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서평- 가출, 페터 슈탐

by 나즌아빠

삶의 의외성에 대한 탐구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할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특별히 타인과의 관계에서 행위는 상호작용이기 때문에 납득 가능한 이유가 중요합니다. 자칫 타인이나 자신의 행동에 대해 오해가 생기면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페터 슈탐의 소설 '가출'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세상일이 모두 인과관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과 행동이 오히려 인간의 삶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소설 속 상황은 좀 큰 사건입니다. 가족여행에서 돌아온 남편이 그 어떤 설명도 없이 집을 떠나버린 것이니까요. 복선이나 암시 등 그 어떤 예고도 없이 다짜고짜 출근길에 그대로 집을 떠납니다. 아내와 두 아이를 두고 말이지요. 왜 떠났을까요?

이런 궁금증 때문에 책을 계속 읽게 됩니다. 언젠가 이유를 알 수 있겠지 하면서 말입니다. 어쩌면 궁금증을 유발하려는 작가의 의도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도 이유 없이 집을 떠나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저의 상황과 소설 속 주인공의 상황이 비슷한지 유추해 보면서 읽기를 계속하게 되더군요. 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도 별 이유가 없는 듯합니다.


'그는 떠나야 했다 그냥 떠나야 했던 거다. 어쩌면 바로 이게 제대로 된 설명인지도 모른다.' (76쪽)


‘그는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 목적지를 정했다. ...... 그것도 뚜렷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마다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253쪽)


한마디로 '그냥' 떠난 거지요.

자! 이렇게 시작된 남편 토마스의 부재는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파장을 남깁니다. 가장 크게는 아내 아스트리트와 아이들, 그리고 친척, 직장동료, 모임회원, 이웃에게 설명할 수 없는 상황과 그로 인한 생각들을 말입니다.

집 떠난 남편도 편한 것은 아닙니다. 갖은 고생을 하니까요. 다양한 상황과 사람을 만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도 합니다.


소설은 이런 상호 부재에 대해 남편과 아내의 생각과 감정을 교차해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선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드러워지는 것 같습니다. 다음 문장을 보면 말이지요.


‘오늘 이 순간에도 그녀와 처음 교제하던 몇 달간 못지않게 그때의 그녀가 사랑스러웠다. 그녀의 그런 모습이 얼마나 더 계속되다가 허물어지게 될까?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41쪽)


‘만약 토마스도 그런 도주를 생각한 거라면, 일상의 소음 속에서 자신을 되찾기 위한 시간이 필요해서였을 것이다.’ (77쪽)


‘그는 집을 떠난 이래 처음으로 외로움을 느꼈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동안 그는 자신을 완전히 잊었고, 아스트리트와 아이들을 생각할 때면 생각 속에서는 그들과 하나로 엮여 있었다.’ (172쪽)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이 토마스에 관해 알고 있는 게 얼마나 적은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정확한 것인지 그를 제대로 이해한 상태에서 일고 있는 것인지,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녀는 가슴이 미어졌다.’ (245쪽)


소설은 형식적으로도 의외성이 있습니다. 후반부로 가면 소설의 전개가 시간순도 아니고 주인공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호합니다. 그러다 보니 혼란스럽습니다. 이런 전개와 장면배치 또한 궁금증을 유발하는 작가의 의도로 보입니다. 그런데 소설의 결말은 어떨까요? 해피엔딩일까요? 아닐까요? 궁금하시죠. 일독을 권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서평- 전쟁의 슬픔, 바오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