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행복
며칠째 앞집 기준아줌마가 찾아오고 있었다. 그것도 밤늦은 시간에.
우리 시골은 날이 밝아와 앞이 보이면 논밭으로 농사일을 나간다. 물론, 땅거미 짙게 깔리면 하루 노동도 끝나는 전형적인 시골 동네다.
그런데 저녁 먹을 초저녁시간도 아닌 이런 오밤중에 누구네 집을 방문한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그것도 몇 일째.
그날은 엄마의 큰소리에 잠이 깼다
" 그런 소리 할 거면 오지 말라고 했잖아요. 듣기 싫다니까"
" 막내 두 것들은 데려와도 된다잖아. 큰 것들은 고아원 보내고. 고아원도 다 알아놨고 보내기만 하면 된다잖아.
애들 밥 굶기지 말고, 같이 굶어 죽을 작정이야? 마흔도 안돼 갖고 여섯 것들 키우다 보면 늙어 죽어. 오라고 하는 사람 있을 때 가야지. 답답하네"
기준 아줌마는 돌아 앉은 엄마 등을 보며 계속 설득하고 있었다.
" 막말로 말이여 이 집에 있는 게 뭐야 밭데기 하나 없이 무슨 수로 애들을 키울라고 고집이여. 고아원 보내면 밥은 제때 먹을 거 아니야. 두 놈은 학교공부 시켜 준다잖아. 젊은 사람이 고집이 쇠심줄이여. 앞뒤가 이렇게 막혀서야 원. 답답 혀 답답 혀"
아무 대답도 없는 엄마등에 또 다른 제안과 우리 집 현실을 되짚어 주고 기준아줌마는 돌아갔다.
잠자는 척 눈을 감고 이불속으로 숨어 들어가도 아줌마의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도 선명하게 귓속에 박혔다.
막내 두것들 이라면 다섯째 딸과 갓 돌이 지난 유일한 아들이다. 아줌마 말도 맞는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을 데려가야지 머리 굵은 것들 키워줘 봤자 소용없는 일이라고.
나도 자신 없다. 모르는 아저씨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돌아 앉은 엄마등이 안심이 되었다가, 엄마의 등이 움츠려 있고 왜소해 보여 고아원에 보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다 잠이 들었다.
기준아줌마가 싫어졌다. 아줌마의 말을 곱씹어보면 틀린 말이 없기에 약이 올랐다. 엄마가 잠이 들었는지 확인한 후에야 누울 수 있는 버릇이 생겼다.
새벽에 깜짝 놀라 일어났을 때 엄마가 없으면 찾을 때까지 이 밭 저 밭 달려가 일하는 엄마 모습을 찾아야만 안도하며 돌아왔다. 이슬에 젖은 신발을 보고 엄마는 왜 신발이 젓었냐고 물으면 그냥이라고 웃어 보였다.
그때부터다. 엄마에게 존댓말을 시작한 것도. 거리감 있이 어려워진 것도. 동생들의 투정에 혼을 내다가도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부러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아기는 건강했다. 오빠는 이쁘다고 했다. 어머니는 똥물을 뒤집어쓰고 나왔다고 나무라셨다.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이 동그래 진 나에게 라면만 먹어서 그런지 애가 밀가루물 같은 걸 뒤집어써 있었단다. 이해가 않갔지만 아기를 보고 알 수 있었다. 원숭이 같이 쪼글거리는 얼굴에 희끗한 얼룩 같은 무언가. 신생아실에서는 며칠 씻으면 흰 얼룩 들은 씻겨 없어지니 걱정 말라고 했다.
퇴원하는 날에는 아버님이 오셨다. 아들이 아니라 서운해하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는 죄인처럼 아기를 안고 서 있었다. 수술한 배 때문에 어정쩡 히 숙여진 허리에 아기를 안고 있으니 불안하셨을 거라 생각된다.
" 이리다오"
" 제가 안고 가도 될 것 같아요"
" 이리다오"
아기를 전달받은 아버님은 나무토막을 들듯 두 팔 위에 아기를 받고 그대로 걸어가셨다.
아기얼굴을 봐주지도, 눈을 맞추지도, 웃어 보이지도 않고, 가슴 쪽으로 품어 안지도 않고, 장작을 옮기듯 그렇게.
얼마나 다행인가. 요 녀석은 자기가 어떻게 안겨 들렸는지 모르는 갓난아기이기에, 더욱 다행인 건 잠을 자고 있다.
뒤따라 가며 다짐했다.
아가야 너는 아무것도 모르게 천진난만한 어린 시절을 보내게 해 줄게. 내 엄마처럼 지켜줄게. 최선을 다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