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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hine Jul 22. 2024

불편한 마음과 있기

with감정 호텔

감사하게도, 상담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후, 마음이 불편하다고 느끼는 시간보다 일상을 평안하게 느끼는 시간이 많다. 이전에 비해 생활환경이 달라진 것도 아니고 주변의 사람들이 바뀐 것도 아닌데 그렇다. 일상은 지속되고 있고 알게 모르게 나에게 작고 큰일이 일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부담감이나 번복되는 생각에서 오는 내면의 소리로 나를 괴롭히는 일이 적어 살만하다. 그동안 쿨한 척, 살아왔지만 사실 나는 무척 예민한 사람이다. 마음에 아주 작은 불편감이 생기면 해결될 때까지 속을 끓이는 편이었다. 


그런데 최근 불편한 마음을 느끼게 하는 일이 생겼다. 나는 주말마다 텃밭을 찾는다. 시외에 있는 시골 마을인데, 그곳에 사는 한 사람의 태도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처음 그곳을 방문했을 때, 그는 먼저 다가와 인사를 나누고 우스갯소리를 했으며 동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하곤 했다. 손수 지은 농작물도 나누어 주어 나는 고맙게 받았고 답례를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최근 그 사람은 나의 인사를 받는 듯 마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먼저 인사를 건네도 ‘네’하고 대답만 한 후 고개를 돌린다. 처음에는 내 인사를 듣지 못했나 싶어 더 큰 목소리로 인사하고 밝게도 안부를 건네 보았지만 그 사람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어쩌다 마주치면 인사만 주고받는 사이였기에 이런 상황에 대해 질문하거나 알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저 개인의 기분 문제라고 생각하며 지켜보았고 나는 내 일을 할 뿐 더 이상의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텃밭을 갈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생각하지 말아야지’하고 마음먹는다고 멈춰지는 것이 않는다. 어느 순간 나는 그 사람과의 첫 만남부터 되짚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의 기분을 짐작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남편에게 ‘저 사람 왜 저래? 정말 이상하지?’라는 말을 하기도 하며 불편감을 빨리 해소하고 싶어 하는 나를 보게 되었다.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이 아니고 특별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님에도, 나는 그 사람으로 인해 생긴 불편감을 마음에 담아두는 것이 어려웠던 것이다. 나는 여전히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바라본다. 가만히 눈을 감고 불편한 지금 감정을 상징화해 보았다. 깨진 꽃병이 떠올랐다. 나는 그 꽃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치우고 싶은 마음을 강렬하게 느꼈다. 그렇다. 나는 불편한 마음을 소유하는 것이 힘든 사람이다. 아직도 불편함에 내 마음의 공간을 내주는 일이 쉽지 않다. 깨진 꽃병과 잠시라도 가만히 있으려 애써보았다. 생각은 생각이고 느낌은 느낌일 뿐인 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림책 ‘감정 호텔’은 감정이 손님으로 오는 특별한 호텔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손님은 자신이 오고 싶을 때 오고, 머물고 싶은 만큼 호텔에서 지내다 떠난다. 지배인은 손님에게 필요한 방을 내어준다. 기쁨, 슬픔, 분노, 감사, 사랑 등에게 말이다. 호텔 지배인은 분노에게 가장 큰 방을 내어준다. 외진 곳의 작은 방을 내준 적이 있었는데 분노가 편히 머물다 가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노에게는 마음껏 소리치고 화낼 수 있는 크고 안전한 방을 내어주는 것이다. 호텔은 나 자신이며 호텔의 지배인 또한 바로 나임을 알 수 있다. 거부할 수 없는 손님으로 찾아오는 감정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림책이다.


예약을 하고 오는 손님이라면 그들에게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겠지만, 감정은 불쑥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삶의 경험으로 알아차리게 될 뿐이다. 우리는 감정손님을 받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특히 불안, 슬픔, 화처럼 부정적인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거부할 수 없다. 인간에게 감정이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감정은 인간의 고유한 특성으로 감정이 없는 삶을 이야기할 수 없다. 감정은 불현듯 찾아와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다 간다. 내가 보내고 싶다 해도 가능하지 않다. 충분히 머물러야 떠난다. 그렇다면 환대가 있어야 할 것이다. 무조건 받아들이고 그들이 머무를 공간을 제공하고 편안히 쉬다 갈 수 있도록 말이다. 감정호텔은 살아있는 동안 영업을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상담을 하다 보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이들이 있다.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을 만난다. 청소년과의 상담에서 이런 경우를 접하곤 하는데 그들은 부모의 손에 이끌려 상담 장면에 나온다. 마음을 물어보면 괜찮다고 답하는데 보호자가 전하는 그들의 일상은 평안하지 않다. 한 고등학생은 학교 등교를 거부한 상황이고 친구들과 접촉도 하지 않고 있었다. 부모는 걱정과 두려움으로 상담을 의뢰했다. 하지만 정작 자녀는 자신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하며 자신의 감정과 접촉하려 하지 않았다. 자기만의 공간에 혼자 있고 싶으며 핸드폰과만 소통하고 싶다고 말했다.  


부정적인 감정과 접촉한다는 것 자체를 실패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감정과 직면하기를 회피한다. 실패와 좌절에 대한 두려움을 경험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자신의 실수와 실패를 수용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좌절을 견디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그것을 어려워한다. 경미한 교통사고를 낸 적이 있다. 그 순간 나는 너무 당황했고 내가 한 행위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싶었다. 먼저 든 생각은 남편이 옆에 있다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의존할 대상이 필요했다. 나 혼자 사고 처리를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컸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혼자였고 지금-여기를 받아들여야 했다. 현재를 인식하기, 미숙한 자신의 운전실력을 수용하기, 나는 내가 사고를 낸 것과 마주했다. 그리고  앞차의 운전자에게 정중히 사과했다. 나의 미숙함을 말로 인정했다. 그러자 나의 불안과 두려움은 사라졌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감정에는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 불안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화는 쌓인 감정을 해소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의 감정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었을까. 나는 실수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 어려워 그 순간 경험하는 불안을 회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인간은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할 수 있는데 타인에게는 매우 합리적인 관점을 갖고 있으면서 자신에게는 비합리적인 잣대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같은 상황이라 해도 같은 감정을 경험하지 않는다. 왜 인간은 같은 상황에서도 서로 다른 감정을 경험하게 되는가. 그것은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가치관은 나만의 고유한 관점을 만들어내고 나는 그 관점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상황에서도 서로 다른 감정을 갖게 된다. 결국 관점은 인간의 감정을 결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강요해서는 안 되며 또한 타인의 감정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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