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지구대 이야기 20.
세상이 정말 이렇게 까지 야속할 수 있을까.
왜 9살 먹은 꼬마가 주말 오후에 아빠를 가정폭력으로 신고해야만 할까.
지난 일요일, 한가한 주간근무였다.
토요일부터 굉장히 추웠기 때문에 일요일에도 사람들이 밖으로 많이 나오지 않고 집에만 있는 듯 신고사건도 없이 조용했다. 오랜만의 여유였을까. 드립커피도 한 잔씩 내려서 마셨다. 고소한 풍미와 감칠맛 나는 끝맛. 모든 게 완벽했다.
밖에 눈은 내리지 않지만 며칠간 내렸던 눈으로 길바닥은 살얼음이 곳곳에 있었다. 위험했다. '제발 교통사고만 나지 말아라.'라는 생각만 들었다.
주간 순찰을 돌고, 주유도 마치고 다시 사무실에서 잠시 대기 중이었다. 그런데 우리 관내는 조용한데, 타 관내에서는 신고가 물밀듯이 들어왔다.
"뭔 신고야 호동아~"
나는 경장 동생에게 물어보았고, 동생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별거 아니에요. 가폭이네요. 아들이 신고했나 봐요."
아이고 일요일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싶다. 밖에 날이 추워서 못 나가니 집에서 가족을 패고 있는 건가 싶었다. 녹취를 틀어서 들어보았다. 에잇, 신고자가 꼬마였다. 속상했다.
녹취 전문을 들어보니 9살 먹은 아이가 신고를 한 것인데, 엄마와 아빠가 대판 싸운다는 것이다. 몸싸움도 있는 것 같은데 아이의 목소리는 상당히 떨고 있었다. 9살이면 초등학교 2학년 밖에 안 됐을 텐데. 그 어린것이 얼마나 놀랬으면 112에 신고를 했을까.
다행히 해당 관내 순찰차가 3분도 안 돼서 도착한 듯 보였다. 남편과 아내를 분리하고, 신고자인 아들의 진술도 열심히 청취했다.
대상자들은 베트남 국적이었고, 다행히 체류기간이 남아 있었다. 아이는 한국에서 낳은 것 같은데 영특하게 잘 자랐다. 어려움이 있을 때는 당연히 용기 내어 112에 신고해야 하는 것이 맞다. 내가 신고를 나갔다면 그 아이에게 엄청난 칭찬을 해줬을 것이고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후에 해당 관내에 또 가정폭력 신고가 접수됐다.
또 9세 남자아이가 신고를 했다. 아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왜 기분 좋은 주말에 집에서 가정폭력이나 하고 있는 것인지. 한심할 노릇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나한테 잡히면 혼쭐이 난다. 꼭 집에서 행패 부리는 남자들은 용기도 없고, 비전도 없는 사람들이다. 아주 한심하기 짝이 없는 사람으로서 내 눈에는 남자로도 보이지 않는다.
또 녹취를 들어보았다.
아이가 생각보다 차분히 말을 하고 있는 것이 더 안타까웠다. 자주 있었던 일인 것처럼 말을 이어갔다. 접수자는 흉기는 가지고 있는지, 폭행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지, 자세하게 물어보았고, 아이는 차분히 계속해서 대답해 나갔다.
동시에 순찰차 지령은 떨어져 있는 상태였기에 해당 관내 순찰차는 곧바로 출동했다.
녹취에는 아이 엄마가 엉엉 울고 있었다. 정말 서럽게. 남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목소리도 얇은 것이 남자 같지도 않아 보였다.
그렇게 순찰차가 일찍 도착했고, 잘 분리해서 해결한 듯 보였다. 다행히 폭력은 없었고 언쟁이 있던 과정에서 엄마 아빠의 감정선이 과열되니 아이가 불안해 신고를 한 것이었다.
요즘 초등학교에서 어떤 교육을 시키고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용기 있게 잘 대처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 우리네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가정폭력이 매우 흔했고, 가정의 일로 치부해서 공권력이 개입하기 어려웠다. 아니, 다시 말하면 가정의 일이라 치부하면서 개입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면서 가정폭력 또한 '관계성 범죄'의 일환으로 분류돼 경찰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사법부에서도 적극 판결을 내리고 있고 다양한 보호장치도 존재한다.
피해자들은 이 제도를 적극 이용하고, 보호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엄마'들은 112 신고하기를 꺼려한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첫 번째는 자식 때문이다. 자식을 아빠 없는 사람으로 키울 수 없기 때문에 참고 사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렇게 묻고 싶다. 이혼을 했어야 하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와 이혼을 한 후 가정에서 자란 아이 중 과연 어떤 아이가 올바르게 자랄지. 난 당연히 후자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이혼율도 높고 사회적 인식도 많이 개선됐기 때문에 이혼이 더 이상 흠이 아니다. 9세에 아빠를 112에 신고하는 아이들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엄마들이 용기를 내어야 한다.
9세의 아이도 용기를 내었는데, 엄마라고 용기를 못 낼 것이 뭐가 있을까. 행복해야 할 주말에 가정폭력이 일어나는 집은 아이가 청소년이 되기 전에 더 빨리 용기를 내야 한다.
용기를 내기 어려운 엄마가 있다면, 112 전화 상담이나 여성발전센터의 도움을 받기를 권장한다. 본인보다 더 해당 분야 지식이 많고, 경험이 많은 사람의 조언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만 그 가정의 자식들이 올바르고, 건강하게,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