 들어가세요."

여성은 분이 안 풀리는지 돌아가지 않고 멍하니 하늘만 보고 있다.

"가세요 얼른. 새벽이에요 아주머니"

대답도 안 하고 문을 쾅 열고 가버린다. 아 맞다! 박카스 한 병. 김영란법에 걸린다. 특히나 저런 여성이 주는 걸 받아먹었다가는 감찰받아야 한다.


얼른 따라 나가서 박카스를 가져가라고 말했다. 그러자 돌아온 대답,

"너나 먹어, 버리든지 말든지."


하... 정말 경찰 하기 힘들다. 프로파일링 수업이라도 들어서 거짓말하는지 안 하는지 알아채는 법을 배워야 하나...




그 박카스는 폐기처분했다. 절대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요즘에는 그 아주머니가 지구대 근처에서 핸드폰을 빌리고 있진 않은 듯하다. 전혀 보이지도 않고 신고도 없다. 아주머니가 지구대에 찾아오지도 않는다.


아주머니와 아들 사이에는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너무 궁금해서 나름의 생각을 해봤다.


아주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아들을 살뜰히 키웠을 것 같다. 품 안에서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그러다 아들이 성장하면서 아주머니의 품을 벗어나고 싶어 했을 것이고, 그럴수록 아주머니는 더 집착을 했을 것 같다. 영화 올가미처럼 말이다(영화 올가미에선 아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끝까지 엄마를 사랑함).


결국, 아들은 전화번호와 주소도 바꾸고 잠적했을 것 같다. 물론 남편이 없는 상황을 가정했다.


충분히 납득 가능한 시나리오 같다. 혼자 정말 생각을 많이 했다. 다른 독자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하다.


어찌 됐든 속사정은 모르는 것이고 그 아주머니도 다시는 오지 않으니 혼자 코난에 빙의한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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