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아니 에르노
기록을 통한 기억과 추모
사람들은 보통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기 위해 의식적으로 무관심하거나 회피하기 마련입니다. 살기 위한 자기 방어 본능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치유되지 않는 고통이나 충격은 후에 우울증이나 불안감 등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고 합니다. 작가 아니 에르노도 이를 인식한 듯합니다. 아픈 어머니를 보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어머니를 만나게 되는 작가는 참담함과 무기력함을 느끼지만 그 과정을 진실하게 기록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내부의 고통을 바닥까지 끌어내 더 이상 고통으로 작용하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작가의 말처럼 쓰기를 통한 고통의 상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잊는 게 아니라 더욱 철저하게 기억하고 알림으로 고통을 치유하고자 한 것 같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충실하게 기록해야 하는 이유와 같은 맥락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이것을 두렵고 고통스럽지만 용기 있는 추모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머니의 기억상실증과 육체의 쇠약함을 시시각각 목도하는 작가는 어머니를 잘 모시지 못한다는 자책감과 죄책감, 어머니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으로 인한 공포, 어머니가 어서 돌아가셔서 더 이상 노쇠한 몸으로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러나 작가의 머리를 사랑으로 감싸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살아계시기만을 바라는 마음 등 작가는 어머니를 보면서 생기는 이율배반적 감정과 분노 등을 고스란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용기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병을 치매라고 합니다. 병을 앓는 당사자뿐 아니라 곁의 가족까지 아프게 하기 때문이지요. 무엇보다 슬픈 건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병이라 대화와 눈빛은 항상 어긋나고 고통의 강도는 점점 세진다는 것입니다. 희망을 이야기하기가 너무 버겁지요. 이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여러 사람에게 보인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일 것입니다. 그래서 작가는 어머니에 대한 기록을 책으로 낼 생각을 두려운 마음이라고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추모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기억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행동하고 죽음을 향해 가는 어머니를 통해 작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며 어머니를 이해하려는 모습은 고통가운데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의 과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죽음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자신이나 가족, 혹은 지인의 죽음을 말이지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아마도 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근본에 관한 것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만큼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인간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한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