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 끼치는 그 남자의 표정

세상만사 지구대 이야기 25.

by 소까니 경찰관

싸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뭔가 수상하다 정도가 아니라, 겁이 날 정도로 이상한 싸한 느낌이다. 그런 느낌을 받으면 나도 모르게 움츠려 들게 된다. 간혹 싸한 느낌을 풍기는 상대가 나타날 때는 경계모드가 발동된다.


오늘은 바로 그 순간의 이야기다.




덩치가 크건 작건 경찰이 마주하는 상대들은 대부분 제압이 가능하다. 경찰이라는 특수한 직업이 범죄자들 입장에선 위축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제복이 주는 힘이 정말 크다.


그런데, 제복을 입은 경찰을 보고도 흔들리지 않는 상대들이 있다. 표정이 없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제일 무섭다. 특히 이런 상대가 덩치도 크고 무도를 배운 적이 있다면? 정말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몇 년 전 관내 외진 곳에서 신고가 접수됐다.


젊은 여성이 다급히 신고를 했는데, 남자친구한테 맞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급하게 끊느라 정확한 주소를 전달받지 못했고 핸드폰 위치추적을 했다.


GPS 상 대략적인 위치는 확인이 되었다. 내용확인이 불가한 상황이기 때문에 팀장님을 포함해 거의 모든 직원이 출동을 했다.


다행히 신고자 위치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다. 그 장소 인근은 집이 3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외진 곳이었기 때문에 얼른 직원들을 나눠서 수색해 보면 신고자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원들을 나눠서 집 인근을 수색했다. 외진 곳이라 그런지 개들이 엄청 많아서 짖기 시작했다. 뭔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되어서 덩달아 긴장이 됐다. 누군가 갑자기 집에서 뛰쳐나와 나에게 덤빌 것 같은 상상까지 들었다.


창문을 두드리며 다니는데, 한 집에서 50대 남성이 나왔다. 본인의 집에서 신고가 됐다는 것이다. 신고자는 여성이었는데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집으로 들어가 보았다. 개냄새가 잔뜩 나서 본능적으로 경계모드가 발동됐다.


"선생님 어떤 젊은 여자가 신고를 했어요, 남자친구한테 맞았다고. 여기 인근인 것 같은데요."


"아들 여자친구가 신고했을 거예요. 아들은 저기 앉아 있어요. 여자친구는 방에 있고요."


왈왈왈. 거실 한편에선 개가 계속 짖고 있어서 살펴보니 개집 안에는 핏불 2마리가 맹렬히 짖고 있었다. 혹시나 저 개들의 목줄이 풀린다면... 어휴.




반대편 거실을 살펴보니 아들이 앉아 있었다. 덩치가 좋았다. 아들은 가만히 고개를 떨구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미동도 없었다. 가늘게 보이는 눈매는 상당히 매서웠다. 떨어뜨린 손가락은 움직임조차 없었다.


'보통 놈이 아니네.'


뒤에 있던 나이 드신 선배가 아들을 보고 아는 체를 했다.


"야, 너 오랜만이다. 잘 지냈냐?"


아들은 계속 고개를 떨군 채 미동도 없고, 대답도 없었다. 나이 드신 선배는 어색한 지 주변만 배회했다. 나는 선배에게 아들을 잘 보고 있으라고 말한 후 피해자가 있는 방으로 갔다.


피해자는 담배를 뻑뻑 태우고 있었다. 피해자는 20대 초반 일본인이었다. 일본에서 교환학생으로 한국으로 넘어온 후 남자친구를 만났는데, 어느 순간부터 손찌검을 자주 했다고 한다. 오늘은 남자친구 본가로 함께 와서 식사도 하고 자고 가려고 했는데, 본인은 원치 않는데 남자친구가 자꾸 성관계를 강요해서 다툼이 일어났고 또 때릴까 봐 신고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일본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사랑했던 남자친구였기 때문에 처벌 같은 건 원치 않고 좋게 헤어지고 싶다고도 했다.


좋다. 오늘의 상황은 외견상이나 진술상 큰 문제는 없어 보여 여자친구만 지구대로 동행해서 안전하게 귀가시키기로 했다. 남자친구에게 상황 설명을 해주러 갔다. 경고도 할 겸.


남자친구인 아들은 여전히 고개를 떨구고 반응조차 없었다. 옆에 서있던 아빠는 겁을 먹은 것인지 어떤 것인지 모를 표정으로 아들만 응시하고 있었다.


상황 설명을 모두 했을 때도 반응이 없었고, 아빠는 "알겠습니다"라는 짧은 말만 대답했다. 정말 수상한 집안이었다. 가끔 소름도 돋았다. 자꾸 경계하게 됐다. 집을 나서는 순간에도 계속 뒤를 힐끔 쳐다보았다. 안전하게 집을 나오자 긴 한숨이 나왔다.


'휴... 살았다.'




일본인 여자친구의 친구들이 지구대로 찾아왔다. 모두에게 교제폭력의 위험성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고, 필요한 절차까지 안내해 주었다. 나중에라도 처벌을 원한다면 처벌이 가능하니 꼭 가까운 경찰서를 갈 수 있도록 하고, 남자친구의 낌새가 이상하니 절대 다시 만나지 말라고도 말해주었다.


모든 일이 끝난 후 나이 든 선배한테 그 남자를 어떻게 아는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대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현장에서 알려줬어야 하는 사안이었다.


"응. 걔 5년 전엔가? 내가 여기 지구대 있을 때 만났던 놈인데, 그때는 중학생이었구나. 그때는 지금처럼 정말 어둡지는 않았어. 확정적 진단은 아니었는데 조현병 비슷하게 있었지. 집에서 난리 치고, 부수고, 개들 학대하고 해서 정신병원에 넣었어. 정신병원에 6개월 있다가 나왔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주짓수랑 합기도 배웠다더라고. 그때부터 덩치가 엄청 커지더라. 걔 전완근 봤냐? 살인근육이야. 대학도 잘 가고 회복된 줄 알았는데 오늘 가서 보니까 더 괴물 됐더라."


선배는 진작 현장에서 말해줬어야 했다. 이런 위험한 괴물이 언제 나를 덮칠지, 집안 사람들을 헤칠지 모르는데 생각이 있는 것일까? 안타까웠다. 판단력이 이렇게 흐려지다니.




몇 년이 지난 사건이지만 아직도 생각이 난다. 개 냄새, 아들의 냉소적인 태도, 뿌연 거실. 소름 끼치는 그 남자의 표정을 보았을 때 분명 다른 범죄를 저지를 것만 같다. 그리고 그 정도의 사람이면 경찰인 나까지도 헤칠 수 있었다. 그 사람을 경계했던 내 본능은 역시 틀리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생존본능을 믿고 있다. 어느 장소에 진입을 하더라도 모든 감각을 활용한다. 귀로 듣고, 냄새를 맡고, 자세히 살펴보고, 발바닥의 감각에 집중한다. 또다시 그런 사람을 만나더라도 내 감각은 알아맞힐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나도 무사히 빠져나오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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