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지구대 이야기 19.
경찰만이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잘못한 아이가 있으면 따끔하게 혼내주는 것!
지구대 주차장에서 한참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주취자인가' 하는 마음에 가까이 가보니,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아이는 울고 있고, 아빠는 무엇 때문인지 딸아이를 엄청 혼내고 있었다.
그럴 때면 딱 직감이 온다. '아이가 잘못했구나!'
보호자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다짜고짜 딸아이를 잡아가라고만 했다.
이럴 때는 보호자도 같이 흥분하면 안 된다. 어떤 사정인지 경찰에게 말을 해주어야 같이 작전을 짤 텐데, 아쉬운 마음이 조금은 든다.
아무튼, 보호자도 정신을 차리고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는데, 딸아이가 문방구에서 물건을 훔쳐서 대신 혼내주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밖은 추우니 일단 지구대 안으로 들어가자고 말을 했고, 걸어가는 동안 보호자와 윙크로 무언의 신호를 주고받았다.
자, 이제 진실의 방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나눠볼 시간이다.
"꼬마야, 몇 살이니?"
"올해 초등학교 3학년돼요. 훌쩍훌쩍"
"무슨 잘못했어?"
"문방구에서 물건을 훔쳤어요."
"어떤 물건을 훔쳤는데?"
"과자도 훔치고, 장난감도 훔치고, 무드등도 훔쳤어요."
"하루에 다 훔친 거야, 아니면 몇 번에 걸쳐서 훔친 거야?"
"왔다 갔다 하면서 훔쳤어요."
"오호라... 상습범이네!! 바로 경찰서 가야겠다. 수갑 차자."
"으어어어어엉. 뿌애애앵"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다. 걷잡을 수가 없다.
보호자인 아빠는 흐뭇한 지 멀찌감치 서서 구경 중이다. 더 세게 혼내라는 듯이 무언의 압박도 주면서.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가 본다.
"왜 훔쳤어? 가지고 싶었어?"
"네..."
"아빠한테 말하면 되잖아. 사 달라고. 왜 말 안 했어?"
"어차피 안 사줄 것 같아서요..."
"그렇다고 네가 그걸 훔치는 건 안 되지. 남의 물건을 훔치는 건 허락되지 않은 행동이야."
"네..."
"문방구 아저씨한테 사과했어?"
"카톡으로 사과했어요."
"직접 가서 해야지, 사과도 카톡으로 하냐, 너네는"
이 정도면 됐다 싶어서 보호자를 쳐다보니, 보호자는 터벅터벅 걸어와서 딸아이를 더 혼내고 만다.
"얼른 수갑 차. 너 안 되겠다. 수갑 차."
당황스럽다. 이 정도 했으면 된 것 같은데... 특히나 이제 초등학교 3학년 되는 여자아이이니 이 정도 훈육이면 알아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기... 아버님. 그만하시죠. 애 잡겠네요."
"아하... 그럴까요?"
간신히 보호자를 말리고, 딸아이를 봤는데 집에 있는 딸이 생각이 났다. 불과 세 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데 '우리 딸도 아빠한테 말하지 않고 물건을 훔치면 나는 어떡하나!'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우리 딸이 물건을 훔치고 와도 내가 지금처럼 제삼자의 입장에서 웃으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맴매를 해야 하나? 순간 동공이 요동을 쳤다.
"저기 보호자분... 제가 좀 더 타일러 볼게요."
"그러시죠."
"꼬마야, 그 문방구 이름이 뭐야?"
"뚱딴지 문방구요."
"오늘은 아빠랑 협의해서 이 아저씨가 봐준 거니까. 이다음부터가 중요해. 꼭 아빠랑 손잡고 문방구로 다시 가. 그리고 아저씨한테 정중히 사과드리고, 다신 안 그러겠다고 다짐도 해. 꼭 문방구 아저씨 눈 보고 이야기 해. 훔치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을 거야. 사과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해. 꼭 마지막까지 네가 마무리해야 해. 알겠지?"
"네."
내 딸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혼내는 것을 마무리했다. 무언가 더 깊이 있는 훈육을 했던 것 같다. 스스로도 뿌듯했다. 마지막은 애플망고 맛 마이쮸로 다독여 준다.
며칠이 지나 주말에 출근하는 날이었다.
주말에는 특히나 자식을 혼내 달라는 부모님들이 자주 방문한다.
벼르고 있다가 주말에 찾아오시는 것인데, 가끔은 우리가 바쁠 때 마냥 오시는 경우도 있어서 난감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재빨리 혼내고, 재빨리 보내야 한다.
점심을 먹고 노곤한 마음에 지구대 주차장을 배회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지구대 주차장으로 외제차 한 대가 거칠게 들어오더니 아주머니 한 분이 내렸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보통 엄마가 아니라는 느낌이 사라락 스친다.
슬쩍 쳐다보고 있는데, 뒷좌석에 남자아이를 거칠게 끌어내리려고 하고 있었다.
"얼렁 내려!!!! 경찰서 가!!!"
"안 가요. 뿌애애애앵"
또 아이를 혼내 달라고 온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 무전에서 신고가 다다닥 3건이 연속으로 떨어졌다.
얼른 나가야 하는데, 저 남자아이 혼내는 서비스 건을 꼭 해주고 가고 싶었다.
슬쩍 차 옆으로 가서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남자아이가 엄마 돈에 손을 댄 것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엄마물건을 훔쳐도 처벌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아이를 데리고 온 것이었다.
이 정도야 뭐... 식은 죽 먹기이니 주차장에서 막간의 참 교육이 들어갔다.
1분 안에 모든 것을 속사포로 쏟아내어 겁을 주었다. 래퍼 아웃사이더에 버금가는 속도였다.
보호자 엄마도 놀란 듯 보였다. '아니 이런 아이들 혼내주는 레퍼토리가 있는 것인가?' 하는 표정이었다.
"어머님, 이제 저희 신고 나갑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리곤 재빨리 신고출동을 나갔다. 사건을 처리하고 돌아와 보니 해당 외제차 모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뿌듯했다.
경찰로서 범인을 잡는 것 외에도 국민들이 원하는,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서비스도 잘 해내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한편, 이렇게 경찰이 겁을 주어서 훈육이 가능한 나이대는 점차 낮아지고 있는 것 같다.
요즘 아이들이 워낙 빠르다 보니, 겁주는 것도 쉽지 않다. 내 기준으로 보았을 때 초등학교 5학년을 기점으로 경찰은 호소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아이들의 2차 성징이 그때쯤 오는데, 이 시기가 오면 냉소적으로 변하고, 경찰이 마냥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한다.
그러면, "동네 보안관 경찰관" , "우리가 밤에 편하게 잘 수 있게 동네를 지켜주는 경찰관" 등의 사고방식은 저~멀리 사라지고, 귀찮은 존재 혹은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존재쯤으로 치부하고 만다.
확실히 동네 초등학교에서 응원편지가 오는 것도 초등학교 4학년이 마지막인 듯하다.
그래도 나는 이 특권을 즐겁게, 효율적으로 즐겨보려 한다. 부모 외에도 누군가는 아이들이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지도를 해야 한다.
그게 바로 우리 경찰관들의 몫이고, 사명이다. 나중에 늙어서 감도 떨어지고, 이상한 소리 했다가 민원 맞기 전에 최대한 많은 아이들에게 효율적인(?) 지도를 해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