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든 상대와 대응하는 방법

세상만사 지구대 이야기 21.

by 소까니 경찰관

바로 앞에서 칼을 꺼내는 상대를 만난다면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남자라면 누구나 이런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팔을 꺾어서 제압한다, 옆에 떨어져 있는 긴 막대로 상대한다, 자동차 뒤에 숨는다, 뒤돌아서 곧바로 도망간다 등 다양한 상상들이 머리를 스친다. 그런데, 실제로 그러한 순간을 마주치면 생각보다 단순한 행동이 나온다. 마냥 윽박지르게 된다.




윽박지른다? 이 무슨 황당한 행동인지.


구체적으로 말하면 상대에게 악을 지르면서, 위협을 가하면서, 칼을 내려놓으라고 하는 행동이다. 의외로 이러한 행동이 먹힌다.


밤늦게 112 신고를 접수한 적이 있다. 휴먼시아 아파트 장애인주차구역에 고급 외제차가 주차되어 있었는데, 연고가 전혀 없는 한 남성이 차량 전면유리창에 붙어 있는 장애인증이 진짜인지 확인하려고 자세히 보고 있었고, 차주가 지나가다 우연히 그 모습을 보고는 서로 시비가 됐다.


그리고 차주는 시비 중 집으로 들어가서 칼을 가지고 나왔다. 날 길이는 20cm가량 되는 칼이었다. 이 칼로 상대방을 위협한 것인데, 상대방은 멀찍이 도망가서 곧바로 112 신고를 하였다.


실제로 칼이 나타난 상황이었다. 얼른 현장으로 출동했다.


현장으로 가는 동안 조수석에 앉아 있는 조원에게는 실탄을 다시 확인하도록 지시했다. 여차하면 총을 쏴야 할 수 있으니 총을 쏠 수 있도록 빨리 점검하게 했다.


나는 테이저건을 소지하고 있던 상황으로, 테이저건을 쏠 생각을 하고는 있었지만 그전에 먼저 경찰방패로 밀어버릴 생각도 하고 있었다. 상황에 맞게 잘 대처해 보자, 긴장되는 마음을 심호흡으로 가다듬고 있었다.


현장에서 50m쯤 떨어진 곳에 주차를 하고 얼른 트렁크에서 장비를 챙겼다. 그리고 곧바로 뛰었다.


신고자는 승용차 뒤에 숨어 있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여전히 차주가 칼을 들고 가로등 밑에 서 있다고 했다.


'아직도 칼을 들고 밖에 있다고? 보통이 아니네. 바로 제압에 들어가야겠다.'


정말 긴장됐다. 신고자를 지나치는 순간 칼을 들고 있는 차주가 있을 것만 같았다. 주차장이라서 좁은 공간의 연속이니 내가 숨을 곳이 많지만 반대로 차주가 들고 있는 칼을 뺏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됐다.


조원에게 권총을 손으로 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내 뒤에서 조준하면서 따라오도록 했다. 나는 방패를 얼굴까지 들고 그대로 밀고 나갈 준비를 했다.


코너를 크게 돌면서 시야를 확보했다. 밤이라서 너무 어둑했다. 사람의 실루엣이 살짝 보였지만 칼날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감이 붙어 코너를 도는 순간 차주에게로 뛰었다. 조원도 함께 뛰었다.


코너를 도는 순간 가로등 불빛에 반사된 칼날이 보였다. '아뿔싸, 진짜 칼 크다.'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미 돌이킬 수 없다. 내가 머뭇하는 순간 동선이 꼬일 테고, 차주는 더욱 의기양양할 것이다. 기세 싸움이었다.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칼 내려 새끼야!"


나는 방패로 내려 찍어버릴 듯한 기세로 차주에게 달려가며 소리쳤다. "칼 내리라고 새끼야!" 두어 번 소리를 질러댔을까. 차주는 칼을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나는 곧바로 떨어진 칼을 발로 밀어 멀리 쳐냈다. 방패를 바닥에 던지고, 곧바로 차주를 넘어뜨리고 수갑을 채웠다. 반항은 크지 않았지만 몸을 비틀어대며 흥분하여 욕설을 내뱉었다. "나 장애인이라고 새끼들아!"


장애인이라고 날이 20cm인 칼 날을 들어도 되나?


여하튼, 코뿔소같이 돌진하여 큰 무리 없이 상대방을 제압했다. 제압한 동시에 순찰차 2대가 더 지원을 왔고, 생각보다 싱겁게 끝난 상황에 살짝 놀란 기색이 보였다. 난 으쓱했다.




차주를 앉혀놓고 상황을 들어봤다.


상황은 이랬다. 관내 휴먼시아는 공공임대 아파트인데, 공공임대 아파트에 살면서도 고급 외제차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아파트에 살지 않는 사람들이 가끔 와서 사진을 찍어 간다는 것이다.


특히, 장애인주차구역에 주차돼 있는 차량 위주로 사진을 찍는데, 이걸로 구청에 신고도 한다고 한다. 본인도 몇 번 신고를 받았는데, 본인은 정말로 장애인이고 차량도 외제차이긴 하지만 고가가 아니고 연식이 오래되어서 국산 중형차보다도 가격이 싸다고 했다.


그렇게 짜증이 나있는데, 젊은 사람이 본인 차량 사진을 찍고 있었고, 항의하자 되려 패드립을 하면서 시비를 걸기에 본인도 모르게 칼을 들고 나와버렸다고 한다.


물론 화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은 들었지만, 화가 난다고 무조건 칼을 들고 오는 행동은 잘못된 것이 맞다. 칼을 그렇게 쉽게 드는 것도 의아한 생각이 들어,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냐고 물어보자, 황당한 대답이 되돌아왔다.


"네, 예전에도 그걸로 처벌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 일반 사람들은 쉽게 칼을 들지 않는다. 차주는 현행범체포 후 곧바로 경찰서로 인계하고 현장을 마무리했다.




한낮에 초등학교 바로 옆에서 칼을 들고 있다는 신고도 접수한 적이 있다. 신고자는 칼을 든 남자의 아내로, 본인을 죽일 듯이 칼을 들고 쫓아와서 한 편의점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112 신고를 하고 있다고 했다.


실시간이었다.


현장으로 곧바로 출동을 하면서 나는 또 방패를 들었다. 방패가 최고다. 괜히 총이나 테이저건 잘못 쐈다가 민사소송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 물론 나는 총을 정말 잘 쏜다. 매년 사격 1등급에 1등급 중에서도 상위 1%에 해당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총을 쏘기 꺼려진다.


그래서 이날도 방패를 들었다. 방패로 찍어버릴 기세로 주문을 외웠다.


'강하게 나가자. 윽박지르자. 기세에서 꺾이면 안 된다.'


그렇게 현장에 도착하여 곧장 뛰었다. 일단 편의점 쪽으로 가니, 아내가 손가락으로 반대편을 가리키며 남자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칼을 들고 있냐고 물어보자, 칼을 들고 있다고 말했다.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보니 초등학교 옆이고, 심지어 하교시간이다. 큰일 났다. 곧바로 제압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방패를 들고뛰었다. 역시 코너를 크게 돌아보니 중년의 남성이 가방을 메고 원룸 입구에 앉아 있었다. 칼은 보이지 않았지만 남자는 고개를 뚝 떨어뜨린 채 바닥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보니 심상치 않아 조심히 접근했다.


바로 옆으로 간 순간 왼 손으로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칼 내려!!"


나는 방패를 힘껏 들고 소리쳤다. 상대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몇 번 더 소리쳤다. 그랬더니 상대방은 곧바로 칼을 땅바닥에 떨어뜨렸고, 나는 바로 제압하여 체포했다.


그런데, 칼은 우습게도 커터칼이었다. 물론 커터칼로도 사람이 죽을 수도 있지만 커터칼을 들고 있었다. 조금 황당하여 수갑을 차고 있는 남성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았다.


남자는 알코올중독 환자다. 어쩐지, 멍해 있는 남자의 눈을 자세히 보니 흰자가 노랬다. 정말 샛노랗게 생겼다. 몸도 깡말랐다. 그럼에도 가족을 부양하게 일은 열심히 다닌 모양이다. 그날도 낮까지 술 마시고 오후쯤 출근하려 하는데 아내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평소처럼 그냥 '네', '네'하고 출근하려 했는데 아내의 잔소리가 독설로 바뀌어가자 남자는 흥분했고, 평생 돈 벌어다 주면서 본인이 좋아하는 술 먹는 것이 무슨 잘못이냐며 아내에게 따지고 들었다고 한다. 따지다가 가방에 들어있던 커터칼로 같이 죽자는 소리도 한 듯하다.


이에 아내는 놀라서 편의점으로 도망간 상황이었다.


아내에게도 물어보았더니 아내는 자꾸 후회의 표정을 내비치며 처음 한 진술과 달리 상황을 축소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거짓말하면 안 된다며 솔직하게 말을 하라고 했고, 아내는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남자의 말이 맞았다. 남자는 평생 외벌이로 생산직 일을 하고 있었다. 아내는 삼 남매를 열심히 키우는 가정주부였다. 남자는 여행을 다녀본 적도 없고, 여자문제로 속 썩인 적도 없었다. 다만, 생산직 일이 끝나면 집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 일상은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남자에게 잔소리를 했는데, 이번에는 남편이 이를 못 받아들이고 터진 것이었다. 남자는 자식들에게 한 없이 다정했고, 아내에게도 큰 소리 한 번 친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이 더욱 놀라 곧바로 112 신고를 했지만, 돌이켜보니 그런 남자를 몰아세웠던 본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한 듯 보였다. 이해는 됐지만 남자는 처벌받을 행동을 하였다. 남자를 경찰서에 신병인계하고 마무리하였다.




경찰 생활을 오래 한다고 해서 모두가 흔히 칼을 보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꼭 마주하게 되는 순간은 있다. 위에서 언급한 사례 외에도 칼을 더 많이 보긴 했지만, 자잘한 신고였던 것 같다.


아직까지 나에게 칼을 휘두른 사례는 없다. 정말 칼을 휘두른다면 방패만으로 제압이 될까 싶기도 하지만 난 그럼에도 총을 쏘진 않을 것이다. 심지어 공포탄도 쏠 생각이 없다.


총을 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선 우리 독자분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시스템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경찰이 급박한 순간에 모든 법적인 조항을 따져가며 합법인지 불법인지를 확인할 시간이 없고, 더욱이 상대방을 빨리, 안전하게 제압해야 하는데 방패만큼 확실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평소에도 트렁크의 방패위치를 자주 확인한다. 괜히 한 번 꺼내서 방패를 다시 잡아보고, 이렇게, 저렇게 휘둘러 보기도 한다. 이것이 나를 지키는 일이다.


아울러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칼을 마주하게 되면 상대를 잡아먹을 듯이, 내가 이 구역의 미친놈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듯이 윽박질러야 한다. 절대 밀려선 안 된다. 경찰이라서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 꼬리를 내린 상대에게는 더욱 가혹한 법이다.


절대 꼬리를 내려선 안 된다.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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