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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hine Dec 11. 2023

사랑이 나를 말하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

 with신곡

책 모임에서 사용하는 나의 별칭은 ‘리체’다. 카페 명칭 같기도 한 이 이름은 베아트리체를 줄인 것이다. 신곡에서 단테가 추앙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베아트리체를 별칭으로 정했었다. 신곡을 읽기 전이었지만 단테가 사랑의 마음이 식지 않는 대상이고, 천국에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무턱대고 나는 베아트리체가 되고 싶었다. 고전 읽기 모임을 하면서 꼭 읽고 싶었던 것이 단테 알리기에리의 ‘신곡’이었다. 근대, 현대의 많은 작품에서 인용된 것을 확인할 때부터 이미 이 책은 읽기도 전에 나에게 큰 영향력을 끼쳤다. 

나는 고전문학을 참 좋아한다. 그 시작을 생각하면 열 살이 지날 무렵, 작지만 멋스럽던 아버지의 서재를 마주하고 섰던 순간부터라 할 수 있겠다. 웅장하다 못해 장엄하게 보이던 벽돌 책들, 죄와 벌, 적과 흙, 전쟁과 평화, 제인 에어 등 지금도 금박의 글씨로 각인된 제목과 책의 생김새가 내 의식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 시절 만화책 광이었던 나는 읽는 속도가 빨라 여러 권의 만화책을 빌려와도 반나절이면 읽을거리가 떨어지곤 했다. 어느 순간 장식품처럼 꽂혀 있던 벽돌책을 하나, 둘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데 이상하게 화가 났던 것이 기억난다. 여자들의 삶이 왜 그리 고달픈 건지, 답답하기만 한 주인공의 현실에 울화가 치밀었다. 다른 책은 안 그러겠지, 하고 읽어보지만,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런 마음을 나눌 누군가도 없어 전전긍긍하다가 삭히곤 했다.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하게 된 것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죄와 벌은 전쟁과 평화나 제인 에어, 여자의 일생과는 무언가 달랐다.

세계문학에서 만난 화려한 문체, 방대한 내용, 상상으로도 경험한 적 없는 미지의 세계는 나에게 별천지와 같은 세상이었다. 천천히 읽히는 맛 또한 좋았다. 고전문학은 그렇게 나의 그리움으로 인생의 한 정거장이 되었다. 4년 전 시작한 고전 읽기 모임은 내게는 ‘다시 읽는 세계 문학’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기도 하다. 그리고 나의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한 귀한 순간이다. 

2023년 12월에 모임 원들에게 신곡을 반강제로 추천하고 같이 읽었다. 직역된 책은 서사시로 읽기가 쉽지 않다. 읽어나가기만 해도 내용이 파악되는 소설에 익숙한 이들에게 운율과 함축된 표현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고전이다 보니 그 시대의 역사적 배경과 작가의 상황을 알지 못하면 읽어도 그 깊은 맛을 느끼기 어렵다. 고전 읽기 모임이기에 가능한 책 선정이었다. 

신곡은 ‘지옥’,‘연옥’,‘천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옥은 34편, 연옥과 천국은 33편으로 총 100편의 시가 들어있다. 살아있는 단테가 죽은 이들의 공간을 여행하는 이야기다. 단테는 이탈리아 피렌체 사람으로 1265년에 태어나 1321년 사망한다. 1304년부터 1320년까지 16년간 구상하면서 쓴 작품이 신곡이다. 정치가였던 단테가 정쟁에 휘말려 고향 피렌체에서 추방당한 것이 1302년이다. 이후 유랑하며 살아가면서 많은 작품을 쓴 단테, 그가 죽기 전까지 써낸 신곡은 단테를 세계 4대 성인으로 추앙받게 한 작품으로 역작으로 남아있다.

젊은 시절 단테는 권력과 명예를 모두 누리던 사람이었을 것이다. 좋은 집안에 태어나 정치, 경제, 학문 등 다방 면에서 뛰어난 업적을 보이고 영향력 있던 삶을 살았던 그가 정쟁에 휘말려 추방당한 심정은 어떠했을까. 죽어서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그의 마음은 지옥의 문 앞에 서 풀어낸 시 구절을 보면 이해가 될 것도 같다.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단테는 자신이 어두운 숲에 처한 것과 같은 상황임을 알고 있었다. 이전과 같은 생각과 삶의 태도로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그는 상처를 치유할 시간과 계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지옥과 연옥을 안내하는 베르길리우스의 등장은 그런 단테의 마음을 잘 알 수 있다. ‘사람은 아니나 전에는 사람이었다.’고 소개되는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와 같이 있으나 죽은 자이다. 

현실에서 자신의 사상과 신념을 펼칠 수 없었던 단테는 신곡에서 하나하나 펼쳐나간다. 그가 지옥에서 만나는 이들은 그의 종교, 철학, 신념, 정치색을 반영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신화의 주인공, 동네 친구에 이르기까지 철학자, 정치가, 시인, 화가, 교황, 추기경 등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그들은 지옥에서 기상천외한 벌을 받는데, 영화 ‘신과 함께’에서 보았던 죄의 목록과 많이 비슷했다. 지옥에서 천국까지 단테가 말하는 죄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추려진다. 이교도(믿음이 없는 자), 애욕, 탐욕, 낭비, 인색함, 분노(폭력), 사기, 이간질, 배신, 나태, 시기, 질투, 교만 등이다. 

단테는 인간으로 태어난 이유는 짐승처럼 살기 위함이 아니라, 덕과 지혜를 따르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인간에게만 주어진 자유의지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짐승처럼 사는 사람들은 지옥으로 간다는 것이다. 죽기 전, 또는 죽었지만,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이가 있는 자들은 연옥에 가지만 그마저 없다면 지옥에서 반복되고 끝없는 벌을 받는 것이다. 우리가 혐오하거나 두려워하는 고통, 무서움, 슬픔 등이 몇백 년이고 반복되는 지옥에서의 시간. 산자로 죽은 자의 안내를 받아 지옥을 경험하는 것을 완전한 경험이라고 말한다. 단테는 외롭고 억울하며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간 시간을 완전한 경험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가 존경하고 사랑한 성인이지만 천국을 안내하지 못한다. 신곡의 지옥은 종교적 색채가 그렇게 크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인간의 죄와 벌이 오히려 부각된다. 하지만 연옥의 끝과 천국의 시작에 등장하는 에덴동산부터 단테의 단테의 종교관을 볼 수 있다. 베르길리우스가 살았던 시점은 기원전으로 기독교가 국교가 아닌 시기이기에 아버지처럼, 스승처럼 그를 인도하지만, 천국을 안내할 수 없는 것이다. 

존 밀턴의 실낙원에서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으며 그러기에 선악과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아담은 대천사에게 자신이 존재하는 것이 하나님의 의지라면서 에덴동산으로부터의 추방 명령에 반박한다. 대천사는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지에 대한 설명을 차분하게 해 준다. 신곡의 천국은 이 장면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베아트리체가 천국의 아홉 하늘을 오르며 만나는 이들에 대해 단테에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삶이 하나님이 원하는 삶이며,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이 준 자유의지를 실현해야 하는지 말이다. 

결혼 전인 25세 무렵, 나는 천주교에 입적했고 결혼 후에는 기독교로 개종했다. 시어머니의 권유에 의한 것이었다. 이후 30여 년을 기독교인으로 살았는데 늘 거기서 거기인 것 같은 성장이 없는, 그렇다고 지식도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종교인이라는 정체성이 너무 미약하니 어디 가서 교회 다닌다는 말을 삼가 왔다. 그런데 최근 실낙원과 신곡을 읽으며 답답한 마음이 조금 시원해졌다. 하나님을 인식하기도 전부터 원죄를 갖고 태어나는 인간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하고, 죽음의 순간까지 글을 쓴 존 밀턴이나 단테 알리기에리의 생을 들여다보며 그들이 가졌던 두려움과 불안, 의존도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나의 불안과 두려움, 그것이 만들어 낸 종교관, 의존에 대해 사유한다.   

고전문학을 읽는 참맛이다. 

마지막으로 신곡을 모두 읽은 후 내가 왜 베아트리체를 별칭으로 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단테의 믿음과 신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베아트리체. 그뿐인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그리고 완전한 베아트리체가 부럽기 때문인가. 아직도 나는 사랑이 고픈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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