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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행복은 우산이다

엄마의 우산

by 고트

가게 우산꽂이에 우산이 반 이나 꼽아져 있다. 손님들이 여름부터 하나 둘 잃어버리고 간 우산들. 찾지도 않는 멀쩡한 우산들을 보면서 세상 참 좋아졌다 싶다. 나 어렸을 적에는 귀했던 우산인데. 아니, 우리 집에서 귀했던 이라고 해야 맞겠다.


초등학교 고학년쯤이었나 보다

" 행복하다고 느낄 때가 언제인지 써보고 발표하겠어요"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당황했다.

한 번도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본 적이 없었다.

행복은 기분 좋음인 건가? 그렇다면 아버지가 화를 내지 않을 때라고 발표해야 하나? 아니면, 매를 맞지 않은 날 밤의 이불속이라고 써야 하나? 나는 한 시간 동안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그리고 존재감 없던 한 녀석의 발표

" 비 오는 날 우산 들고 저를 기다리고 서 있는 엄마를 보면 행복을 느낍니다"

'아! 그런 감정이 행복이구나. 어렴풋이 알 것 같아'.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는 못했지만 그 설렘과 가슴 뛰는 느낌에 전율이 흘렀다. 그리고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 비 오는데 왜 집에 우산이 하나도 없어?" 엄마에게 신경질적으로 쏘아 물었다. 비는 내리고 있고, 집에 우산 이라고는 찢어지고 찌그러져 엉망인 것들뿐. 20분은 걸어가야 하는 등굣길. 완행버스는 서지 않는 애매한 거리. 손 흔들어 세워 달래기에도 무리다. 만원인 완행버스. 더 중요한 것은 버스비가 없다. 엄마도 나도.

6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우리 집은 날로 어려워져만 갔다. 교복 없는 중학교라 얼마나 다행인지.


아침밥도 먹지 못했다. 도시락도 없다. 비를 맞으며 학교에 간다. 머릿속부터 빗물이 흘러 옷도 젓고 가방도 적신다. 신발에서 물이 새어 들어와 양말도 축축하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잘됐다. 울어도 아무도 모를 테니. 아침부터 내리는 비는 하교시간이 되도록 그치지도 않는다.


"어휴 이 비를 맞고 어떻게 집에 가냐"

교문 앞에서 우산을 들고 서 있는 아주머니들, 뛰어가는 누군가의 아이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방을 챙기고 아주 천천히 교실을 나온다. 내 뒤에 아무도 없을 때까지. 줄기차게 내리는 장대비가 기적처럼 멈추길 기다리며 정문을 나서지 않고 서성여 본다. 그럴 리가 없다. 등굣길처럼 하굣길도 같다. 머릿속에서 빗물이 길을 내며 흐른다.

' 칫 축축했던 옷이 그나마 눅눅해져 버틸만하다 했더니 다시 시작이네'


뿌연 빗물 속에서 낯익은 형체가 눈에 보인다. 아이를 업고 서 있는. 아무도 없는 학교정문 앞 찌그러진 우산을 쓰고. 엄마다.

아무 말 없이 엄마 앞으로 간다. 엄마도 아무 말없이 우산 한나를 건네준다. 접는 우산이다.

" 배 고프지?"

"......"


엄마는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켜 주셨다.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고인다. 너무나도 달콤한 짜장면 향기에 코가 맵다. 팔다리도 녹아내리는 듯하다. 가게 안에 울려 퍼지는 꼬르륵 소리. 비 맞고 갈 생각에 배고픈 줄도 모르고 있었다.

" 어서 먹어라"

오래오래 음미하면서 먹고 싶은데, 마음과 달리 재빠른 손놀림. 황홀한 맛이다. 비워지는 그릇을 보며 느끼는 아쉬움. 이어서 드는 생각. 엄마는 오늘 쓴 돈만큼 힘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기약 없는 짜장면. 언제 먹어봤는지 기억도 없는 요 녀석의 향기를 진심을 다해 코에 담는다.


그 뒤로 나는 비 오는 날 우산을 잘 쓰지 않는다. 우산은 행복이고, 눈물이고, 짜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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