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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사물들, 조르주 페렉

by 나즌아빠

미래를 알아버린 과거의 씁쓸함에 대하여

그들은 탈출을 시도했다. 그토록 많은 것을 약속하면서 실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 이 세계에서의 긴장은 너무 심했다. 그들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다. (103쪽)


오늘 아침 휴대폰을 통해 보여지는 상품들은 필요보다는 소유욕을 자극합니다. 굳이 사야 할 필요가 있나 하면서도 사곤 하지요. 도시의 화려한 거리는 더욱 유혹적입니다. 자신을 둘러싼 사물들에 대한 신기함과 아름다움은 소유하고 싶은 욕망으로, 필요성과 가격을 생각하면 절망과 박탈감이 밀려오기도 하지요. ‘여기서 불행이 시작된다’(63쪽)는 말이 와닿습니다.

1965년에 발간된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은 2023년 현재를 응시한 듯합니다. 사회학을 공부했던 작가의 이력이 이 글에서 발현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사회현상과 사회발전에 대한 현재의 연구는 곧잘 미래를 예견하기도 하니까요. 1960대 프랑스는 베이비붐세대의 출현과 풍부한 소비문화, 대중문화가 전면에 등장하는 새로운 시대였습니다. 경제적 기반이 이를 뒷받침하는 자본의 축적시기이기도 하였고요. 더불어 새로운 문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다양하게 표출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68혁명의 시작이 프랑스에서 시작된 것이 우연은 아닐 것입니다.

‘사물들’은 당시 프랑스 사회의 모습을 정밀하게 바라보는 르포르타주 같습니다. 그리고 주인공 실비와 제롬을 통해 당시 사회의 모습을 대하는 젊은이들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현재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감정들입니다. 이런 문장이 눈에 들어오네요.


조금 싸게 사거나 헐값에, 또는 거의 헐값에 가깝게 사기라도 하면 뿌듯해했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 가장 멋지고 완벽하게 세상에 하나밖에 없을 물건을 단번에 흥정도 하지 않고 거의 홀린 듯이 아주 비싼 값을 치르고 샀을 때 더 우쭐했다. (47쪽)


느린 승진이 가르쳐준 값진 경험으로, 몸을 사릴만큼 현명해지고 신중해져서 더 이상 이러저러한 발언을 삼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남는 것은 마흔 줄에 들어섰다는 것과 노동에 할애하지 않는 알량한 시간을 채워줄 집과 별장, 아이들 교육뿐이리라....(64)


가난보다 더 끔찍한 것은 궁색함, 옹졸함, 얄퍅함이었다. 미래 없는 꽉 막힌 삶으로 암울한 세계를 살아가고 있었다. 질식할 것 같았다. 침몰하는 느낌이었다.(67)


자 그럼 2023년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조르주 페렉은 1960년대 프랑스를 보고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요? 자유롭고 행복하며 인생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의 바람이 주변 사물들에 의해 어떻게 변질되는지 그리고 더 이상 참지 못하여 삶의 변화를 시도하는 이들을 따라갑니다. 그래서 각자의 삶은 성공이나 실패, 희망도 절망도 아닌 또 그렇게 규정할 수도 없는 습관 같은 것임을 이야기합니다.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각자의 삶은 각자의 몫으로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그들의 삶은 마치 고요한 권태처럼 아주 길어진 습관 같았다. 아무것도 없지 않은 삶.(119쪽)


이것이 이 가을 조르주 페렉을 만나서 느낀 습관 같은 삶에 행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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