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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안녕이라 그랬어

by 나즌아빠

사람을 이해하려는 날카로운 시선과 태도

(김애란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고)


사람의 행동과 말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거나 이해되지 못했을 때 갈등이 일어나게 되지요. 그런데 직접적으로 보이고 들려지는 것 너머에 있는 ‘이유’라는 것은 쉽게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그 사람이 아니니까요. 물론 그럴 것이다라고 유추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유추가 사람과의 관계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설사 상대의 말과 행동이 실제로 그런 이유가 아니라 하더라도 말이지요.


김애란의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다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과의 만남(홈파티), 이웃과의 관계(좋은 이웃), 이별한 사람과의 관계(이물감), 엄마와 딸의 관계(레몬케이크), 온라인에서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안녕이라 그랬어) 등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행동과 말, 그리고 심리묘사를 통해 독자는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됩니다. 보이고 들리는 것의 이면을 살피게 되고, 사람을 좀 더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나아가 사람들 각자가 존재하는 방식과 태도, 즉 실존의 문제를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감정과 태도를 이렇게 밀도 있게 그려내는 작가가 있을까 싶습니다. 몇몇 문장을 살펴보겠습니다.


그게 꼭 그 아이들이 철없거나 허영심이 세거나 금융문맹이어서가 아니라. 제 생각에는…… 밥은 남이 안 보는 데서 혼자 먹거나 거를 수 있지만 옷은 그럴 수 없으니까. 그나마 그게 가장 잘 가릴 수 있는 가난이라 그런 것 같아요. 가방으로(홈 파티, 40쪽)


오랜 시간 질 좋은 음식을 섭취한 이들이 뿜는 특유의 기운이 있었다. 단순히 재료뿐 아니라 그 사람이 먹는 방식. 먹는 속도 등이 만들어낸 순수한 선과 빛, 분위기가 있었다. 편안한 음식을 취한 편안한 내장들이 자아내는 표정이랄까. 음식이 혀에 닿는 순간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찰나가 쌓인, 작은 쾌락이 축적된 얼굴이랄까. 아무튼 그런 인상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기태는 그걸 자기 혼자 ‘내장의 관상’이라 불렀다. (이물감, 179쪽)


나는 오늘과 당신의 오늘이 다르다는 자명함이. 엄마의 하루와 자신의 하루의 속도와 우선순위, 색감과 기대가 늘 달랐다는 게,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게 문득 뼈아프게 다가왔다. 아무리 최선을 다한들 자신은 이 감정을 평생 느낄 거라는 점도. ‘나만 겪는 일은 아닐 텐데. 누군가는 진작 감내해 온 일일 텐데.’ 다들 대체 이 숙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레몬케이크, 214쪽)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감정은 다양하고 또한 일관되지 않습니다. 상황에 따라 바뀌기도 하고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근데 이런 불완전함이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 마음 나도 모를 때가 있는데, 하물며 타인의 마음은 더하겠지요. 다만,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태도일 것입니다. 풀 수 없는 숙제를 앞에 두고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과 태도, 김애란 작가가 우리에게 전하는 말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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