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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공현진

by 나즌아빠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태도 세 가지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에 대한 경계, 삶의 균형, 수동적 저항)


컴퓨터가 가끔 먹통이 될 때가 있습니다. 간단하면서도 빠른 해결책은 재부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잘 작동하곤 합니다.

우리네 삶도 이처럼 리셋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매우 복잡하고 해결방법도 쉽게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삶은 컴퓨터와 다르니 다시 살 순 없고, 잠시 멈추고 가만히 생각해 보는 것이 리셋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게 상황을 객관적으로 지켜보면 해결 방법이 생기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힘을 빼고 가만히 누워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급한 마음에 있는 힘껏 팔 다리를 휘젓으면 힘은 힘대로 빠지고 호흡은 호흡대로 안되니 오히려 위험해집니다. 소극적으로 그리고 최소한으로 움직이는 것이 살 수 있는 방법입니다.


공현진 작가의 소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나옵니다. 물에 뜨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힘을 주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불도적처럼 직진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살아온 결과가 기후위기이고 팬데믹이잖아요. 결국 모두가 망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소설은 남에게 혹은 자신 외의 주변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고 살려는 희주와 주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둘은 수영장에서 만났는데요. 물에서 느끼는 둘의 생각은 독자에게 ‘삶의 태도’를 생각하게 합니다.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에 대한 경계’, ‘삶의 균형’,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그것인데요.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희주와 주호는 각각 자신들과 직접적인 인연이 없었던 같은 반 학생과 직장 동료의 죽음을 겪고 삶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내재하게 됩니다. 한 공간에 같이 있던 존재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것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입니다. 사람이 죽은 사고 후에도 ‘공장은 예전과 다름없이 돌아가고, 사람들은 똑같이 나와서 하던 일을 하는(84쪽)’ 상황이 너무도 자연스러운 현실을 비판합니다. 그래서 주호는 부자연스러운 수영을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그 숨이 간절해진다. 숨쉬기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 아주 부자연스럽고 절실한 일이 된다는 점, 그 점이 주호는 마음에 들었다.(87쪽)


희주는 채식주의자이며 환경을 생각합니다. 살기 위해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말입니다. 세상은 연결되어 있으며 나의 편안함은 그 무언가의 희생을 전제로 하니, 편중되지 않은 균형이 필요함을 생각합니다. 그걸 물속에서 깨닫습니다.


남들은 어떻게 이런 균형을 어렵지 않게 잡을까. 희주는 너무 몸에 힘을 주지 않아서 혼이 났다가, 곧바로 너무 많은 힘을 주어서 물속으로 가라 앉았다.(86쪽)


소설에서 제시하고 있는 세 번째 삶의 태도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입니다. 희주와 주호는 직장을 그만둡니다. 어쩌면 ‘잘’살기위해서 필요한 것은 물에서와 마찬가지로 힘을 빼는 것이라 생각한 것일 수 있습니다.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에서 바틀비가 말한 ‘안 하는 편이 더 좋겠습니다’가 생각납니다. 바틀비의 태도를 흔히 ‘수동적 저항’이라고 하는데요. 컴퓨터를 재부팅하듯 우리 삶에서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 수동적 저항이 세상의 멸망을 늦추거나 멈출 수 있는 방법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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