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지구대 이야기 23.
명절 당일 밤에 야간근무를 했다.
다른 사람들은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출근길을 나섰다. 출근하면서 내심 기대했다. '그래도 명절 당일인데, 얼마나 큰일이 있겠나. 바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밤과 날이 넘어가는 새벽에 크게 바쁘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가정에서 일어나는 불화 사건이 많았다. 특히 눈에 띄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아버지가 성인 아들의 신변이 걱정돼 112에 신고를 했다.
홀로 자취를 하는 아들이 2주 정도 연락이 되지 않고 있는데, 엄마에게는 설날이라고 돈은 부쳤다고 한다. 엄마가 고마워서 전화를 해도, 카톡을 보내도 아들은 전혀 답장이 없어서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명절에 이런 신고 내용이면 상당히 우려스럽다. 아버지의 걱정은 충분히 이해가 됐다. 아버지에게 좀 더 자세한 것들을 물어보았다.
아들이 혹시 신변비관을 자주 하는지, 약을 복용한 적이 있는지, 술로 문제가 있는지, 직업이나 대인관계는 어떤 편인지 등을 물어보았다. 아버지는 28살 아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관심은 있는 편이신지 대답을 잘해주셨다.
그런데, 아들에게 신변비관의 문제는 없었지만, '히키코모리' 성격이어서 집에만 있고, 게임을 통해 만난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무리들에게 가스라이팅도 당하는 것 같아서 걱정인데, 최근 캄보디아 사건들을 보았을 때 이런 범죄에도 연루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우려를 토했다.
충분히 이해가 갔다. 아버지 입장에선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나의 시선에는 신변비관 쪽으로 보였다. 집에만 있는 28살 아들, 술도 잘 먹지 않는 아들, 엄마에겐 그래도 도리를 하려는 아들, 이런 모습들을 보았을 때 신변비관에 가까웠다.
얼른 아들이 혼자 사는 원룸으로 향했다.
아들의 집을 열심히 두드렸다. 그런데 안에는 전혀 인기척이 없었다. 바깥에서 쳐다보니 불도 꺼져 있었다. 그런데 창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너무 아이러니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위치추적을 해봐야겠다. 위치가 집 근처로 뜬다면 빨리 문을 강제개방 해야 한다.'
위치추적을 의뢰하여 곧바로 확인해 보니... 가장 정확한 GPS 위치가 집 주소 인근으로 잡혔다. 그럼 집에 있다는 뜻이다. 문을 빨리 개방해야 하니, 소방에 공동대응 요청을 했다.
그 짧은 순간에 오만 생각이 들었고, 주머니에서 마스크도 찾았다. 계단에서 무전보고를 하며 생각정리를 하고 있는데 젊은 남성이 머리를 비비며 내려왔다.
"무슨 일이세요? 문 두드리셨어요?"
"아, 김준영(가명) 씨 되신가요?, 아버지가 신고를 하셨어요. 신변에 문제가 있나 해서요."
"아,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엄마, 아빠랑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서 잠수 탔어요. 정말 답답한 사람들이네, 이런 걸로 신고를 하고. 제가 엄마한테 전화할게요."
아들은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그래서 문 두드리는 소리를 못 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아들을 따라가서 집 안을 확인해 보니 불은 전부 꺼져 있고, 난방텐트 안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명절인데 그러고 있었다. 어떤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들은 자발적으로 동굴 속으로 들어갔고, 그것을 간섭하는 부모를 피해 최소한의 아들 도리만 하고 잠수를 탄 것처럼 보였다.
다행이었다.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건강한 아들의 모습과 태연한 어투에 안심했다.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22살 딸아이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제주도에 사는 엄마가 딸의 자취방으로 찾아왔다. 딸은 제주도에서 육지로 유학을 왔다. 엄마는 막내딸이 육지로 혼자 유학 와서 뭐 하고 사는 것인지, 도통 연락이 되지 않아 갑자기 찾아왔는데, 딸이 마치 집에 있는 것 같은데 문을 안 열어 준다는 것이다.
이 정도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모녀간 다툼으로 보였다.
그런데 엄마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딸이 제주도에 있을 때도 약을 복용했고, 약간 우울증이 있다고 했다. 그런 상태로 혼자 육지에 살다 보니 걱정이 되어서 자주 연락을 했는데, 절대 제때 연락을 받는 법이 없다가 최근에는 아예 연락을 모두 차단해 버렸다고 했다.
특히 남자친구가 생긴 것 같은데, 문제가 있어 보여서 범죄를 당한 것은 아닌지, 아니면 본인이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인지 머리가 복잡해서 도통 잠이 오지 않아 급히 비행기를 타고 온 것이다.
갑자기 나도 근심걱정이 생겼다.
일단 우려되는 상황은 있었기에 위치추적을 의뢰해서 확인을 해보았다. 어라? 정말로 GPS가 인근으로 잡혔다. 핸드폰이 꺼져 있지 않았기에 딸에게 전화를 해봤다. 딸이 전화를 바로 받았다. 부스스한 목소리였다.
"아, 저 집에 있어요. 한참 자고 있는데 왜 그러는 거예요?"
"엄마가 제주도에서 왔네요. 문 좀 열어봐요."
"아, 엄마 보기 싫으니까 그냥 가라고 해요. 저 아무 문제없어요. 그냥 제발 좀 가주세요."
그래도 난 직접 얼굴을 봐야겠다. 엄마에게는 딸이 이상이 없는 것 같지만 따로 확인해 볼 테니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딸의 자취방으로 가서 문을 열었고, 서로 마주했다. 그 순간 엄마가 계단에서 우당탕 뛰어 올라와서 문을 잡고 섰다.
"아이 참, 어머니 이러지 마시라니까요. 저희가 먼저 확인할게요. 아무리 자식이어도 성인이에요."
"내가 엄마인데! 그래도 눈으로 직접 봐야겠어요! 야, 너 왜 연락 안 받아 어? 엄마가 미치겠다 진짜.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연락만 받으면 되잖아.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이야기나 들어보자."
"엄마, 미치겠으니까 그냥 가. 나 엄마랑 이야기하기 싫어. 그냥 혼자 있고 싶으니까 좀 가. 나 밤에 아르바이트 가야 하니까 지금 자고 있는 거잖아. 빨리 가."
그렇게 한참 실랑이를 했지만, 딸은 결국 엄마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다. 엄마는 도대체 딸이 왜 본인을 피하는지 모르겠다며 하소연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딸의 냉대뿐이었다. 엄마는 다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돌아갔다.
내가 느꼈던 딸의 모습은 그저 요즘 청년의 모습이었다.
미래는 어두워 보이지만 나름 롯데리아에서 아르바이트라도 하면서 용돈벌이를 하고 있었다. 집 안은 물론 더러웠지만 술병은 보이지 않았다. 약봉지도 없었다. 나름 그 나이처럼 살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부모가 보았을 때는 한참 불안한 존재처럼 보였을 것이다.
성년 자녀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아무리 부모라고 한들, 요즘 세대차이가 이렇게 심한 시대에 모든 부모가 자식의 마음을 전부 헤아릴 수는 없다. 그저 바라보고, 지지해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 수가 있다.
자꾸 자식의 마음을 후벼 파면서 모든 것을 알려고 해선 안 된다. 그럴 권리도 없다. 어른이 될 때까지 잘 키워줬으면 됐지, 그 이상은 자식이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 자식들도 그런 홀로서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내게는 아직 미취학 자녀만 둘이기에 성년의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을 정확히 알기 어려울 수 있겠다. 그렇지만 현장에서 봤던 객관적인 시선으로는, 불안해 보이는 자식이라도 멀찌감치 떨어져서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현재 성년인 자녀와 소통이 되지 않는 분이 계시다면, 꼭 모든 것을 개입하려 들지 말고 지금은 동굴에 있는 자녀를 지지해 주고, 사랑으로 보듬어 준다면 언젠가 부모님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며 다시 돌아올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