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데미안

by 나즌아빠

자신에게 이르는 험난하지만 아름다운 여정

(데미안, 헤르만 헤세, 전혜린 역)


요즘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전달되는 내용 중 으뜸은 인공지능(AI)인 것 같습니다.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들어와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기도 하지요. 그런데 우려스러운 건 확장성입니다. 인공지능이 어느 영역까지 활용될 것이며 통제가 가능할 것인지 의문입니다. 과연 생물인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생각한 인식과 감정의 영역까지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인식이 불완전하다고 한다면 인공지능이 내놓는 언어나 표현도 불완전하기는 마찬가지이니까요. 물론 인공지능의 언어나 표현이 인간처럼 스스로의 인식을 전제로 생성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되긴 합니다. 주어진 데이터에 기반하고 있으니까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인공지능이 떠오른 건 바로 ‘인식’ 때문이었습니다. 삶이 계획되고 준비된 데로 살아지지 않는다는 ‘자각’, 왜 그런지 이유도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인식’ 말입니다. 어쩌면 이런 불완전한 정체성이 인공지능과 다른 인간의 고유함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데미안’은 주인공인 소년 싱클레어가 자신 앞에 놓인 밝음과 어두움, 선과 악, 사랑과 미움 등 동전의 양면 같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게 되는지 그 과정을 섬세하게 표현한 소설입니다. 마치 흔들리며 피는 꽃(도종환)처럼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 눈물 나게 아름답습니다. 이유 없는 반항과 죽음보다 힘든 외로움을 느꼈던 분들이나 성장통처럼 가슴 아픈 젊음의 한 시절을 지나온 이들에게 이 소설은 공감과 위로를 줍니다. 그래서 ‘데미안’이 1919년 발표된 이후 지금까지 여러 사람에게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잠언과 같은 싱클레어의 몇몇 고백을 소개합니다.


세상에 있어서 자기를 자기에게 인도하는 길을 가는 것보다 인간에게 더 장애가 많은 일은 아무것도 없다.(80쪽)


사랑은 천사의 모습이면서 악마였고, 여자와 남자를 한 몸속에 가지고 있었고, 인간이면서 짐승이었고, 최선과 최악이었다. 이 모든 것을 살도록 내가 정해져 있다고 나는 생각했고, 이것을 맛보는 것이 내 운명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는 그것을 동경하면서도 공포를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있었다. 언제나 내 위에 있었다.(165쪽)


나는 내 내부로부터 스스로 쏟아져 나오려는 것만을 살아보려고 한 것인데, 왜 그것은 그다지도 힘든 일이었을까(166쪽)


사나운 폭풍우가 몰아친 다음 세상은 그전의 세상과는 다릅니다. 인간의 내면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불같은 격정의 시간을 지나 조용히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면 꿈꾸던 그이가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음을 ‘인식’하게 되지요. 우리는 이것을 ‘성장’이라고 합니다. 어느 날 돌아와 거울을 바라보면 누님1) 같고, 지도자 같은 자신이 서 있는 것을 알게 되니까요. 그래서 ‘데미안’을 성장소설의 고전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헤세는 우리에게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과 나약함에 항상 붙어있는 또 다른 자신인 용기와 단단함을 함께 볼 수 있기를 바란 것 같습니다. 언제나 곁에서 편이 되어준 또 다른 자아인 ‘데미안’을 만나시길 바라며 일독을 권합니다.


어두운 거울 속에 운명의 모습이 어른거리는 나 자신 속으로 완전히 내려가면, 나는 검은 거울 위에 몸을 구부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나는 인제는 완전히 ‘그’와 같은 – 내 친구이며 지도자인 ‘그’와 같은 나 자신의 모습을 거기서 본다.(293쪽)


각주 1)

서정주, 국화 옆에서 中-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졸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