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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hine Feb 05. 2024

나를 만나는 시간

with 파도야 놀자

당신은 

많은 아름다운 것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당신이 잊은 것 같다

-에릭 헨슨-     


나는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두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자유롭게 물놀이를 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바람이 있다는 것이 의아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아주 평범한 일처럼 보이는 물놀이가 나는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더운 여름날 계곡에 발을 담그는 상상이 내게는 자연스럽지 않다. 지금은 아이들이 커서 굳이 가지 않아도 되어 좋은 장소가 있는데 바로 워터파크와 같은 실내놀이 수영장이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휴가철이면 찾던 곳이었다. 그곳에서도 나는 아이들이 노는 낮은 풀이 좋았다. 배꼽 이상 올라오는 물높이의 풀에 들어가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심장 가까이 정도 높이의 풀에 들어가면 심장의 두근거림과 부자연스러운 두 다리 때문에 잔뜩 긴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상황은 공황의 증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공황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그저 힘든 상황을 피하고 싶을 뿐이었다. 그래서 물가로 가는 휴가는 즐겁지 않았고 남편 없이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온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혼자만의 삶이라면 물이 있는 곳으로의 휴가는 자의로 선택할 일이 전혀 없었다. 왜 나는 강과 바다, 수영장과 같은 물에서 노는 것이 어려운 것일까.        

이수지 작가의 그림책 ‘파도야 놀자’는 바다 앞에 선 아이의 이야기다. ‘파도야 놀자’ 그림책을 처음 보았을 때 그림이 마음에 꼭 들었다. 푸른 바다, 작은 아이, 구름 가득한 하늘, 갈매기가 등장하는 표지의 그림에 반했다. 한 장면 한 장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아이의 표정에 나타나는 호기심, 기대감, 두려움, 주춤거림, 집중, 즐거움에 나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나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와 함께 바다를 찾은 아이는 일렁이는 파도를 만들어내는 바다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한다. ‘와, 바다다.’하고 뛰어들지 않는다. 한 발짝 다가갔다가도 다시 뒤로 물러선다. 바다는 아이와 놀고 싶은지 장난을 쳐오는 것만 같다. 물보라를 일으키기도 하고 작게, 크게 춤을 춘다. 아이는 물의 노래를 듣고 물의 춤을 보며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다. 같이 놀고 싶어진 것일까. 아이는 서서히 다가간다. 어느 순간 바다와 놀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나도 바다와 신나게 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가 바다로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망설이며 때로는 파도에게 호령을 하기도 하고 물러간 파도를 따라갔다가 다시 되돌아오기를 반복하는 모습에서 나를 본다. 30대까지의 나는 삶과 정면으로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학업, 일, 사랑, 어느 것에도 몰입하지 못했다. 원하면서도 마음을 다해 노력한 적이 없었다. 실패와 좌절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었으며 아픔과 슬픔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일어날 일에 대한 두려움, 그것에 맞설 힘이 없었기에 다가다지 못했다. 그래서 내 삶에는 노래와 춤이 없었다. 정작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삶은 나아가고 있었다.   

칼 융은 중년기를 ‘인생의 정오’로 비유하면서 성숙을 위한 변화를 시작하는 시기라고 했다. 나는 신나고 재미있는 삶을 살고 싶었지만 정작 그 시기에 나는 공허하고 후회만 있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탈출구를 정하고 향한 곳은 상담대학원이었다. 상담학과 미학은 평소에 관심 있고 더 공부하고 싶은 분야였다. 인생의 정오가 지나면서 시곗바늘은 내면을 향했다. ‘파도야 놀자’의 아이가 바다에 놀러 간 것은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었을 것이다. 나 또한 아이가 바다 앞에 선 것처럼 그렇게 나의 내면과 마주하기로 마음먹었다.  

상담자 수련을 하는 동안 가장 두려웠던 것은 보고 싶지 않은 내 모습-열등하고 무기력한-과 직면해야 하는 것이었다. 아이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놀고 싶지만, 쉽게 뛰어들기를 겁내는 것처럼 나를 만나는 시간이 내게는 무엇보다도 두려웠다. 용기를 내고 싶었지만 두려움은 언제나 그보다 앞서 찾아왔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작고 연약한 내가 있었고, 내면의 미성숙한 모습을 수용하는 것이 얼마나 아픈 지, 용서되지 않는 못난 나를 만나야 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늘 다니는 길에서 싫어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 길을 피하고 싶어질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피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은 수용되지 못한 채 내면에서 떠돌고 있다. 수용한 나와 수용하지 않는 나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은 온전한 나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내적, 외적으로 통합되어야 하며 내면에 분리되어 있는 나의 경험들도 통합되어야 한다. 온전한 내가 된다는 것은 다양한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며 상상할 수 없는 경이로운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에너지다.  

‘파도야 놀자’에서는 그 순간이 그림책의 한 장면으로 표현된다. 어느새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는 아이의 표정은 경이롭다. 그림책의 좌우면으로 나누어져 있던 무채색과 유채색은 아이가 바다와 하나가 되어 노는 순간, 유채색으로 변한다. 아이의 세상과 바다가 통합되는 것이다. 자신감 넘치는 아이의 발길질과 파도 또한 하나가 된다. 점점 강렬해지는 아이의 발장구와 지면을 꽉 채운 파도. 순간 아이의 하얀 치마는 어느새 파랗게 물들어 있다. 하얀 여백으로 있던 하늘과 바다도 파랗게 된다. 이제 아이는 진정으로 바다를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아이를 따르던 갈매기도 아이처럼 행복한 모습이다. 바다와 하나가 된 아이가 해변에 앉아 갈매기들과 바다의 모든 것을 즐기는 장면은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카타르시스를 선물했다. 

‘파도야 놀자’에는 아이와 바다 외에 등장인물이 더 있다. 갈매기와 엄마이다. 갈매기는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와 함께 한다. 바다이니 갈매기는 당연히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이 주위를 돌며 어떤 상황에도 함께 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갈매기가 아이의 또 다른 내면이라고 생각한다. 갈매기는 아이가 바다에서 노는 동안 두려움과 맞서 용기 낼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준다. 나에게 있는 것들은 모두 중요하다. 없어져야 할 것은 없다. 삶의 경험은 어떤 것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며, 지워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엄마처럼 아이 옆에서 응원이 되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하면서 아이가 혼자가 아님을 보여준다. 삶을 살다 보면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없을 경우가 있으며 계획한 대로 되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아이가 바다에서 긴장을 넘어 완전한 즐거움을 경험하며 행복감을 맛보는 것처럼, 우리도 자기 자신과 신명 나게 놀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물과 같은 자연물은 인류의 시작부터 우리와 함께 해왔다. 그래서 원형이 될만한 신화적 요소를 갖고 있다. 특히 물은 생명과 죽음을 상징하고 있으며 정화와 고난을 상징하기도 하는 양면적 요소를 가진다. 인간은 물에서 태어났다는 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물과의 처음 만남은 자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물은 생존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내가 물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생존의 위험을 느끼는 무의식적 발현이라는 생각을 했다. 시치료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나의 임태기가 궁금해져 엄마에게 물었었다. 나를 임신했을 때의 이야기를 말이다. 엄마는 삶에서의 작은 경험을 이야기하듯 편안하게 말했지만, 나는 큰 충격에 휩싸였었다. 아버지와 이혼하려던 차에 나를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고 유산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태아에게 물리적 충격을 가한 것은 아니지만, 산부인과를 찾아 상담을 받았고 임신을 후회했으며 행복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물을 두려워하는 이유에 대한 작은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았다. 생존의 위협. 내가 큰아이를 임신했을 때 얼마나 기뻐했는지, 그리고 주변에서 좋은 것들로 배려하고 환대해 주었던 경험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했는지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엄마의 자궁에 있던 10개월 동안 내가 경험한 두려움과 공포가 어떠했을지에 다다르니 전율이 흘렀다. 나의 시작이 어떠했는지를 알게 되었을 때의 슬픔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 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바람의 노래 중에서-


물에 빠져 허우적대던 기억이 있다. 10살 무렵, 원가족과 놀러 갔던 계곡에서 물을 무서워하던 나는 커다란 바위에 앉아있다가 미끄러져 물에 빠졌었다. 물속에서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한데 아무도 없는 물에서 잠깐이나마 고요했고 이렇게 죽는구나를 느꼈다. 그 순간 아버지가 나를 구해내셨고 물을 토해내고 난 후 나는 살았다. 오들오들 떨었던 기억이 지금도 춥다. 결국 나를 살린 것도 나를 죽인 것도 물이었다.   

독서치료를 전공한 후에는 나를 비추는 거울과 같은 책을 만나면 반갑고 귀하다.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만한 바닷가에서의 일상이 담긴 ‘파도야 놀자’는 나의 깊은 내면으로 나를 안내했다. 우리는 생애 발달단계에서 친구, 학업, 결혼, 직업 등 저마다 직면해야 할 과업들이 있다. 새로운 친구인 파도를 대하는 소녀처럼 과업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도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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