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지구대 이야기 22.
우리나라 형법은 존속, 즉 부모에 대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더욱 강력하게 처벌하는 법 조항이 있다.
존속폭행이나 존속상해 등이 해당하고, 형량이 높아지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자식이 부모에 대한 패륜의 행위를 저질렀다고 해도 원인제공이 부모에게 있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예를 들어 오랫동안 이어져 온 가정폭력으로 인해 비속(자식)이 비뚫어졌고, 그 결과로 자식이 부모를 폭행한 것이다.
누구를 비난해야 할까?
최근 새벽에 가정폭력 신고를 나갔다. 녹취를 들어보니 50대는 족히 넘어 보이는 목소리의 남성이 울면서 신고를 했다. 아들이 자신을 폭행하고, 집안 집기를 부수고 있다는 것이다.
별로 놀랍지도 않다.
요새 이런 신고가 종종 들어오는 편이다. 자식이 부모를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 이제는 약해진 부모가 자식의 폭력에 고통을 호소하면서 신고를 하는 것이다. 어쩌다 자식이 부모를 폭행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해졌는지, 씁쓸하다.
각기 집안 사정이 있겠지만, 그래도 연로하신 부모를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면 안 되는 것이다. 원칙은 그렇다.
그런데, 도의적으로 예외적인 상황이 있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최근 신고 출동 건이 그러했다.
현장에 도착해 보니 아들은 방에 있었고, 아빠는 거실에서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외관상 폭행의 흔적은 없었으나, 식탁이 엎어져 있었다. 단단한 식탁이 반토막이 나 있었으니 아들이 식탁을 정말 엎어버린 듯했다.
아빠와 아들을 분리해서 진술을 청취했다.
아빠의 진술은 이랬다.
아들이 알코올중독 증세가 있어서 본인이 대신 약을 타서 아들이 사는 곳으로 택배를 보내주곤 했는데 전혀 먹지 않아 증세는 더욱 심해지고 있으며, 환청도 생겨서 걱정이라고 했다.
특히나 폭력적인 행동이 늘어나는 것이 제일 무섭다고도 했다. 종종 본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데 7년 전 위암 수술을 받은 상태여서 도저히 당해낼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아빠는 술에 취하셨는지 감정이 올라오셨고 엉엉 울면서 말을 하는데 거의 못 알아들을 정도였다. 그리고 아들이 정신이 이상하니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 한다며 고모부까지 부른 상태였다.
집에 도착했을 때 상황이라든지, 아빠의 진술을 들어볼 때 아들의 상태는 심각해 보였다. 아들의 말을 들어볼 차례이다.
아들은 방에서 차분하게 앉아 있었다. 집안은 난리인데 오히려 차분한 아들의 모습을 보니 약간 의심스러웠다.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은 오히려 차분한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딱 그런 모습이었다.
아들은 차분히 모든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어렸을 적 이야기도 함께 해주었다.
아빠는 어렸을 때부터 가정폭력을 일삼아서 엄마는 본인이 7살 때 집을 나갔다고 했다. 그리고 친할머니 손에서 컸는데, 크는 과정에서도 당구장, 노름, 여자, 폭력 등 아빠는 안 좋은 행동만 했다고 한다.
정말 듣고 있는데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그리고, 본인은 알코올중독도 아니고 정신 이상도 없는데 단지 층간소음에 예민해서 시끄러움을 못 참는다고 했다. 이 때문에 불면증도 심해서 술을 먹고 자는 것인데, 그걸 가지고 아빠가 뭐라고 하니 자신과 다툼이 잦아졌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서로 몸싸움이 있긴 했지만, 의도적으로 폭행을 행사한 적은 없고, 오히려 아빠가 평생 살아오면서 자신과 여동생을 괴롭혔는데 이게 본인의 잘못만 있는 것이냐며 반문했다.
이런 말을 하는 내내 아들은 평온해 보였다. 절대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 이런 행동을 볼 때 아들의 정신에는 문제가 있어 보였다.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했다.
아들을 달래서 지구대로 데리고 왔고, 정신건강센터의 상담을 받게 했다. 결국 망상의 증세가 보였고, 타인에 대한 폭력적 행동으로 인한 급박성도 인정이 됐다. 모든 것을 종합하여 응급입원이 결정되었고, 아들은 정신병원으로 후송되고 말았다.
나는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 너무 안타까웠다. 아들과 여동생은 밖으로만 도는 아빠에게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컸고, 친할머니 손에서만 자랐다. 게다가 밖으로만 돌면 되지 집에서는 자식들에게 폭력도 행사했다.
그런 과정에서 아들의 정신세계는 점점 비뚫어졌을 것이다. 게다가 본인의 신체가 커질수록 분노도 커졌을 것이다. 이 분노는 아빠에게 폭력으로 표출됐고, 망상도 형성이 됐다.
그런데 아빠는 본인의 과오에 대해선 한마디도 없이 아들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 한다며 범죄자 취급만 했다.
경찰은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대해서만 처리하면 된다. 아빠든 아들이든 처벌해야 할 사람이 있으면 처벌하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무거운 마음이 사라지질 않는다. 자기가 왜 정신병원에 가야 하냐며 억울해하던 아들의 모습, 차분한 게 더 이상하던 그 모습, 과연 진짜 잘못한 사람은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