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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shine May 10. 2024

당신은 당신의 생각보다 강하다

with 마음이 아플까 봐

                                                인생에서 가장 큰 고난은 우리가 얻고자 노력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장애물을 뛰어넘거나 치우려고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앞날을 가로막는 고난의 정체였다. 

                                                                                                                        -쇼펜하우어



상담실을 운영하지만, 프리랜서인 나는 외부의 기관으로 상담을 나가는 일이 종종 있다. 기말고사를 마친 고등학생들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으로 집단 상담 의뢰가 있어 다녀왔다. 집단 상담은 상담의 형태로 2인 이상으로 구성되어 진행하는 상담이다. 일대일로 진행하는 개인 상담과는 다르게 참여자들의 상황에 따라 프로그램에서의 역동이 매우 다르다. 

다른 연령대에 비해 청소년기 참여자들은 집단 상담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다. 함께 모여 마음과 생각을 나누는 시간의 의미를 수용하지 않으려 한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그동안 만난 중·고등학생 참여자들은 언어와 행동을 과장되게 표현하거나, 자기표현을 전혀 하지 않는 경우로 양분되는 상황을 자주 보였다. 나는 그 이유를 청소년기가 제2의 자기중심적인 시기이기도 하고 자기 탐색에 몰입하는 때이기에 매우 개인적이면서도 자신을 드러내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학업과 진로의 갈림길에서 세상과 어떻게 대면할지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큰 시기여서 마음이 매우 혼란스러울 것이라 생각한다.  


‘마음이 아플까 봐(올리버 제퍼스 글·그림, 이승숙 옮김, 아름다운 사람들)’는 제목에서 조심스러운 주인공을 예측하게 된다. 원제는 'The heart and the Bottle'인데 직역하면 심장과 병이다. 작은 소녀가 주인공인 이 책은, 속지 가득 할아버지와 소녀의 사랑스러운 모습이 가득하다. 귓속말을 주고받고, 고양이를 함께 돌보는 등 정겨운 모습이다. 소녀는 할아버지와 함께하며 온통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하늘과 바다의 신비로움을 즐기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며 기뻤다, 그때 소녀의 심장은 뜨겁게, 살아 꿈틀거렸을 것이다.

소녀는 어느 날 할아버지의 빈 의자를 발견한다. 소녀는 마음(심장) 이 아플까 봐, 병에 넣어 목에 걸고 다닌다. 그러자 마음은 아프지 않았는데 모든 것이 달라진다. 별과 하늘에 대한 관심도 세상에 대한 열정도 호기심도 없어졌다. 소녀는 자라고 병은 점점 무거워져 불편했지만, 마음만은 안전했다. 호기심 많은 작은 아이를 만나자, 소녀는 말하고 싶어 진다. 하지만 마음이 없어 말하지 못한다. 소녀는 병에서 마음을 꺼내려 하지만 할 수 없다. 작은 아이가 병에서 마음을 꺼내주었을 때 마음은 제 자리로 돌아온다. 마지막 장면이 참 좋다. 할아버지의 의자에 앉은 소녀의 표정과 드넓게 펼쳐지는 소녀의 열정과 호기심이 안심하게 한다.  

마음이 아플까 봐 중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소녀처럼 병에 담는다. 마음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다. 소녀의 목에 걸린 병은 매우 상징적인 표현으로 보인다. 나는 강연에서 사람을 자주 유리알에 비유하곤 한다. 그만큼 소중히 다루어야 할 존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목에 병을 건다는 것은 병이 깨질까 봐 가까이 두고 지키려는 모양새다. Heart를 마음으로 번역하고 있지만 그림책에서 선명하게 보이는 병 안의 심장 그림은 그림책을 보는 내내 저 병이 깨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 


심장을 목에 건 소녀처럼 마음이 아플까 봐 두려움을 병에 넣는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고 행동과 언어를 통해 드러난다. 괜찮은 척 애쓰지만 불편한 것들이 많아서인지 표정은 경직되고 작은 일에도 방어적으로 되어 강하게 반응한다. 옳고 그름을 따지려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 모르는 척하기도 한다. 기억의 창고에 저장하고 문을 걸어 잠그기도 한다. 마음이 아플까 봐 그런다. 우리는 이것을 방어기제라고 한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장치로 인해 타인의 진심이나 친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떤 집단에 가면 느끼는 묘한 기운이 있다. 환대하기보다 경계하는 모습이 크다. 어떻게 그들을 탓할 수 있을까.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 눈에 그들은 소중하게 다뤄야 할 작은 유리알이다. 유리알들이 저마다의 빛을 내고 그 안의 것들을 비춰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들은 자신의 마음이 아플까 봐 겁을 내고 있다. 

     

그들만 그럴까? 아니 그렇지 않다. 대학에서 집단 상담 의뢰를 받아 학교를 방문하기도 하는데, 심리학과 학생들을 만나는 것에 무척 신이 났었다. 자기를 탐험하고 여행하며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나눌 생각에 말이다. 그런데 이런 나의 기대는 바로 무너졌다. 모든 심리학 전공 학생들이 그럴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만났던 학생들은 자기 개방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오히려 배운 것이 독이 된 것인지, 자신이 드러날까 봐 경험이 없는 사람보다 더 방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쩔 수 없이 아직 무엇에도 자유롭지 않은 그들을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그들뿐이 아니다. 상담대학원에서의 경험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나는 석사 과정을 마친 후 박사학위 취득에 뜻을 두고 있지 않아 바로 공부를 계속하지는 않았고, 석사 졸업 후 6년 반 만에 공부를 더 하고 싶어 박사 과정에 입학했다. 심리상담을 전공한 사람들, 특히 박사 과정에 있는 이들은 이미 사회에서 상담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성격 장애 관련 수업에서 나는 나를 자기애적 성향이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일상에서 나에 대해 통찰한 부분을 공유했었다. 그런데 강의실 분위기가 갑자기 조용해지며 다소 당황한 눈빛들을 발견했다. 나는 나 자신이 좋은 사례이며 그것을 이야기하고 나누기에 심리상담사 집단은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들을 당황하게 한 조금 이상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심리학의 대가들은 자신을 연구하고 탐험하기를 좋아했다고 알고 있다. 자신은 특별하지만 일반적이기 때문에 자신을 통해 알게 된 심리적 요인들은 타인을 이해하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내로라하는 유명한 상담사는 아니지만 나를 수용하고 인정하며 나를 해방하는 좋은 상담가로 발전하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왜냐하면 마음이 아프면 얼마나, 어떻게, 아픈지 살펴보면서 숨기거나 회피하지 않고 타인에게 투사하거나 부인하지 않고 나의 아픔과 고통을 돌보고 싶기 때문이다.     


* 부인( denial) 

자신의 용납할 수 없는 생각이나 행동을 마치 그러한 것이 없었던 것처럼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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